가족 파산, 어머니 및 약혼자 사망, 정신병원 입원, 연이은 낙마. 그리고 1860년 대통령 당선. 미국인들이 가장 위대한 대통령 1위로 꼽는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의 일대기다. 링컨은 넘어질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괜찮아, 길이 약간 미끄럽긴 해도 낭떠러지는 아니야. 이러한 링컨을 닮은 남자가 있다. 김성제 의왕시장이다. 사람들은 그를 오뚜기 또는 의지의 한국인으로 부른다. 국토해양부 서기관 출신으로 정치인이 됐으면 한국 사회에서 탄탄대로의 출세길을 달려온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오뚜기일까? 11월의 첫날, 김 시장을 만났다. 그는 유쾌했다.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공개하는 시장 앞에서 기자는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링컨을 닮은 남자 이야기는 녹차의 고장,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시작됐다. 낙방, 낙방, 또 낙방도전, 도전, 또 도전 김성제 시장은 어렸을 때 이야기를 꺼내면서 상장 자랑부터 했다. 보성이 고향인데 어렸을 때 그림을 잘 그렸어요. 하루에 상장을 4개까지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하하). 특히 만화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화가가 됐었어야 할 소년은 지금 정치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선천적으로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을 가진 그는 중학교 시절, 정치인이 되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은 화려했다. 박치기대왕, 닮싸움의 1인자였던 그는 광주 숭의중학교 재학시절 학생회장을 지냈고 동신고등학교 땐 선도부장을 맡았다. 교문 앞에 서서 학생지도 선생님과 지각생, 복장 및 두발불량 학생들을 단속하면서 나름 후배나 동료들에게 두려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이 그의 인생에 있어 말 그대로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 약한 친구들을 못살게 하는 녀석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때려주기도 했죠. 아마도 이러한 성격은 구한말 의병활동을 하셨던 외증조 할아버지와 교육자셨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던 학창시절, 그에게 실패, 좌절이란 단어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승승장구하던 그의 첫번째 시련은 대입 낙방. 목표가 고려대 정치학과였습니다. 고3때도 선도부장을 하면서 나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는데 시험결과가 좋지 않았죠. 전남대 공대를 응시했다 낙방하고 삼수 끝에 경희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인생의 첫 관문인 대입 실패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고 재수 하는 동안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하하) 김 시장은 군대 제대하고 진로고민에 빠졌다. 4수를 해서 고려대를 다시 갈까, 아니면 새롭게 출발해 행정고시를 볼까. 그는 고대도 못 간 놈이 무슨 고시냐 싶기도 했고 SKY대학 출신들이 최선을 다해도 될까말까 하는데 내가 해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했다. 그러나 연거푸 7번 낙방하고 만다. 대학 2학년부터 고시를 준비했으니 20대 청춘을 고시원에서 보냈죠. 왜 저라고 때려치고 싶은 생각 안해봤겠어요. 고시 공부를 하면서 패자의 아픔을 알게 됐고, 공부를 할수록 겸손함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끝이 안보이던 터널도 끝은 있더라구요. 김 시장은 7전8기로 여덟 번의 도전 끝에 행정고시 합격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그의 나이 서른 하나였다. 솔직히 수재는 아닙니다. 하지만 목표가 있었고 꼭 이루고 싶었습니다. 7전8기 끝에 행시 합격 17년간의 공무원 생활이 시정 큰 자산 시험 운이 없는 편인지 삼수 만에 대학원 석사과정 합격, 재수 만에 대학원 박사 과정 합격, 대학원 수료 후 5년 만에 박사학위 취득, 심지어 운전면허 주행시험도 4수만에 합격했습니다.(하하) 매 시험마다 합격의 문턱에서 제 발목을 잡았던 녀석이 바로 영어였습니다. 행정고시 1차에서 5번이나 떨어진 것도 영어 때문이었고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입학고사에서도 역시 영어는 커다란 걸림돌이었죠. 영어를 피하지 말고 정면돌파 하자 결심하고 하루에 8시간 이상 영어공부에 매달려 결국엔 영어 콤플렉스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포기할 만도 한데 단 한 번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그는 오뚜기 처럼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그리고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링컨처럼 말이다. 제2의 고향, 의왕시청소년과 어르신들의 천국 만들기 김성제 시장은 국토해양부에 근무하면서 국토계획, 교통체계, 해양영토 등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그리고 17년간 공무원생활의 경험을 살려 화려하게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의 첫 정치무대, 의왕은 2002년 초 둥지를 틀면서 제2의 고향이 됐다. 고구마 모양의 의왕시는 백운호수와 왕송호수 등 풍부한 수자원과 수변공간이 있는 조용한 전원도시입니다. 그러나 시 전체면적의 88.7% 이상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보니 개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역별 특성을 감안한 도시개발과 무엇보다 교육이 지역을 살릴 수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분야도 바로 교육입니다. 김 시장은 2010년 10월 교육전담부서인 창의교육지원과를 신설했다. 그리고 파격적인 예산을 지원했다. 2011년도 교육지원 예산은 2010년도의 4배 수준인 약 143억원. 이는 의왕시 일반회계 예산 1천880억원 중 약 7.6%에 달하는 것으로 열악한 지방재정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분에 이처럼 많은 지원을 한 기초자치단체는 보기 드물다. 이는 오로지 지역 학생들이 걱정없이 청소년 시절을 만끽하고 공부할 수 있는 교육도시를 만들겠다는 김 시장의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의왕시 관내 4개 고등학교 중 기숙사가 없는 의왕고와 백운고에 예산확보를 통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관내 모든 고등학교가 기숙사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했어요. 지난해까지는 학교급식시설과 냉난방시설 개선 등 주로 하드웨어 지원에 치중했다면 올해는 소프트웨어인 특성화 프로그램 위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원어민 영어교사 지원, 수준별 이동수업 지원뿐만 아니라, 과학과 수학 중점학교, 논술토론프로그램, 엘시스테마 교육, 리코더부 운영, 멘토링 프로그램 등 각 학교별로 특성에 맞는 중점사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습니다. 김 시장이 교육만큼이나 정성을 쏟는 분야는 바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사업이다. 의왕시는 지난해까지 경로당 현대화사업을 통해 관내 99개 경로당에 노후화된 벽지, 장판, 씽크대를 교체하고 TV, 냉장고, 에어콘 등 가전제품도 새것으로 들여놨다. 또 치매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99개 병상을 갖춘 건강누리 노인요양원과 전국 최초의 노인건강센터를 개소운영 중에 있다. 김 시장의 어르신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3년 초에는 전국 최대 규모(약 300평)의 노인전용 목욕시설을 개관 예정이다. 황토방, 사우나, 물안마 등 최신식 편의시설을 마음놓고 이용할 수 있어 경기도내 어르신들 사이에선 의왕시가 최고의 노인도시로 회자될 정도다. 백운지식문화밸리 조성사업 본격 추진 김 시장 취임 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꼽자면 약 20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백운지식문화밸리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지난 7월 말에는 신세계가 이 지역에 대형복합쇼핑센터를 건립하기로 하고 시와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백운지식문화밸리 사업은 백운호수 뒤편에 약 30만평 규모로 조성하는데 여기에 약 2천400세대의 저층ㆍ저밀도의 타운하우스 등 주거단지를 조성하고, 백화점, 호텔, 명품관, SPA, 비즈니스센터 등이 들어서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에 대한 김 시장의 포부와 계획도 구체적이다. 취임 후 우리 시의 도시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11년 5월 의왕도시공사를 설립했습니다. 의왕도시공사에서 백운지식문화밸리 사업을 체계적으로 준비해 지난해 말 국토부의 승인을 받아 그린벨트(GB)를 해제하고, 지난 3월 경기도로부터 개발계획을 승인받았습니다. 순차적인 사업 진행으로 의왕시의 새로운 도시개발을 이끌 예정입니다. 앞으로 백운지식문화밸리가 친환경 명품주거단지로 조성돼 의왕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백운지식문화밸리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오는 2020년까지 15개 지역 구도심 재개발ㆍ재건축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면 김 시장이 슬로건을 내건 명품창조도시 건설이 실현될 것으로 관망하고 있다. 이 같이 밤낮없이 의왕맨으로 살아온 김 시장의 노력이 성과를 맺기 시작하면서 의왕시의 대외 평가도 저절로 좋아졌다. 증거는 많다. 녹색교통대상, 국가브랜드대상, 국토디자인대상, 국제비지니스본상, 율곡대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62개의 크고 작은 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상은 전국 230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한 제16회 자치경영대상에서 전국 최고의 종합대상을 수상한 것. 김 시장은 현재의 삶에 100%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했다. 개인적인 여유가 없고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희망을 키워주는 역할이 마냥 좋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고구마 모양의 의왕시는 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 최고의 도시가 될 수 있는 인적 잠재력과 천혜의 환경조건을 가지고 있는만큼 교육, 복지, 도시개발에 힘쓰면 희망과 기대로 활력이 넘치는 의왕시로 발전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2012 경기도민 평화 한마음 콩콩 걷기대회가 11월 18일 오전 파주 임진각 일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DMZ(비무장지대) 청정지역에서 자란 파주의 대표 특산물인 장단콩의 우수성을 알리는 파주장단콩 축제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날 걷기대회는 경기도와 파주시, 경기일보가 공동 주최하고 파주시체육ㆍ생활체육회가 주관했다. 시민 1천여명 손에손에 노란풍선늦가을 정취 만끽 이인재 파주시장, 박찬일 파주시의회의장, 임창열 경기일보 대표이사 회장, 여상궁 농협중앙회 파주시지부장을 비롯해 시민 등 1천여 명은 임진강역을 출발해 DMZ 철책선길(평화누리길)을 따라 걷다 통일대교와 에코뮤지엄을 거쳐 다시 임진강역으로 돌아오는 6㎞ 구간을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거닐며 늦가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했다. 특히 참가자들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인 DMZ 철책선길(평화누리길)을 걸으며 자연 그대로의 청정지대를 보며 감탄사를 연신 쏟아냈고, 6㎞ 코스의 DMZ 철책선길(평화누리길)은 참가자들에게 지급된 노란색 풍선으로 그야말로 노랑 물결의 장관을 연출했다. 또한 이날 행사에서는 치어리더 공연 등의 식전 행사를 비롯해 풍물놀이와 트럼펫 연주, 직장인 밴드인 광탄밴드의 무대가 펼쳐져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가족과 함께 대회에 참가한 윤창기씨(73)는 지난해 걷기대회에도 참가했는데 의미 있고 좋아서 올해는 아내와 함께 참가했다며 좋은 날씨에 경치가 좋은 코스를 걸으니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인재 파주시장은 오늘 걷는 길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군사지역으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광이 남아있는 곳이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좋은 풍경의 길을 걸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한편, 파주장단콩 축제는 11월 16일부터 18일까지 임진각 광장에서 웰빙명품 파주장단콩이란 주제로 개최돼 모두 80만 명이 방문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글 _ 파주ㆍ박상돈ㆍ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사진_김시범 기자 sbkim@kyeonggi.com [Interview] 이인재 파주시장 걷는 행복+안보의식, 일석이조 행사 이번 행사에 참여하신 모든 참가자분들은 평화의 상징인 이곳 일대에서 철책선을 넘으며 행복과 함께 안보의 중요성을 느끼셨을 겁니다. 11월 18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1천여 명이 참석한 2012 경기도민 평화 한마음 콩콩걷기대회는 임진각 일대를 노란풍선으로 뒤덮었다. 이인재 파주시장은 농작물을 주제로 개최하는 웰빙축제 중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2012경기도민 평화 한마음 콩콩걷기대회가 이 유명세를 견고하게 다져주며 안보의식까지 고취시켜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행사를 마친 소감을 전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걷기대회가 파주를 온통 걷기 열풍으로 몰아주고 있다고 평하며 파주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찾아온 참가자들이 걷기를 통해 건강을 지키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시장은 파주장단콩축제라는 단순 지역축제를 전국적인 축제로 승화시키기까지는 콩콩 걷기대회가 효자노릇을 했다며 이제 장단콩 축제는 더이상 파주시민들만의 축제가 아니다고 자랑했다. 특히 도내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에게 한 움큼씩 볶은 장단콩을 나눠줬는데 걷고 먹으면서 장단콩의 효능이 얼마나 좋은 지를 모두 느꼈을 것이라며 이보다 더한 장단콩 홍보가 어디 있겠느냐고 흐뭇해했다. 이 시장은 지난해 이 행사를 통해 파주에 걷기운동 붐을 조성해 시민들의 건강을 증진시켜 나가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이뤄진 만큼 내년에도 꼭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글 _ 파주ㆍ박상돈 기자 psd1611@kyeonggi.com
오메, 단풍 들것네 김영랑 오메,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메,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메, 단풍 들것네. 가을이 오나 싶더니 이내 깊어지고 설악의 단풍은 이미 가을의 흔적으로 낙엽되어 뒹굴고 있다. 가을을 뒤로한 채 서둘러 찾아 온 초겨울의 알싸함이 그립다면 용인 호암미술관에 잘 꾸며진 우리나라 전통 정원인 희원으로 나들이 하는 것도 좋겠다. 희원은 전통정원 조형미의 근원인 차경(借境)의 원리를 바탕으로 옛 지형을 복원하고 석단, 정자, 연못, 담장 등 건축요소를 고려해서 만들어진 전통 정원이다. 정원 곳곳에 심어진 관상수들 또한 최고의 묘목들이어서 눈요기 감으로도 충분하다. 희원에선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과 어린 꼬마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온 중년의 아줌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봄엔 철쭉 등 다양한 꽃이 아름답고 여름엔 주정(主庭)에 피어나는 연꽃이 아름답다. 가을엔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반기고, 겨울이면 성곽 축조기법으로 만들어진 담장과 나무에 소복히 내려앉은 눈이 낭만의 세계로 초대한다. 특히 강남에서 광역버스를 타면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어서 좋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 보단 광역버스를 타고 에버랜드에 도착해서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을 권한다. 글사진 _ 이정환 (미아리 사진방 대표작가)
흥하는 도시에는 물이 있다. 지구촌 최대의 도시인 뉴욕엔 허드슨 강이 흐르고 바다와 마주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엔 세느강이, 영국 런던엔 템즈강이 흐른다. 경기도의 중심, 수원시도 물이 흐른다. 광교산에서 발원한 100만 수원 시민의 젖줄, 수원천은 20년 가까이 콘크리트로 덮여있다 최근 생태형 하천으로 복원돼 모습을 드러냈다. 전통시장과 문화재가 어우러진 수원천을 되살림으로써 수원시, 그중에서도 팔달구가 살아나고 있다. 수원의 경제가 살아나고, 수원의 문화가 만개하기 시작했다. 11월 8일 윤건모 수원 팔달구청장을 만나 길고 긴 수원천 이야기를 나눴다. 국내 최초 도심형 생태하천의 원조 수원천 윤건모 구청장은 주말이 더 바쁜 남자다. 축구, 탁구, 테니스, 당구 등 다양한 종목을 넘나드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소문이 났지만 정작 바쁜 이유는 따로 있다. 윤건모 구청장을 만나려거든 수원천으로 가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만큼 요즘엔 틈만 나면 수원천을 걷는다. 윤 구청장은 특히 지난 9월부터 매주 토요일 지동교에서 열리는 장도 보고 공연도 보는 funfun 토요일! 전통시장 토요문화공연은 빼놓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개발의 논리에 밀려 콘크리트로 덮여졌던 수원천 지동교와 매교 사이 780m 구간이 18년 만에 콘크리트 덮개가 걷어지면서 생태형 자연하천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됐습니다. 수원시가 복원사업을 시작한 지 3년만입니다. 최근 수원천과 남수문 복원이 완료됨에 따라 12월까지 토요상설문화공연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상설공연은 지동시장, 영동시장 등 팔달문 주변 9개 시장상인회와 함께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지동다리에서 다문화공연, 실버공연, 청소년 공연 등 매주 테마를 가지고 음악무용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열려 시장 상인과 시민들의 눈과 귀를 호강시켜주고 있다. 이에 윤 구청장은 좋아하는 운동도 마다하고 주말마다 수원천을 거닐며 공연도 보고 전통시장에서 순대국도 사먹는다. 또 저녁 찬거리를 사며 상인들과 대화하며 민심을 챙기고 있다. 이 같은 윤 구청장의 자연스럽고, 소소한 행정으로 수원천의 기적이 팔달구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수원시 예산 600억원(국도비 300억원 포함)이 투입된 수원천이 단순한 하천복원이 아닌 시민참여형 공간으로 거듭나 다양한 문화가 소통하고 재생산되는 장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일환으로 다소 어둡고 침침했던 수원천 매향교 교각 하부를 주민들의 건의에 따라 시민이 손수 그린 타일 5천 장을 벽면에 붙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고 조명을 설치해 다리밑 갤러리 공공예술프로젝트를 시민과 함께 추진했다. 또 수원천 주변 경관 개선을 위해 매향교에서 남수교까지 14개 건물의 간판 87개를 수원화성과 어울리는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로 조성했다. 팔달구 구도심 동네의 작은 문화혁명 수원천에 가면 윤 구청장을 만날 수 있다는 데, 그럼 그의 비밀 아지트는 어디일까? 바로 팔달구 지동에 있는 핑퐁음악다방 1호점이다. 조용히 생각하고 싶을 때나 스트레스 받을 때 윤 구청장은 핑퐁음악다방을 찾는다.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시니어 바리스타 어르신들이 직접 내려주시는 핸드드립커피를 마시며 재충천의 시간을 갖는다. 팔달구는 수원의 중심권역으로 도청과 시청이 소재하고 1997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원화성이 위치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문화와 행정의 도시입니다. 하지만 타 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도심권이다 보니 낙후된 동네가 많습니다. 그래서 마을 르네상스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가 자주 찾는 핑퐁음악다방도 지동 마을르네상스 사업의 결과물입니다. 윤 구청장은 낙후된 구도심권 팔달구의 미래를 마을 르네상스 사업에서 찾고 있다. 수원시 마을르네상스는 마을을 주민 스스로 문화와 예술, 건축과 환경 등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삶의 공간으로 새롭게 디자인하는 시민공동체 회복운동으로 팔달구 곳곳이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팔달구는 과거 속에 남아 있는 구도심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살아 움직이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동네가 바로 행궁동과 지동입니다.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각종 규제로 주거환경과 생활환경이 슬럼화 됐던 행궁동과 지동의 마을 르네상스 사업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지동 일대 680m 벽화골목 조성, 수원제일교회 종탑에 마련한 노을빛 화성전망대, 행궁동 금빛합창단, 예술거리 조성, 화서문로 거리축제, 한데우물 축제 등으로 문화예술마을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윤 구청장의 마을 르네상스 사업 성과는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명품 장미마을, 자원순환 테마마을, 수원천 무궁화 축제 등 각 동 특성에 맞는 테마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이 진행돼 팔달구의 문화혁명을 이끌고 있다. 팔달구청 20여년 더부살이 벗어나 올핸 윤 구청장에게 아주 특별한 해로 기록됐다. 팔달구청이 20여 년 간의 더부살이에서 벗어나게 됐기 때문. 지난 10월 29일 팔달구 매향동 49일대 수원화성박물관 옆에서 팔달구청사 기공식이 개최됐다. 수원의 중심이지만 팔달구청은 수원시 4개 구청 가운데 그동안 유일하게 청사가 없었습니다. 수원시청 뒤편 개인건물을 임대해 청사로 사용할 당시엔 민원인 주차문제 등 각종 불편이 이어졌고 지난 2002년 우만동에 소재한 지금의 월드컵 경기장으로 이전해 제2의 팔달구청 시대를 열었습니다. 최근 청사를 건립하기 위한 기공식을 갖고 드디어 첫 삽을 떴는데 오는 2014년 초에는 또 다른 팔달구청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지난 1976년 2월 평택 송탄읍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1979년 수원시로 전입해온 윤 구청장은 36년간의 공직생활 노하우와 역량을 22만 팔달구민과 300여 공직자들을 위해 쏟아 붓고 있다. 초등학교 때 축구선수로 뛸 정도로 운동을 잘했던 소년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직에 입문해 첫 월급 1만8천원, 숙직비 200원을 받으며 일했습니다. 그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자 구청장이 된 요즘도 사무실 보다는 현장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우리 팔달구가 팔팔하고 달콤한 도시가 될 수 있게끔 오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팔팔하고 달콤한 팔달구라? 윤건모 구청장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그의 탁월한 행정력과 뚝심이라면 어디 팔팔하기만 하겠는가. 펄펄 뛰고도 남아 보인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인천 중구청 일대에는 대한제국 시대인 1908년 철도 건설을 담당했던 일본 공병대가 만든 홍예문을 비롯해 일본제58은행 인천지점, 제물포구락부, 차이나타운 꼭대기에 자리 잡은 자유공원, 그리고 곳곳에 일본풍 건물들까지 근대 역사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 CF에 종종 등장한다. 인천영상위원회가 로케이션 촬영 지원을 해준 곳만도 지난 5년 사이 15곳이나 된다. 아트플랫폼까지 포함하면 총 27곳에 달한다. 물론 영상위원회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촬영하고 간 곳까지 하면 더 많은 영화 등에 촬영지가 됐다. 최근엔 내년 개봉예정인 조진규 감독의 영화 박수건달이 인천기상대 주변에서 촬영됐다. 주인공 박신양이 건달과 무당을 넘나드는 아찔한 이중생활을 하면서 건달의 모습으로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장면으로 숱하게 등장한다. 근대 인천의 금융가 영화나 드라마의 시기가 조선말 또는 일제강점기라면 일단 이곳을 촬영지로 의심해도 무방하다. 지난 2009년 개봉한 황정민류덕환엄지원 주연의 그림자살인. 이 영화에서 일본제58은행인천지점은 내부 가구 등이 일제강점기 물품들로 가득한 탓에 부검실과 경찰서 등 각종 사무실로 변신했다. 잇따른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주인공들의 모습과 창문이나 출입문 등 당시 지어진 건물의 모습이 함께 비치며 일제강점기 줄거리임이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각인된다. 드라마 나의 영웅이야기나 유혹의 기술 등에서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시기, 한국 근로자들의 모습을 담으려고 일본58은행이나 자유공원 등이 촬영지로 선택됐다. 밑바닥 인생들의 아지트 중구청 주변은 인천을 대표하는 구도심 지역답게 좁은 골목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주택가가 많다. 특히 주변의 근대 건축물과 함께 어우러져 625전쟁 후부터 1970년대 전까지 많은 근로자의 힘든 삶이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창수. 삼류 양아치 창수(임창정)의 삶과 욕망, 좌절, 꿈 등을 그린, 감동의 휴먼 드라마다. 실제 이곳을 중심으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가 짜여진 탓에 모두 차이나타운 등 주변에서 촬영됐다. 이 영화에서 임창정은 붉은 등이 거리를 비추는 차이나타운에서 배회하는 건달을 연기하고, 차이나타운 주변과 인근 구도심 골목길은 막장 인생을 사는 창수의 모습을 비추는데 배경 역할을 한다. 홍등만 켜진 채 불 꺼진 차이나타운의 한 건물 옥상에서 남녀주인공의 대화하는 장면은 항상 밝고 활기차며 관광객들로 붐비는 평소 차이나타운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허종호 감독, 정재영ㆍ전도연 주연의 영화 카운트다운도 중구청 구도심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터널형 돌문 홍예문 홍예문(虹霓門무지개문)은 인천 구도심의 남산 격인 응봉산 마루턱을 깎아서 길을 내고 그 정점에 세운 무지개 모양의 동그란 돌문이다. 주택가 주변으로 푸른 덩굴이 둘러싼 홍예문 자체만으로도 절로 아름답다는 탄식이 나오지만 홍예문 앞에서 바라보는 인천항은 그 풍경이 걸작이다. KBS드라마 위대한 계춘빈에서는 주인공이 홍예문 주변 주택가에서 산다. 이러다 보니 여름철 덩굴과 함께한 홍예문이 종종 등장한다. 또 주변 골목길은 아기자기한 옛 추억을 되살려준다. 말 그대로 옛날 동네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인 셈이다. 유혹의 기술에서는 아예 남쪽 밑 작은 간판이 가득한 길을 가로질러 올라 홍예문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이 눈에 띈다. 작은 주점과 선술집, 곳곳에 서 있는 전봇대와 그 전봇대를 이은 전깃줄까지. 서민들에게 추억과 애환이 가득 찬 골목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최초의 서구식 자유공원 한국 최초의 서구식 자유공원도 시각적으로 익숙한 곳이다. 문승욱 감독의 영화 City Of Crane과 김현수 감독의 나의 영웅이야기, 김삼력 감독의 러브콜, 이원석 감독의 남자사용설명서 등을 비롯해 드라마 유혹의 기술, 씨티홀 등에서도 남녀 주인공의 데이트 장면이나 주인공이 고뇌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특히 자유공원을 둘러싼 주택가 골목은 지나갈 때면 어! 여기 예전에 ○○네 집 앞인데? 아닌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눈에 띄는 장소가 여럿 있다. 여주인공 집 앞 가로등에 남자주인공이 서 있는 모습은 열거되지 못할 정도로 영화드라마에 단골손님이다. 글 _ 이민우 기자 lmw@kyeonggi.com
인천에서 3대 이상을 산 토박이라면 수도국산하면 달동네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운 그 이름 수도국산 달동네. 다닥다닥 붙은 집과 구수한 밥 짓는 냄새가 가득했던 골목은 어느덧 사라지고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인천의 고향과 같은 곳, 이 터에 만들어진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실존했던 달동네 서민의 평범한 삶을 현대의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달동네 모습 그대로 재현 코끝 찡한 시간여행 수도국이 있는 산 인천시 동구 송현동 수도국산(水道局山)의 원래 이름은 송림산(松林山)이다. 송림산이 수도국산으로 산 이름이 바뀌게 된 데는 근대 개항기 인천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인천은 본래 우물이 적을 뿐 아니라 수질 또한 좋지 않아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으로 물 확보가 항상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한국정부는 1906년 탁지부(度支部)에 수도국(水道局)을 신설하고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에 착수했다. 수도국산이란 명칭은 이곳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配水池)를 설치하면서 생겼다. 즉 수도국산은 수도국이 있는 산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 주위로 피난민이 몰려들어 판자촌을 이룬 것을 처음으로, 1960대 말 인근에 공장지대가 형성돼 근로자들도 모여들면서 수도국산 달동네의 역사는 무르익어갔다. 이처럼 달동네는 아직도 전국의 대도시 주변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특히 수도국산 달동네는 달동네 중에서도 그 유래와 역사가 깊은 곳이다. 송현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지금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이 터에 지난 2005년 10월 25일 당시 정겹던 서민들의 삶을 그대로 간직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달동네 서민의 생활상을 주제로 한 체험박물관 송현근린공원 내 지하 1층ㆍ지상1층, 연면적 1천950.85㎡ 규모로 건립된 박물관은 1960~70년대 달동네 서민의 생활상을 주제로 한 체험중심의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상설전시실과 수장고, 교육실, 다목적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옛 달동네의 실제 상점과 간판 등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기성세대들에게는 향수를, 현 세대들에게는 기성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펼친다. 상설전시실은 달동네의 역사를 비롯해 당시 실존했던 명물 등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달동네는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의미로 그 유래는 달나라 천막촌에서 비롯됐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1960대까지 도심에서 쫓겨난 판자촌 주민들은 정부가 정한 지역에 임시 천막을 치고 살면서 방에 누우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보인다고 해서 생겨났다. 달동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 것은 1980년 TV 일일연속극 <달동네> 방영 이후다. 어려운 처지에서 보듬고 살아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이 연속극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이후 달동네는 불량 노후주택이 모여 있는 산동네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 이곳에는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구멍가게, 연탄가게, 복덕방, 이발소 등의 자그마한 가게를 만나 볼 수 있다. 우리가 모두 경제적으로 어렵고 배고팠던 그 시절, 퇴근길 연탄가게에서 새끼줄에 꿴 연탄 한 장을 사고 구멍가게에 들러 봉지 쌀 한 줌 사서 그렇게 하루를 견뎌갔던 달동네 사람들의 향기가 그대로 배어 있다. 특히 당시 이곳 일대를 청소하고 주변 폐지를 주워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행을 베푸는 등 많은 사람의 본보기가 됐던 폐지 수집가 故맹태성씨를 비롯해 달동네가 사라질 때까지 지게로 연탄을 배달한 연탄가게 주인 유완선씨(76), 이곳에서 솜틀집을 운영했던 故박길주씨,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를 운영했던 박정양씨(68) 등 실존했던 인물들의 동상을 박물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그 당시 생활모습도 엿볼 수 있다. 산비탈에 있는데다 무계획적으로 집이 들어서 불편했던 당시, 이곳 사람들은 수도나 화장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곤 했다. 이른 아침마다 공동화장실에 줄을 서서 앞사람을 재촉하던 모습 등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특히 이곳의 대표적인 가옥을 개방해 내부 온돌을 구경하고, 직접 연탄을 갈아보며 들여다보며 옛날 교복을 입어보는 등 당시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밖에 만화가게, 기념스탬프 코너, 기념품 판매소, 달동네 소극장 등도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부모님 세대에게는 정겨운 추억속으로의 시간여행을, 자식 세대에겐 고단했지만, 열심히 살았던 1960~70년대의 삶을 체험할 기회를 함께 제공하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관람을 끝날 때 즈음 서서히 어두워지는 박물관 내부 조명 속에서 그 당시 해질녘 골목을 직접 걸어 보는 것도 또 다른 묘미다. 관람안내------------------------- ㆍ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ㆍ관 람 료: 어른(만19세 이상) 500원, 청소년ㆍ군경 300원, 어린이(만5~12세) 200원, 단체 관람객(10인 이상) 50% 할인 ㆍ문 의: (032)770-6130 ㆍ위 치: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동 163(송현근린공원 내) 글 _ 신동민 기자 sdm84@kyeonggi.com 사진 _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캐나다 온타리오 주는 100만km 에 이르는 광활한 대지와 40만개의 호수, 강, 1천200만 명의 인구, 다양한 문화와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리도 운하는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에서 온타리오 호수를 끼고 있는 킹스턴까지 202㎞에 이르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유적지다. 202㎞의 운하를 따라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곳곳에 나타나는 역사 유적지, 그리고 캐나다 동부를 대표하는 고풍적인 마을 풍경은 장관이다. 2007년 유네스코에서는 이러한 아름다운 모습과 역사성을 인정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202km 운하를 거슬러 올라가면 눈부신 호수와 강이 반긴다 군사 목적으로 건설된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운하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 역사도시인 킹스턴, 천섬 등은 한곁 같이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는 곳이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리도 운하는 1832년 군사적인 목적으로 건설됐다. 당시 미국과 전투도 했던 캐나다는 안전한 물자 운반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영국의 존 바이 대령이 1826년부터 6년에 걸쳐 만든 운하다. 오타와, 킹스턴, 세인트로렌스 강을 모두 연결하고 있으며, 총 40개의 수문이 설치됐다. 온타리오 주 남동부에 있는 리도 운하는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 시와 온타리오 호에 접해 있는 오래된 도시인 킹스턴 시를 연결한다. 오타와에서 남서쪽으로 리도 강을 따라 거의 200㎞를 흘러 리도 호에서 최고지점(124m)을 이루며 카타라키 강을 지나 온타리오 호에까지 이른다. 47개의 갑문(각각 길이 41m, 너비 10m)이 있으며 깊이는 1.7m이다. 리도 운하는 수력발전과 군수 이동수단으로 사용됐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과 오락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계절별로 리도 운하를 즐기는 모습은 다채롭다. 리도 운하의 양 옆에는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이 곳곳에 조성돼 있다. 봄에는 리도 운하를 따라 조성된 15㎞의 튤립루트에 300만 송이가 넘는 튤립이 활짝 피어난다. 이른바 북미대륙에서 유명한 오타와 튤립축제가 열리는 것이다. 이때에는 여러 나라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인터내셔널 파빌리온, 꽃으로 만든 각종 장식품 전시, 여러 곳의 화려한 튤립 전시장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가을이면 오색찬란한 단풍 가로수가 장관을 이루고 겨울에는 운하가 얼어서 세계에서 가장 긴 스케이트장이 된다. 기네스북에 기록된 7.8㎞의 세계 최장의 자연 아이스링크가 바로 리도 운하에서 만들어진다. 유서 깊은 킹스턴과 신비스런 바다 위 천섬(Thousand Islands) 온타리오 주의 이름난 역사도시인 킹스턴(Kingston)은 17세기 세워졌다. 프랑스의 개척자에 의해 모피 교역과 군사기지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나중 영불전쟁과 영미 전쟁의 무대가 된 곳이다. 온타리오 호 동북부에 위치한 인구 14만 명에 작은 도시지만 초창기 캐나다 역사를 공부하는데 아주 좋은 곳이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지어진 그림같이 아름다운 주택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거리 가득한 석회암 건물 덕분에 석회암 도시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 킹스턴은 프롱뜨낙 백작이 1673년에 세운 모피 교역소 겸 군사 요충지인 프롱뜨낙이란 마을이 발전한 곳이다. 리도 운하 한쪽 끝인 킹스턴에서 가나노큐 혹은 브룩스빌 항로를 따라 늘어서있는 1천개의 섬들 모습은 볼수록 아름답다. 천 섬 파크웨이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고 전망대에서 한 눈에 바라 볼 수도 있다. 킹스턴의 동쪽 끝에는 천섬으로 향하는 사우전드 아일랜드 크루즈 부두가 있다. 천 섬은 캐나다 동부 세인트 로렌스 강위에 무려 1천800개의 섬이 점점이 자리해 붙여진 이름이다. 북미 대륙 최대의 여름 휴양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유명 인사들의 별장과 저택이 많다. 캐나다 인디언들은 고요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곳을 신의 정원(Garden of the Great Spirit)이라 불렀다. 강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사이사이를 지나며 그림 같은 별장들을 구경하는 유람선은 단연 인기다. 글사진 _ 여행 칼럼니스트 허용선 여행 Tip Rideau Canal 리도 운하를 제대로 돌아보려면 자동차로 다니는 것이 제일 좋다. 렌터카를 이용해 오타와에서 킹스턴까지 리도 운하를 따라 가다 보면 옛스러운 풍경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오타와 혹은 킹스턴까지 가려면 먼저 인천공항에서 토론토나 밴쿠버로 간 후 그곳에서 캐나다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오타와는 캐나다 수도라서 볼거리가 많으며 리도 운하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토론토에서 그레이하운드 버스 등을 타고 오타와까지 갈 수도 있다. 기타 여행 정보는 주한 캐나다 관광청 (http://kr.canada.travel)에서 구할 수 있다.
고3 아들이 시 한편을 외우면 용돈 만원을 주는 아빠가 있다. 아빠는 주장한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한글 안 배워도 된다, 전집은 절대 사주지 마라. 유아기 때 책 5권이면 충분하다고. 영어유치원 보내면서 중국어까지 가르치는 요즘 강남엄마들은 이 같은 교육방법에 콧방귀도 안 뀔 게다. 이 아빠 뭐하는 사람일꼬. 고교 졸업 때까지 자국의 명시를 100편 이상 외우게 한다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이라도 되는 걸까. 대한민국 청소년문학의 1인자 박상률 작가 이야기다. 작가는 전라남도 진도 출신이다. 사람보다 개가 귀한 진도에서 자란 작가는 개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써왔다. 최근 발간한 초등학교 1~3학년을 위한 동화책 개조심(창비刊)도 개가 주인공이다. 역시 58년 개띠 작가답다. 지난 11월 6일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집필실에서 작가를 만나 굴곡 많은 대한민국 58년 개띠로 살아온 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진돗개가 아닌 진도개를 고집하다 작가의 고향 진도는 재미있는 동네다. 진도에선 세 가지 자랑일랑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소리 잘한다, 그림 잘 그린다, 글씨 잘 쓴다. 그리고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지만 진도개 삼 년이면 소리를 한다. 또 가끔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쓸 줄 안다고 한다.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 하겠지만 작가에게 개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진도에서 진도개는 사람하고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 때론 사람보다 나은 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건 개가 사람보다 나은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면 고것이 새끼 낳더니만 입맛이 영 없는 갑서, 된장국도 안 먹고 미역국도 안 먹고. 아무래도 노루 뼈라도 고아서 멕어야 쓸란갑다며 이녁 안부는 뒷전이고 개 안부만 길게 하신다.(하하) 동화책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 그림책 애국가를 부르는 진돗개, 그리고 올 봄에 낸 개님전에 이어 신간 개조심까지. 그야말로 개 전문작가라 불러도 좋을 법 하다. 박상률은 왜 이렇게까지 개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리고 표준어 진돗개가 아닌 진도개로 표기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한 기자의 질문공세에 작가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굳이 순종이냐, 잡종이냐를 구분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저 진도에서 나고 진도에서 자라 진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 같은 진도개의 삶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답답한 아파트에 갇혀 목줄을 하고 사료를 먹고 사는 진돗개가 아닌 진도 시골마당에서 광 속의 쥐를 잡고 별미 중의 별미 아기 똥을 핥아먹고 크는 평범한 진도개가 때론 사람보다 나은 노릇을 하는 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진도에는 보신탕집이 없을 겁니다.(하하) 아직도 성장 중 박상률은 원래 시인이다. 1990년 한길문학에 시 진도아리랑을, 동양문학에 희곡 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인이지만 집필활동은 광범위하다. 시, 소설, 동화, 희곡, 산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집필실에도 노트북과 데스크 탑이 4대가 구비돼 있을 정도다. 굳이 영역을 나누지 않는다. 특히 지난 10여년은 청소년소설을 붙잡고 뒹굴었다. 요즘에야 출판계든, 문단이든 청소년문학이라는 말을 자연스레 들먹이지만 처음 청소년소설을 들고 나온 1990년대에는 굳이 청소년문학이 따로 필요하겠느냐는 생각들을 했다. 그 당시 청소년용 문학이라야 중고생을 위한 어쩌고저쩌고 하는, 일반 소설을 편집하거나 요약한 게 대세였다. 그 가운데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청소년을 위한 문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1997년 빛을 본 봄바람(사계절刊)을 시작으로 작가는 한국 문단에 새로운 청소년문학 열풍을 이끌었다. 작가를 청소년문학의 1인자로 등극시킨 봄바람이 벌써 열다섯 살이 됐으니 주인공 훈필이 보다 두 살 많은 형이 됐다. 또 청소년문학이란 물꼬를 튼 작품이란 타이틀도 생겼다. 그 세월 동안 작가는 흰머리가 나고 주름이 생기고 50년대 중년으로 달려가고 있다. 작가는 청소년문학을 왜 하죠?라는 질문에 주저없이 대답했다. 내가 아직도 성장 중이라고. 그러면서 내 안에 늘 함께하는 청소년이 있어서였다. 달리 말하면 그 시절을 여한 없이 살아내고 마침내 그 시기와 완전한 이별을 하고 어른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고 고백했다. 나를 견디게 한 문학, 나를 배신하지 않을 문학 아직도 성장 중이라는 작가의 청소년 시절이 궁금했다. 학교 갔다 오면 책 볼 새도 없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쉴 새 없이 일만 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 또래로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처지였을 것이다. 지게질, 낫질 배우고 지네를 잡으러 가든 닭서리, 수박서리를 하든 소 풀 뜯기러 가든 개떼처럼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가출 한번 안 해보고, 말썽 한번 안 피우던 모범생의 일탈은 대학 때 시작됐다. 전남대 상과대학 4학년 때 일어난 5ㆍ18은 그의 인생의 물길을 바꾸고 말았다. 518은 개인의 삶 역시 시대의 흐름과 무관할 수 없다는 걸 여실히 느끼게 된 엄청난 사건이었다. 나도 여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열흘 동안 도청과 금남로를 누비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고 겪었다. 그 다음해 졸업장을 들고 광주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몸은 그 도시를 빠져 나왔지만 나는 80년대 내내 광주(光州)의 빛 광(光)자만 봐도 가슴이 방망이질하였고 손이 떨리고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광주의 시대적 아픔이 박상률 작가의 시작이었다. 문학을 함으로써 그는 시대에서 얻은 울화병을 어느 정도 가라 앉혔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작가는 치료 중이다. 그는 문학을 통해 거창한 것을 꿈꾸지 않는다. 일단은 자신을 위해 문학을 한다고 했다. 한없이 괴롭고, 외로울 때 문학은 나를 견디게 했고 세상과 소통하게 했다. 문학은 지금까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나 역시 앞으로 죽는 날까지 문학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개처럼 충실히 자기 자리를 지키기는 것이 진도 출신 58년 개띠 작가가 가져야 할 삶의 덕목이라 생각한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지만 작가는 아직도 아이처럼 자신 앞에 펼쳐질 당장 내일이 궁금하고 기대된다고 했다. 자신의 존재를 청소년문학을 함으로써 더욱 극명하게 온몸으로 느낀다는 박상률. 어른이 아닌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글을 쓰고 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최근 국내 화단과 해외 미술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회화에 있어 새로운 리얼리즘(realism)의 부활을 꼽을 수 있다. 현대화되고 복잡해지는 기계문명의 변화만큼이나 다양하고 다각화된 현대미술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미술양식의 변화는 20세기 위대한 현대미술을 탄생시켰던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로 이어지는 화풍과는 또 다른 사실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사실주의는 인물과 사물이 중심이 된 배경으로써 표현되어졌던 자연의 풍경이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독립된 주제로 표현되어졌다면 최근 새롭게 다뤄지고 있는 자연의 모습은 철저한 재현정신에 입각한 사실적인 면과 철학적인 면을 수용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김성진 작가의 예술적 가치와 배경에는 서양미학의 시점보다는 우리의 전통미학이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 사실정신(寫實情神)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회화라는 것이 대상을 화폭에 옮겨 그리는 일인데, 이것이 외형적인 본뜸(模寫)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비슷하게 그리되(形似) 정신적인 실체까지 담아내야 한다라는 이형사신(以形辭神)의 동양미학에 대한 깊은 이해도나 체계적인 이론정립은 다소 부족했지만 그의 풍경화 속에 담고 싶은 자연의 이미지는 분명 동양적 시각에서 자연을 바라보려는 한국적 회화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작가가 진정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의 모습들은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실재(reality)를 찾아내는 모습일 것이다. 동서양의 미학이 결합되어져 새로운 현대미술사조로 만들어지듯 현재 이뤄지고 있는 김성진과 같은 미술경향의 변화와 전개는 구상과 사실이라는 양식적 묘사라는 평면적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미술사조로 시대적 자리매김 해 나가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김성진 작가 대구 계명대 서양화과 졸업 및 동교육대학원 수료 / 개인전 2회, 부스전 6회(서울, 대구) / 제21회 고금미술연구회 선정작가 초대전(대구, 대백프라자 갤러리) / 영남구상의 진수전(포항, 포스코갤러리) / 아트대구展(대구, 컨벤션센터) / 아트서울展(서울, 한가람미술관) / 골든아이아트페어(서울, 코엑스인도양홀) / 장흥아트마켓-JAM(장흥아트파크) / 봉산미술제(대구,수화랑) / 아시아프-아시아대학생, 청년작가미술축제 / (서울, 기무사령관, 서울역, 성신여대)/ 대구아트페어(대구, 컨벤션센터) / 부산국제아트페어 특별전(부산, BEXCO) / 대구구상회화대작전(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 / 고금미술 사랑나눔전(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 / Young Art Project_ 예술로 먹고 삽니다! 展(대구, 경북대미술관) / 작품 소장처: TBC방송국, (주)금복주, 삼백건설, (주)삼원 / 현 심상전, 자관전, 고금미술작가회, 대백문화센터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