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이근 가천대 길병원 원장

최근 안전이 최고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각종 광고나 시사프로그램 등에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골든타임(golden time)이다. 골든타임은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사고 대응과 인명 구조의 성패를 좌우하는 초기 대응 시간을일컫는 말로, 생사가 달린 금쪽같은 시간을 뜻한다. 드넓은바다와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등 많은 섬을 앞에 낀 인천은 안전상 골든타임이 매우 예민한 곳일 수밖에 없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도서지역 환자를 수 시간이 소요되는 배를 이용해 내륙으로 이송했다가는 정말 중요한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천에는 바다와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치료하는 병원이 있다. 전국 최초로 닥터헬기를 운영 중인 가천대 길병원이다. 의사가 직접 헬기에 탑승해 환자 이송 때부터 응급치료를 시작한다는 개념의 닥터헬기는 인천 도서지역의 생명 지킴이로서 올해로 3년째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골든타임에 강한 인천을 만들고자 닥터헬기를 전국 최초로도입한 이근 가천대 길병원 원장(62)을 만나 골든타임에 대한 의학적 철학을 들어봤다. Q 닥터헬기는 소방헬기에 비해 생소하게 느껴진다. 닥터헬기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A 닥터헬기는 의사와 각종 응급의료 장비 등을 갖추고 응급환자 치료 및 이송 전용으로 사용하는 헬기를 말한다. 의사가 직접 탄다는 점에서 소방헬기와 다르고, 이송과 동시에 의사가 응급치료할 수 있어 응급환자의 소중한생명을 지키는 데 매우 유리하다. 닥터헬기를 보통 하늘을 나는 응급실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닥터헬기로 사용되는 기종은 유로콥터 EC135 기종이다. 의료진을 포함해 6명이 탑승할 수 있고, 인공호흡기심전도초음파생체정보시스템자동심폐소생기 등 응급실 수준의 장비를 갖추고 있다. 닥터헬기는 헬기장 및 계류장에 정차하다가 응급상황발생 때 의사가 탑승해 30분 이내에 현장에 도착, 1시간 이내에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의사의 빠른 치료와 환자의 빠른 이송이 닥터헬기의 핵심이라 보면 된다. Q 닥터헬기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A 지난 1992년 연수 협의차 방문한 미국의 듀크대학에서 닥터헬기를 보고, 인천에 닥터헬기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의료선진국은 닥터헬기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해 닥터헬기를 운영 중이었다. OECD 33개국 중 한국을 제외한 32개국이 닥터헬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바다와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까지 유사한 일본만 하더라도 한국보다 앞서 닥터헬기가 보편화된 상태였다. 일본은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닥터헬기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해 지난 1999년 후생노동성의 시범사업 진행 후 본격적인 닥터헬기 도입이 이뤄졌다. 현재 일본에서 활약 중인 닥터헬기는 20여 대에 달한다. 닥터헬기는 여러 연구에서 응급환자 사망률을 낮추고 중증 후유증 발생률도 크게 낮추는 등 효과를 입증했다. 심지어 치료비 절감과 치료기간 감소에도 탁월한 효과를 거뒀다. 도서지역을 낀 인천에 닥터헬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이후 수년 동안 보건복지부 등 의료계에 닥터헬기 도입을 적극적으로 건의했다. 다행히 보건복지부도 응급의료기금으로 운영 중인 소방헬기가 응급환자 이송 실적이 미흡해 심장뇌외상 등 중증 응급환자를 위한 전용헬기 도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함께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지난 2011년 서해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길병원과 목포 한국병원을 닥터헬기 시범사업 대상 의료기관으로 선정했다. Q 닥터헬기가 도입된 지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의 성과는. A 지난 9월 23일 닥터헬기가 운항 3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3년간의 닥터헬기 운영 현황을 보면 548번 요청을 받아 392번을 출동했고, 366명의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연평도대이작도무의도 등 인천의 섬지역에서 이송된 환자만 130명에 달했고, 경기도 김포나 충남 당진 등 인천 외 지역에서 이송돼 온 환자도 102명이나 됐다. 중증 외상환자 96명과 뇌출혈 환자 45명, 뇌졸중 환자 23명, 심근경색 환자 14명, 심정지 환자 3명 등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를 닥터헬기를 통해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닥터헬기가 환자와 병원에 안겨 준 드라마 같은 사연도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천 시도에 거주하는 부부가 닥터헬기를 통해 생명을 구한 일이다. 지난 2012년 남편이 심장에 통증을 느껴 닥터헬기를 통해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은 데 이어 수개월 뒤에는 아내가 뇌출혈을 일으켜 닥터헬기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나중에 두 분이 직접 찾아와 우리 같은 섬사람에게 너무도 고맙고, 든든한 존재라고 닥터헬기를 평가해 주셨다. 닥터헬기가 섬지역 주민에게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라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일이다. Q 닥터헬기가 그야말로 골든타임에 강한 인천을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다고 봐도 무방한데, 닥터헬기를 운영하는 병원입장에서 애로사항은. A 닥터헬기에는 단순히 병원의 노력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50억 원의 예산 지원을 하고 있고, 인천시도 20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골든타임에 강한 인천을 만드는데 정부와 인천시, 병원이 모두 합심하고 있다. 이 같은 지원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길병원 권역외상센터도 응급환자의 신속한 치료와 닥터헬기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만들어졌다. 권역외상센터는 365일 24시간 전국 어디서나 1시간 이내 중증외상환자에게 치료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전문 치료센터이고, 닥터헬기가 이용하는 헬기장이 권역외상센터 옥상에 설치돼 있다. 특히 야간과 기후에 제약을 받는 닥터헬기의 한계를 극복해주는 것이 원격진료이다. 지난 1996년 백령도의 인천시 의료원 백령병원과 원격진료를 전국 최초로 시작했다. 당장 인천 내륙으로 환자를 이송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의사 간 원격진료는 최선책이 될 수 있다. 닥터헬기에 대한 정부와 인천시의 든든한 지원, 닥터헬기의 효율적 운영에 큰 역할을 하는 권역외상센터, 닥터헬기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원격진료 모두 골든타임에 강한 인천을 만드는 공로자다. Q 최근 골든타임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응급치료에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이에 대한 의학적 견해는. A 골든타임은 외상 환자를 두고 도입된 개념으로, 외상환자의 골든타임은 1시간 이내로 본다. 닥터헬기가 보통 환자가 있는 곳에 도착하기까지 약 15분의 시간이 걸린다. 의사가 직접 헬기에 탑승했기 때문에 외상 환자에 대한 골든타임 확보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렇게 골든타임을 확보하면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합병증이나 후유증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응급에 있어 골든타임이 중요한 이유이고, 닥터헬기가 골든타임 확보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시간이다. 또 심장마비 환자의 골든타임은 외상 환자와 다르게 4~10분으로 매우 짧다. 그러나 닥터헬기가 도착하기까지 심장마사지 등 심폐소생술만 제때 이뤄진다면 환자의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최근 심폐소생술의 보급화가 중요해진 이유다. 60대 심장질환 환자의 70%가 가정에서 심장마비를 경험한다는 통계도 있다. 소중한 가족과 지인을 위해 심폐소생술을 익혀둔다면 심장마비 환자에 대한 골든타임 확보가 가능하다. Q 가천대 길병원은 닥터헬기 외에도 많은 의료서비스를 시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인천을 대표하는 병원으로서 각종 의료 혜택을 시민에게 되돌려주는 모습은 다른 병원도 본받아야 할 점으로 보이는데. A 인천을 넘어 전국적인 규모로 성장한 길병원은 더 이상의 영리추구보다는 지역주민의 자랑이 돼야 한다. 또 인천에는 국립병원이 없기 때문에 길병원이 국립병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길병원의 설립자인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의 박애봉사애국이라는 의료철학이 담겨 있다. 생명 존엄 정신과 의료혜택은 특정 계층이나 지역 등을 초월해 베풀어져야 하고, 의료는 반드시 공익성과 사회성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응급에 있어서는 선조치하고 있다. 환자가 치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지 따지기 전에 소중한생명을 먼저 구한다는 철학이 바탕에 깔렸다. 그렇다 보니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환자의 인적사항 확인을 위해 신원을 물었다가 환자의 가족이나 지인으로부터불호령이 떨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환자가 돈을 낼 수있는지 형편이나 배경을 묻는 의도로 오해하기 때문이다.치료를 위해 환자의 인적사항 확보는 필수다. 이 부분에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Q 끝으로 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A 닥터헬기에 대한 민원이 많은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인근 주민으로부터 소음에 대한 민원이 자주 들어온다. 의사가 직접 탑승하고, 각종 응급의료 장비를 갖춘 닥터헬기는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에 있어 시공간을 초월한 의료서비스다. 이러한 점을 지역주민이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바란다. 끝으로 시민이 심폐소생술 등 갑작스런 사고에 대한 응급조치법을 배워두길 당부하고 싶다. 기아나 전쟁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없지만, 심장마비 등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은 날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응급조치가 진행된 상태에서 닥터헬기의 빠른 응급치료가 이뤄진다면 환자의 소중한 생명을 구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골든타임에 강한 인천을 만들어가는 데 시민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민기자 사진=장용준기자

[경기인터뷰] 강인덕 경기도농구연합회장

인천에 소재한 (주)국일정공이라는 중견기업을 운영하면서 회사를 연매출 1천억원 이상의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강인덕 회장(60). 그는 기업인이면서도 국내농구계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유명인사다. 그가 농구 관련 단체에서 일해온 것만도 20년이 넘는다. 국민생활체육 경기도농구연합회장과 전국농구연합회장을 시작으로 한국중ㆍ고농구연맹 회장, 한국실업농구연맹 부회장,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인천시농구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거나 맡아오고 있다. 또한 아시아태평양장애인농구협회장을 맡아 지난달에는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을 치러냈으며, 경기도생활체육회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자신의 회사에 전용 체육관을 건립하고 실업팀 창단에 회사 이름을 딴 국내 및국제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농구 광 강인덕 회장을 지난달 27일 국일정공 본사에서 만나 그의 농구사랑 이야기와 기업인으서의 경영철학 등을 들어봤다. Q 회장께서는 20여년을 농구 발전을 위해 힘써오셨다. 농구와의 인연을 먼저 소개해 달라. A 초등학교 때까지는 축구를 했었는데 중학교를 진학하고 보니 축구부가 없더라. 농구, 야구, 육상 이렇게 세 종목이 있었고, 당시 키가 큰 편이어서 체육선생님의 추천을받아 농구와 연을 맺었다. 이후 여러가지 사정으로 농구를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하게 됐지만, 농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현재도 꾸준히 농구를 즐기고 있고, 농구 발전에 대해서도 매사 관심을 갖고 앞장서려고 노력하고 있다. Q 그동안 경기도와 인천시, 전국의 농구 관련 단체장을 역임했고, 현재도 맡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리 농구인 출신이라도 열정과 재력이 뒷받침 안되면 어려운 것 아닌가. A 성격이 굉장히 열정적인데 개인적으로 후진양성과 체육발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런 면이 많이 반영이된 것 같다. 스포츠 인재들을 뒷받침하고 실업농구연맹부회장을 맡으면서 상당한 예산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단 한번도 아깝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연간 1억5천 정도가 농구 관련 예산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가족들은 이제 수긍을 하는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웃음) Q 그동안 한국중ㆍ고농구연맹 회장과 실업농구연맹 부회장등을 역임했고, 지난 2003년에는 국일정공 여자 실업농구팀을 창단했는데 계기가 있었나. A 나름대로 생활체육 쪽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런 점을 좋게 봤는지 엘리트 체육 쪽에서도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개인적인 욕심도 없었고,생활체육에 전념하겠다는 마음이 커서 오랫동안 고사했었다. 하지만 결국 받아들이면서 2001년 중ㆍ고연맹회장으로 취임하게 됐다. 막상 회장을 맡고 보니 갈 곳이 없어방황하는 선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당시 중ㆍ고등학교농구팀이 147개인 반면 여자 프로팀은 6개, 그리고 여자대학팀은 고작 4개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졸업 후에 받아주는 팀이 없어 방황하는 선수들이 허다했다. 프로에도, 대학에도 못 간 선수들을 데려다가 훈련을시켜 진학에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2003년 실업팀을 창단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초ㆍ중ㆍ고등학교 동안 운동만 해온 아이들이 실업자가 됐다며 울고불고하는모습을 봤을 때 가슴이 아팠다. 이런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는 순수한 목적으로 프로로 갈 수 있는 기회의 발판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Q 아무리 그래도 중견 기업에서 실업팀을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A 실업팀 운영에 드는 비용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선수 급여도 있고, 훈련비와 지도자 급여, 대회출전비 등 만만한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큰 욕심을 가지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사회에 환원하고,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삶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생각한다.Q 농구계에서는 추진력이 강하고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정평이 나있다. 회사에서는 CEO로서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평가하나.A 엄격하다. 특히 기업 윤리면에서는 더 그렇다. 22년 사업하면서 회사가 세무검열 한번 받아본 적이 없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정도로 투명하게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사업을 하면서 탈세를 하고 자신의 주머니만 채운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정한 짓을 절대 하지 말라고 직원들을 늘교육한다. 기업이 한 번 두 번 부정한 짓을 하다 보면 나중엔 만성이 되기 마련으로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일절 용납하지 않는다. 업무능력이 부족한것은 배우면 그만이지만,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핑계 대기 급급한 사람은 발전이 없다. 스스로도 아직 수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직원을 관리하면서도 나 자신에대한 채찍질도 잊지 않고 있다. Q 회사 설립 후 노사분규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하는데무분규로 노사관계가 안정을 이룬 원동력은 무엇인가. A 매월 1일 150여명의 사원들을 모아놓고 정신교육을실시하고 있다. 한 달간의 회사 업무보고와 함께 국내ㆍ외경제, 그리고 건강과 가정학에 대해 교육한다. 20여년 동안 거의 거른 적이 없다. 정신이 건강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정신이 썩으면 몸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 재산은 사원들에게 모두 공개돼 있다. 단돈 몇십 만원의 비상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여러 체육관련사업으로 돈이 모자라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쓸 정도다.(웃음) 자랑은 아니지만, 집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마련했는데 14년을 살면서 십원 한 장 갚지 못했다. 솔직히회사돈을 가져다 메꿀수도 있지만 나 자신에게 당연히용납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러한 투명한 행정과 기업운영이 무분규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CEO와 직원들과의 끈끈한 신뢰가 형성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Q 현재도 운동복을 입고 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기도생활체육회 부회장도 맡으시는 등 스포츠에 대한열정이 남다른데. A 스포츠를 시작한지 20여년이 됐다. 축구, 농구, 야구, 배구 등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는 거의 대부분 능숙하게하는 편이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어딜가든 스포츠를 통해 함께 어울릴 수가 있다. 올해 내 나이 60인데 아직까지 한 번도 큰 병을 앓은 적이 없다. 운동으로 다져지면서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지다 보니 잔병치레가 없었다. 큰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경기도 생활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경기도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난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인은 매스컴을 통해 지역인들과 연결될수 있겠지만, 나는 일반인이다. 경기도민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로 스포츠를 선택했고, 경기도 생활체육과 함께하는 현재의 삶이 즐겁고 행복하다. Q 회장께서는 국내 농구계에서 야인으로 불리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또한 농구관련 직함을 모두 맡으셨고, 이제 대한농구협회 회장만 남아있다. 도전해볼 의향이있는지. A 우리나라 엘리트 농구가 실업으로 출발해프로로 가면서 많은 발전을 했다. 물론 선수들의 기량도 일취월장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늘 아쉬움이남는다. 애정이 많은 만큼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발전방향을 제시하다 보니 농구계의 야인으로 인식된 것 같다. 잘못된 부분을 개선ㆍ발전시키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지 절대 사리사욕을위해 행동했던 적은 없었다.시대가 많이 변했다. 스포츠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시대다. 박태환과 김연아, 손연재가 세계적인 스타로 올라서게 된 이면에도 과학이 존재했다. 그런 점에서 옛 방식을 탈피하고자 하는데 대한 적극적인 방향제시로 인해표면적으로 그렇게 보이게 된 것이지 솔직히 야인은 아니다. 농구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는 열정적인 사람일 뿐이다. 대한농구협회장에 대해서는 젊은 후진들한테 기회를주는 것도 좋지 않겠나라는 부분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농구의 발전을 위해 일해볼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욕심은 없다. 다른 훌륭한 분이있다면 당연히 그분이 직책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 정리=박준상기자사진=전형민기자

[경기인터뷰] 조창희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경기도에는 문화정책이 없다! 조창희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의 단언이다. 겁없는 소리다. 경기도 문화 정책 관련 공직자와 관계자들에게 원성을 살 법 하다. 특히 30여 년 공직에 몸담으며 속 사정을 다 아는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니, 더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문화정책을 이야기할조직도 없다, 경기도와 문화재단의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 보조금과 지원에 의존하는 지역 문화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 등 쉼없이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쯤되면 문제의식에 맞는 해결책이 궁금해진다.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겁없는남자 조 대표와 문화재단 나아가 지역 문화예술계의 문제점과 발전 방을 톡 까놓고 짚어 봤다. 조창희(61) 대표는 취임 한달만에 야위고 격양된 모습이었다.지난 9월 16일 문화재단 5대 대표이사로 취임한 직후인터뷰에서 밝힌 현장 중심의 경영 방침을 실천한 후폭풍으로 보인다.그간 조 대표는 관용차를 승용차 대신 SUV로 바꾸고현장을 누볐다. 문화재단 주최 및 주관 행사는 물론, 도로부터 위탁 운영 중인 문화기관을 방문해 직원 간담회를 가졌다.문화재단의 현황을 파악하고, 경기문화재연구원(수원)ㆍ경기도박물관ㆍ백남준아트센터ㆍ경기도어린이박물관(이상 용인)ㆍ경기도미술관과 경기창작센터(안산)ㆍ전곡선사박물관(연천)ㆍ실학박물관(남양주) 등을 찾아가 직원들의 입을 통해 문제점을 확인했다. 충분히 듣고 시작하려 했다. 각 기관의 문제의식을 가진 직원들을 현장에서 담당자로 지정해 계속 연구하고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기관마다 팀장, 실장,관장 등 내부 논의를 활성화하고 재단을 거치는 불필요하고 복잡한 행정절차는 없애기로 했다. 문화예술의 진짜 발전을 위해선 자율성과 독립성을보장해야 한다는, 팔길이 원칙(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을 고수하겠다는 조 대표의 경영 원칙을 엿볼 수있는 대목이다. 그는 또 문화재단의 기형적 구조로 비롯된 문제점을가감없이 고백했다.내가 마치 아파트 관리소장이 된 것 같다. 도가 효율성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며 문화재단으로 문화시설운영을 맡겼는데, 문화재단은 이것에 함몰됐다. 각 시설도 예산은 없고 효율성만 따져 죽어가고 있다.문화재단과 8개 시설 운영에만 필요한 기본 예산이230억이다. 도가 2007년 도립 문화기관에 대한 문화재단의 통합 운영을 결정하면서 보장했던 최소한의 운영금이다. 당시 책임자들은 떠나고 명문화되지 않은 예산은 삭감 제 1대상이 됐다. 결국 올해에는 170억원까지추락했다. 건물 운영과 인건비도 모자라는 상황이다.당연히 문화재단 본연의 업무인 연구와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지원 사업, 각 시설의 기획전시와 교육 프로그램등은 꿈도 못 꿀 처지다. 이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조 대표는지역 중심 문화정책의 부재로 진단한다.집행기능 중심의 지역 행정탓에 문화정책은 없다. 예산,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왜 그 예산이 필요한 지 인식하는 지방정부와 그것을 토대로 한 정책이 먼저다.칼날같은 지적만큼 예리한 해결책은 있는지 물었다.현실적인 답이 돌아왔다.민간 전문가가 있는 문화재단이 정책을 연구하고 이를 도에 건의하면 그것이 정책으로 실현되는 시스템이시급하다. 조직ㆍ인력ㆍ재원ㆍ정책 시스템을 모두 개선해야한다. 당장 결정하기 어렵다. 대표(나)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직원들의 공감도 있어야 한다. 때문에 최근 내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재단혁신 TF를 구성했다. 연말까지운영하면서 방법을 찾고 추진할 계획이다.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예고된다. 이어 조 대표는 정신없이 바쁜 문화재단의 가까운 미래를 짐작케 하는 사업도 소개했다. 경기도 문화예술 부문 빅데이터 연구 수집, 기초지자체 문화재단과의 연대 강화, 유휴공간을 활용한 창작촌(가칭 청년문화허브) 조성, 생활문화공동체 활성화 등이다.이 중 눈길을 끄는 사업은 단연 청년문화허브다. 문화와 교육, 경제까지 3개 부문이 절묘하게 균형 감각을 이루고 있는 사업이다.구상은 이렇다. 일단 도내 버려진 건물을 순수예술인이 작업하는 창작촌으로 조성한다. 예술가에게는 작업실, 시민에게는 전시장이자 문화예술 교실이 된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관 주도로 형성됐다가 잡음을 내며 사라져간 레지던시 혹은 대안공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조 대표가 추구하는 차별지점은 민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문화재단의 역할은 재활용가능한 유휴공간을 찾고원활한 운영을 위한 전문 기획자 지원이다. 경제적 지원또는 세부 프로그램까지 기획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예술인과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이뤄지도록 부싯돌이 되어야 한다. 예술인과 시민이 지원금에 의존하는 인식을깨야 한다. 그래야만 그 안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창업 혹은 새로운 직업의 탄생까지 이어질 수 있다. 훗날 이 창작촌들을 묶어 역동적인 문화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문화재단의 책임이 될 것이다.그가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산업국장, 관광레저도시기획단장, 종무실장(1급) 등을 거치며 확립한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방향성이 엿보인다. 본래 남이 하는 입바른 소리는 시원하지만, 내가 하는입바른 소리는 할수록 답답한 법이다. 이날 현황과 대책을 쏟아내는 조 대표가 딱 그래보였다. 남은 것은 언행일치다. 겁없는 남자의 당당한 행보를 기대해 본다. 자신도속 시원해질때까지. 류설아기자 사진=추상철기자

[경기인터뷰] 안병렬 국제라이온스협회 354-B(경기)지구 총재

우리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바로 클럽을 구성하고 있는 회원들입니다. 클럽을 어떤 모양으로 유지해 나가느냐는 결국 각각의 회원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안병렬 국제라이온스협회 354-B(경기)지구 총재는 자신이 생각하는 지구 운영 방안의 초석을 이같이 제시했다. 이어 그는 각각의 회원들이 모여 클럽이 생기고, 또 지구가 존재한다며 궁극적으로는 클럽이 잘 야 지구가 발전하고, 더나아가 한국 라이온과 국제협회가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안 총재는 봉사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원이나 재능을 불특정 다수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 세계 최대 NGO 봉사단체 라이온스협회 세계적으로 가장 큰 비정부기구(NGO) 봉사단체가 바로 라이온스 협회라고 소개한 안 총재는 라이온스 협회에 대한 태동과 연혁을 설명했다. 무료 백내장 시술 등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의 시력을개선해주는 시력 보존 사업이 협회의 주력사업이며, 이와 함께 환경개선 사업, 장애인을 위한 주택건설사업, 당뇨병 교육사업, 청력보전 사업 등도 펼치고 있다는 것. 그는 협회는 1917년 창설된 이래 각국으로 확산돼 현재 209개 회원국에 136만명의 회원이 참여해 실명 예방,장애인 올림픽, 청소년 선도육성, 결식 어린이 구호 등 정치와 종파를 초월한 인도주의적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한국에 라이온스협회가 소개된 것은 1958년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 이전 6.25 당시 옥수수빵, 강냉이가루 등의 원조품도 알고보면 라이온스협회의 도움이 상당했다고 설명하며, 과거에 도움을 받은 것에 비하면 현재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 인도, 일본과 함께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4대 강국에 포함될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고 했다. 실제 한국 라이온스 협회는 해마다 400억원을 아프리카와 동남아, 남미 등 해외에 보내고 있다. ■ 14개 지역 168개 클럽 결성체 354-B(경기)지구 안 총재는 354-B지구에서 3은 아시아, 5는 한국, 4는 서울 경기 강원 제주 지역, B는 경기 남부를 뜻한다며 수원, 화성, 안양, 평택, 양평 등 14개 지역 168개 클럽 6천 135명의 회원들이 활동중이라고 지구를 소개했다. 이어 금회기 국제협회장이신 조셉 프레스톤 라이온께서는 주제를 자긍심을 드높이자로 정하고 중점사업을 강조했다고 했다. 이에 맞춰 안 총재는 지난 7월 취임하면서 총재 주제를 새로운 변화와 도전으로 정하고, 중점사업으로는 품격 있는 봉사로 자긍심 고취, 지역중심의 봉사 및 단위클럽 활성화 지원, 지구운영 혁신과 교육강화를 꼽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지구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장자클럽인 수원라이온스클럽이 내년 4월10일 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964년 12월24일 창립한 수원라이온스클럽은 현재도 43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레오클럽으로서 레오회원도 83명에 이른다. 50년동안 이 클럽은 355회에 달하는 소외계층 지원봉사와 함께 144회에 걸쳐 398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안 총재는 임기 중에 50년 역사를 유지한 클럽이 나온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며 이같이 전통을 자랑하는 클럽과 함께 최근에 태동한 클럽까지 조화를 이뤄 354-B(경기)지구를 더욱 활성화시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354-B(경기)지구는 지난해 LCIF기금 76만6천500달러를 내는 등 해마다 50만달러 이상씩 기탁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지원하는 지구라는 자부심도 드러냈다. ■ 안양새샘클럽 등 속속 출범 클럽 르네상스 안 총재는 세부적으로 임기 중 12개 클럽을 확장할 목표에 맞춰 활발한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우선 7지역에 여성들로만 구성된 안양새샘클럽이 탄생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스칼라티움 안양평촌점에서 열린안양새샘라이온스클럽 헌장의 밤에는 안 총재를 비롯해지구의 주요 임원과 회원 및 내빈 200여명이 참석해 축제의 분위기 속에 창립행사가 진행됐다. 새샘클럽은 2013년 6월부터 창립준비에 들어가 4개월 후인 2013년 10월 32명이 모여 새샘클럽이라는 이름의 봉사단체를 조직했다. 올해 8월 회원은 50여명으로늘어났고, 신순균 국제라이온스협회354-B지구 감사로부터 창립제의를 받은 가운데 안양동안라이온스클럽을스폰서클럽으로 확정, 이번에 82명의 회원으로 헌장의밤을 갖고 정윤주 회장을 초대회장으로 추대하며 새로운 라이온 가족으로 합류했다안 총재는 통상 20~30명으로 클럽이 태동하는데 이클럽은 무려 82명의 회원으로 발족한 대형클럽인데다,모두 여성회원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며 어느덧 회원수도 97명까지 늘어나는 등 조만간 100명이 넘는 명문클럽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25명의 회원 전원이 각각 LCIF금액 2천달러이상씩 기탁한 화성지역 경기PMJF클럽이 클럽 헌장의 밤행사를 통해 이번달 탄생할 예정이다.안 총재는 회원 전원이 2천달러 이상씩 기탁한 클럽이 탄생한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는 일이라며 이들이 함께하기에 보다 의미있는 봉사활동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1985년 태동한 소사라이온스클럽도 지난 2013년 10월 85명의 회원 모두가 LCIF금액 1천달러이상씩을 기탁해 MJF클럽으로 거듭난 이후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80년 출발한 부천중앙라이온스클럽도 2012년 8월 65명의 회원이 모두 LCIF금액 1천달러이상씩을 낸 이후 추석맞이 사랑의 공동체(장애인 단체) 봉사, 자매결연클럽(대만봉황사자회) 방한 및 방문, 자매단체 부천시각장애인협회 흰지팡이의 날 및 점자 창안의 날 후원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안 총재는 회원 모두가 2천달러 이상 내는 PMJF클럽과 함께 5곳의 MJF클럽을 만드는 것을 임기중 목표로 하고 있다며 회원과 클럽을 늘리는 양적 팽창과 일정금액 이상을 기탁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질적인 행사도 함께 도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 대한민국 넘어 세계 곳곳에 봉사 땀방울 안 총재는 클럽별로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살피는 수천가지의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의 일환으로 지역사회 봉사사업인 취약계층과 열악한 복지시설을 방문하여 신선한 음식 등을 제공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사랑의 이동 봉사를 펼친다. 광명시를 비롯해 지구내의 많은 주거지 없는 가정들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한국 산재장애인 복지진흥회에서 건의한 대로 주거가정이 없는 가정을 위한 차량지원사업(사랑의 냉장FOOD차량)을 진행하고 있다. 안 총재는 비단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봉사활동을 해마다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1월 23일 스리랑카에 있는 자매지구(306-B1지구) 방문해 봉사를 펼칠 계획이다. 먼저 코리아-랑카 빌리지를 방문해 그동안 우리 지구에서 지어준 집들을 둘러보고, 노화된 주택에 대한 보수작업을 고려하고 있다. 또 마을 어린이들을 위해 양 지구 총재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가구당 선물을 전달하고, 현장에서 방문단 일행이 마련한 봉사금도 전달할 예정이다. 354-B(경기)지구는 그동안 저소득층 교육 및 문맹퇴치 사업의 일환으로 스리랑카 네곰보 저소득층이 다니는 학교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컴퓨터 및 교육자재를 제공하는 등 지속적인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다. 안 총재는 국내에는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고 해외에도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내실있는 봉사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 안총재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기부 큰 손 안 총재는 라이온스클럽을 통한 봉사활동 뿐 아니라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2012년 9월 경기 아너 소사이어티 12호 회원(전국 149번째)으로 가입하면서 5년간 1억원을 기탁하기로 한 이후 이를 실천하고 있다. 안 총재는 아너 소사이어티는 1억원을 기부하거나 1억원을 5년 내에 기부하겠다고 약정하면 가입할 수 있으며, 약정회원은 매년 2천만원을 기부하거나 매월 정기적으로 160만원 이상 기부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어려서 할아버지가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는 것을 보면서 자라 나에게 봉사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며 다행히 1989년부터 시작한 주택건설사업이 IMF의 풍파도 이겨내며 돈을 벌 수 있어서 더욱 내실있는 봉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고 말했다. 안 총재는 사업을 하면서, 아니 어려서부터 일정 금액이상을 벌면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펼치리라 마음 먹었는데, 2000년대 초반에 그 목표를 이룬 이후 봉사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고향을 찾은 방문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시설도 짓는 계획도 세우고 있는 등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는 봉사를 통해 인생의 기쁨을 찾아나갈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명관기자 사진=추상철기자

[경기인터뷰] 원동일 ㈜폼텍 대표이사

남자의 아침은 특별하다. 남자는 매일 아침 고3 딸을 위해 밥상을 차린다. 시간도 없고, 입맛도 없고, 귀찮기도 하고 더구나 스트레스로 힘든 수험생 딸에게 아침식사는 멀게만 느껴진다. 그런 딸을 위해 남자는 매일 아침식사를 챙긴다. 매일 아침밥상 차리는 남자가 바로 원동일 (주)폼텍(Foam Tech) 대표이사다. 원동일(49) 대표이사는 기본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가정과 회사,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한결같이,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신조로 지내고 있다. 원 대표의 세가지 기본 원칙은 프로정신, 개척정신, 책임정신이다. 그가 청춘을 바쳐 일군 회사 (주)폼텍의 사훈이기도 하다.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에 소재한 (주)폼텍은 스펀지(sponge) 가공업체다. 냉장고, 에어콘, 김치냉장고의 소음이나 떨림을 최소화해 주는 내장재와 자동차가 달릴 때 생기는 소음이나 떨림, 하부 마찰음을 잡아내는 패드 등 취급하는 제품만 900여 개가 넘는다. 위니아만도, 자강산업, 성부실업, 한민내장 등의 제품에 폼텍이 만든 제품이 들어간다. 원동일 대표이사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스펀지와 함께 생활해서 그런지 그의 인생과 경영철학이 스펀지를 똑 닮았다. #1.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성공한다 원동일 대표이사는 스펀지처럼 흡수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말수는 적은 스타일이었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먼저 친구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가 부드럽고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주고받는다. 2남1녀의 막내로 어릴 때부터 온가족에게 귀여움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 성격이 밝고 모난 구석이 전혀 없다. 무엇보다 뭔가를 가져와 응용해 내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푸근한 외모와 달리 반전이 있다. 원 대표는 육군 제13공수 특전여단(흑표부대) 출신이다. 얼굴만 봐서 마냥 착하디 착해 보이지만 내면은 단단하다. 오산에서 태어난 원 대표는 군 제대 후 오산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키우며 지금도 팔순이 넘은 노부모와 오산에서 살고 있다. 그는 1994년 남일화성에 입사해 영업직 4년, 이어 삼원우레탄에서 3년 동안 영업직원으로 근무했다. 영업직 7년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첫 도전을 하게 된다. 바로 창업이었다. 아내도, 부모님도 반대했다. 먼 친인척과 지인도 그의 창업을 뜯어말렸다. 왜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고 고생길을 걷냐고 다들 걱정하고 강하게 반대했다. 허나 소용없었다. 원 대표는 살던 오산집을 세놓고 그 전세금으로 2002년 9월 화성시 정남면에 폼텍을 차렸다. 기계 한 대, 외국인 근로자 1명이 회사의 전부였다. 아내가 일손을 도왔지만 첫해 부도를 맞아 재기불능으로 보이는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원 대표는 이겨냈다. 그리고 첫해 수익 1억원을 냈다. 7년 동안 영업직 일을 했다. 30대 후반이 되니 과연 내가 50대가 되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정년만 바라보며 40~50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만의 삶을 개척해 보자 싶었고 회사를 차리게 됐다. 영업력이 전부였다. 은행대출 없이 그야말로 맨바닥에서 맨손으로 시작했다. 2002년 회사를 열 때 그의 나이 서른 일곱이었다. 이른 나이에 사장이 된 그는 원칙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요행은 없었다. 원칙은 딱 하나, 최저원가에 최고의 품질을 납기일에 공급하는 것을 생명같이 여기는 것. 그 원칙이 직원 1명으로 시작한 폼텍이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제품은 품질과 납기가 생명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납기와 납기일 준수를 못하면 커스터머가 물량을 주지 않는다. 신뢰가 깨지는 것이다. 8월부터 12월까지 가장 바쁜 시즌이다. 요즘은 김치냉장고에 들어가는 내장재 납품으로 전직원이 정신없이 일하고 있다. 원 대표의 경영철학과 직원들의 성실함이 더해져 폼텍은 지난해 연매출 17억원을 기록하고 올해 목표 연매출 21억원을 이미 달성했다. #2. 지역이 커야 기업이 큰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12년 동안 쉼없이 달려온 원동일 대표. 그는 올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아파트나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에서 지켜야 할 생활소음의 최저기준을 담은 공동주택 층간소음 기준에 관한 규칙이 지난 5월 14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이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대처했다. 실제로 소음과 진동 민원은 전국적으로 최근 5년간 47% 증가했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층간소음 관련민원이 2012년 450건에서 2013년 1천9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기업인으로서 생활환경 민원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과물은 컸다. 공동주택 층간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제품인 반건식 뜬바닥 시스템 소피온210을 개발ㆍ생산하는데 성공해 오는 2015년 4월 시판 예정이다. 연구개발 및 특허권자인 주식회사 한글로벌(대표이사 조성연ㆍ정지영)과 공동개발한 소피온210는 단순한 매트나 판상형의 층간완충재가 아닌 PP허니컴 패널, 고밀도 EPS보드와 방진고무로 이뤄진 복합구조체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으로부터 경량충격음 1등급, 중량충격음 2등급의 시험성적서를 취득했다. 층간소음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소음 방지 용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번에 출시한 소피온210은 공동주택의 슬라브 위에 방진고무로 중공층을 형성해 가벼운 소음부터 중량충격음에 이르기까지 소음차단효과가 크다. 또 2천500㎜의 스티로폼을 180㎜로 압축한 고밀도 EPS(발포 폴리스티렌Expanded Polystyrene)와 간편한 시공을 위해 고안된 온돌파이프 고정클립으로 시공이 용이할뿐 아니라 단열 및 내부 온도 유지효과가 뛰어나다. 원 대표는 기업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 폼텍이 지난 12년 간 사람이 이용하는 가전제품과 자동차의 내장재 제품을 생산했다면, 이젠 사람을 위한 제품,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꿈꿔왔다. 그 꿈은 공동주택 층간차음을 위한 최고의 시스템인 소피온210에 오롯이 담겨 있다. 원동일 대표는 중소기업사장이다.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어려움이야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금, 인력 등은 물론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도 빼놓을 수 없다. 허나, 원 대표는 불평ㆍ불만을 늘어놓지 않는다. 불평ㆍ불만은 투정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하나를 팔아서 얼마나 남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제품이 고객에게 얼마나 이득이 됐느냐가 더 중요하다. 소비자와 고객들에게 더 어필하기 위해 업그레이드 등의 연구는 당연한 일이다. 무한 경쟁체제에서 우리 제품을 한 번 선택한 고객이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진심으로 만들어 최상의 품질로 약속한 날짜에 납품해야 한다. 사업은 화려하고 복잡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에 얼마만큼 충실하냐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며,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원동일 대표이사는 경영인으로서 지역에서 벌어서 지역에 쓴다는 생각으로 오산, 화성 지역발전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양감면애향장학회, 대한민국 특전동지회 오산시재난구조대, 한국연예예술단, 양감라이온스클럽 등 여러 방면에서의 봉사활동을 통해 이웃과 함께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희망의 씨앗을 지역 사회 이곳저곳에 뿌리고 있다. 강현숙기자사진=추상철기자

[경기인터뷰] 백성욱 PEC스포츠아카데미 원장

유소년과 청소년들의 스포츠활동 참여는 신체는 물론 정신적, 사회적으로 개인ㆍ단체 활동의 종합적인 경험을 체득케 함으로써 건강한 신체와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등 건전한 사고방식을 형성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즘 유소년스포츠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활체육과 함께 유소년체육도 활성화되고 있다. 전국에 1만여명의 회원을 둔 PEC(Physical Education Central)스포츠아카데미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백성욱(39) 원장을 만나 선진국형 유소년스포츠클럽의 롤모델이 된 그만의 특별한 노하우를 들어봤다. Q 선진국형 스포츠클럽인 PEC스포츠아카데미를 설립하게 된 배경은. A 대학 졸업 후 우연히 학교 동기가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 교실을 도와주러 간 적이 있었다. 아이들과 한데 어우러져 운동을 가르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학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나 스스로가 이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아, 내게 진정 맞는 일이구나라는 확신이 들었고, 열정만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당시 나이가 스물일곱이였다.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인 만큼 2000년 클럽 원장을 맡게 되기 전까지 유소년축구교육원에서 축구를 연수 받는 등 각종 연수교육을 이수하면서 틈틈이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또 외국 우수 스포츠클럽을 직접 방문하는 등 클럽 활성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준비했다. Q PEC스포츠아카데미의 규모와 운영에 대해 소개해 달라. A PEC는 수원을 중심으로 영통에 3개 지점, 화성, 용인, 오산 등 총 10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영교실인 아이풀(IPOOL) 3개 지점을 추가 운영하고 있다. 축구와 농구, 수영, 인라인, 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에 걸쳐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추후 종목을 확장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현재 축구 5천500명을 비롯해 농구 2천명, 수영 2천명, 생활체육교실과 짐, 인라인스케이트 1천명 등 PEC아카데미와 아이풀을 포함해 전국에 대략 1만800여명 정도의 클럽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Q 수영교실 아이풀(IPOOL)이 다른 일반 수영교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A 7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2011년 개관한 유소년 전용 수영교실이다. 아이풀은 일단 아이들이 추워서 수영장을 거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따뜻한 물을 사용하며 물 외에도 내부 바닥재를 온돌로 만들어 실내공기까지 따뜻하게 느낄 수 있도록 특성화된 구조로 설계됐다. 더불어 정화시설 역시 많은 여과기는 물론 화학약품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천일염을 사용, 수질관리를 통해 아이들의건강까지 고려한 친환경 인공 해수풀이다. 아이풀은 쾌적한 환경 조성으로 아이들의 수업 참여를 유도하고,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수 있도록 다양하고 재밌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Q 전국에 1만여명이 넘는 클럽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처럼 PEC아카데미의 규모가 커진 이유와 다른 클럽과의 차별화 전략이 있다면. A 요즘은 가족이라는 키워드가 재고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로서도 자식과 소통하고 함께할 상황이 그다지 많지 않은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자녀들과 친밀감을 갖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감대를 많이들 원하는 추세다. 자녀와 교감하고 소통하는 연결고리로서 스포츠를 많이 찾게 되면서 PEC의 문을 두드린 학부모들 역시 늘어난 것 같다. 프로그램과 시설, 지도자는 생활체육의 기본 요소로 PEC는 세가지 모두에서 차별화 전략을 가진다. 먼저 PEC는 가장 기본이 되는 시설면에서 최상의 설비를 갖추고 있다. 안정성과 쾌적함은 물론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모든 수업을 직접 보고 응원할 수 있는 구조로 돼 있어 전체적인 시설부분에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프로그램은 기본 종목인 축구, 농구, 수영 외에도 태권도, 인라인 등 다양한 종목을 운영해 어린이들의 접근성을 높였으며 제공 방법 역시 입문반, 특기반, PEC유나이티드(전문반)로 세분화 해 교육효과를 극대화했다. 또한 종목별로 전문 라이센스를 취득한 우수 지도자를 영입해 교육의 질을 높였다. 교육서비스 접점에서 실제로 모든 서비스를 진행하는 지도자들이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이직없이 능력을 개발해야하기 때문에 아직 부족하지만 전반적인 지도자 복지와 근무 여건면에서도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 1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지도자가 30명이 넘는다. Q 아카데미를 설립한 시점이 IMF경제난을 겪은 직후다. 어려움은 없었는지, 그리고 아직까지도 국내에서는 유소년 스포츠클럽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알고있는데. A IMF 당시에는 워낙 작은 규모로 운영하다보니 스포츠 교육면에서의 어려움은 없었다. IMF 이후 2000년부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이후 꾸준하게 성장해 오고 있다. 요즘 부모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지식위주의 경쟁성 교육보다는 아이들의 행복한 삶, 건강한 삶에 무게가 실려있다. 문화 자체가 성숙해진 것 같고 스포츠에 대한 인식도 좋아졌다. 과거에는 단순히 놀이차원으로 스포츠교육을 시켰다면 지금은 인성과 사회성 교육을 인식하고 스포츠교육 자체를 교육으로 바라 보시는 것 같다. Q 유아와 청소년기 스포츠 활동이 중요함에도 불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스포츠 활동이 유아와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A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직접 지켜보면서 아이들의 인성과 사회성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단체활동은 스포츠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축구나 농구 등 단체종목은 특히 그렇다. 스포츠를 통해 팀원간의 호흡과 배려를 배우면서 아이들의 인성이 자리잡는다. 스포츠는 아이들이 경쟁에서 겪게 되는 감정조절 등 직면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로써 얻어지는 배움과 경험을 통한 배움은 현격히 다르다. 스포츠 활동을 통한 성공적인 인성교육이 더 나은 행동과 생각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며 실제 그런 케이스를 많이 접했다. Q 현재 우리의 학교체육이 크게 위축돼 있다. 학교체육 수업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반면, 스포츠 클럽이 활성화되는 추세다. 앞으로 바람직한 학교체육의 방향은 무엇인가. A 체육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학교 스포츠클럽을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어찌보면 학교 스포츠클럽은 사설클럽과 경쟁 관계에 있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스포츠클럽은 소외된 아이들을 포함한 전체적인 아이들을 포용할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강화돼야 하고, 민간에서는 스포츠클럽이 가진 차별적인 장점들을 잘 활용해야 한다. 학교클럽과 민간클럽이 상생 발전해 전반적으로 스포츠가 중요하게 인식되고 미국이나 호주, 유럽처럼 대학진학에도 스포츠 활동이 가산점이 되는 그런 시스템이 하루빨리 자리잡아야 한다. Q 원장께서는 비영리단체인 사단법인 한국유소년스포츠클럽협회 회장을 맡아 많은 사업과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A 스포츠클럽 원장님들이 유소년스포츠클럽은 좋은 일인데 사회적으로 그만한 인정을 못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자체가 국가적으로 필요한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제도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2009년 창설된 한국유소년스포츠클럽협회는 제천시장배 사랑나눔축구대회, 전국 유소년 3on3 농구대회 등 각종 대회 유치를 통해 결식아동과 희귀난치병 어린이 및 청소년들에게 대회 참가비와 기부금을 전달하는 등 사회봉사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아이들이 거둬준 비용만 4천만원 이상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전달됐다. 아이들에게 기부증을 줘서 기부활동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중이다. 이 밖에도 PEC 지도자들 역시 자발적으로 모임을 구성해 교통지도와 연탄 나르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고아원 체육대회를 4회째 경희대와 함께 진행 중이다. Q 스포츠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느낀 보람과 앞으로의 계획은. A 과거 가르쳤던 제자들이 자주 클럽을 찾아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곤 한다. 제자들이 행복했었다라고 말할 땐 다시 지도자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기쁘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사회적으로나 함께하고 있는 구성원 모두에게나 소중하고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시설과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또 그곳에서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도 PEC는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로 유소년 스포츠 클럽으로서의 전문성을 한층 높이고, PEC만의 차별성을 극대화 시킬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체계적인 협회 활동으로 우리나라 유ㆍ청소년들이 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함양해 선진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소외계층에 대한 정기적 봉사프로그램으로 어려운 유ㆍ청소년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 박준상기자 사진=전형민기자

[경기인터뷰] 김두관, "여ㆍ야 극한대립,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지금처럼 대립하면 우리나라는 망한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우리 환경에 맞게 적용한다면 정치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지사는 지난 18일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어 대립과 갈등을 뛰어넘기 어렵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특히 지난 1년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수를 한 바 있는 김 전 지사는 남경필 경기지사가 추진 중인 연정에 대해 올바른 시도라고 할 수 있지만 6~7개의 주요 공공기관장 자리를 새정치연합에 양보했다면 좀 더 추진이 수월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7ㆍ30 김포 보궐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 다음 총선을 준비 중인 김 전 지사는 제가 군수와 도지사를 했어도 김포에서는 뉴페이스다. 그럼에도 43%의 지지를 보내줬다는 건 큰 배려를 해주신 것이라면서 정치인생 2기의 시작과 마무리를 김포에서 하고 싶다고 진정성을 피력했다. 다음은 김 전 지사와의 일문일답. Q 김포에서 출마한 이유는. A 제가 대한민국 최남단에서 태어났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제 꿈이 통일된 대한민국의 최북단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김포는 분단된 대한민국의 최북단으로 앞으로 통일의 전진기지가 될 것이다. 사실 김포가 우리 당에게 쉬운 지역이었다면 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저 스스로 당의 혁신이 시급한 때에 원내에 진입해 정당개혁에 앞장서고 수권정당 체제를 갖추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지방정치를 경남에서 시작했다. 경남에서 보낸 시기를 제 정치인생 1기라고 한다면 2기에 해당하는 중앙정치는 김포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마무리를 김포에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Q 2016년 총선에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A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자 시민의 대표이다. 김포는 빠르게 성장ㆍ발전하면서도 교통과 교육, 이른바 쌍교 문제가 가장 큰 현안이다. 김포는 서울에 가장 가까운 도시이지만 지하철이 없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도시철도를 조기개통하고 실질적인 시민의 발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겠다. 특히 신도시는 젊은이들이 갑자기 몰리면서 유치원이나 문화시설 등 각종 인프라의 부족 현상을 겪는다. 하드웨어적인 일들과 관련해서도 제 역할이 있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심부름을 하겠다. Q 유럽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반면 독일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데 원인이 뭐라고 보는지. A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베를린자유대학에서 1년간 연수할 기회가 있었다. 독일은 창의성을 존중하되 공공 이익을 위해 정부가 일정 역할을 하는 사회적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해서 경제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나눠지는 등위적 복지국가다. 특히 독일은 세계적인 경제불황 속에서도 유일하게 3%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으며 청년실업률도 6~7%에 불과하다. 이는 세계 시장을 지배하며 히든챔피언이라고 불리는 우량 강소기업이 강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강소기업 유지를 위해 노사공동결정법을 실시하고 있다. 근로자 대표가 회사의 주요 결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기업 경영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이밖에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당당한 독일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예컨대 직업교육을 통해 우수 인력을 키우는 마이스터 제도 등이 독일의 경제 발전을 이끌고 있다. Q 독일정치와 한국정치의 차이점은. A 독일은 제1당과 제2당이 대연정을 하고 있다. 독일 국민들도 독일이 발전하고 유럽의 질서를 주도하라는 차원에서 1당과 2당의 연정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정권이 바뀌어도 좋은 정책은 승계하는 문화가 대단하다. 사민당의 빌리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을 기민당의 콜 정부에서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해서 독일의 통일을 이뤄냈다. 반면 우리나라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립과 갈등이 첨예하다. 연정하면 야합인 것처럼 비추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어 연정이 성사되기 어렵다. Q 독일 정치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면. A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지금처럼 계속 대립하면 우리나라는 망한다. 이를 개선하려면 정치제도 등을 시대 변화에 맡게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소선거구제에서는 소수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렵다. 반면 독일은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실시하고 있어 민의가 상당히 반영될 수 있다. 이를 도입하면 한국정치가 상당히 바뀔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미 남경필 경기지사, 원혜영 의원 등 여야 정치인들이 독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조건을 감안해 독일 시스템을 창조적으로 잘 적용한다면 충분히 정치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국회의원 수를 늘려 지역구에서 200명, 비례 200명을 각각 뽑아 각계각층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 시스템은 지역편차도 심하다. 각계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취지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조차 소위 서울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한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 될 수 있도록 작은 이익단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국회에 가야 한다. Q 독일 통일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A 독일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자주 만나고 친해지라고 조언하더라. 그러나 독일은 통신 등이 완전히 끊긴 적이 없다. 동독과 서독이 편지를 교환할 수 있었고 가족에게 돈을 보낼 수도 있었다. 우리와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국민의 열망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독일은 통일을 위한 물밑작업을 지속했다. 1980~90년대 통일 직전 영국과 프랑스가 반대했지만 독일 내부에서 초당적인 협력을 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남북문제에 대해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대한민국 내부가 단결된 뒤에 정부가 북한과 교섭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입장은. A 300여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이유도 모른 채 죽었다. 그 가족과 온 국민이 지금도 큰 고통 속에 있다. 기업과 정부의 부패ㆍ비리ㆍ무능ㆍ무책임이 총체적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은 제대로 원인을 밝히겠다며 국가개조론까지 설파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태도를 취하는데 국가와 정부가 그래서는 안 된다. 책임있는 정부와 여야가 합의를 이끌어내고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켜 불행한 일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Q 수권능력이 있는 정당이 되기 위해 새정치연합이 개선해야 할 점은. A 야당이 제대로 된 야당의 역할을 해야 여당도 잘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우리 당의 내홍과 관련, 정당은 없어져도 계파는 안 없어진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사익을 추구하는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합리적인 당직ㆍ공직 선출 시스템이 하루빨리 정착돼 훌륭한 인재들이 충원돼야 한다. Q 남경필 경기지사의 연정 추진을 어떻게 보는지. A 남 지사가 국가모델연구모임 등을 통해 독일 모델을 많이 보고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경기도는 여야간 서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 연정 추진이 더딘 것 같다. 남 지사가 연정을 잘 하려면 도의회 다수당인 새정치연합과의 협조가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통합부지사만 강조하는 건 의미가 없다. 경기도 산하 주요 공공기관장 자리 6~7개를 새정치연합에 제안했다면 연정이 좀 더 수월했을 것이다. 남 지사가 제안한 연정은 올바른 시도라고 할 수 있지만 폭을 넓혔어야 새정치연합도 진정한 연정이라고 이해했을 것이라고 본다. 관점에 따라서는 사회통합부지사 추천권 양보도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독일식으로 간다면 더욱 크게 했어야 했다. Q 앞으로 계획은 A 제가 군수와 도지사를 했어도 김포에서는 뉴페이스다. 때문에 시민들께서도 지난 7ㆍ30 재보궐선거에서 저를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43%의 지지를 보내줬다는 건 큰 배려를 해주신 것이다. 김포전투에 패배했다고 해서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비록 낙선했지만 2년동안 시민들과 겸손하게 소통하겠다. 할 말은 하는 사람이 되겠다. 장외에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당의 혁신과 변화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대담=강해인 부국장 정리=송우일 기자 사진=추상철 기자

[경기인터뷰] 박영순 구리시장

구리시가 디자인 창조도시 건설을 위해 구리월드디자인시티(GWDC) 사업에 박차를 가한다. 시 는 이를위해 아시아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도시계획 건축인테리어 디자인 제조생산회사 관련 협회와 함께 아시아 최초의 Hospitality Design 센터를 거점으로 새로운 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 및 인천시가 각각 한강상수원 수질 오염을 우려하며 사업 전면 반대 입장을 외치고 있어 사업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국토교통부도 서울시가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서울시와 협의를 요구하며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안건 상정을 유보 중이다. 또 경기도는 공동 사업 추진을 요구하는 구리시의 입장에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는 등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본보는 박영순 구리시장을 만나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사업에 대한 향후 산업정책 방향과 과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Q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조성 사업에 대한 설명과 구리시가 유치하려는 Hospitality Design 산업을 소개해 달라. A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조성사업은 Hospit ality Design 분야의 아시아 디자인 허브도시 건설을 목표로 외자유치 및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추진하는 사업이다. 구리시 토평동 일원의 1천721천㎡여 부지에 조성되며, 주요 시설로는 구리월드디자인센터와 4천여 실 규모의 특급호텔 3개, 외국인 주거시설, 외국인 학교 등이 건립될 예정이다. 구리월드디자인시티가 유치하고자 하는 Hospitality Design 산업이란 호텔, 리조트 등 고급 건물들을 건축할 때 여기에 사용되는 모든 인테리어내장재들을 기성품이 아닌 디자이너가 선택하는 제품으로 주문을 받아 고유 디자인으로 제작생산전시판매유통하는 융복합산업으로 창조경제와 미래 성장 동력의 핵심 산업이다. 디자인센터에는 2천여 개의 건축인테리어 등 관련 외국기업이 입주하게 되며, 센터 내 상설 쇼룸에서는 신제품의 샘플 디자인을 상설 전시하고, 비상설 쇼룸에서는 2천여 개의 입주기업을 중심으로 연간 50회 이상의 엑스포와 트레이드쇼를 개최한다. 특히 건축인테리어 디자인 제품을 전시하고, 관련 회의가 연 중 개최되는 등 복합공간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더불어 센터는 방문객들이 관광, 쇼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MICE 산업을 선도하는 중심기지가 될 것이다. Q 외국인 투자 유치 및 2천여 개 외국회사 유치 과정과 실현 가능성은. A 구리시는 지난 7년 동안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2천여 개 외국기업 유치와 이곳에 직접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미국에 본사를 둔 건축인테리어디자인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 중 68개회사가 참여하는 구리월드디자인센터의 국제자문위원회(NCD International Advisory Board : NIAB)를 구성했다. NIAB의 구성원들은 구리월드디자인센터 주력 입주기업(앵커 기업)으로 한 기업당 20~30개의 협력사가 함께하기 때문에 NIAB 입주 시 협력사를 포함하면 1천400~2천 개 업체가 입주하게 된다. 또한 NIAB는 구리월드디자인센터가 활발하게 운영돼 많은 참관객을 끌어들이고 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입주기업들과 연계해 각종 엑스포, 트레이드 쇼 및 컨퍼런스 등의 50회 이상의 연간 운영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유치하고 있으며 연간 50회 이상의 엑스포 등을 통해 입주 회사 연매출의 80%를 수주할 수 있으므로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조성사업의 외국기업 및 외자유치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확신한다. Q 구리시 1년 재정 규모보다 훨씬 큰 2조1천억 원의 방대한 사업비가 소요되는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조성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공사채를 발행할 경우, 시 재정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이에 따른 재원조달 및 투자계획은. A 이 사업은 국토부장관이 입안해 시행하는 국책사업의 성격으로 단순한 지자체 사업이 아니다. 다만 공사채 발행규모(1조2천억 원)가 구리시의 재정규모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이 사업은 구리시의 재정사업이 아닌, 구리도시공사가 공사채를 발행해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공사채 발행 규모만을 놓고 구리시의 1년 예산과 비교해 위험성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현재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서 개발제한구역 해제에 대한 방향제시에 따라 단계별로 해제 및 개발을 하게 될 경우, 1단계 사업을 위해 필요한 공사채 발행규모는 약 5천100억 원으로 축소되며, 2단계 사업은 공사채 발행 없이 1단계 분양수입만으로 추진할 수 있다. 1단계 공사채 발행 규모는 구리시가 도시공사에 현물출자 하게 될 상업용지 시유지의 현물가액 약 3천500억 원의 약 170% 정도밖에 안 되므로 안전행정부의 기준(400%)에도 훨씬 못 미치는 안정된 수준이므로 크게 문제 될 바 없다. 뿐만 아니라, 1단계 사업구역 중 개발가용용지 약 49만5천867㎡(15만 평)을 매입하기 위해 약 3조5천억 원(34억불)의 외자가 대기 중에 있으므로 토지분양이 안되는 상황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Q 서울시, 인천시에서 한강상수원 수질 오염을 우려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구리시의 수질보전대책은 무엇인가. A 본 사업과 관련해 서울시, 인천시에서는 무엇보다도 한강 상수원 수질보전을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조성사업은 한강 상수원 수질보전을 위해 사전에 철저한 수질보전 대비책을 강구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우선, 사업지구에서 발생되는 하수는 전량 구리하수처리장으로 보내지게 되고, 구리하수처리장에서는 환경부에서 개발한 고도하수처리시스템인 I System 공법(침지형 분리막여과)을 활용해 BOD 3㎎/L이하의 수영 용수 수준으로 처리한 후 4KM 이상의 장자못 습지, 아천 습지 등 자연 상태에서 재정화돼 왕숙천으로 방류하게 된다. 또한, 비점오염원은 습지, 침투도랑, 장치형여과시설 등 LID기법을 도입해 오염물질이 한강으로 직접 흘러 들어 가지 않도록 하고, 특히 사업지구내에 대규모 초기 우수 저류시설을 설치해 오염된 빗물을 구리하수처리장에서 고도하수처리한 후 방류토록 계획했다. 이러한 하수처리 과정을 거쳤을 때 한강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기 위한 수질모델링을 실시한 결과,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조성사업으로 인해 한강취수원에 미치는 영향은 없고 오히려 장래 수질개선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됐으며, 이와 같은 내용으로 서울시 협의를 거쳐 2013년 11월 환경부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완료했다. Q 대통령은 규제개혁을 주창하고 있지만, 서울시의 반대를 이유로 국토부가 이 사업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은 또 다른형태의 악성 규제는 아닌지. A 박근혜 대통령은 저성장-저물가 시대에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규제개혁이야말로 경제를 살리는 첩경이자 경제혁신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과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규제를 손톱 밑 가시로 비유하면서 대통령 주재로 규제개혁장관회의를 개최해 끝장 토론까지 했다. 이와 같이 범정부차원에서 규제개혁에 노력하고 있는 시점에 서울시가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중앙도시계획심의가 지연되서는 안 된다고 본다. 구리월드디자인시티 조성사업은 약 7조 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와 11만 명 정도의 직간접 고용창출이 기대되는 사업이다. 따라서 국토부는 미래 국가 경제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본 사업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범정부차원에서 아낌없는 지원해 주실 것을 기대한다. Q 끝으로 경기도와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A 세계적 수준의 구리월드디자인시티(GWDC)가 조성될 경우 경기도와 구리시, 나아가 대한민국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디자인 산업과 MICE 산업 중심지가 될 것이다. GWDC는 11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해 경기도의 70만개 일자리 창출 목표중 1/7을 해결하고, 도내 600여개 보세조립공장 설립으로 남양주, 포천, 양평, 가평, 여주, 이천, 광주 등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기 동북부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가구와 섬유, 도자기 등 선진국의 명품과 개도국의 저가 대량생산품 사이에서 고전을 겪는 산업들이 GWDC로 인해 세계적 수준의 디자인과 마케팅이 접목으로 획기적인 경쟁력 강화가 예상되고 있다. 특히 서울의 삼성동 코엑스와 잠실권을 연결하는 영동권 MICE 산업, 인천의 송도영종도미단시티 등의 복합리조트 산업과 같이 구리월드디자인시티(GWDC)는 창조경제를 대표하는 창조 디자인산업으로서 경기도를 대표하는 대표사업으로 브랜드화 될 것이다. 이같이 21세기를 선도하며 국가 경제에 핵심적 역할을 감당할 GWDC 조성사업이 조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경기도와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대담=유창재 경기동북부권 취재본부장 사진정리=하지은기자

[경기인터뷰] 유희석 아주대학교의료원장

아주대학교의료원이 오는 12일 개원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비전을 갖고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바로 한국의 메이요클리닉(Mayo Clinic)이 되는 것이다. 메이요클리닉은 미국의 소도시인 로체스터에 있는 병원으로, 지역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도시권에 있는 주요 병원들을 제치고 각 분야에서 최고의 의료기술을 갖춘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역시 서울에 대형병원이 집중된 상황에서 아주대병원이 처한 현실은 메이요클리닉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원에 터를 잡고 지역사회 의료계의 중심 역할을 해오기를 20년, 지금은 서울의 대형병원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유희석 의료원장은 이제는 우리나라 의학을 선도하는 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며 한국을 넘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병원으로 우뚝 서겠다고 말했다. Q 개원 20주년을 맞았다. 아주대의료원의 20년을 정리하자면. A 지난 20년간 아주대학교의료원은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장과 발전을 지속했다. 의과대학, 병원, 연구소를 아우르는 의료원 체제가 구축된 1994년부터 2003년까지의 10년은 의료원이 지역사회에 자리 잡고 뿌리내리는 성장기로 규정할 수 있다. 2004년부터 10년은 의료원이 직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해 도약의 기반을 닦고, 지역사회 내에서 3차 진료기관의 확고한 위치는 물론 대한민국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는 도약기로 규정할 수 있다. 초기 10년을 돌아보면, 의과대학은 6년제 의대교육과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신생 의과대학의 기초를 닦았고, 일찌감치 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의과학연구소를 만들어 연구교수를 대거 채용해 지원했다. 경기도 첫 3차 의료기관으로서 젊음과 자신감을 무기로 병원을 단기간에 전국 상위병원에 올라섰다. Q 전국 상위병원으로 성장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A 급성장하던 의료원이 1997년 12월 IMF 외환위기부터 시련을 겪었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등으로 엄청난 위기감이 몰려왔고, 자력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게 했다. 구성원들은 진료확대, 외부 연구비 수주 등 수입증대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자체적인 평가시스템을 마련해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 교직원의 희생과 협동심, 불굴의 패기가 우리 의료원을 위기에서 벗어나 홀로서기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렇게 홀로서기를 한 의료원은 그즈음 2004년 개원 10주년을 맞아 향후 10년을 내다보며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비전을 만들어 선포했다.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질적 향상과 양적 확대를 목표로 삼았는데, 이를 단계별로 차근차근 성실하게 이행해 나간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Q 개원 당시와 현재를 비교한다면. A 아주대의료원은 1994년 개원 당시 843병상, 일평균 외래환자 2천500명 규모였다가 현재 1천98병상, 일평균 외래환자 4천500명 규모로 양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아주대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은 의사시험 합격률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교수 1인당 SCI 연구업적 전국 4위, 연구비 수주 전국 6위 수준의 연구역량을 지닌 대학으로 규모는 작지만 연구 역량이 아주 뛰어난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8년 개교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기초의학 연구에 투자한 결과 연구비 수주실적과 연구실적이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03년 이전까지 연간 연구비 수주실적이 80억 원에 못 미쳤으나 2006년에는 2백억원을 상회하였으며, 이후 해마다 3백억 원 내외의 연구비를 수주하고 있다. SCI 논문도 2003년도 154편에서 2013년에는 496편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또 만성염증질환연구센터(MRC), 유전체불안전성 제어연구센터(SRC) 등 많은 대형 국책연구과제를 수주했다. 국가지정 연구기관인 SRC와 MRC 모두에 선정된 유일한 의과대학이며 이외에도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다수의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임상연구와 관련하여 2012년에는 임상시험 글로벌선도센터로 참여하고 있고 2013년에는 보건복지부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됐다. Q 지역사회에서 아주대의료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국립대학병원이 없는 경기도에서 아주대학교병원은 최선을 다해 공공의료의 영역을 담당해왔다. 전국에서 가장 큰 응급센터와 중환자실을 운영하고 있고, 모든 의료기관이 외면하던 중증외상환자를 살려내 서민을 위한 국가정책으로 연계했다. 아울러 국민 네 명 중 한명 꼴인 암환자의 삶의 질에 관심을 갖고 지역암센터를 유치운영해 경기도 암환자에 대한 전인적 케어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신생아 집중치료 병상이 부족한 경기남부권역에서 출산 전후의 고위험 신생아를 위한 신생아집중치료지역센터를 운영하고, 살기 좋은 수원시를 만들기 위해 수원시가 설립한 수원시 환경성질환아토피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또 515개의 협력 병의원과 진료의뢰하는 3천827여 개 병의원과 함께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역사회 의료발전에 협력하고 있으며, 경기도와 24시간 외국인 진료시스템을 구축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환자 진료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Q 몇 년 전부터 국내 병원들은 의료관광을 위해 신경을 쓰고 있다. 아주대학교병원의 외국인 환자 유치 계획은? A 아주대학교병원은 개원 초부터 오산, 평택 미 공군병원과 협력관계이고 용산 미 육군 121병원과도 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며 24시간 외국인 진료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지난해 아주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외국인 환자는 연인원 기준 약 9천명이다. 아직까지 진료를 목적으로 입국하는 순수 외국인 환자는 많지 않으나 러시아, 중국 등에서 오는 환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외국인 환자 유치와 관련하여 우리 병원이 주력하고 있는 국가는 러시아를 비롯한 CIS(독립국가연합)다. 자국에서는 의료서비스가 안되어 멀리서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체류시간, 목적에 맞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가족, 친구 등 지인을 추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아주대병원은 정부의 의료관광 활성화 이전인 1994년부터 국제진료센터를 개설, 지원하고 있다. 국제진료센터는 의사 2명, 간호사 6명, 러시아 코디네이터 2명, 다수의 자원봉사자로 운영하고 있으며, 통역 가능 언어는 영어, 일어, 러시아어, 중국어다. Q 국제 의료기관 평가위원회(JCI) 재인증을 획득했다. 국제인증을 지속적으로 받는 이유는? A 아주대병원이 지난 6월 23일에서 28일까지 방문평가를 받고 국제 의료기관 평가위원회(JCI) 재인증을 획득했다. 2011년 경기도에서 처음 JCI 인증을 획득한 데 이은 재인증으로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적 측면에서 국제 표준 의료기관임을 재차 입증한 것이다. 이번 평가에서 JCI 현장 평가 위원은 한층 강화된 JCI 기준집 제5판의 인증 기준에 맞춰 16개 평가 부문, 316개의 평가 기준과 1천218개에 이르는 평가 항목에 대해 엄격하게 현장 실사를 했다. 특히 이번 평가에 적용한 기준집 제5판은 리더십 부문과 전체 부서의 환자 안전지표 관리, 의학교육, 임상연구시험 등이 강화되어 기존의 평가보다 한층 더 까다로웠다. 하지만 아주대학교는 리더십 부분과 병원 전체적인 의료의 질과 환자안전 관리체계에 있어서 우수성을 인정받았고, 특히 국제환자안전목표, 환자권리, 임상연구 부문에서는 거의 만점을 받는 등 2011년 첫 인증을 받은 이후 지속적인 품질 관리와 더불어 2014년 4월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5판 기준의 성공적인 적용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 Q 개원 20년을 기점으로 앞으로의 발전전략이 궁금하다. A 20주년을 맞는 시기에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며 2주기 비전을 선포하려고 한다. 첫째, 가장 안전하고 친절한 환자중심 의료기관으로 성장한다. 둘째, 몇 개 분야에서 선도적 의료브랜드를 창출한다. 셋째, 우수한 의료인을 양성하는 명문 교육기관으로 성장한다. 넷째, 의료분야 연구에서 국내 최고의 연구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목표로 다시 뛰게 될 것이다.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제와 평가기준 등은 현재 연구 중에 있으며, 평가에 따른 보상체계도 마련할 예정이다. 새로운 비전 달성을 위한 전략으로 의료원은 가장 먼저 권역외상센터 완공, 장례식장 신축, 간호대학 건물 건축, 광교 프로젝트에 집중할 것이다. 권역외상센터는 내년 가을쯤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의 전용건물이 완공된다. 센터가 문을 열면 365일 24시간 중증외상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는 즉시 응급수술이 가능하고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며, 사망률 10% 이하를 목표로 한해 1천여 명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게 될 것으로 추정한다. 장례식장은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에 빈소 12개를 운영하게 되며, 내년 5월경 완공되면 지역사회의 선진형 장례문화를 선도하게 될 것이다. 간호대학의 숙원사업인 대학건물 신축을 위해 현재 정책연구를 의뢰하여 건축규모 등에 대한 논의를 마쳤으며, 머지않아 건물신축을 위한 설계를 추진할 예정이다. 그리고 새로운 영역의 의료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광교 도시지원시설 용지에 대한 매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다. 박성훈기자 사진=추상철기자

[경기인터뷰] 백덕현 캠코 경기지역본부장

부동산 공매 처분에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인수 및 정리, 기업의 구조조정 지원과 개인신용회복, 서민금융에 이르기까지 한국자산관리공사(Korea Asset Management Corporation; KAMCO), 캠코는 그 영역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1962년 출범 후 IMF, 카드 대란, 저축은행 폐쇄 등 굵직한 현안을 겪으며 진화해온 셈이다. 특히 캠코 경기지역본부는 지난 2012년 3월 경기지역본부를 개설해 경기도와 도민의 현장밀착형 자산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 사업인 국민행복기금 운용 주체로 서민들의 가계 부채 해소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행복기금 관리운용과 개인신용회복지원을 통해 서민들의 과중한 채무부담을 덜어 건강한 경제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행복기금 신청이 종료된 이후 서민들의 채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어떠한 사업을 하고 있는지 백덕현 캠코 경기지역본부장을 만나 들어봤다. Q 경기지역본부에 부임 한 지 어느새 6개월이 지났다. A 경기본부는 지역이 광범위하다는 특성상 경기 남부 16개 시ㆍ군ㆍ구를 담당하면서도 수도권 지역본부로써 다른 지역본부보다 지역 주민들의 공사 업무에 대한 관심과 수요도가 매우 높았다. 이런 가운데 지역본부 구성원들 모두 적극적인 노력과 지역사회의 여러 협조에 힘입어 서민금융지원, 채권회수, 압류재산 매각 및 국유재산관리 등 전 사업부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Q 지난해 캠코가 시작한 국민행복기금 신청이 종료됐다. 우려의 목소리도 컸는데, 성과는 있었는가. A 지난해 새정부 출범에 맞춰 가계부채 문제 해소를 위해 출범했던 국민행복기금은 크게 채무조정을 통한 신용회복지원과 전환대출(바꿔드림론)을 통한 이자부담 경감, 복지ㆍ고용 서비스를 연계한 종합자활지원프로그램으로 시행됐다. 국민행복기금 출범 전 예상했던 수혜대상자는 5년 간 32만6천명 이었으나 국민행복기금 종료 후 지난해말까지 채무조정 22만9천명, 바꿔 드림론 4만2천명, 소액대출 8천명 등 27만9천명을 지원했다. 이는 5년간 지원할 것으로 예상한 32만6천명의 70%를 단 8개월만에 지원받게 한 것이다. 올해는 지난해 국민행복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던 한국장학재단 채무자 등 채무조정 지원대상자 확대 및 바꿔드림론의 지속 지원으로 서민금융지원의 사각지대 해소 등 질적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국민행복기금 운영성과의 의문은 앞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믿는다. Q 행복기금 신청이 종료되면 이대로 사업이 끝나는 것인가. A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서민금융지원의 질적 개선을 통해 국민행복기금으로 지금껏 서민금융지원에서 소외되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금융취약계층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설 계획이다. 행복기금 수혜를 받지 못해 채무상환 부담에 힘들어하는 대학생 학자금 대출을 인수해 이를 지원해 금융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한다. 단순한 금융지원을 넘어서 자활의지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종합자활지원 전담조직을 구성해, 고용노동부와 함께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채무조정ㆍ서민금융 지원자뿐만 아니라 직능별 대상자에게도 맞춤형 신용교육을 실시할 방침이다. Q 행복기금이후 올해 캠코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무엇인가. A 최근 우리 경제는 글로벌경제위기 이후 더딘 회복과 성장으로 희망찬 내일을 기대하기 힘든 과도기에 놓여있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캠코는 국가경제 소방수라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여러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다. 서민금융지원 부문에서는 지난해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의 연장으로 한국장학재단 채무자등 채무조정 지원대상자 확대 및 서민금융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금융소외자들에게 적극적이고 개개인에게 맞는 서민금융프로그램을 제공함과 동시에 연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정부 위탁업무인 체납조세 정리와 국유일반재산 관리에 있어서도 국가자산 종합관리기관으로 국가재정 확대에 기여해 나가겠다. Q 경기지역본부가 개소한 지 2년 6개월이 지났다. 그간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A 그동안 경기지역본부는 여러 사업분야에서 지역민들과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특히 지역본부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지역사회의 여러 협조에 힘입어 전 사업부문에 큰 수확을 일궜는데 그 사례로 안산시 상록수역 소재 안산시민사랑방 내 서민금융상담창구 1개 개설 및 수원역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 내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 창구 1개 증설했고, 안양시청 민원센터에도 접수창구를 개설 운용하고 있다. 경기도 서비스산업과와 함께 서민금융지원제도 순회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Q 국유일반재산 관리권한이 캠코로 일원화 됐다. 경기지역본부의 국유지 관리성과와 앞으로의 관리방향을 밝혀달라. 또 지자체 이관에 따른 어려움도 있어 보이는데. A 정부는 지방자치 단체가 대부분 관리하던 국유일반재산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지자체가 보유 중이던 국유일반재산을 캠코로 단계적 이관을 추진, 지난해 6월에 일원화를 완료함에 따라 캠코는 지난 1997년 국유 업무개시 이후 국유일반재산 전담관리기관이 됐다. 기존의 단순 업무위탁 방식에서 벗어나 행정재산에서 용도폐지된 보존 부적합 재산의 적극적 매각 및 무단점유재산의 대부계약 전환 등을 통해 국가재산 수익 극대화 도모를 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공공재로서 국유재산의 공익성과 수익성의 조화를 이루어 공공자산의 가치를 증대시킴은 물론, 국가재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Q 지역 사회를 위해 다양한 활동를 벌이고 있는 걸로 안다. 대표적인 것들을 소개한다면. A 지난 한해 동안 경기지역본부는 지역내 노숙자 쉼터의 식자재 지원을 시작으로 복지관 내 노후시설 교체, 지역 장애인 지원을 위해 기부금 지원, 또한 추석과 같은 명절에 소외될 수 있는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추석 차례상 지원금 기부, 신장이식 수술비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올해는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물품지원, 경로식당 지원 및 경제적으로 힘든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점심 지원, 빵나눔행사, 김장김치 나누기 행사, 1사1촌 봉사활동 등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미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물품지원 및 빵나눔행사 등을 진행했다. Q 직원 단합을 위해서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들었다. A 요즘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소통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있으며, 캠코 역시 소통을 통해 상생을 꾀하고자 다각적인 방법을 동원해 직원 내부 화합을 이끌고자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이 자유로운 소통을 하기위해서 더욱 끈끈한 친밀감이 형성돼야 된다. 1박2일 워크숍을 캠코 아산인재개발원에서 진행해 사무실을 벗어난 직원들은 여러 활동으로 친밀감을 다지고 업무에 관해서도 소신있는 의견들을 개진하는 등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또 본부내 탁구동호회를 만들어 자체 대회도 개최하고 문화활동으로 직원 볼링대회, 명량 영화관람 등 문화생활을 함께 즐기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이끌어 가고 있다. Q 본부장으로서 앞으로 포부와 계획은. A 캠코는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우리나라 경제위기 때마다경제 소방수, 우리경제의 안전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이러한 캠코의 역할과 기본 임무와 함께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모든 역량을 집중해 경기본부를 이끌어 나가겠다. 캠코가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더 살기 좋은 내일을 만들 수 있도록 펼치는 다양한 행보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신다면 지금보다 큰 힘으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밝은 미래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담=최원재기자 사진=추상철기자

[경기인터뷰] 아주대 명예교수로 돌아오는 김영래 동덕여대 총장

한국 정치학사에 한 획을 그은 김영래 동덕여대 총장(68)이 제2의 고향인 수원으로 복귀한다. 장장 33년 6개월간 대학에서 정치학과 교수로 활동하며 한국정치학회 회장, 한국NGO학회 회장, (사)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공동대표, 국민권익위 투명신뢰사회 실현을 위한 정책협의회 의장 등 활발한 활동으로 젊음을 불태운 그가 아주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남은 열정을 쏟기로 한 것이다. 수원으로 돌아오는 한국 대학교육의 거장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활동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22일 총장직을 퇴임하고 아주대 명예교수로 돌아오는데 동덕여대 총장 시절을 회고한다면. 학내갈등 등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던 관선이사 체제의 동덕여대에 총장으로 부임해 민주성ㆍ투명성ㆍ공정성에 입각해 학교를 경영하고 학내 질서 안정을 위해 구성원과 소통을 통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 정이사 체제가 되었으며, 학내질서도 안정된 모습을 보고 떠나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 지난 4년 동안 현대식 강의시설을 갖춘 예지관과 기숙사를 완공했으며, 동덕여대의 랜드마크가 될 다목적종합관이 현재 건설 중이다. 또 제2기숙사도 곧 기공하게 될 것이며, 훌륭한 교수님도 40여분이나 초빙하여 학습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대학구조조정과 반값등록금 문제로 대학재정이 점차 열악해지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동덕여대가 위기를 잘 극복해 명문 대학으로 거듭 나기를 퇴임하는 총장으로 간절히 기원한다. -한국 대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과 이를 해결할 대안이 있다면.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이 이렇게 성장한 것은 결국 교육을 통하여 유능한 인재를 육성했기 때문으로, 특히 사학의 역할이 아주 컸다고 본다. 하지만 사립대는 주 수입원이 등록금인데, 최근 소위 반값등록금 문제로 재정상황이 아주 열악해지고 있다. 이에 학령인구까지 감소하고 있어 사립대, 특히 지방대는 아주 심각한 국면에 처하게 될 것이다. 재정이 충분하지 못하면 훌륭한 교수를 초빙할 수 없고 또한 학습환경 개선에 투자하지 못하게 되며, 그 피해는 결국 학생, 나아가서 국가가 보게 된다. 연구와 교육, 자율과 창조는 대학의 생명과 같은 것인데, 오늘의 대학이 지금과 같이 열악한 환경이 지속되고 지표경영에만 익숙하게 되어 정부의 눈치만 보면 결국 대학의 가치는 무너지고 그 피해는 전국민이 입게 된다. 정부도 교육에 대한 투자를 OECD 수준정도로 늘리고 일반인도 선진국과 같이 대학에 대한 기부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전반적인 한국 초중등 교육에 대한 소견이 있다면. 초중등교육에서 공교육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한 반 학생수는 30명 전후이고, 컴퓨터와 같은 외적인 교육환경은 향상됐으나 교육의 질, 그리고 교사들이 교육자적 사명의식은 오히려 저하되고 있다고 본다. 사교육이 완전히 없어지기는 어렵겠지만 선생님들이 교육현장에서 공교육을 되살려야 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처할 때 공교육의 정상화가 이룩될 것이다. 최근 교사들 사이에 이념적인 갈등이 과거보다 심화되고 있으며, 이런 것이 학생들의 일선 교육현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어 염려가 된다. -정치학의 거장으로서 작금의 한국 정치를 평가한다면. 지금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가 최고치에 달하고 있다. 국회가 선진화하겠다고 국회선진화법까지 제정했지만 오히려 국회는 매일 같이 정쟁만하는 후진 국회가 되어 해양안전에 관한 각종 법안이 제출되었음에도 통과시키지 못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를 미리 예방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만 일삼으면 정치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어 정치 자체가 몰락할 수 있다.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정치는 올바른 것(政者正也)과 백성에 대한 믿음(民信)이라고 했다. 정치가 바르지 못하면 국민들로부터 믿음을 잃게 된다. 정치가 정치인들 자신만을 위한 정치로부터 국민을 위한 정치로 속히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매니페스토 운동의 창시자로써 한국매니페스토운동의 실정과 과제가 있다면. 2004년 8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일본 게이오대학에 방문교수로 가 있는 동안 일본에서 적용되고 있는 매니페스토를 연구해 귀국 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를 조직, 2006년 지방선거에 적용함으로써 매니페스토가 한국에 보급됐다. 매니페스토 운동에 있어 상당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데, 지난 지방선거나 최근 재보선에서 매니페스토가 오히려 퇴조하고 있는 것 같아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정치는 국민으로부터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선거 때 헛공약이나 인기영합적인 공약이 아닌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 유권자로부터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인데, 아직도 제대로 정착이 되지 않아 아쉽다. 각종 선거가 매니페스토에 의한 정책경쟁이 정착되기를 정치권에 강력히 요망한다. 선거문화의 선진화는 한국사회가 선진화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 아주대 교수 시절 특히 보람된 일은? 수원은 저의 제2의 고향과 같다. 1991년 3월 수원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지금까지 24년동안 우만동 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우선 아주대가 가까워 학생들과 언제든지 접촉할 수 있고 아파트에 나무가 많아 어느 곳보다도 공기가 좋아 한 곳에서 오래 살고 있다. 아주대에서 1991년 3월부터 2010년 8월까지 19년 6개월 교수로서 아주대 학보사 주간, 학생처장, 사회과학대학장, 사회과학연구소장, 교수협의회 의장 등 주요 보직을 수행했다. 특히 대학과 지역사회와의 상호 발전 모색에 심혈을 기울여 수원시정책자문위원회 의장, 수원경실련 상임공동대표, 푸른경기21실천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수원발전연구센터장 등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지역과 대학이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데 노력했다. 수원발전연구센터(현재 수원시정연구원) 개원의 산파역을 담당했고, 아주대 교수들과 공동으로 아주대 사회과학연구소 내에 수원지역연구센터를 두어, <수원지역의 현황과 발전과제>라는 연구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일기를 50여년 이상 쓰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개인이든 단체든 매일매일의 생활은 하나의 귀중한 역사이고 또한 자료라고 본다. 최근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중학교 3학년인 1961년(단기 4294년) 1월1일부터 일기를 작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지금도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따라서 무려 53년간 일기를 쓰고 있는 셈이다. 특히 매년 1월1일에는 그 해의 목표를 일기장에 적고 있는데, 1961년1월1일 일기장에 義에 살고 義에 죽는다, 誠實하게 살자, 몸을 健康하게 하자라고 쓰면서 義誠體를 쓴 것을 보고 제 자신이 웃기도 했다. 물론 ROTC 장교로서의 최전방 GP소대장 시절, 미국 유학 시절, 2008년 한나라당 공천심사부위원장 시 18대 국회의원후보자 공천 일지, 아주대 교수와 동덕여대 총장 시절의 학교 생활 및 활동 내용 등등이 모두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일기는 자신의 생활과 행동을 매일매일 성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기는 자신의 생활을 정리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역사가 될 수도 있다. -수원시정연구원의 전신인 수원발전연구센터장을 지내셨는데 수원시의 가장 큰 현안과 이의 해결을 위한 대안은. 수원시는 전국의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수원도 다른 대도시와 같은 교육, 환경, 교통, 산업구조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여야 될 것이다. 특히 경제문제에 있어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이 있어서 재정자립도가 우수해 다른 도시에 비하여 큰 어려움이 없지만 과연 삼성이 언제까지 성장할 것이며, 또한 수원에만 있을 것이냐를 고민해야 될 것이다. 경제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제4의 물결(Fourth Wave)시대에 수원이 대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느냐는 수원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다. 휴먼시티인 수원이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어떤 형태로 도시기획을 하여 발전시키느냐의 과제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국무총리 자문기구인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데. 지난해 6월 발족한 시민사회발전위원회는 16개 단체의 대표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보수와 진보 단체 모두 참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정부 시 국무총리 자문기구인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이명박 정부 시 특임장관실의 시민사회발전위원회, 그리고 현 정부의 시민사회발전위원회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위원이다. 그러나 과거 위원회가 이념적인 면에서 다소 편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면 이번 위원회는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바른사회시민회의, YMCA, 흥사단과 같은 이념 스팩트럼이 다양한 단체가 모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기대된다. 현대사회는 정부의 일방적인 통제와 지시만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 다양한 영역을 대표하는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를 통해 국가를 운영해야 되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하여 자문을 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다. 또한 시민사회 발전에 관련된 정부와의 협력문제도 논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우리사회가 부정부패, 이념갈등, 빈부격차의 심화 등으로 너무 혼란스럽고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 희망을 갖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주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다워야 가 되면 우리 사회는 발전할 수 있고 또한 개개인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본다. 교수는 교수다워야 되고,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다워야 되며, 여객선 선장은 선장다워야 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지위에서 자시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한다면 최근에 일어나 세월호 참사, 윤일병 사망사건 같은 큰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박수철기자 사진=전형민 기자

[경기인터뷰] 정병국 국회의원(새ㆍ4선ㆍ여주 양평 가평)

병역문화 개선을 위한 최선의 방안은 책 읽는 병영 만들기다. 28사단 윤모 일병 구타 사망 사건으로 병영문화 개선의 시급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시절, 책 읽는 병영 만들기를 통해 병영문화 개선을 추진했던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4선, 여주양평가평)을 지난 6일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해병대 출신으로 최근 아들도 해병대를 제대했다는 정 의원은 책 읽는 병사는 자기개발의 지성과 자기성찰의 인성을 갖추게 된다고 강조했다. 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 상임대표인 그는 7월25일부터 27일까지 2박3일간 전국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성캠프를 국회에서 처음으로 개최,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Q 28사단 윤모 일병 구타 사망 사건 등 잇따른 군 부대 사고로 인해 국민들의 공분과 염려가 깊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재임 시 병영문화 개선에 힘썼는데 군 부대 사고 원인과 대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A 병영문화 개선은 단순한 장병간의 조직생활 개편과 신고제도 강화 등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창군이래 66년간 우리 군과 병영에 찌들어 있는 병폐와 악순환을 타파해야 할 과도기적 시기이다. 병영문화 개선에 대한 접근은 군 장병들의 입대 전부터 형성돼온 인성과 군대라는 특수조직 속에서의 제한된 환경, 다시 사회에 진출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 등 종합적이고 전사회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최선의 방안은 책 읽는 병영 만들기다. 이를 위해 지난 2003년 군대 내에 병영도서관을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개정안을 발의, 현재까지 전국 76곳의 병영도서관을 설치했다. 이를 통해 군부대내 병영독서운동인 리딩 1250운동(한 달에 두 권씩 전역할 때까지 50권의 책을 읽자는 의미)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책 읽는 병사는 자기개발의 지성과 자기성찰의 인성을 갖추게 되며 병영 안에서 함께 읽은 책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나누면서 함께 성장하고 배려하는 선진 병영문화를 구축하게 된다. 얼마 전 해병대를 제대한 본 의원의 아들도 이 정책의 최대 수혜자다.(웃음) Q 지난달 국회에서 최초로 청소년 인성캠프를 성황리에 개최했는데 캠프의 의미와 성과는. A 이번 인성캠프는 여야 의원 40명으로 구성된 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이 주최한 행사다. 전임대표였던 정의화 국회의장의 열린 국회 비전과 최근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반영해 전국에서 선별된 중학생 80명을 대상으로 2박3일간 국회에서 진행된 최초의 캠프였다. 인성교육에 대한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과 함께한 이번 캠프는 단순한 강의 중심의 교육을 넘어 참가학생들이 직접 청소년 인성과 관련된 법안을 발의하고 찬반 토론을 거쳐 의결하는 입법과정을 체험했다. 또한 청소년 인성 증진을 주제로 한 노랫말과 공익 UCC 홍보영상을 제작ㆍ발표하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돼 인성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캠프를 통해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국가의 근간이 되는 청소년 인성의 문제는 어른들의 문제이자,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문제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현재 여야 의원 102명이 공동발의한 인성교육진흥법안의 조속한 통과와 범사회적 인성함양 운동의 전개를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Q 최근 일본의 약탈 문화재 목록 은폐 행위 규탄 및 불법 반출 문화재 환수 촉구 결의안을 제출한 바 있다. 해외 불법반출 문화재 환수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A 현재 국외로 반출된 우리의 주요 문화재는 약 16만여점으로 이 중 일본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가 약 6만7천여점으로 가장 많다. 상당수는 일제 강점기에 불법ㆍ부당하게 반출된 것이다. 지난 7월 일본이 일제 강점기 때 한국에서 반출해간 문화재 목록 등 조사 자료를 작성하고도 한국의 반환 요구를 우려해 숨겨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일본의 약탈 문화재 목록 은폐 행위 규탄 및 불법 반출 문화재 환수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 일본의 역사적 범죄행위를 규탄하고 자료 공개와 문화재 원산국 반환이라는 유네스코 협약 이행을 촉구했다. 문화재는 그 나라의 역사이자 정체성이다. 국외유출 우리 문화재의 환수는 역사의 치욕을 씻고 민족의 얼을 지키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문화계의 노력을 넘어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재외한인사회들과의 유기적 협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던 지난 2011년 프랑스로부터 외규장각 의궤를 145년 만에 환수 받아 오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지금도 국회 외교통일위원으로서 국외유출 우리문화재 환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Q 새누리당이 730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한 뒤 SNS에 두려운 결과다. 끊임없는 혁신을 요구한다. 새정치가 새누리로 넘어왔다. 두렵다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지. A 730 재보선 결과를 두고 새누리당이 잘해서라기보다 야당이 못해서라는 평가가 주도적이다. 지금이 새누리당이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국민들은 더 이상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보수가 혁신하기 위해서는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문제점을 찾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보다 더 반성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730 재보선 결과와 새누리당에 바라는 것을 철저히 분석하고 해답을 찾아 나가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원인을 알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이제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해서 국민들의 선택을 받는 새누리당이 돼야 할 것이다. Q 새누리당 지역공약실천특위 위원장으로 경기도 8대 대선공약 내년도 예산 반영을 위해 힘써오고 있는데, 현재 진행상황은. A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에서 경기도에 총 8개 공약 12개 사업을 제시했다. 지난해 특위 활동을 통해 경기도에 공약 추진을 위한 올해 예산 438억원을 반영했으며, 내년도 예산 1천317억원의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경기도 대선 공약사업에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서비스산업 육성대책 중 관광정책 활성화 사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한류 MICE 복합단지 개발DMZ 한반도 생태평화벨트 조성경기북부 특정지역 지정경기만 해양레저관광기반 조성 사업 등이 포함돼 있어 국가적 차원의 성장 동력으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화성 유니버셜스튜디오코리아리조트(USKR) 조성 사업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한류 확대를 이끌 수 있는 대표적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8년간 토지매입비 문제로 발이 묶여 있다. 특위 활동을 통해 소유주인 한국수자원공사와 적극 협의, 부지가격 인하 및 무상임대 방안 등을 통한 사업 추진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경기도 최대현안인 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GTX 추진 역시 당 지도부 및 국회 예결위, 기획재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한 결과 올해 예산 326억원을 반영했고, 내년도 예산 1천50억원 역시 안정적으로 확보될 것으로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최경환 경제부총리로부터 이미 예비타당성 조사가 완료된 GTX A노선(일산~동탄)에 대해 경제 활성화를 위한 민간투자 촉진 차원의 조기 추진 방침을 이끌어냈다. 월곶~판교, 인덕원~수원, 여주~원주간 철도를 연결하는 수도권 교통대책 추진사업 역시 올해 예산 52억원을 반영했으며 내년도 147억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사업 추진의 탄력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대담 = 정근호 정치부장 정리 = 김재민기자 사진 = 전형민기자

[경기인터뷰] 제종길 안산시장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하 해양기술원)은 안산에 본원을 둔 국내 유일의 종합해양연구기관이다. 지난 1986년에 설립돼 내륙(대전)동해(울진)남해(거제) 등 3개 지역에 분원을 두고 해양자원 개발과 해양환경 보전을 위한 연구 및 해양과학기술정책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해양기술원이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내년 2월까지 부산으로 이전하게 돼 있어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서해안 지역을 넘어 국가 해양연구의 중심인 동시에 경기TP 등 지역 내 연구소 및 200여 개의 중소 벤처기업이 집적된 안산사이언스밸리(ASV) 내 핵심연구기관이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서해안권 연구활동에 불균형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될 뿐 아니라 혁신도시 조성 목적과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이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이전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이는 제종길 안산시장이다. 제 시장은 해양생물학 박사로 해양기술원의 전신인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 출신이다. 지역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지자체의 장이자 국내 해양 전문가인 제 시장으로부터 해양기술원 이전과 관련한 입장을 들어봤다. Q. 해양기술원의 태동이 궁금하다. A. 해양기술원은 1973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부설 해양개발연구소로 설립됐다. 이후 1988년 남극 킹조지섬에 세종기지를 건설한 데 이어 1995년 한중 해양과학공동연구센터 설치(중국 청도), 1997년과 1999년에는 각각 남해연구소(경남 거제시)와 해양시스템안전연구소 설치하고 연구 범위를 확대해 왔다. 2000년에는 한남태평양 해양연구센터, 2002년에는 북극피츠베르겐 섬니알슨에 다산기지, 2004년과 2008년에는 부설 극지연구소와 동해연구소를 각각 설치해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국내 해양과학기술 개발을 선도하는 종합 해양연구기관으로 해양자원 개발은 물론 해양환경보전, 해양오염방지 등 해양과학기술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Q. 해양기술원 본원이 안산에 들어서게 된 배경과 역할은 무엇인가. A. 해양기술원은 우리나라를 해양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1973년 10월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부설 해양개발연구소로 설립돼 1986년 현 위치인 안산 청사로 이전한 뒤 2001년 한국해양연구원에 이어 2012년 현재의 한국해양과학기술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해양기술원의 주요 연구 분야는 환경보전, 미래자원, 지구환경, 해양공간 등이 있다. 최근 대형 연구선과 해외 연구소를 확보, 세계 수준의 해양과학기술 전문 연구기관으로 도약하고 있다. 특히 조력발전 등 해양에너지 실용화 사업, 시화호 수질개선 사업, 새만금 사업 등 서해안 권역 해양 연구와 중국의 황해권 경제발전 추진과 관련한 서해 환경오염, 태안 오염사고 등과 같은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해양관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Q.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문제와 해양기술원 이전은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 있는데. A. 정부는 지역의 특성에 맞는 발전과 지역 간 연계 및 협력 증진을 통해 지역경쟁력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하고자 국가균형발전 일환으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 지방도시인 안산시에 소재한 해양기술원을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인구 370만 명의 거대도시인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다. 특히 해양기술원 이전은 국가균형발전 기본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모순된 정책으로 여타 지역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할 수 있다. Q. 해양기술원이 이전할 경우 서해의 안전에 우려되는 점은. A. 해양기술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는 단순히 서해에 대한 안전 문제만을 다룰 성질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해양과학은 기초과학뿐 아니라 응용 및 첨단과학에 이르는 전 학문분야를 다루고 있다. 산업분야에도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 다양해 발전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라 할 수 있다. 해양기술원은 이러한 해양에 대한 중요성과 발전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1997년 남해연구소와 2008년 동해연구소를 각각 설립, 남해 및 동해권역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서해권역은 현재 본원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본원이 이전할 경우 연구분야 축소 및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 환경변화에 따라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상승, 이에 따른 연안침식 등이 전 지구적 규모로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국내 서해는 한중간 크고 작은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등 동북아시아 패권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중심에 있다. 이처럼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와 국가적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가 산재해 있는 시점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해양기술원을 이전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충분히 재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Q. 최근 해양기술원 이전 문제와 관련, 정부 측에 이전 반대에 따른 청원서를 제출했는데 향후 대처 방안은. A. 시는 지난달 3일 공공기관 지방이전 반대를 위한 청원서를 국토부 및 해수부 등에 정책건의 방식으로 전달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 수립이 2003년부터 추진된 점을 감안하면 중앙정부에서 이전계획을 취소하거나 변경하기에는 다소 늦은 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현재까지 안산지역 내 공공기관 종전부동산 중 유일하게 매각이 이뤄지지 않아 이전에 어려움을 겪는 시점에서 당해 기관의 이전계획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재고찰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수도권 도시의 발전방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역차별적인 정책을 강행하려 하는 정부에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자 이전 반대 청원을 하게 됐다. 앞으로 해양기술원 이전 관련 부처인 국토부와 해수부에 정책 건의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양기술원 존치의 당위성에 대해 피력할 계획이다. Q. 앞으로 기술원 지방이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A. 해양기술원의 종전 부동산 활용과 관련해 시는 애초부터 연구시설 용도로 활용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정부는 종전 부동산의 매각이 어려워지자 지자체의 도시발전방향에는 무관심한 채 난개발이 우려되는 용도로 변경만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 이전 부진 사유를 지자체의 비협조로 돌리려 하고 있다. 그동안 시는 국토부와 수차례 회의를 가졌고, 안행부가 주최하는 제3차 지방규제개선위원회의 권고사항 등 정부의 강력한 요구도 있었다. 하지만 안산시 미래비전을 생각해 종전 부동산의 활용은 안산사이언스밸리의 기능 유지와 지역주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공공기관의 이전 반대가 관철되지 않더라도 이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Q. 해양기술원이 이전할 경우 ASV(안산사이언스밸리)의 균형문제가 우려되는데. A. ASV는 안산시가 경기TP와 한양대, 해양과학기술원, 생산기술연구원, LG이노텍 등 산학연관 핵심 주체로 구성된 혁신 클러스터다. 특히 해양기술원은 ASV 내 핵심적인 연구기관으로 서해안 권역 해양 연구 및 해양관리를 수행해 온 국책 해양연구기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서해권 해양 R&D 사업 공백 등 ASV의 클러스터 기능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결국 지역 및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Q. 경기도와 인천광역시, 그리고 서해와 접해 있는 지자체 등과 이전 문제에 따른 연대 필요성에 대한 입장은. A. 해양기술원이 부산으로 이전 시 해양과학 관련 국가사업의 동남해 편중현상을 초래할 것은 자명하다. 또 서해조력발전 등 해양에너지 자원 발굴과 시화호화옹호 수질개선사업, 새만금사업, 서해 해양조사 및 해저자원 개발 등 서해안 권역 해양 연구의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 중국의 황해권 경제개발 추진과 관련해 서해 환경오염 및 중국 황해권 원자력 발전소(가동 16기, 공사 중 7기, 향후 계획 54기)의 사고발생 등 서해안 권역의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한 긴급대처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다양한 문제점은 안산시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앞에서 거론한 문제점과 직간접적으로 연관 있는 서해안권 지자체와 연대해 다양한 대처방안을 검토할 생각이다. 안산=구재원기자

[경기인터뷰] 이우영 재단법인 글로벌에듀 이사장

우리는 오랜시간 뚝심있고 끈기있게 한 길을 걸어온 인물에게 존경을 표한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이끌어주는 선지자는 공경을 받는다. 재단법인 글로벌에듀의 이우영 이사장(57)은 누구도 관심두지 않았던 직업교육의 장을 열고 30년이 넘는 세월을 교육에 헌신한 개척자이자 교육인이다. 30년 동안 체험식 교육의 중요성을 널리 전파하며 교육계의 판도를 뒤흔들어왔지만 그는 아직도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꿈꾸는 낭만선생님이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글로벌에듀의 대표적인 교육현장인 인천영어마을에서 이우영 이사장의 30년 내공이 담긴 교육철학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Q.인천영어마을, 인천문예전문학교, 경문전문학교, 중앙전문학교, 무주국제화교육센터, 강화신문화예술단지 등 30년 동안 정말 많은 교육전문기관을 세웠다. 30년, 말만 해도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다.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학교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교육현장을 개척하고자 했던 계기가 있을 것 같다. A.1984년에 교직을 버리고 직업학교인 팔봉전산직업훈련원을 설립했다. 1980년대 당시 대학 진학율이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70%는 여러가지 이유로 진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대학에 가는 것만 가르쳤다. 대학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하는 지 미래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를 떠난 뒤를 책임질 수 있는 직업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전산직업훈련원을 열고 대학에 못간 아이들은 다 오라고 했다. 이왕 시작한 것이니 큰 생각을 해보자고 했다. 우리나라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교가도 가자! 세계로 이런 가사를 넣어서 만들 정도였다. 해외취업이라는 것은 1980년대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Q.보통은 학교에서 대학에 가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것과 달리, 대학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돌렸다는 것이 흥미롭다. A. 내가 자라온 환경이 큰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을 먹고 입으면서 공부만 했다면 몰랐을테지만 나는 그렇게 크지 못했다. 나는 특별한 재능도 든든한 재력도 없이 맨손으로 성장했다. 충남 서산 팔봉면 팔봉산 자락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흙과 나무 그리고 팔봉 산을 벗 삼아 자란 시골 아이였다. 가정 형편 때문에 11살이 되던 해 홀로 나와 생활하게 되었고 그리 아름답지 않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친구들이 도시락을 챙겨다 줄만큼 인기가 많긴 했지만, 어린마음에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물로 배를 채워 가며 독하게 공부했고 농사도 병행해야 했다. 특별히 신경쓰지 않아도 잘하는 친구들은 잘한다. 하지만 공부를 못하거나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더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대학을 가지 않는 학생들은 졸업 후에 진로를 선택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사회에서 도태되기 쉬웠다.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진로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학에 가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우연히 일본의 직업교육을 접하게 됐다. 이거라면 학생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Q.1980년대는 아직 직업교육이라는 개념이 확립되기 전이라서 출발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우여곡절을 수차례 겪었다고 들었다. A.당시 2년 과정의 직업교육은 정식 학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직업교육 소관은 노동부이고 학위를 주는 기관은 교육부였는데 교육부는 노동부 소관이라는 이유로 직업교육기관에는 학위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직업교육을 받은 것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려면 학위를 인정받는 게 중요했다.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무작정 미국으로 날아가서 미국 남유타대학과 교육교류협약을 성사시켜 미국학교 3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어렵사리 만든 기회였던 만큼 자랑스럽게 학생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고 실리콘밸리에 일자리도 마련해줬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행복해하지 않았다. 영어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학교로 간 아이들은 영어로 하는 강의를 알아듣지 못했고 취직을 한 아이들은 동료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내가 무식하게 대응했던 것이다. 그래서 영어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교육방향을 재설정했다. 이것이 영어교육과 진로직업교육을 특성화한 글로벌에듀의 출발이었다. 1980년대에는 많은 이들이 과연 그런 교육이 효과가 있겠냐, 누구를 위한 교육이냐, 심하게는 그런 것을 교육이라 할 수 있느냐는 질타와 멸시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확신히 있었다. Q.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에서까지 십수년 동안 영어를 공부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 어떤 방식으로 영어교육을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A.친척 가운데 부평 미군부대 근처에 살던 분이 계셨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분이었지만 곧잘 영어를 썼고 외국인과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초등학교만 나와도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영어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영어를 체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선 원어민을 관광비자로 데려와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영어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국인을 보고 낯설어하고 쭈뼛대던 아이들이 점차 달라졌다. 말하는 데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아이뿐이 아니었다. 국내 모 대기업은 해외지사로 파견나가는 직원을 보내왔다. 영어학원을 보내도 직원들의 영어 실력이 늘지 않던차에 영어마을에 와서 직접 교습방법을 보고는 직원들을 보낸 것이다. 오후 5시쯤 퇴근하면 버스를 타고 영어마을로 와서 공부하고 다음날 오전 7시에 출근했다. 나는 그들을 잔인하게 공부 시켰다. 영어를 안하면 밥도 안줬다. 점차 소문이 나서 다른 대기업까지 동참했다. 나중에는 일본 NHK 방송과 인터뷰도 할 정도로 인정받았다. 이제는 러시아와 일본에서도 영어를 배우러 인천영어마을을 찾는다. 지금도 수백명의 외국인 학생이 이곳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을 가지 않고 한국, 인천을 찾는다. Q.원어민 교육방식은 지금도 곳곳에서 쓰이고 있지만, 확실한 효과를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글로벌에듀만의 차별화된 교육법이 있는 건가. A.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도구를 달리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영어와 접목하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태권도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태권도를 하면서 영어를 하는 방법으로 가르치고,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노래를 부르면서 영어를 익히도록 했다.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과 영어를 적용하기도 했다. 건축가나 미술가 등 직업을 체험하면서 영어를 배우게 했다. 좋아하는 것으로 영어를 가르치니 배우는 속도도 빠르고 습득력도 높아졌다. 책을 싫어하고 영어도 싫어하는 아이에게 책으로 영어를 가르치면 둘 다 포기하기 마련이다. 인천영어마을에서는 영어도 배우고 직업체험도 하면서 자신이 정말 흥미있어 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 기회를 준다. 이것이 인천영어마을만의 경쟁력이다. Q.개개인에게 모두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했다는 것인가. 많은 인력이나 노력이 필요한 일일 듯 싶다. A.진정한 교육은 개인에게 맞춤식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많이 보면 많이 알고 자신의 길도 찾을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는 필수다. 학교에서 아무리 배워도 영어를 못하는 것은 시험을 보기 위한 영어만 배우기 때문이다. 생활에서 쓰이는 영어가 아니니 당연히 영어를 못한다. 노래방이 생기고 나서 전국민은 가수가 됐을 정도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원어민과 놀면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이것은 영어교육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더 깊이 있는 영어를 배우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학생들 개개인의 면모를 잘 살피면 금세 알 수 있다. 학교를 짓고서 적자 흑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돈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Q.글로벌에듀 30년, 영어마을 10년, 이곳을 다녀간 학생들이 엄청 많을 것 같다. A.영어마을에는 평균적으로 연간 1만5천 명의 교육생이 다녀간다. 지난해까지 모두 25만 명이 넘는 학생이 이곳을 거쳐갔다. 40~50대 전산관련 전문가들은 절반 이상 팔봉전산직업훈련원 출신이라고 봐도 된다. 팔봉에서도 당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당구장 프로그램을 짜보라고 권하는 교육방식을 택했었다. 학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고 교육방식에 잘 따라줬다. 나중에는 팔봉 출신 부모가 아이를 인천영어마을에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2대, 3대가 모두 글로벌에듀에서 교육을 받고 영어를 배우고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도 생기고 있다. Q.이우영 이사장이 꿈꾸는 학교는 어떤 곳인지 듣고 싶다. A.학생과 교사가 모두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서 마음이 설레는 그런 학교를 꿈꾼다.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어른이 해야할 일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른들은 대부분 좋은 대학을 가야 행복한 미래를 살 수 있다는 단순한 통계학적 데이터에 아이들을 묶어놓는다. 아이들의 미래는 무한하지만 우리 교육시스템은 그 무한한 가능성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교사 혼자서는 못한다. 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아이들은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지, 공부를 잘 하는 아이, 운동을 잘 하는 아이가 다른데 왜 모두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교육자로서 갈등이 많다. 학생맞춤교육이 돼야 하는 데 교실맞춤교육이 되고 있다. 교육은 행복해야 한다. 내일 행복하자고 오늘을 희생하면 안된다.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 이우영 이사장 프로필 학력사항 광운대학교 응용전자과 학사,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창원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광운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명예박사, 창원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수상경력 한국시민자원봉사회 한국시민 지도장, 대통령 표창, 교육과학기술부장관 표창, 제1회 대한민국 교육기부대회 대상, 자원봉사활동 우수지도자 대통령 표창 등 1984 ~ 경문직업전문학교 이사장 인천문예직업전문학교 이사장 글로벌에듀 이사장 1998 ~ 중앙직업전문학교 이사장 2006 ~ 인천시영어마을 이사장 인천서구영어마을 이사장 2008 인천광역시장애인배구협회 회장 2009 ~ 무주국제화교육센터 이사장 2011 ~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청소년봉사단 인천연맹 총장 2012 ~ 글로벌관광통역전문학교 이사장 2013 ~ 전국직업능력개발훈련법인 협회장 김미경기자 kmk@kyeonggi.com 사진 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경기인터뷰] 이진숙 동아오츠카(주) 커뮤니케이션실장(이사)

필드하키 국가대표, 미스코리아 그리고 동아쏘시오홀딩스그룹 여성임원 1호. 사실 이 세가지 명칭의 연관관계는 상당히 없어 보인다. 상식적으로 접근한다면 3명의 각기 다른 인물의 삶을 단순히 나열한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이 세가지의 삶을 모두 소화하면서 성공스토리를 써가고 있는 맹렬 여성이 있다. 바로 동아오츠카(주) 이진숙(45) 커뮤니케이션 실장(이사)의 이야기다. 체육교사를 꿈꾸며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훈련하던 그녀에게 닥쳐온 인대파열의 부상은 크나큰 좌절과 실의를 안겼고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게 된다. 하지만 운동선수로서 그녀의 몸속에 흐르는 독기는 더욱 자신을 강하게 단련시켰다. 업계에서의 여성에 대한 편견도 그녀의 부단한 노력 앞에서는 한낱 부질없는 시각에 불과했다. 여느 남자보다도 의리를 강조하는 이 실장에게 숨겨왔던 그녀의 삶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Q. 여성 체육인으로는 드물게 대기업 임원이 됐다. 현재의 자리까지 오른 나름의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제품에 대한 자부심과 나의 일에 대한 열정이다. 입사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일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건강을 생각한 정직한 제품과 이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정성이 때론 지친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원동력이다. Q. 색다른 이력을 지니고 있다. 필드하키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는데 하키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대학 입학이 늦어진 이유, 당시 활동 상황을 설명해달라. A. 운동을 하신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체육에 재능이 있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각 종목의 실기시험에서 줄곧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는데, 중학교 3학년 때 교내 필드하키팀 창단멤버를 발탁 중이던 담당 체육선생님의 추천이 있었다. 당시에는 왜소한 몸집 때문에 시작했던 운동이 고등학교 진학 후 차츰 프로로서의 욕심이 생겨 대학입시를 준비했지만, 뒤늦게 시작한 운동인 만큼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입시의 쓴 맛을 보고 재수를 선택하게 됐다. 이듬해에는 꼭 합격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사실 그때의 1년이 내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지는 몰랐다. 이전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의 문이 열렸던 것이다. Q. 학창시설 미인 대회에 출전해 입상했다. 미인 대회 출전은 자신의 의지였나, 아니면 흔히 얘기하는 미용실 원장님 권유에 의한 우연한 기회였나. A. 말하자면 흔히 얘기하는 미용실 원장님 권유다. 당시 필드하키를 하면서 재수를 하던 시기여서 항상 숏커트를 유지했는데, 어느날 평소처럼 자주 가던 미용실에 들려 손질을 받았다. 머리를 손질해주던 원장님이 갑자기 보름 뒤에 인천시 미인선발대회가 열리는데 참가해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왔다. 총 5명 중 마지막 멤버를 물색 중이었던 터였다. 터무니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2주간의 짧은 준비를 거쳐 설렘 반 호기심 반으로 마지막 참가자로 무대에 오르게 됐다. 하지만 승부욕을 발휘, 운동선수의 건강미를 앞세워 최후의 2인까지 살아 남아 미스 인천 선(善)에 당선돼 본선대회인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탤런트 상을 받았다. Q. 운동 선수 출신이 식음료 업계에 입사한 배경이 궁금하다. 또 간접광고(PPL)가 지금은 대세지만 1990년대 PPL이 낯선 상황에서 영화 쉬리의 아이디어를 내 흥행을 성공시켰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A. 대학 졸업 후 교사발령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학교 선배에게서 동아오츠카에 들어와 마케팅 실무를 배워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두달 가량 경험 삼아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시작한 일이다. 이후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포카리스웨트라는 브랜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마케팅 활동이 있는지, 소비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입사 후 두 달 만에 일본 오츠카제약 연수기회가 주어졌는데, 능력개발연구소에서 보여준 오츠카제약의 역사, 기업이념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공장부지를 본 순간 내가 가야 할 길이구나라고 느꼈다. 건강을 위한 제품의 진정성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이 회사라면 내가 열정을 다해 몸 바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PPL은 새로운 영역이었기 때문에 용기는 필요했지만 부담은 적었다. 좀 더 확실한 홍보를 고민했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이 곧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직접광고가 아닌 이야기 속 또는 장면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소비자들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인식시키고 싶었다. 그 첫 번째 도전이 영화 쉬리 였다. 자판기가 총격전으로 망가지는 신이어서 윗분들이 이미지 손상을 우려해 만류했지만 신념을 가지고 설득했고, 결국 흥행이 성공되면서 제품 홍보 또한 대박을 터뜨렸다. Q. 동아오츠카 입사 후 20여년간 줄곧 홍보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했다. 한우물을 판 이유라도 있나. A. 마케팅은 회사의 거울이다. 기업에 들어와 여러 가지 업무를 맡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재다능한 인재로 성장하는 것도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성장하면서 맥락을 함께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일 또한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20년이라는 시간과 정성을 들인 만큼 차곡차곡 쌓인 노하우가 나의 자산이다. Q. 식음료 업계가 상당히 보수적인 분야라고들 한다. 업계에 여성임원이 탄생한 경우도 드물다. 특히, 그룹 전체에서 첫 여성임원이 돼 자부심도 크고 그만큼 부담도 뒤따를텐데. A. 부담이 된다. 하지만 이 부담 또한 나에게 행복이다. 식음료 업계는 유독 보수적이라 내부승진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럼에도 나를 믿어주고 이끌어주는 조직에 감사하고, 한번 뿐인 인생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기업을 승리로 이끄는 힘의 25%는 실력이고, 나머지 75%는 팀워크라는 말이 있다. 나를 지켜주는 팀원들과 후배들이 있기 때문에 이 자리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Q. 가정 주부로서 가정과 회사일 두 가지를 하면서 힘든 과정이 많았을텐데, 어떤 때 가장 힘들고 가족에게 미안한 점은 무엇인가. A. 가족은 내가 직업여성으로서 활동함에 있어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마음 아픈 약점이다. 내 일, 내 꿈에 대한 열정이 넘치다 보니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그때마다 용기를 주고, 마음 편히 활동할 수 있도록 보듬어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남편이 우연한 기회에 회사 대표님과 인사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 사람에게 일을 너무 많이 줘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대표님께 남편은 저와 결혼했지만 동아오츠카로 시집 보낸 마음입니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잘 지켜봐 주세요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이보다 더한 응원은 없다고 느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또 아이가 열살 가량 되었을 무렵, 주말에 공원 나들이를 나간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엄마, 오늘은 일 안 나가? 라고 물었다. 우리 아들이랑 놀껀데 왜 그런 말을 해?라고 되물었더니 엄마는 항상 일하는 사람이니까. 난 괜찮아. 출근하세요라고 말하더라.(눈물) 아이에게 내 빈자리가 이렇게 익숙해졌구나 싶어 아픈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자기 일에 열중하는 엄마 모습이 멋지다며 응원하는 아이를 보면서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길 매일 다짐한다. Q. 동아오츠카가 국내 많은 스포츠 행사와 기관, 단체 등을 후원하고 있고 인천 아시안게임 공식 식음료 회사로도 선정됐는데. A. 오는 9월 개최되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공식음료로 활동하는 포카리스웨트는 국내 1위 브랜드를 넘어 아시아 대표 이온음료로 브랜딩할 예정이다. 선수들의 체내 밸런스와 수분보충을 위한 아낌없는 지원과 다양한 장내 이벤트를 통해 관중들과 함께 응원하고, 기업홍보관을 설치해 포카리스웨트가 갖고 있는 다양한 장점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운영할 것이다. Q. 여성 기업인으로서 꿈이나 포부가 있다면. A. 최근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고 여성리더들의 활약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유리천장이 시작하는 후배들의 열정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앞으로 우리 후배들이 꿈을 가지고 업무에 열중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교육시스템을 마련하고, 기업의 발전을 위해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마케팅 메뉴얼을 만들어 후배양성에 기여하고 싶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 2hwangpo@kyeonggi.com 정리=김규태기자 kkt@kyeonggi.com 사진=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프로필 생년월일 : 1969년 4월1일 출신교 : 경희대 체육학과, 동국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성균관대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주요경력 : 1987 미스코리아 인천(선) - 본선 참가 탤런트상 수상 1989 여자 필드하키 국가대표 1992 동아오츠카(주) 입사 ~ 현재 커뮤니케이션실장/이사 2012 경기도 여성생활체육발전위원회 위원 2013 국민생활체육전국육상연합회 부회장 2013 한국스카우트연맹 경기북부 이사 2014 마케팅위원회 부의장

[경기인터뷰] 경기명창 임정란

영화 서편제(1993)에서 눈 먼 송화가 풀어내는 소리는 보는 이의 가슴을 애달프게 한다. 특히 진정한 소리는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恨)이 사무쳐야 나오는 법이라는 유봉의 대사는 긴 여운을 남긴다. 민족의 삶과 애환이 녹아있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구성지다. 때론 흐느끼듯 애절하다가도, 금세 흥을 느끼게 하는 대목은 우리네 삶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임정란 명창(72)의 삶도 그랬다. 한(限)은 그녀를 소리꾼으로 만들었다. 전쟁과 가난의 기억을, 그녀는 소리로 승화했다. 천한 광대 집안의 딸 이라는 멍에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주저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소리는 그녀를 찾아왔다. 돌고 돌아 응어리진 한(恨)이 임 명창의 경기민요(京畿民謠) 안으로 녹아들었다. ■ 과천 갈현동 대동가극단 예인(藝人) 집안서 출생 임정란 명창은 과천 갈현동이 고향이다. 당시 임 명창의 가정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당시 그녀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해에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탓도 있었다. 명창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동가극단이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예(藝)를 가까이 해 현재까지 이르게 한 은인이다. 그녀는 당시 5촌 당숙이었던 줄타기명인 임상순 선생이 대동가극단을 만들어 만주와 일본,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공연을 다녔다며 어릴 때부터 주변에 소리가 들리고, 줄을 타거나 피리, 장고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소리를 접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 임정란 명창이 나고 자란 갈현동 인근 찬우물 지역은 근대기 대동가극단을 만들어 활동했던 임종원과 임상문 부자의 집을 비롯해 임세금, 임달용 등 광대집단 계통의 사람들이 일종의 집성촌을 구성해 살던 곳이었다. 대동가극단은 각종 반주음악은 물론 피리, 대금, 해금 등의 연주는 말할 것도 없는 그야말로 재주꾼 집안이었다. 이곳에서 잔뼈가 굵어 나간 사람들 중에 고 박초월 등 유명한 명창도 적지 않았다. ■ 평생 스승이자 은인인 목계월 선생과의 만남 임정란 명창에게 대동가극단의 애증의 대상이었다. 말이 좋아 가극단이지, 소리를 천대하던 당시 분위기에서는 광대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임 명창은 어린 시절 광대 집 딸이라는 조롱과 멸시를 받아야 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늘 광대 집안의 딸이라고 놀렸어요. 이때 기억 때문에 스물이 될 때까지 소리는 아예 입에도 담지 않았어요. 당시 예인은 문화예술인이라는 인식보다는 광대라는 인식이 강해 소리를 하려고 하는 사람 자체도 많지 않을 때였죠. 그랬던 그녀가 1961년 소리에 입문했다. 가난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양품점을 운영하던 오빠가 사업에 크게 실패해 생계가 흔들리던 상황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서울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 옆 골목에 있는 청구고전음악학원에서 소리를 배웠다. 당시 이 학원은 경기명창들의 등용문이었다. 이 때 임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산타량 예능보유자인 이창배, 정득만 선생에게 3년 간 시조, 가사를 비롯해 12잡가, 선소리타령, 휘몰이 잡가 등 경서도 소리를 두루 배우며 기반을 쌓았다. 이 때 평생의 스승이자 은인인 묵계월 선생을 만났다. 1967년 학원을 수료한 뒤에는 묵계월 선생과 함께 몇 차례 국악 향연을 펼치기도 했다. 더욱 심도 있게 경기소리를 배우게 된 것은 묵계월 선생이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로 지정된 해인 1975년 묵 선생의 첫 번째 전수 장학생이 되면서다. 그동안 배웠던 것은 다 잊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묵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임정란 명창은 다시 소리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전수 장학생이 된 이듬해에는 첫 음반을 냈고, 1983년 제9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민요부 장원을 받고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수조교가 된다. ■ 명맥 끊긴 경기민요 회복, 유지, 계승 위기는 있었다. 1985년 득음을 한 뒤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해였다. 임정란 선생의 목에 적신호가 켜졌다. 성대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치료 뒤에는 다시 소리를 할 수 없을 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도 나왔다. 며칠 쉬면 낫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 때 심각하게 소리를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묵계월 선생이 저를 끌어안고 다독여주셨죠. 목 쓰는 사람은 이런 과정을 한 번씩 거친다고 힘내서 같이 노력해보자고 하시면서. 덕분에 힘든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어요 그로부터 5년 후인 1990년 임정란 경기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보유자 후보로 지정됐다가 포기했다. 경기도에서 임정란 명창에게 경기도무형문화재가 될 것을 제안해왔기 때문이다. 갈등도 있었다. 지역 무형문화재의 여건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요무형문화재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목계월 선생도 반대했다. 그러나, 임정란 명창은 경기소리를 택했다. 경기소리의 명맥이 끊긴 상황에서 복원과 유지, 계승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1999년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1호 경기소리보유자가 됐다. 이후 2001년 한국경기소리보존회도 창단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전통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2년 간의 준비 끝에 수원지방 설화를 바탕으로 2003년 낚시대장 서얼을 무대에 올렸다. 이어 과천골 딸부잣집 경사났네(2005), 과천현감(2007), 애민의 방정식(2009) 등 다양한 경기 창극을 관객에게 선보였다. 또 2011년 경기소리전수관이 과천에 설립되면서 이듬해에는 과천을 본산으로 경기민요의 산파역할을 했던 대동가극단을 집중 조명하고자 대동가극단의 맥을 잇다라는 주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다. ■ 경기민요 저변 확대 위한 경기창극단 설립이 남은 과제 고희를 훌쩍 넘긴 임정란 명창에게 남은 과제는 후학 양성이다. 경기소리 보유자가 된 뒤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게 중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식처럼 길러낸 젊은 제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임 명창은 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경기소리로 유년의 대부분을 보냈고, 대학에서도 경기민요를 전공했지만 정작 졸업 뒤 일자리가 없어 백화점 매장과 카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 명창은 전국 대학에서 경기민요를 배우고 있는 학생 300명 중에서 일자리를 찾은 학생은 19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백수나 다름없다며 열악한 선배들의 상황에 있는 제자들도 경기민요를 포기하거나 더 이상 배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창극단의 설립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실 경기창극단 문제는 지난 2001년 (사)한국경기소리보존회가 창단되면서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던 주요 안건이었다. 하지만 늘 찬밥신세였다. 정책입안자의 무관심과 지역문화와 전통에 대한 몰이해가 주된 사유였다. 편협한 인식도 한몫 했다. 우리소리로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일깨우기보다 경제적, 행정적 논리에 입각해 효율성만 따지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임 명창은 아예 3년 전부터 사재를 털어 경기창극단 설립을 위한 학술대회와 세미나를 열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관계자, 국회의원을 초청해 설득과 홍보에 직접 나서고 있다. 지역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탓입니다. 경기도보다 인구나 예산에서 절반에도 못 미치는 광주와 전주, 남원, 진도에도 있는 창극단이 경기도에 없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성의와 관심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경기창극단의 설립은 그리 복잡하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문제는 아니다. 이미 과천에 최신식 공연시설과 연습실을 갖춘 경기소리전수관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난 2001년 임 명창이 경기소리를 집대성한 경기소리대전집도 발간돼 있어 공연 레퍼토리도 풍부하다. 결국, 남은 것은 경기창극단 설립에 관한 조례 제정과 관심이다. 임 명창은 좀 더 안정적인 조건에서 경기소리 전수자들이 경기민요에 대해 알린다면 남도민요 못지않은 전통성과 완성도를 갖추게 될 것이라며 경기창극단이 꼭 설립돼 우리 전통 소리가 모두의 사랑을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사진=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i.com

[경기인터뷰] 가수 현숙

그야말로 의리(義理)가 대세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인 의리를 논할 때 가수 현숙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현숙은 부모에 대한 의리, 노래에 대한 의리, 사람에 대한 의리에 대해선 지극 정성이다. 전라북도 김제시 월촌면에서 12남매 중 11째로 태어난 현숙은 학창시절, 동네 노래자랑에 참가해 생필품을 우승상품으로 받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1979년 가수 데뷔 후 지금까지도 현숙은 건재하다. 매니저도 없이 혼자 훌라 훌라 훌라~ 안녕하세요! 가수 현숙이에요!라며 전국을 누비며 노래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오면 현숙은 늘 어려운 이들을 위해 쉼없이 봉사하고 나눔을 실천한다. 마치 나눔로봇처럼. 올해로 11년째 이동식 목욕차량 기증한 가수 현숙을 지난 11일 서울 잠실에서 만났다. 공연 전 대기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현숙은 특유의 친화력과 긍정 에너지로 가수생활과 인생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녀는 호언장담했다. 나를 만나는 모든 이들을 3초 이내 집중시킨다고. 가수 현숙의 노래와 삶이 매력적이라 집중되었거니와 무엇보다 그녀의 사람됨이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다음은 가수 현숙과의 일문일답. Q. 한국 축구대표팀 응원차 브라질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A. 가수 김흥국, 남궁옥분과 함께 지난달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브라질한인회 주최로 열린 브라질 이민 50주년 행사 축하 무대에 초대받아 멋진 공연을 하고 왔다. 이번까지 5번 정도 브라질에 다녀왔는데 정말 정열과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임을 또다시 느끼고 왔다. 무려 30시간 넘게 걸리는 장거리였지만 노래로서 브라질 교민들과 우리 축구대표팀을 응원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특히 이번 브라질 공연에는 대학생 조카와 동행해 더 특별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 Q. 브라질에서 귀국한 다음날 바로 고흥에 11번째 이동식 목욕차량 기증하러 갔는데 정말 강철 체력이다. A. 노래도 체력, 봉사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 워낙 잘 먹고 잘 자는 스타일이다.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든다. 특히 좋은 일 할 때는 피곤할 줄 모르고 한다. 최근 한 요양병원 화재로 어르신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 내 어머니, 아버지를 잃은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기증식 때 목욕시켜 드린 어르신도 장애를 안고 홀로 사시는 70대셨는데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혼자 계신 어르신,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한 달에 한번 목욕하기도 힘들다. 시원하게 목욕하신 후 환하게 웃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뵐 때면 마음이 너무 행복하다. Q. 전국 각지에 목욕 차량을 기증한 것도 올해로 11년이 됐다. A. 벌써 10년이라니. 세월이 어찌 가는지 정말 모르겠다. 지난 2004년 고향인 전북 김제를 시작으로 울릉도, 경남 하동, 충남 청양, 강원도 정선, 경북 칠곡, 전남 장흥, 제주도, 충북 영동, 연평도에 이동식 목욕 차량을 기증하고 목욕 봉사에도 참여했다. 고흥군이 11번째다. 1.2t 트럭을 개조해 거동이 불편하거나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쉽게 목욕할 수 있도록 욕조, 보일러, 물탱크 등을 갖춘 목욕차량이 어르신들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드렸으면 하는 바람이고 제가 계획했던대로 이동목욕차량이 전국에 다 다녔으면 좋겠다. 못다한 효도를 어르신들께 대신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하는 겁니다. 받는 것보다 나눠주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다. 가수로서 30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보답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Q.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7년간 돌보고, 중풍으로 고생하던 어머니도 14년간 마지막 순간까지 수발을 들었다. 그래서 이름 앞에 늘 효녀가수란 별칭이 따라다니는데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할 것 같은데. A. 정말, 부끄럽고 쑥스럽다. 어찌 할 바를 모를 때가 많다. 내 부모님이기에 자식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를 한 것 뿐이다. 그리고 가수 현숙만 모신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했다. 사람이 사는데 있어 도리만큼 중요한 게 없는 것 같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가는 성격이다 보니 미용실도, 식당도 가는 곳에 가고 경기도 분당으로 이사 오기 전에도 서울 한 아파트에 20년 넘게 살았다. 지금 사는 아파트 윗집 노부부와는 새벽에 운동도 같이 하고 음식도 같이 해먹고 정말 가족처럼 지내요. 아파트 비번까지 알고 있다.(하하) Q. 지난해 가수 인생 34년 만에 첫 디너쇼 효(孝)사랑 나눔 디너쇼에서 마련한 수익금 1억원을 기부하고 경기도 18번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A. 제가 2011년부터 경기지회 사랑의열매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경기도와는 인연이 제법 깊다.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동기는 전국 아너소사이어티 초대 대표이자 최고액 개인기부자인 경기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최신원 회장의 가입권유로 이웃을 위한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게 됐다. 첫 디너쇼에 데뷔곡 정말로를 작곡한 김정택 SBS 오케스트라 단장이 연주를 맡고 가수 남궁옥분, 추가열, 배우 김성환, 방송인 김혜영 등이 참여해 그야말로 가수 인생에 있어 뜻깊은 자리였고 그 뜻을 모아 기부를 하게 되어 더 뜻깊었다. 첫 디너쇼에 비록 돌아가신 부모님이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어려운 이웃들을 도우면서 못다 한 효를 이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Q. 고향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소아암 백혈병 어린이를 위한 수술비, 사랑의 열매 기부 등 다양한 선행을 펼쳤다. 2010년 고향 김제에는 효열비가 세워졌고 어버이날 국민포장, 저축의날 대통령상, 삼성효행 특별상 등 상도 숱하게 받았다. 혹시 기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효녀 강박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A. 그런 건 없다. 그냥 생활이고 도리라 생각한다. 가수 되겠다고 고등학교 졸업 한 달 앞두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어머니에게 받은 1만원과 김치 한 통이 전부였다. 있는 건 꿈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1980년 가슴이 찡할까요 정말로 눈물이 핑돌까요 정말로란 가사로 시작하는 정말로(작사:김상범/작곡:김정택)로 화려한 가수 신고식을 치렀다. 가수가 된 후에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에 남의 어려움도 뒤돌아 볼 수 있게 됐다. 기부는 돈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눔의 의미와 나눔의 맛을 아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나눔으로써 제 삶이 풍족해짐을 느낀다. Q. 요즘 한창 신곡 당신 만나길 잘했어로 바쁜데 정말 윗집 만나길 잘했네요. A. (하하) 맞다. 오늘 강 기자와 내가 만나길 잘 한 것처럼 말이야. 우리 아파트에서 가수 현숙이네 집 모르는 사람이 없다. 종종 윗집 부부가 어디 가시면 허전하고 외롭기도 하다. 그나마 요즘 정신없이 공연 다니느라 바빠서 외로울 틈이 없다. 이번주에도 온양, 대구, 순천 등 전국을 돌고 있다. Q. 신곡 당신 만나길 잘했어의 가삿말을 직접 썼고 게다가 기존 전통가요를 탈피한 바차타 리듬의 곡이라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A. 지방 공연을 다닐 때 비행기나 KTX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다. 그때마다 느낌과 생각을 메모해둔다. 사랑해 고마워 두마디면 내 삶은 천국같죠. 인생의 절반을 채워주는 당신 만나길 잘했어. 이 가사에 내 인생에 박수, 요즘여자 요즘남자, 물방울 넥타이, 오빠는 잘 있단다 등을 만든 조만호씨가 곡을 썼고, 남미 도미니카공화국의 서민음악 바차타에서 영감을 얻어 유러댄스적인 리듬을 한국적 정서에 맞게 조율했다. 대중가요는 어렵지 않고 흥겨워야 한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다 저의 경우 항상 밝고 즐겁고 희망적인 노래를 고수한다. 노래가 신나야 가수도 신나고, 가수가 신나야 삶도 신나진다. 왜 가수는 노래 따라간다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Q. 긍정적이고 밝은 노래가 가수 현숙의 평소 인생 스타일과 닮아 있는 것 같다. A. 인생 신조가 신나게 살자다. 노래도 신나게 부르고, 밥도 신나게 먹고, 사랑도 신나게 하자. 신나게 사는 게 생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Q. 가수, 공인이기 전에, 어떻게 현숙은 로봇도 아니고 늘 행복하고 밝은 지 의문이다. A. 79년 데뷔 후 오랫 동안 가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 주신 남다른 DNA가 있다. 바로 긍정적인 마인드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도 하고,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모든 상황에 할 수 있다, 도전해보자는 자세로 임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투정부리는 사람이다. 세상만사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안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A.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흥겨운 노래로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하고, 나눔으로써 어려운 이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그런 가수 현숙이고 싶다. 나는 효녀가수도 기부천사도 아니다. 그냥 노래하는 현숙이다. 건강한 모습으로 훌라 훌라 훌라~ 안녕하세요! 가수 현숙이에요!라고 반갑게 인사하며 전국을 누비고 싶다. 지금처럼. 그리고 신곡 당신 만나길 잘했어처럼 이웃, 가족, 동료, 친구간에 서로서로 빛나는 당신이 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열심히 노래할 것이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경기인터뷰] 대한민국 여자펜싱 간판 성남시청 남현희

한국 여자펜싱의 간판인남현희(33ㆍ성남시청)가 수원에서 열리고 있는 2014 아시아 펜싱선수권대회 여자 플뢰레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우승하며 2관왕에 등극, 건재를 과시했다. 2011년 5살 연하의 사이클 선수인 공효석(28ㆍ금산군청) 선수와 결혼한 그녀는 지난해 5월 딸 하이를 출산 한 뒤 2개월 만에 현역에 복귀, 1개월여 뒤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로 한국 여자 펜싱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개인전에서 연속 메달을 획득했던 남현희는 세간의 우려 속에서도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최고 검객의 자리에 복귀했다. 그녀에게 1년여의 공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는 단지 157㎝의 땅콩 검객에서 엄마 검객으로 바뀐 것 뿐이었다. 지난 4일 오후 수원실내체육관에서 그녀를 만나 출산 후 복귀와 그동안의 선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출산 후 첫 국제대회 금메달을 땄다. 그동안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는데 이번 대회 금메달의 의미가 남다르지 않나. A. (출산 후) 복귀가 이른감도 있었고, 앞서 여성 선수들이 출산 후 예전 기량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주변의 우려가 있었지만, 그동안 많은 대회에 출전하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얻었기에 자신감은 있었다. 출산 직후 부상은 평생 간다는 말이 있어서 그동안 대회에 다소 소극적으로 임해 성적이 부진했었다. 더군다나 세계랭킹을 유지하다가 임신기간 동안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포인트를 모두 잃은데다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대회에 출전해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등 연달아 열리는 큰 대회를 앞두면서 욕심을 냈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Q. 국내 대부분 여자 선수들은 결혼 후 출산하면 은퇴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 2개월 만에 현역으로 복귀했는데 이유는. A. 솔직히 1년 정도 쉬면서 완전히 몸을 만든 다음에 시작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직업을 갖고 있다보니 계속 쉴 수가 없었다. 임신기간에도 성남시청에서 계속 급여를 받아 미안함도 있었다. 코치님과 대화를 많이 했는데 빨리 감을 찾아 다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솔직히 그때까지 자신은 없었다. 9월 대표선발전에서 최선만 다하자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추천이 아닌 선발전(2위)으로 발탁되면서 아직 감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대표팀에 들어가서 체력적인 부분을 보완한다면 다시 예전의 경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른 복귀로 남편과 친정엄마가 걱정을 많이 했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해온게 아깝다며 어차피 할 거면 잘 준비하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남편도 아내로서의 모습도 좋지만, 펜싱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격려해줬다. Q. 1년여의 공백과 출산으로 인한 근육 이완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A. 국가대표 선발전에 기간을 두고 준비한 게 아니다. 그해 대표 선발전은 출산 후 3개월 뒤에 바로 열렸다. 더군다나 원래는 9월말 예정이었던 선발전이 초로 앞당겨지면서 훈련을 할 수 있는 기간이 딱 30일이었다. 첫날 런닝머신을 뛰는데 10분도 못 걷겠더라. 걱정을 많이 했다. 선생님도 2주 정도는 스트레칭이나 걷는 것 위주로 스케줄을 짜주셨는데 선발전을 대비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나머지 2주는 실전훈련을 진행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다른 팀과의 전지훈련으로 긴장감이 한꺼번에 몰려와 몸이 많이 아팠다. 타이트하게 경기를 준비했었던 것 같다. Q. 70여일 뒤면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그동안 아시안게임서 개인전 금메달 3개와 단체전 4연패를 이뤘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2관왕에 오를 자신이 있나. A. 대표로 선발되고 나서 아시안게임을 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출산하고 얼마 안돼서 선발이 됐다는 것에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첫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도하와 광저우 대회까지 단체전 4연패를 달성했고, 개인전에서는 3개의 금메달을 땄는데 아시아 펜싱선수 남녀 통틀어 최초로 알고 있다. 또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다.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6연패를 달성했다. 개인적으로는 출산으로 뛰지 못한 지난해를 빼면 아시아선수권 5연패다.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을 합치면 8번째 개인전 우승이라 인천 아시안게임에 욕심을 내고 있다. Q. 157㎝의 단신 핸디캡을 극복하고 한국펜싱의 간판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외국선수들보다 20㎝ 가까이 신장 차이가 나는데 큰 선수들과 상대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 단신의 핸디캡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A. 신장의 차이는 결국 팔과 다리 인치의 핸디캡이다.키 큰 선수와 경기를 할 때는 몸이 들어가는 것보다 상대가 팔을 뻗는 게 더 빠르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더 많은 집중력과 체력을 필요로 해 어려움이 많다. 그렇지만, 신장이 큰 선수들은 대부분 초반에 많이 움직이면서 끌고 다니면 후반에 접어들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체력적으로도 둔해지는 단점이 있다. 이점을 공략해 상대를 교란시키며 체력을 소진시키고, 공격하도록 유인한 뒤 포인트를 따내는 방법으로 핸디캡을 극복하고 있다. Q. 국내 여자펜싱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에서 2회 연속 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올림픽 금메달은 따내지 못했는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못 이룬 금메달에 다시 도전할 생각인가. A. 2012 런던 올림픽을 마치면서 다가올 브라질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했었다. 단순히 메달을 또 따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다. 베이징 올림픽 때는 메달이 간절했고, 런던 때는 금메달이 간절했었다. 베이징 때 은메달을 한번 따봤기 때문에 런던 때는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욕심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훈련양도 많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컨트롤하면서 연습하지를 못했다. 다음번 리우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고 싶다. Q. 앞선 두 차례의 올림픽 금메달 길목에서 이탈리아 베잘리 선수에게 모두 발목을 잡혔다. 그녀와 다시 붙는다면 극복할 방안은 있나. A. 제가 뭔가 기술을 시도하려는 스타일이라면 베잘리는 움직이기를 기다렸다가 빈틈을 공략해 쉽게 득점을 따내는 스타일이다. 경험이 많은 선수기 때문에 단순 공격보다는 어렵게 공격하려고 했던게 오히려 패배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에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조바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지금은 어차피 그렇게 해서 졌었는데 마지막 1초가 남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만난다면 여유를 갖고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생각이다. Q. 2011년 5살 연하의 사이클 선수와 결혼을 했는데 두 사람이 만난 과정과 종목이 다른 남편이 어떤 외조를 해주고 있나. A. 과거 서울시청에 몸담고 있을 때 같은 소속 사이클선수였던 남편을 워크숍에서 처음 만났는데 처음엔 5살이라는 나이 차 때문인지 동생 같았다. 후배들이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라 남편도 그런 후배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차츰 이벤트라든지 소소한 애정공세를 펼쳤다. 평소 운동에만 전념하다 보니 그런 이벤트를 받아본 적이 없다. 일반인보다 운동선수들이 감성적으로 약한 면이 많이 있는데 남편의 적극적인 면에 끌렸던 것 같다. 나이는 어리지만, 남편이 더 어른스럽고 세심하다. 펜싱을 하면서 건강보조식품이나 운동 중에 섭취해야 하는 영양소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는데 몸 관리에 철두철미한 남편이 건강식과 영양식을 챙겨주는 등 배려심이 많다. Q. 출산 후 국가대표에 복귀하면서 갓 돌지난 딸 하이가 많이 보고 싶을 텐데, 자주 만나고 있나. A. 친정어머니가 돌봐주신다. 훈련계획이 빡빡하고 국제대회 일정도 많아 2~3주만에 얼굴을 볼 때가 많다. 어머니와 동생이 영상통화와 수시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서 전송해준다. 딸 소식이 궁금하고 걱정되지 않게 가족들이 도와주고 있다. Q. 딸아이 이름이 하이로 이국적인데 작명을 하이로 하게 된 배경이 있나. A. 원래 하이는 태명이다. 런던올림픽 당시 나이가 32살이었다. 노산에 가깝다고 판단해서 아이를 빨리 갖고 싶었다. 그러던 중 바로 아이가 생겨서 반갑다는 의미로 태명을 하이로 정했다. 임신 기간에 팬들도 많이 생겼는데 하이 선물을 많이 보내주셨다. 처음에는 이름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이라는 이름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명소에 가서 이름이 좋다는 말을 듣고 하이를 이름으로 정하게 됐다. Q. 하이가 운동에 소질이 있다면 선수로 키울 용의가 있나. 있다면 종목은. A. 걷는 것도 열달만에 걸었다. 여러모로 빠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주변에서도 손이 왜 이렇게 빠르냐고 농담 섞어 말한다.(웃음) 남편도 같은 생각이지만, 국가대표 선수는 원하지 않는다. 그저 취미로 펜싱을 배워놓으면 나중에 미국에 대학 진학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펜싱을 접하게는 해주고 싶다. Q. 2016년 올림픽에서 목표를 이룬 뒤에도 선수생활을 계속할 생각인가. 은퇴후 어떤 생활을 하고 싶나. A. 원래 현모양처가 꿈이었는데 펜싱을 하면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이뤄내고자 노력했다. 그 꿈도 결혼 전까지만 열심히 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결혼후에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평범한 여성들처럼 요리도 하고 육아에 전념하고 싶었다.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리우까지는 선수로서 매진하고, 은퇴 후에는 주부로서의 삶을 살겠다. 처음 출산해서는 더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가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어 4명까지 낳고 싶지만, 나이 때문에 최소 2명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 정리=박준상기자 parkjs@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프로필 생년월일: 1981년 9월 29일 신체조건: 157㎝, 44㎏ 출신교: 성남여중ㆍ고, 한국체대, 성신여대 대학원 석사 취미: 쇼핑, 식도락 여행 주요경력: ㆍ2001 아시아선수권 개인전 금 ㆍ2002 부산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 ㆍ2006 도하 아시안게임 개인,단체 금 ㆍ2008 베이징 올림픽 개인전 은 ㆍ2009 아시아선수권 개인,단체 금 ㆍ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단체 금 ㆍ2012 런던 올림픽 개인전 동 ㆍ2014 아시아선수권 개인,단체 금

[경기인터뷰] 김일호 남경필 경기지사 당선인 혁신위 공동위원장ㆍ㈜오콘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당선인의 인수위원회 격인 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한 김일호 ㈜오콘 대표는 혁신위 활동에 대해 시도 자체에 의미가 있었고 거기에 있었다는 게 참 좋았다며 소감을 밝혔다. 특히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뽀로로를 개발, 뽀로로 대통령으로 유명한 김 대표는 크리에이터로서 제가 가진 시각을 혁신과 연결하고 싶었다면서 그동안 정치ㆍ행정을 하신 분들이 인수위를 주도했는데 그것부터 파격적으로 한번 탈피해보자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다소 짧은 기간이었지만 혁신 가이드라인의 방향을 잡는 데 집중했고 남 당선인이 앞으로 임기 끝까지 혁신을 이어나갈 것으로 믿는다며 혁신위가 경기도의 혁신을 이끌어 대한민국으로 퍼져가는 출발점, 기화점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본보는 지난 26일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내 오콘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나 혁신위 활동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남경필 경기지사 당선인의 혁신위원장으로 활동한 소감은. 이런 분야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한 마디로 어색하다. 물론 업계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가 주도하는 창조산업 영역의 위원회에서 일해본 적은 있지만 이건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그래서 굉장히 의외였고 처음에는 수락해야 하나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남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판교를 한번 방문했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특히 아이들 안전 문제 등에 대해 대화하면서 치중되지 않은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선거가 끝난 뒤 남 당선인이 혁신위원장을 전격적으로 제안했는데 처음에는 제 전문분야가 아닌 만큼 저보다 잘하는 분이 있을 것이라며 고사했다. 그러나 남 당선인이 혁신이라는 취지를 말했고 거기에 공감해서 수락하게 됐다. 특히 공동위원장 분들이 정무적인 부분, 도정 조직에 관한 부분 등은 저보다 훨씬 잘 알기 때문에 저는 말 그대로 혁신적인 신선한 아이디어와 방향, 철학적 접근방법 쪽에 역점을 두고 활동을 했다. -혁신위가 기존 인수위를 탈피하고 업무보고도 토론회 형식으로 바꿨는데. 굉장히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혁신은 바꾸는 것이 아니다. 혁신은 더 좋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현재 경기도정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이 뭘 하는지 들어야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결국 민선 6기가 시작되면 그분들이 실무를 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조언자 역할을 했다. 당연히 업무보고도 토론회 형식이 효율적이라고 봤다. 토론회를 통해 때로는 생각의 차이를 확인하기도 했으며 상당히 많은 가능성 역시 보게 됐다. -우리나라에 토론 문화가 아직은 낯설어 공무원들과 충돌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건 공무원뿐만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대화하면 충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걸 거치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 어떻게 하면 현안을 더 좋게 할까라는 같은 목적이 있다면 좋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은 공약에 근거해 혁신 도정의 방향을 다듬고 마무리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 도정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좋은 시도들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신선한 아이디어가 공무원들을 자극했을 것이고 우리도 실무를 담당하는 분들로부터 현실적인 얘기를 듣게 됐다. 아주 좋은 의미의 토론회가 된 것 같다. -남 당선인이 혁신위 활동에 있어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뒀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남 당선인이 취임 후 발표할 것이다. 혁신위에서는 일자리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는 점에 초점을 뒀다. 우선 새로운 일자리가 있는데 이는 새로운 사업이 필요하다. 신수종 사업, 신동력 사업을 경기도의 특성에 맞출 수 있도록 어떤 분야에 집중해서 발굴하고 육성할 건가라는 측면이 있다. 또 원래 있던 일자리가 있다. 특정 지역의 제 모습을 찾아주는 데 더해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농촌, 해안, 첨단 등 31개 시ㆍ군으로 이뤄진 경기도에 제 모습을 찾아주고 거기에 힘 있는 신개념을 더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제 모습이 있는데 굉장히 선진적인 제 모습이 구현돼야 그 지역 사람들을 윤택하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과거 아이를 데리고 양평에 있는 외가집 체험 마을이라는 곳을 가봤다. 젊은 사람들은 없고 어르신만 있는 마을인데 농사만 지어서 얼마나 소득이 있겠나. 그런데 농사를 농사로만 보지 말고 아이들 교육의 장으로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들이 거기서 고구마도 캐먹고 벼도 털어보는 등 체험활동을 하면서 그 마을의 소득수준이 엄청 올라갔다. 쉽게 말해 완전히 다른 마을이 된 거다. 첨단을 떠나 제 모습 찾기의 본질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청년 창업 지원을 위해서는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한다고 보는지.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창업 센터를 짓는 게 아니고 두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먼저 청년을 이해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어떤 성향이고 어떤 생각을 가진 건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시대가 변했는데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 정책을 만들면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이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 정말 다른 시대가 됐다. 리더들이 새로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정확히 규정하고 예측해야 한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많은데 성공사례가 나오면 청년 창업의 성공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권장해야 한다. 아주 작은 창업부터 중소ㆍ중견기업이 고루 존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일자리가 회전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자꾸 청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창업해서 투자했다가 실패하면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이다. 나스닥을 상장한 이스라엘의 경우 가장 큰 특징이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청년들의 실패를 너무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청년과 새 시대를 이해하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열어 정책을 육성하면 좋겠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처럼 실패도 경험이니 이를 인정하면 다가올 사회에서 대한민국을 받칠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판교테크노밸리의 발전 가능성은. 판교테크노밸리는 대단한 성공사례다. 단기간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기업이 올 수 있었을까. 더욱이 여기서 수십조원이 창출된다. 공간과 콘텐츠가 절묘하게 잘 조합됐다. BT 등 약간 다른 성격을 지닌 또 다른 판교테크노밸리가 경기도에 2~3곳 더 만들어진다면 한국 산업 경제의 큰 견인차가 될 것이다. 남 당선인이 판교테크노밸리에 주목하고 있고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굉장히 개발돼야 하는 사례다. 단지 개발하면서 당시에 생겨난 논리와 규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현실적으로 회사들의 입장에 맞게 변화해야 유연한 운영과 더 큰 발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조그만 정 하나가 바위산을 깬다. 작고 깊이 있고 강한 게 굉장히 허술한 명분으로 둘러싸인 것들을 이기는 시대가 됐다. 이 세상에 작은 일은 하나도 없다. 라면집을 해도 전 세계를 평정하면 그게 최고의 기업이다. 작은 분야의 1등이 큰 분야의 2등보다 훨씬 강하다. 크기나 분야에 연연하지 말고 본질적으로 깊게 들어가는 게 청년답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혁신위에서도 지역발전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서 같은 논의를 했다. 큰 계획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장에서의 작은 변화가 큰 혁신을 주도하게 됨을 잊지 말자고 얘기했다. 젊은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작은 게 중요하다. 작은 일들이 큰 2~3등을 깨버리는 것이다. 작음의 미학에 집중해 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PROFILE -1968년 6월 17일 출생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공업디자인전공 졸업 -㈜오콘 설립 및 대표이사 -전경련 창조경제 특별위원회 위원 -경기도 콘텐츠기업협의회 의장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카이스트 등 출강 -前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영상학부 겸임교수 -前 콘텐츠코리아위원회 글로벌 위원장 -前 LG전자 디자인 연구소 재직 대담= 정근호 정치부장 정리= 송우일기자 swi0906@kyeonggi.com 사진= 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경기인터뷰]박희관 인천경기지방병무청장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한 남성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하나 있다. 바로 병역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체검사장에 들어가 현역 판정을 받고 나오면 진짜 군대에 가는구나하는 생각과 나는 건강하구나라는 기쁨이 교차하는 신기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병역의무자의 신체검사는 물론, 사회복무요원 관리 등 다양한 병역 행정을 수행하는 곳이 바로 병무청이다. 특히 인천경기지방병무청은 전국 지방청 중 최대 규모의 병역자원을 관리하고 있는 만큼 지역 내에 병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토 조성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박희관 인천경기지방병무청장(59)을 지난 19일 만났다. 박 청장은 안전하고 투명한 병역행정을 통해 병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풍토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Q. 인천경기지방병무청장으로 취임 100일을 맞이한 소감은. A. 30여년 전 처음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바로 인천경기지방병무청이다.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경인청에서 마지막 공직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더없는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병무청은 정예 병역자원의 적기 충원으로 국가 안보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기관으로써 국가 존립의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경인청이 관리하는 병역자원이 전국 병역자원의 23%에 이를 정도로 최대 규모를 자랑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Q. 올해부터 바뀐 병무행정을 소개해 달라. A. 먼저 입영일자 본인선택 방법이 기존의 선착순에서 추첨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존 선착순 방식에서는 컴퓨터 환경이 좋지 않을 경우 손해를 보았다. 이런 점을 보완하고자 입영 선호시기인 2~5월에는 입영 희망자의 접수를 받아 전산으로 자동 추첨하는 방식으로 개선됐다. 6~12월 희망자는 종전과 같이 선착순 접수에 의한 방식을 유지한다. 또 고용노동부와 연계한 맞춤 특기병 제도가 시행된다. 현재 고졸 이하 학력자들의 실업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맞춤 특기병 제도는 이러한 고졸 이하 병역의무자들이 특정 기술 훈련을 받고 해당 분야의 특기병으로 군 복무를 한 이후 취업까지 돕는 정책이다. 아직 홍보가 부족해 지원율이 높지 않은 편이나, 경력단절을 해소하고 안정적으로 청년 취업을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Q. 병역이 자랑스러운 사회분위기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A. 병역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병역이행자에 대한 다양한 우대사업 발굴뿐만 아니라 선제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병역이행을 당연한 가치로 생각하고, 더 나아가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인청은 대국민 홍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병역명문가 선양사업, 어린이 그림 글짓기 대회, 감사편지 보내기 등을 매년 추진하고 있다. Q. 병역명문가 선정도 이와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은데. A. 병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하고, 병역을 이행한 사람이 존경받고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지난 2004년부터 병역명문가 선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로 11년째를 맞이하는 병역명문가 선정은 3대에 걸쳐 가족 모두가 현역을 성실히 마친 가문을 찾아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행사이다. 올해 병역명문가로 선정되는 497가문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병역명문가는 2천405가문에 이르며, 그 중 경인지역 병역명문가는 321가문이다. Q. 선정된 병역명문가들에게 혜택이 있나. A. 그동안 경인청은 병역명문가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실질적인 혜택을 부여하고자 각종 국공립시설 및 영화관 관람료 할인, 병의원 의료시설 진료비 할인 등의 협약을 체결하였다. 특히 지난해 오산대학교, 용인대학교와 병역명문가 자녀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는 협약을 체결했으며, 안양시도 병역명문가 예우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여러 기관에서 병역명문가 선양사업에 자발적으로 동참해 주고 있다. 하반기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병역명문가 예우에 관한 조례가 제정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의회와 협조할 예정이다. Q. 최근 사회복무요원의 복무 부실 문제가 연일 이슈화 되고 있다. 이에 대한 복안이 있다면. A. 사회복무요원은 사회복지시설, 지방자치단체, 국가기관 등에서 국민을 위한 복지서비스와 행정지원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경인지역은 1만 2천여 명의 사회복무요원이 복무하고 있다. 대부분 사회복무요원들이 성실히 복무하고 있으나, 일부 사회복무요원의 불성실한 행위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병무청에서는 복무부실 우려자를 별도로 선정하여 복무지도관이 1:1 밀착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일이다. 사회복무요원들도 현역과 마찬가지로 사회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요원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자긍심을 갖도록 하고 사회의 인식을 개선해 나가는 데 병무청이 앞장서 나가겠다. Q.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 안전 또한 화두다. 병역이행과정에서의 안전확보를 위한 추진 사항은. A. 병무청과 관련한 안전 문제는 크게 예비군 병력 동원 수송 안전, 징병 검사, 사회복무요원 교육 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인청에서는 1년에 버스 1천600대를 운영해 5만5천여명의 병력 수송을 하고 있다. 이에 예비군의 안전 수송을 위해 출발지에서 관내 교통경찰과 협조하여 기사의 음주측정과 차량의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안전운행 동영상을 자체 제작하여 차량 출발 전에 상영함으로써 예비군들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 두 번째로 매년 수만명이 징병 검사를 받으면서 혈액검사를 위한 채혈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채혈 쇼크에 대비하여 충격완화 매트리스를 바닥에 설치하고, 응급처치를 위한 의료용 산소 및 수동식 인공호흡기 등 안전시설을 보강하였다. 또 채혈 부작용자 발생 시 대응요령을 수록한 매뉴얼을 작성하여 비치하였다. 마지막으로 사회복무요원은 복무 중에 병무청에서 운영하는 교육센터에서 소양교육을 받으면서 한 차례씩 현장학습에 나선다. 이들의 안전 수송을 위해 수송업체에 우수 차량 우선 배치, 운전자 과속 운전 금지, 안전거리 유지 등 협조를 요청했다. 또한, 교육센터 내 승강기 및 소방시설 안전 점검 등을 통해 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Q. 남은 임기 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A. 우선 병무청의 기본업무에 충실함은 물론 대체복무관리 확립에 철저함을 기하고 현장중심, 국민중심, 소통중심의 병무행정을 실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아울러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발맞추어 병무청의 비전을 재설정한 병무 비전 1318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전 직원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병무청은 앞으로도 병무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이 불편한 점을 개선하여 국민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를 교훈 삼아 병역의무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국민이 행복한 신 병역문화를 창조하는데 전 직원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관주기자 leekj5@kyeonggi.com 사진= 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정치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