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독자가 누구냐고? …바로 나 자신이지”
지난 2000년 5월, 이문열 작가의 책 판매량이 2천만권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가운데 삼국지, 수호지 평역을 제외한 순수 창작물의 판매량이 1천만권 이상이라니, 한국인 4명에 한 명은 그의 소설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각종 문학상 수상작품집 등을 따지면 그의 글을 집에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인은 없다고 해도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한국문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문학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가장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 최고 작가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요즘 활동이 뜸한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지난 2월 종편 방송 출연 이후 언론 인터뷰를 일절 하지 않고 있었다. 문학적 코드에 맞지 않는 자리는 최대한 거절하고 있는데 정치쪽에 무슨 일만 생기면 미친듯이 섭외요청이 온다. 그러면서 작가가 왜 정치판에 가서 발언하냐고 뭐라 한다. 제일 맥 빠지게 하는 게 “왜 책 안 쓰십니까?”라는 질문이다. 안 보고 왜 안쓰냐고 하니 솔직히 작가로서 힘들다.
-최근엔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정치적 논란을 빚어왔다. 작가로서 심리적 부담감은 없는지.
지난 2000년부터 2011년까지 ‘호모엑세쿠탄스’ 3권, ‘아가’, ‘초한지’ 10권, ‘불멸’ 2권, ‘리투아니아 여인’ 등 발표한 책이 17권이다. 작품 활동을 쉰 적도 없고 쉬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책만 나오면 문학적 내용과 상관없이 정치적인 해석이 붙었다. 꾸준히 작품을 냈지만서도 글 안 쓰고 정치적인 말만 한다 이런 식으로 규정화돼 섭섭했다.
-한국 언론에 굉장히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지난 10년 동안 언론에 의해 작가 이문열은 보수라는 타이틀로 규정됐다. 1~2년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0년째다.(작가는 심각한 표정으로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언론이 아무런 반성도, 생각도 없이 이문열에 대해선 “왜 우파쪽을 돕느냐, 작가는 다 진보 좌파여야 하는거 아니냐”며 막 뭐라 하는데 솔직히 작가로서 불편하다. 어이없다. 무지가 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면 사람을 해친다. 언론이 사회의 일부 입장이나 세력의 규정짓기에 그대로 이용되고 있고 또 언론은 아무 생각없이 게재하는데 이점이 작가를 굉장히 해치는 일이다.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정치적으로만 해석하고 몰고 갔다. 60년 넘게 살면서 정치적인 직함이라면 지난 17대 대선을 앞둔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에 75일 동안 참여한 일밖에 없다. 그게 전부다. 이후 10년 넘게 작가 이문열 보다 ‘보수논객’으로 치부됐다.
-그렇다면 지난해에 김유신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을 연재하다 중단한 것도 보수논객으로서의 정치적 해석과 거리를 두려는 의도적인 선택이었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9월 신라 장수 김유신의 3국 통일을 소재로 한 소설 ‘대왕, 떠나시다’를 연재하다 중단했다. 우선 순위를 결정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우선 순위기 무엇인지 결정한 다음에 쓰겠다고 마음 먹었다. 7개월째 책만 보고 있다.(그의 손에는 ‘프랑스대혁명’이 들려 있었다. 인터뷰 중간 중간 책 내용을 꺼냈다) 나이를 먹는지 지치고 갑자기 자신감도 없어지고 그렇다.(천하의 이문열에게 이렇게 연약한 모습이 있다니 놀랍다)
-보수는 맞죠?
보수는 맞다. 하지만 처음부터 작정하고 보수가 된 것은 아니다. 가정환경과 정치 상황 등의 영향으로 자연스럽 보수가 됐다. 보수로서 목소리를 낸 건 90년대 중반 이후고 진보좌파에 대해서 불쾌한 심경을 내보인 것은 80년도 후반이다.
-정치 이야기는 그만 할게요. 문학병(病)은 언제 발병했습니까.
6·25전쟁 때 월북한 인텔리 아버지, 넉넉하지 않은 살림의 홀어머니와 5남매, 뿌리 뽑힌 듯 여기저기 옮아 다니는 삶.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정규교육 과정 16년 중 제대로 수업을 채운 기간은 8년 반에 지나지 않았다. 삶이 자연스럽게 문학으로 이어졌다. 문학을 해야겠다, 작가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순탄치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다. 중고등학교 중퇴 후 검정고시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해 다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등의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서울대 사범대까지 모두 중도에 포기했으며, 신춘문예, 사법고시 등에서 연이어 실패를 맛 보았다.
-1973년 고시도 안 되고, 군대도 안 가고, 학교는 중퇴하고, 직업은 없는 상태에서 결혼을 했는데 비법은 무엇이었나. 요즘 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삼포가 아니라 사포, 오포였죠.(하하) 그 당시에는 다들 힘들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갖추고 시작하는 사람이 적었다. 월셋방 하나에 한달치 양식과 숟가락 두 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은 아버지 세대보다 덜 했지만 기회가 현저하게 줄어든것 같다. 일자리 문제 등에 대해서는 기성세대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부근에는 가 있다. 누가 받느냐의 문제이고 한국인이 받을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유력한 이가 없다. 노벨상은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가능하다. 고은 시인의 경우, 언론이 초를 치고 있다.
-솔직히 노벨문학상 욕심 없으세요?
노벨문학상의 경우 성질이 문학상이 아니고 공로상에 가깝다. 글을 얼마나 잘 쓰느냐를 놓고 상을 주는 게 아니라 문학을 통해서 인류에 얼마나 기여 했느냐가 수상여부를 결정한다. 내 문학세계와는 코드가 맞지 않고 노벨 문학상을 세계 문학의 척도로 보는 시각에는 반대한다.
-작가로서의 앞으로의 10년 계획은.
내가 제일 중요하게 고려하는 독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독자였을 때 소설에 기대했던 것과 내가 독자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까지 쓴 책들이 언젠가는 재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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