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를 말하다]‘비판적 지식인’ 작가 조정래

글쓰기란 황홀한 감옥… 근현대 비극 예리하게 그려낸 ‘시대의 고발자’

조정래(70)는 지독한 작가다. 그에게는 작가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방탕한 기질이 없다. 주색잡기를 일절 하지 않는다. 모자라는 잠은 토막잠으로 해결하고 시간이 아깝다고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지금도 하루 쓸 원고지 분량을 정해 놓고 그 일정표에 따라 글을 쓴다. 대한민국의 시대와 역사를 가로지르는 대하소설 ‘태백산맥’ 10권, ‘아리랑’ 12권, ‘한강’ 10권이 그렇게 탄생했다. 작가는 40년 넘게 ‘글감옥’에 갇혀 오직 먹고, 자고, 쓰는 일만 되풀이하면서 칠순이 됐다.

우리나라의 근현대 비극을 예리하게 그려낸 조정래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정글만리(전 3권)’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컴퓨터나 여타 다른 집필기구를 전혀 쓰지 않고 오로지 육필(肉筆)만을 고집하는 작가는 이번에도 원고지 3615매를 꼬박 채웠다.

컴퓨터에 의지하고 않고 ‘21세기 원시인’으로 살아가면서 ‘시대의 고발자’로 ‘비판적 지식인’으로 스마트폰 시대를 당당하게 살아가는 칠순 노 작가의 창조적 힘이 궁금했다. ‘정글만리’ 원고지 3615매의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새 작품을 향해 새 길을 떠날 짐을 꾸리는 조 작가를 7월 16일 만났다.

-책 제목 ‘정글만리’의 뜻이 궁금하다.

‘정글만리’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원칙인 ‘정글’과 중국의 대표하는 만리장성의 ‘만리’에서 따온 것으로 중국의 현주소를 상징한다.

-소설의 배경이 왜 중국인가?

지금 중국의 인구는 14억에 이르렀고, 중국은 G2가 됐다. 이 느닷없는 사실에 세계인들이 놀라고, 중국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예상을 40년이나 앞당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흔히 말하는 ‘기적’이 아니다. 중국 전 인민들이 30여 년 동안 흘린 피땀의 결실이다. 우리의 지난날이 그렇듯이. 이제 머지않아 중국이 G1이 되리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중국이 강대해지는 것은 21세기의 전 지구적인 문제인 동시에 수천 년 동안 국경을 맞대온 우리 한반도와 직결된 문제이다. 중국인들이 오늘을 이루어내는 동안 겪은 삶의 애환과 고달픔도 우리의 경험과 다를 게 무엇인가 싶어 그 이야기를 두루 엮어보고자 했다.

-‘세계의 공장’으로 치부되던 나라가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해 경제 강대국으로 우뚝 선 중국이 한반도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이며,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중국의 급성장은 세계적인 문제이면서 직접적으로 같이 가는 삶을 살아온 한국의 문제다. 앞으로 30년은 굉장히 중요한 새로운 국면이 될 것이고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가는지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된다고 생각했다.

-이번 작품을 위해 중국은 몇 번 정도 방문했는가.

1990년대 초반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소련의 갑작스런 몰락과 달리, 중국의 건재한 모습을 보고 중국을 무대로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고 20여 년을 꾸준히 고민해 온 결과다.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취재를 했고, 2년 전에는 중국에 두 달이 이상 가있었고, 그 후에 두어 번 더 갔고 해서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중국을 여덟 번쯤 갔었다. 북경, 상해, 시안, 난징, 중경 등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중국 전역을 답사했다.

매일 원고지 20~40매 분량을 펜으로 꼼꼼히 써내려감으로써 작품을 완성했다. 집필 과 동시에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약 3개월 동안(3월 25일부터 7월 10일까지) 매회 원고지 30매 내외의 분량으로 일일 연재하며 네티즌과 함께 호흡했다.

-직접 중국 현지를 취재 다니면서 느낀 작가가 본 중국의 현실은.

중국경제의 발전을 놓고 많이 이들이 등소평이 ‘개혁개방정책(흑묘백묘론: 黑猫白猫)’을 추진한 결과라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 배경에는 ‘중국적 사회주의’가 아닌 ‘중국적 자본주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체제에 일당독재가 있을 뿐이지 나머지는 중국이 더 자본주의적이고 중국에서는 싫어하겠지만 ‘중국적 사회주의’를 ‘중국적 자본주의’로 바꿔 부르는 게 더 솔직하고 진실하다고 생각한다.

-연재 기간 동안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체감 정도는.

연재 기간 동안 누적 조회수가 무려 1200만 페이지뷰(Page View)와 1만 건 이상의 댓글을 기록했다고 출판사 직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아직까지도 원고지에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의 네이버 연재가 갖는 의미가 특별할 것 같다.

휴대폰으로 소설을 읽는 시대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지금도 원고지에 소설을 쓴다. ‘21세기 원시인’이다. 컴맹이다. 이번 작품을 네이버에 연재하고 나서 미국과 중국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는 걸 보고 최첨단 과학기재들이 가진 지배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글로벌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일부 팬들 중에는 공짜라서 좋다고 했다.(하하) 인터넷 매체를 통한 연재가 독자와 만나는 또 하나의 수단인 동시에 작품을 읽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이라는 것도 느꼈다.

-작품 얘기 정리하고 정치 이야기를 해보자. 소설만큼이나 정치색이 뚜렷하다. 지난해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의원을 지지하며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 공식 후원회’ 회장을 지냈다. 안 후보를 지지한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내가 왜 안철수를 지지하는지 의문을 갖는다. 그는 때 묻지 않은 지성인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 가장 비정치적이라 가장 정치를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권모술수에 능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술수 부리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함만 가지면 이 나라가 잘될 수 있을 것이다.

-지지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정치인은 세상에 빚진 게 없어야 한다. 재벌들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된다. 안철수는 돈이 많다. 그러한 대목을 믿었기 때문에 내 진실이 그에게 가 닿기를 바랐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들이 나를 대신해 안철수를 지지하기를 바랐다. 모든 정치는 시행착오를 겪는다. 다만 그 폭이 큰 지, 작은 지의 차이다. 나에게 대통령을 시켜줘도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게 인간이다.

-최근에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에도 합류했다. 다음 대선에 안 의원이 출마하면 또다시 지지하겠는가.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려면 많은 불안요소를 가지고 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4년 후에는 또 한 번 해 볼만 하다. 그때 또 그 사람을 믿어보려고 한다.

-반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 강하게 반대해 왔다.

4대강 사업같이 국민의 70%가 하지 말라는 일을 왜 이렇게 몰아붙였을까 모르겠다. 이 따위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반대로 대운하를 안 한다고 하더니 진행했다. 우리나라가 강으로 썩고 있다. 국민재산을 날려 버렸다. 이러한 일은 재판을 받아야한다. 민주화라는 건 그런 것이다

-가족 이야기로 넘어가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필사시킨 유명한 일화가 있다.

많은 독자가 왜 내가 아들만이 아니라 며느리한테까지 ‘태백산맥’을 베끼게 했는지 궁금해한다. 굳이 ‘태백산맥’을 베끼게 한 것은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노력이 얼마나 큰 성과를 이루는지 직접 체험케 하려는 것이었다. ‘태백산맥’ 베끼기를 통해 아들과 며느리가 인생이란 스스로 한 발, 한 발 걸어야 하는 천리길이란 것을 깨우쳐주고 싶었다. 인생이란 지치지 않는 줄기찬 노력이 피워내는 꽃이라는 것을 체득시키고 싶었다. 젊은이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성실하게 노력하라’‘꾸준하게 노력하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태백산맥’ 베끼기를 택했다.

-43년 동안 작가를 ‘글감옥’에 갇혀 살게 한 소설이란 무엇인가요.

소설은 인간에 대한 총체적 탐구다. ‘진실’만 말하고자 하는 작가는 필연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으며, 기득권을 향유하는 보수 세력과는 갈등하고 맞설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소설의 비판정신이며 휴머니즘의 실현이기도 하다. 소설을 창조하는 작가는 결국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가진 시대의 고발자여야 하며 비판적 지식인이어야 한다. 글쓰기란 감옥은 감옥이되 황홀한 감옥이다.

-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10년간 1권짜리 장편 2개와 3권짜리 2개, 단편집과 산문집을 하나씩 쓰려 한다. 작품을 끝낼 때마다 ‘다시는 소설 안쓰겠다’고 생각한다.(하하) 3권짜리 정글만리의 경우 각 권당 원고지 약 1천200매로 구성돼 총 3615매로 완결됐다. 쓰는 동안 두 번이나 몸살을 앓았다. 왜 여자들이 출산 후 다시는 아기 낳지 않겠다고 하는데 작가도 마찬가지다. 정글만리 쓰면서 지긋지긋해서 다시는 소설 안쓰겠다고 생각했다. 허나 이상한 습관이 있다. 또 쓰게 되더라. ‘작가의 말’ 말미에 “다시 새 작품을 향해 새 길을 떠날 짐을 꾸려야겠다”고 적어뒀다.

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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