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나는 사랑의 대서사시 ‘러브 오브 시베리아’무대는 19세기말 20세기초로 거슬러 올라가 제정 러시아. 무대가 무대인 만큼 스케일부터 웅장하다. 스크린에 넘쳐나는 온통 새하얀 러시아 설원과 황금빛으로 물든 시베리아의 침엽수림 풍광은 그 자체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웅장한 대자연과 완벽하게 재현된 제정 러시아의 귀족문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사 로맨스’에서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 거창한 스케일에 깃든 사랑, 그것도 엇갈린 사랑은 더욱 애틋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한 남자의 운명을 온전히 뒤바꿔 놓을 정도로 파괴력을 지닌 사랑임에야 어떻게 해피엔딩을 상상할 수 있으랴. 순진한 러시아 사관생도 안드레이 톨스토이(올렉 멘쉬코프)와 세상물정에 밝은 미국여인 제인 칼라한(줄리아 오몬드)은 모스크바행 기차안에서 장난스럽게 첫대면한다. 무리지어 기차에 탄 사관생도 가운데 한 사람인 안드레이는 동료들과 함께 교관의 눈을 피해 1등칸에 숨어들었다가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운 미국여인 제인을 만난다. 발명가 더글러스 맥클라칸이 ‘시베리아의 이발사’란 벌목기를 정부에 납품하기 위해 고용한 로비스트인 제인은 사관학교 교장이자 황제의 오른팔인 레들로프 장군을 유혹하려고 사관학교를 찾았다가 안드레이와 운명적으로 재회한다. 제인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긴 레들로프 장군은 어느날 얄궂게도 안드레이를 대동하고 그녀앞에 나타나 청혼의 연서를 읽게 하고, 연서를 대신 읽어내려가던 안드레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질투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연장에 제인과 나란히 앉아 있던 레들로프 장군을 목격한 안드레이에게 그를 공격하도록 부추긴다. ‘엄청난’ 죄를 저지른 청년생도는 그 길로 투옥되고 만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시베리아를 다시 찾은 제인이 가정을 꾸린 톨스토이의 흔적을 발견하고 마차를 돌려 거대한 시베리아를 내달리고, 그런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허공에 내뿜는 톨스토이의 모습을 담은 장면은 보는 이의 가슴을 시리게 할 만큼 오랜 여운을 남긴다. 순수한 청년과 영악한 여자의 전설같은 러브스토리가 웅장한 스케일로 떠받쳐진데다 사관생도들의 생활과 레들로프 장군의 주정 등 중간 중간 설정된 코믹한 상황과 적절하게 어울려 다양한 감정선을 자극한다는 게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러시아의 거장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이 5년간의 침묵끝에 내놓은 화제작으로 제작비만도 무려 580억원이나 투입됐고, 5천명이 넘는 엑스트라들이 동원돼 스펙터클한 화면을 장식하는 볼거리들이 풍성하다. 30일 개봉. /이형복기자 mercury@kgib.co.kr
‘섹시 가이’ 리처드 기어와 ‘사랑의 요정’위노나 라이더가 콤비를 이뤘다. 단풍이 한껏 든 뉴욕의 공원과 거리 풍경을 배경삼아 하루가 멀다하고 파트너를 갈아치우는 중년 플레이보이가 시한부 삶을 사는 20대 초반의 순수한 여인을 만나 애절한 사랑에 빠져드는 이야기를 다룬 ‘뉴욕의 가을’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경영자로 뭇 여성들의 흠모의 대상인 윌 킨(리처드 기어)은 자신의 매력을 십분 활용해 자유분방하고 풍요로운 삶을 즐기던 중 어느날 젊고 아름다운 예술대학 학생인 샬롯(위노나 라이더)을 알게 된다. 샬롯은 그가 지금까지 알던 여성들과는 달리 순수하고 진실한 영혼을 간직하고 있는데다 나이답지 않은 지혜마저 갖추고 있으나 앞으로 살날이 불과 1년도 남지 않았다. 그동안 가벼운 1회성 관계에만 익숙해 있던 윌은 무게가 느껴지는 샬롯과의 사랑에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치려 하나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뒤늦게 삶의 의미를 깨달은 듯 그녀를 살리는데 혼신의 힘을 쏟는다. 스크린을 수놓은 낙엽깔린 센트럴 파크 등 뉴욕의 가을 풍경은 로맨스물을 기다리는 초가을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너무 도식적인 틀안에 갇혀 다소 밋밋한 느낌을 지울수 없는게 흠. ‘마지막 황제’, ‘와일드 사이드’ 등에 출연했던 여배우 출신 조안 첸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이다. 30일 개봉.
우주에서 2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영화 ‘애스트로넛’의 원제는 우리 말로 ‘우주 비행사의 아내(The Astronaut’sWife)’. 30살을 갓 넘긴 젊은 감독 랜드 래비치의 데뷔작으로 우주 비행사의 아내가 우주에서 의문의 사고를 겪은 뒤 달라진 남편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을 그린 SF스릴러물이다. 미 항공 우주국의 유능한 우주 비행사이자 매력적인 남편인 ‘스펜서(조니 뎁)’는 우주에서 2분간 통신이 두절되는 사고를 겪고도 무사히 귀환해 영웅이 된다. 그러나 그와 함께 탑승했던 함장은 지구에 오자마자 이내 숨지고 어쩐 일인지 함장의 아내 또한 자살해 버린다. 영웅 대접을 받으며 뉴욕으로 직장을 옮긴 스펜서는 우주선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지만 그의 아내 ‘질리언(샤를리즈 테론)’은 왠지 그런 남편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러던 중 남편을 검사했던 리즈 박사가 질리언을 찾아와 지금의 스펜서는 당신 남편이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영화는 우선 소재와 접근 방법이 독특하다. ‘우주’와 ‘외계인’을 염두에 뒀지만 기괴한 모습의 외계인이 등장해 싸우거나 하지 않는다. 예상할 수 있긴 하지만 시종일관 우주에서 2분 동안 ‘뭔가 일이 있었다’고 암시할 뿐이다.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내의 심리에 초점을 맞췄다. ‘아직도 내가 네 남편으로 보이니?’. 철썩같이 남편이라고 믿고 있던 자가 사실은 남편의 모습을 한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됐을 때의 놀람, 갈등, 절망감, 그리고 부인(否認) 등 아내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잡아냈다. 신인 여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조금 과장돼 보이긴 하지만 이런 아내의 심리를 풍부한 얼굴 표정과 함께 소화해냈다. ‘가위손’ ‘슬리피 할로우’등에서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을 연출해온 조니 뎁이 매력적인 남편과 외계인, 두 가지 인격을 연기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23일 개봉.
유년시절 아버지의 불륜과 끔찍한 살인현장을 목격한 이란성 쌍둥이 남매의 비극적인 사랑과 파멸을 그린 영화다. 범죄 심리소설의 대가 짐 톰슨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매춘, 외도, 치정에 얽힌 음모와 살인, 도피 등이 매혹적인 재즈선율을 깐 50년대 느와르풍 화면에 잘 녹아있는 스릴러. 평범한 소시민의 내면과 가정내에 감춰진 폭력과 광기, 파괴적인 욕망과 본성에 대한 묘사가 치밀하다. 여기에다 도발적인 매력을 뽐내는 지나 거손과 빌리 제인의 냉소적인 연기가 돋보인다. 이란성 쌍둥이 마티(빌리 제인)와 캐롤(지나 거손)은 4살때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한다. 아버지는 불륜현장에서 정부의 남편을 살해하지만 그도 역시 죽고만다. 성년이 돼 각자 가정을 꾸리지만 어린시절 불행한 기억의 잔상을 씻어내지 못해 결혼생활이 행복할리 없다. 신문사 기자로, 시카고 경찰의 비리를 추적하던 마티는 갱단의 추격을 받게되자 남편과 이혼을 앞두고 친정에 기거하고 있던 캐롤에게 도망쳐 온다. 오랜만에 다시만난 이들 남매는 서로를 향한 강렬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함께 떠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그 과정에서 둘은 걷잡을 수 없는 범죄와 파멸의 길로 빠져들고 만다. 영화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삶은 이성이라고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격정적인 ‘불꽃놀이’에 다름 아니다. 남매간의 사랑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다룬 탓도 있을 게다. CF감독 출신인 할리우드 신예 마이클 오블로비츠 감독의 데뷔작. 23일 개봉.
‘헌신적인 사랑’ 쯤으로 해석될 수 있는 영화 제목(Dearly Devoted)과는 달리 ‘끔찍한 집착’을 그린 영화다. 집착의 도가 지나쳐 무자비한 살인을 일삼는 한 소녀의 광기는 그야말로 가슴을 섬뜩하게 할 정도. 스크린을 지배하는 예측불허의 살의(殺意)에 온 시선이 모아지지만 그보다는 종반부 반전이 무엇보다 압권이다. 아름답고 연약해 보이는 17살 소녀 데비 스트랜드(로즈 맥거원)는 집이 불길에 휩싸이는 바람에 엄마와 자신의 연인을 잃고 홀로 남는다. 그 후 외할머니 집으로 거처를 옮긴 데비는 종교에 빠져있는 외할머니의 학대에 시달리는 가운데 전학간 학교의 작문선생님 피터 리날디(알렉스 맥아더)에게 첫눈에 반해 빠져들기 시작한다. 피터에 대한 집착이 갈수록 강해지면서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독점하기 위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살인을 마다하지 않고 음흉한 계획을 꾸민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저지르고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비의 행동은 편집광의 사랑에 다름 아니다. ‘스크림’,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등 10대들이 대거 등장해 비명을 질러대는 할리우드 공포영화와는 달리 어린 소녀를 내세워 공포스러우면서도 요염한 분위기로 치장했다. “엽기적인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그녀가 유일하다”는 스티브 코헨 감독의 말처럼 로즈 맥거원의 연기에 많이 기댄 영화다. 23일 개봉. /연합
음모노출과 그룹섹스 장면으로 논란을 빚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이 2일 개봉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 톱스타인 톰크루즈와 니콜 키드만 부부가 실제 작품속에서도 부부로 출연해 전라의 연기를 펼치는 것도 화젯거리. 필름을 절대 훼손못한다는 큐브릭 유족의 반대에 부딪혀 1년 이상 개봉을 못하다 최근 유족들이 문제의 장면에 최소한의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데 동의, 18세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는 대신 오리지널 필름에서 단 한컷도 삭제되지 않은 채 상영될 수 있게 됐다. 특히 지난달 24일 열린 시사회에서는 여성의 음모나 그룹 섹스 장면을 그대로 보여줬는데도 야하다거나 음란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며 영화는 스토리 구성에서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질끈 감은 눈’을 뜻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누구나 마음속 깊이 갖고 있지만 결코 들여다 보지 못하는 본능의 세계를 뜻하고 있는데 두 부부가 결국은 굴절된 성 의식에서 깨어나 남녀간 완전한 소통으로서의 성 의식에 도달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사회 지배체제가 구성원을 억압하는 기제로서의 성, 그래서 왜곡되기만 하는 성에서 벗어나자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주장과도 맥이 닿아있는 듯하다. ‘비밀파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의혹, 이들은 마지막 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을 보이면서도 영화의 주제를 받쳐주는 하나의 소재로 충실히 작용하고 있다. /강경묵기자 kmkang@kgib.co.kr
‘분단을 소재로 한 화제작을 각색한 영화. 판문점 현지촬영이 무산되자 오픈 세트 제작’ 이런 배경 때문에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뿌린 박찬욱(36) 감독의 새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명필름)가 완성됐다. 판문점에서 모든 스토리가 진행되는 점부터 예사롭지 않다. 분단의 문제를 최일선에서 정면으로 다룬 점이 여느 영화와 다르다.이 때문에 21일 열린 시사회장에는 한미연합사 관계자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비무장 지대를 순찰중에 지뢰를 밟아 위기에 처한 남한의 이수혁 병장(이병헌). 이 병장은 뜻밖에 북한군의 오경필 중사(송강호)와 정우진 전사(신하균)에 의해 구조된다. 이를 계기로 세 사람과 이 병장의 동료 남성식 일병(김태우)은 절친한 사이로 지낸다. 분계선을 경계로 말을 주고받는 수준이 아니라 남쪽 병사가 수시로 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초소로 가 함께 시간을 보낼 정도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총격이 벌어져 이 병장과 남 일병이 북한군 두명을 본능적으로 살해하고 가까스로 복귀한다. 이후 사건 수사를 맡은 중립국 소속 소피 소령(이영애)의 활약으로 진실은 밝혀지지만 수사 과정에서 서로 적군을 만났다는 약점을 숨겨주려는 남북한 병사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소피 소령은 6.25 전쟁뒤 제3국을 택한 인민군장교 출신의 아버지와 스위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위스 정보단 소속. 그녀는 분단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의 편에 서서 사건을 마무리하며 비로소 아버지와 조국을 이해하게 된다. “남북 화해 무드속에서 화해를 주장하는 영화를 만들어 가슴 뿌듯하다”는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영상언어를 통해 분단의 상처 치유를 모색한다. 그렇다고 분단과 이념이라는 무거운 주제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미스터리 구조와 등장 인물들이 구사하는 간결하면서도 웃음 자아내는 대사들이 재미를 더해준다. 이 영화는 지난 97년 출간된 박상연(28)씨의 장편소설 ‘DMZ’가 기본 줄거리다. 신인 답지 않는 탄탄한 서사구조로 발표 당시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9월 9일 개봉 /연합
1987년 러닝타임 1시간 40분으로 국내에서 개봉된 ‘베티블루 37˚2’가 13년만에 무삭제판으로 오는 19일 다시 극장가에 내걸린다. 삭제장면이 일절 없는 3시간 5분짜리 오리지널 버전이다. 다만 남녀 주인공의 성기가 드러나는 장면에 한해 모자이크 처리했다는 것만 빼고는 원판 그대로다. 이번 무삭제판에는 롱테이크로 잡은 3분여의 오프닝 정사 신과 벽난로 앞에서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장면도 그대로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삭제장면이 없는 만큼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베티(베아트리체달)의 열정과 분노, 에너지, 파괴본능의 본질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베티블루…’는 프랑스 ‘누벨 이마주’ 세대로 불리는 장 자크 베넥스 감독의 입지를 확고히 해준 영화. 그는 이 작품으로 1986년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세자르상 8개부문을 휩쓴데 이어 아카데미 외국어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영화는 남프랑스의 휴양지에서 방갈로를 관리하며 사는 조르그(장 위그 앙글라드)가 육감적이고 예측불허의 성격인 베티를 만나 나누는 애절한 사랑을 그렸다. 우연히 조르그가 쓴 글을 읽은 베티는 그의 작가적 재능을 인정해주지 않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히스테릭해지며 파멸로 치닫고, 조르그는 그런 그녀를 눈물겹도록 사랑한다. 작가의 창작혼과 현실사이의 불협화를 그린 듯한 영화속 베티란 존재는 작가에게서 결여되고 고갈돼 가는 창작 욕구의 상징일까? 색체미학과 감각적인 음악이 돋보인다.
네덜란드 출신 딕 마스 감독의 ‘두 낫 디스터브’는 살인사건 목격자인 11살짜리 벙어리 소녀와 프로 킬러의 쫓고 쫓기는 논스톱 추격전을 그린 영화다. 미국인 제약회사 중역인 아버지 리치먼드(윌리엄 허트)와 어머니를 따라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벙어리 멜리사가 우연히 화장실에 갔다 길을 잘못 접어들어 살인현장을 목격하고 범인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간신히 부모를 만나는데 성공했지만 킬러의 공격을 다시 받아 죽을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겨가며 위기를 벗어나고, 뒤늦게 리치먼드 부부는 자신들의 계약파트너인 하트먼이 딸이 목격한 변호사 살해현장의 주범임을 알고 뒤쫓는다. 일찌감치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 있음에도 격렬한 액션과 팽팽한 긴장감이 끊임없이 이어져 눈길을 붙잡는다.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는가 하면 창녀와 쓰레기로 득실대는 암스테르담을 영화의주 배경으로 잡았다. 공원을 가로지르며 펼쳐지는 자동차 추격 신이 압권. 얀 드봉 감독의 ‘스피드’를 연상시킨다. ‘나홀로 집에’서 킬러들이 보여주는 코믹한 요소를 담고 있는 영화에는 ‘의뢰인’에서의 스릴과 ‘도망자’에서 맛볼 수 있는 액션도 아울러 녹아 있다. 26일개봉.
롤랑 조페 감독이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말끔히 씻어내려고 작심한 걸까.그의 신작 ‘굿바이 러버’(Goodbye Lover)는 기존의 작품세계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분위기도 딴판이다. ‘시티 오브 조이’에서 휴머니즘을 보여준 그가 5년만에 생뚱같은 퓨전장르를 내놓았다. 섹스, 스릴, 코미디가 뒤범벅이 돼 있는데다 도덕과 비도덕,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마구 넘나드는 다분히 도발적인 영화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는 상상을 불허케 하는 연속적인 반전.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 등장하는 4명의 연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영화 종반부까지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힘든 탓이다. 400만달러의 보험금을 차지하기 위한 음모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축이다. 귀엽고 발랄하고 매력적이고 섹시한 여자 산드라(패트리샤 아퀘트)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갖춘 광고회사 중역인 남편의 형 벤(돈 존스)의 정부(情婦)다. 산드라의 남편인 제이크(더모트 멀로니)는 알코올 중독자로 지위와 명성을 다 잃어버린 뒤 부인의 요염한 자태를 이용해 한몫 챙기려고 머리가 복잡하다. 여기에 벤의 여비서 페기(메리 루이스 파커)와 노련한 여형사까지 이 복잡한 관계에 끼어든다. 교회음악의 장엄한 선율을 배경음악으로 깐 산드라와 벤의 밀회 장면을 비롯해 서로 짝을 바꿔가며 상대를 기만하는 농염함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2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