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나온 음반

3대 테너 베스트 앨범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 이른바 ‘세계 3대 테너’가 로마, LA, 파리에서 개최했던 세 번의 라이브 콘서트 중 가장 인기있는 곡들을 모은 앨범이 데카에서 출시됐다. 1990년 로마 월드컵에서 시작해 94년 LA, 98년 파리 등 10년 넘게 월드컵과 함께 공연을 해온 3대 테너의 베스트 모음이 2002 한ㆍ일 월드컵에 맞춰 발매된 것이다. 카푸아의 ‘오, 나의 태양’, 덴차의 ‘푸니쿨리, 푸니쿨라’,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 ‘파리의 태양 아래’, 본파의 ‘카니발의 아침’, 카르딜로의 ‘무정한 마음’, ‘세계민요 메들리’, 쿠르티스의 ‘돌아오라 소렌토로’, 푸치니의 ‘공주는 잠못 이루고’ 등 3대 테너 공연의 대표 레퍼토리 22곡이 수록됐다. 구라모토 유키 새 앨범 발매 일본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구라모토 유키(倉本裕基ㆍ51)의 새 앨범 ‘Time For Journey(여행의 나날들)’가 발매됐다. 구라모토가 세계 곳곳으로 연주여행을 하며 만났던 풍경들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14곡의 연주곡이 수록돼 있다. 탤런트 윤손하가 출연했던 일본 NHK TV 드라마 ‘One More Kiss’의 주제곡으로 사용됐던 ‘In A Refreshing Breeze’를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삼았다. 한국의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친근감을 표현한 ‘Nostalgic Affection’, 독일의 오래된 목조주택들이 서있는 강가의 풍경을 묘사한 ‘Old Wooden Houses By The River’,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탱고의 발상지 카미니토를 소재로한 ‘Vision At Caminito’ 등이 수록돼 있다. 게오르규의 오페라 아리아 앨범 미모와 가창력을 겸비해 ‘제2의 마리아 칼라스’로 일컬어지는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영국의 코벤트 가든에서 불렀던 유명 오페라 아리아를 모은 실황 앨범이 EMI에서 출시됐다. 이옹 마랭이 지휘하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반주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중 ‘울게 하소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중 ‘사랑이여’, 마스네의 오페라 ‘마농’중 ‘안녕, 우리들의 작은 식탁이여’, 샤르팡티에의 오페라 ‘루이즈’중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친 그 날부터’,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중 ‘정결한 여신’ 등이 실려 있다.

<새영화>알리

미국의 전설적 프로복서 무하마드 알리. 그가 ‘세기의 영웅’으로 꼽히는 것은 통상 ‘61전 56승 37KO’이라는 화려한 전적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인종차별과 국가 권력에 맞서 싸웠던 투사였다. 또 ‘떠벌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언변으로 동시대인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던 엔터테이너이기도 했다. 알리의 실제 이름은 카시우스 마셀러스 클레이. 1942년 미국 켄터키주에서 태어난 그는 지독한 인종차별에 시달리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0년 로마올림픽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지만 인종차별은 계속됐고 이에 격분한 그는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물에 던져버리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말콤 엑스와 인연으로 이슬람교로 개종한 뒤 이름도 ‘무하마드 알리’로 바꾼다. 프로권투선수로 전향한 그는 64년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명언을 남기며 링에 올라 당시 챔피언 소니 리스튼과 맞붙는다. 결과는 7회 KO승. 영웅으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그 앞에는 이제 탄탄대로가 열린 듯 했다. 종교적 신념때문에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한 그에게 챔피언 타이틀 박탈이라는 가혹한 벌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쯤에서 주저앉았다면 지금의 영웅 알리는 없었을 것이다. 불굴의 투지를 발휘한 그는 이후 조 프레이저와 켄 노턴 그리고 조지 포먼과 벌인 그 유명한 ‘아프리카 격전’까지 세기의 대결에서 승리를 일궈내며 영웅 자리를 되찾는다. 전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세차례나 차지하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마이클 만 감독의 전기영화 ‘알리’는 그의 권투 인생 가운데 파란만장했던 1964년부터 74년까지 10년의 세월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그린다.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인물을, 더군다나 전세계 사람들이 알고있는 유명 인물을 스크린에 옮기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미국 개봉 당시 언론과 평단은 “잘 만든 작품”이라는데 대체로 동의했지만 알리의 숨겨진 또다른 면모를 기대했던 이들은 그의 삶을 시간순으로 전개한 이 영화가 “전혀 새로울 게 없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영화는 알리의 신들린 듯한 권투 경기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개인사를 찬찬히 훑으면서 영웅 탄생의 과정을 서서히 보여준다. 알리의 개인적 고뇌 뿐아니라 그와 유명 권투 해설자 하워드 코셀(존 보이트)과의 우정, 알리의 코치인 드류 분디니 브라운(제이미 폭스) 그리고 알리의 부인 등 그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 세심하게 잡아내 드라마를 강조했다. 타이틀롤을 맡은 윌 스미스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알리의 삶이 더욱 극적인 것은 그의 불우한 노년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복싱 생활 후유증으로 파킨슨씨병을 앓아 현재 거동이 불편한 그 이지만 영화를 통해 알리는 영원한 영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새영화>수학천재의 고독어린 환상

지난해 12월 20일, 골든 글로브 후보가 발표되자 한 작품이 세계 언론의 이목을 사로 잡았다. 놀랍게도 주요 6개부문 후보에 올라 최다 노미네이션의 영예를 안은 행운의 주인공은 영국 마법사 학교 출신도, 절대반지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의 휴먼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였다. 영화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 4개부문을 수상했다. 골든글로브가 아카데미상의 전초전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작품의 수상 퍼레이드는 아카데미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뷰티풀 마인드’는 1949년 27쪽 짜리 논문 하나로 150여년 동안 지속되어 온 경제학 이론을 뒤집고, 신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혈한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삶을 다룬 실비아 네이사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존 내쉬는 기존 게임이론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제 2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던 인물.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천재이기에 겪어야 했던 50여년 동안의 정신분열증을 이겨내고 94년 노벨상을 수상,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천재성으로 점점 황폐해져가는 존 내쉬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의 아내 알리샤의 사랑과 감동의 스토리는 그 어떤 휴먼 드라마보다 더 치열하고 강렬하다. 원작자가 1천번이 넘는 인터뷰로 존 내쉬의 삶 자체에 리얼리티를 부여했다면,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원작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그의 삶을 재구성하는 허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작진은 리얼리즘을 한층 높이고 작품의 감성적 진실을 극대화하기 위해 3개월 동안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따라가는 연속촬영 방식을 선택했다. 이런 촬영방식은 현대 영화계에서 일종의 사치로 불리울 만큼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러셀 크로우 등 주요 배우들의 감정을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들은 단순한 드라마 구성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예상치 못한 영화적 재미를 선사했고, 감동을 극대화시키는 영화속 반전은 ‘뷰티풀 마인드’를 영화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휴먼 드라마로 각인 시킬 것이다./이승진기자 sjlee@kgib.co.kr

<새영화>기사 윌리엄

132분의 러닝타임이 흐른 뒤 유럽 대륙 투어가 마무리되는 영국 런던의 경기장. 숨을 죽이며 마지막 승부를 지켜보던 관중들이 승리자의 탄생과 함께 퀸의 ‘위 아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을 부르자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스태프 자막이 올라온다. 14세기 유럽을 무대로 마상창술대결 등이 펼쳐지는 ‘기사 윌리엄’(원제 A Knight’s Tale)은 장중함과 트렌디 드라마의 감각이 한데 모은 복합장르 영화다. 누구나 환상을 품음직한 중세 기사의 이야기에 코미디란 양념을 얹고 현대 유행음악이란 기름을 쳐서 버무렸다. 가난한 지붕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은 주인으로 모시던 기사 액터 경이 마창대회 도중 숨지자 대타로 출전해 얼떨결에 우승의 황금종려 가지를 거머쥔다. 마창대회에는 귀족만이 출전할 수 있지만 자신감을 얻은 윌리엄은 마술과 창술 등을익힌 뒤 울리히 경이라는 가짜 작위 신분으로 아예 마창대회 전문기사로 나선다.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그는 귀족의 딸 조슬린에게 연정을 품게 되고 조슬린 또한 윌리엄의 남자다움에 이끌린다. 그러나 연적인 에드해머 백작이 윌리엄의 뒤를 밟아 출신의 비밀을 밝혀내는 바람에 그는 사랑과 명예와 부는 물론 목숨까지 잃을 위기에 놓인다. 말을 탄 두 기사가 키를 넘는 창을 꼬나쥐고 서로를 노려보다가 땅을 박차고 돌진해 상대를 거꾸러뜨리는 장면은 ‘벤허’의 전차경주나 ‘글래디에이터’검투시합에 비길 정도로 수준급이다. 관중들이 깃발의 움직임을 따라 ‘파도타기’ 응원을 펼치거나 대장장이 처녀가 갑옷을 만들어주며 나이키의 상표를 심벌로 새기는 장면 등에서는 재기발랄함이 넘쳐난다. 한편 중세 유럽풍의 화면을 뮤직 비디오 삼아 퀸, 에릭 크랩튼, 데이비드 보위 등 팝거장들의 음악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화면이 바뀔 때마다 감정 연결이 끊어져 중세와 현대, 그리고 서사극과 코미디의 결합이 화학적인 ‘퓨전(Fusion)’에 이르지 못하고 물리적인 ‘믹스처(Mixture)’에 그쳤다. 관객들도 경기장 장면만 나오면 긴장과 흥분에 휩싸이다가 멜로풍의 대목에서는 이내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윌리엄 역의 헤쓰 레저는 영화 전편을 이끌어갈 카리스마가 부족했고 조슬린 역의 셰넌 소새이먼은 관객을 화면 속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떨어졌다. ‘LA 컨피덴셜’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차지한 브라이언 헬게랜드가 각본과 감독에 프로듀서까지 맡아 다재다능함을 과시하려는 시도가 애초에 무리였을까. 24일 개봉. /연합

<새영화>어둠속의 댄서

‘어둠속의 댄서’는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를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덴마크 출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형식을 파괴한 영화다. 미국 워싱턴의 작은 마을, 프레스 공장에서 일하는 ‘셀마’(비요크)는 유전병으로 점차 시력을 잃어가지만, 자신처럼 갈수록 시력이 약해지는 아들이 열세살이 되기전까지 수술을 시켜주겠다는 희망으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의 또 다른 꿈이자 삶의 기쁨은 스스로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것. 춤과 노래는 고통스런 현실을 잊게 하는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에 다름 아니다. 그녀가 세들어사는 집 주인은 아내의 사치를 감당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경찰관인 ‘빌’(데이빗 모스) 부부. 어느날 밤 빌은 셀마에게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고, 셀마 또한 아들의 시력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비밀을 고백하고 만다. 그러나 그녀는 비밀을 끝까지 지키기로 한 약속을 저버리고 배신한 집 주인 빌로 인해 희망을 잃게 되고, 결국 법정에서 냉엄한 미국의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런 셀마의 ‘벼랑끝 삶’은 영상혁명가로 불리는 유럽최고의 스타일리스트 라스폰 트리에 감독의 독특한 연출로 때로는 처연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관객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면서 삶의 애환과 모성애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특히 작업장과 달리는 기차위에서 펼쳐지는 뮤지컬은 그녀의 삶의 고통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연출력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 6∼7회에 걸쳐 전개되는 영화속 뮤지컬 장면을 위해 100대의 카메라가 동원됐다고 한다. 역동적인 비주얼을 생동감있게 잡아냄으로써 상상속 세계를 스크린에 담아 고통의 현실과 절묘하게 대비시킬 수 있었던 것도 그 덕택이다. 현실과 환상, 드라마와 음악이 뒤섞인 이 영화는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셀마’역의 비요크는 아이슬란드 최고의 가수. 이 한편의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셀마’를 끝까지 돌봐주는 ‘캐시’역의 카트린 드뇌브와 ‘제프’역의 피터 스토메어의 절제된 연기도 영화를 떠받치고 있다. 24일 개봉.

<새영화>임상수 감독의 두번째 영화 '눈물'

임상수 감독의 두번째 영화 ‘눈물’은 소재부터가 파격적인데다 형식마저도 실험적이어서 충무로에 잔잔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 충무로의 주류 영화들이 금기시해온 집나온 10대 비행청소년들의 거친 삶을 온전히 스크린에 옮겨 놓았는가 하면, 100%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성담론에 논쟁을 지핀 임감독은 가출 청소년들의 뒷골목 생활에다 정면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회제도와 상식이 그어놓은 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본드흡입, 섹스, 폭행, 욕설을 일삼는 ‘못된’ 10대들의 이야기란 점에서 장선우감독의 ‘나쁜 영화’와 같은 반열에 놓일 법도 하지만, ‘나쁜 영화’가 다큐멘터리 형식을 좇았다면 ‘눈물’은 사실적인 묘사에다 드라마를 잘 버무려 놓았다. 이혼한 부모가 싫어 가출한 순진한 ‘한’(한준)은 폭력배 ‘창’(봉태규)을 만나 여자아이들과 음란 파티를 벌이려다 반항하는 ‘새리’(박근영)의 탈출을 돕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것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뼈대다. 술집접대부로 일하며 기둥서방인 ‘창’에게 모든 걸 바치는 ‘란’(조은지)과 이들가출청소년을 등쳐먹는 술집지배인 ‘용호’(성지루) 등이 뒤섞인 가운데 희망없는 유흥가 밑바닥 생활을 하는 비행청소년들의 일상이 거친 영상에 섬세한면서도 차분하게 묘사돼 있다. 무엇보다 주변환경에 밀려 탈선한 가출청소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임감독의 연민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영상이 거친 것은 디지털 카메라에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으로 6㎜ 소형디지털 카메라 3대가 동원됐다. 제작비도 불과 5억원밖에 안들었는데 수십억원에 육박하는 제작비 상승추세에 비춰볼 때 획기적이라 할만하다. 임 감독은 5년전에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사실에 근접하는 시나리오를 쓰기위해 구로구 가리봉동 달동네에서 쪽방을 얻어 6개월을, 안경노점상을 하면서 6개월을 보냈다. 출연배우들은 완전 ‘초짜’로 길거리에서 눈에 띄어 캐스팅됐다.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일찌감치 초청됐다. 20일 개봉. /이형복기자 mercury@kgib.co.kr

<새영화>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예순네살이 돼도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나요?” 가슴시린 연인들을 위한 따듯하고 촉촉한 사랑이야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가 오는 13일 개봉, 올 겨울 극장가를 달구고 있는 멜로물 개봉행진에 가세한다. 박흥식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작은 정원과 분수대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서울 근교의 서민아파트 상가에서 각각 근무하고 있는 말단 은행원과 보습학원 강사의 특별할 것 없는 사랑이야기다. 대신 그간의 다른 영화들이 사이즈와 스펙터클에 몰두하느라 무시하거나 놓쳐온 것,즉 행간의 여운을 읽는 맛과 일상의 디테일이 섬세하고 밀도있게 살아있다. 은행원 봉수(설경구)는 남몰래 짝사랑을 키워가는 학원강사 원주(전도연)의 속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채 겉도는데… 어느날 우연히 은행 CCTV녹화 화면을 되돌려 보다 자신을 향한 원주의 마음을 읽고 난후 오랜 방황을 끝내고 사랑의 종착역에 다다른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에 골인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뒤따라가며 그들의 미세한 감정변화를 놓치지 않고 드러내 보여주는 것. 때문에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운명의 장난은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별다를 것 없는 사소한 연애 성공기에 불과해 보이는, 평범한 연애담 같은 이 영화는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사랑’에 특별한 의미와 느낌을 부여, 의외로 오랜 여운을 남긴다는 평이다. 또 ‘재미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박 감독의 영화관을 보여주듯 코믹한 대화가 중간중간 녹아있어 수시로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등 잔재미도 곁들여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는 설명이다. 다만 따분한 두 남녀의 일상을 되풀이 해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다소 지루함을 느끼게 할 소지는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해피엔드’에서 욕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을 농염하게 연기해 낸 전도연과, ‘박하사탕’ ‘단적비연수’로 지난해 최고의 남자배우로 성장한 설경구의 연기변신이 눈에 띈다. /강경묵기자 kmkang@kgib.co.kr

<새영화>단적비연수

동양적 소재인 ‘전생과 인연’이란 모티브를 활용해 드라마틱한 서사구조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덧씌운 팬터지 멜로물, ‘단적비연수’가 많은 관심속에 드디어 11일 개봉한다 신예 박제현 감독이 야심차게 내놓은 데뷔작 ‘단적비연수’는 제작비가 무려 45억원이라는 투입됐는가 하면 9개여월 동안 전국 각지를 누비며 촬영이 이뤄진데다 개봉전 일본배급마저 확정돼 일찍이 영화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은행나무 침대’의 후속편인 이 영화는 이런 각종 진기록에 걸맞게 웅장한 선율을 탄탄한 스케일과 팬터지로 일단은 두터워 보인다. 국내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쏟아부은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 더욱 그렇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정령의 ‘신산(神山)’아래 매족과 화산족이 살고 있었으나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욕망 때문에 매족은 저주를 받아 모든 것을 잃고 부족재건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매족의 여족장인 ‘수’(이미숙)는 화산족의 씨앗인 ‘비’(최진실)를 출산한뒤 부족영생을 위해 ‘비’를 제물로 바치려 하나 화산족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로 인해 화산족 마을에서 성장한 ‘비’와 화산족의 왕손인 ‘연’(김윤진), 족장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싸우는 무사 ‘단’(김석훈)과 ‘적’(설경구)은 비극을 예고하는 엇갈린 사랑에 빠져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는 운명에 직면한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단’과 사랑에 비장감을 드러내는 ‘적’, 슬픈운명을 타고난 ‘비’, 애절한 ‘연’, 이들의 사랑의 운명을 지배하는 ‘수’의 인연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다. 전체적인 큰 줄기는 운명에 순응하는 인물과 운명을 거역하며 헤쳐 나가는 인물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고있다. 마, 가죽, 모피, 대나무 등 천연소재를 활용한 의상과 금속성 장신구에다 태고의 풍광을 잘 담아낸 영상과 파워풀한 액션이 돋보인다. 그러나 시종일관 웅장하긴 하지만 단조로운 리듬과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초반부 진행, 지나치게 강조한 팬터지, 일부 연기자들의 판에 박은듯한 천편일률적인 연기 등이 영화의 웅장한 스케일에 흠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형복기자 mercury@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