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은 실용적 글쓰기 1

필자는 수능 이후 학생들이 논술을 학교가 아닌, 외부 기관에 의지하는 현실을 안타까워 방과후 논술 수업을 개설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신청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10명이 조금 넘는 학생이 선택하여 학생에게 이유를 물으니 “선생님 저는 논술을 반영하지 않는 대학에 가기 때문에 필요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당시에는 할 말이 없었다. 나 또한 논술을 대학을 입학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술 공부를 하다 보니 그 때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대학 입학의 수단으로써의 논술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 논술적 사고와 태도라는 점에서 논술은 삶을 살아가는데 의사소통의 중요한 도구가 된다. 대학에서 과제는 대부분 보고서이고 시험 또한 논술식이다. 연필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대박을 터뜨릴만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상사에게 말로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이 기획안이 바로 논술인 것이다. 즉, 나의 주장을 상사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논리적이고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처럼 논술은 우리 삶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때문에 논술 교육은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지도해야 한다. 그렇다면 논술이란 무엇인가? 논술은 실용적 글쓰기이다. 어느날 문단에 등단한 시인 선생님이 “윤선생! 학생들이 논술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나?” 선생님의 고민은 문학적 글쓰기와 실용적 글쓰기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논술은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의 견해나 주장을 내세운 다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여 자기 견해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글쓰기 활동이다.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특별한 형식이나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진술하는 수필이나 감상문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논술이란 무엇일까? 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하다보면 학생들이 “선생님! 왜 가르치는 사람마다 논술에 대한 정의와 논술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다르죠?”라고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선생님은 논술을 잘 하기 위해서 많이 읽으라고 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많이 읽는 것보다 얼마나 깊이 있이 있게 읽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선생님도 있다. 신문의 사설을 읽으라고 하기도 하고 사설보다 오피니언(의견)이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논술은 주어진 논제에 대한 비판적 읽기를 통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논술은 읽고 생각하고 쓰는 과정 전체를 평가한다. 먼저 비판적 읽기란 반성적이고 능동적으로 글을 읽는 것이다. 신문의 광고를 볼 때 어떤 학생은 광고 제작사가 의도한 그대로 수용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어떤 학생은 왜 이 광고가 좋은 광고 인지, 어떤 이유에서 나쁜 광고인지를 비판적으로 생각한다. 광고의 내용이 여성의 성을 상품화 시킨 것인지, 과장 광고나 허위 광고 인지, 지나친 다이어트 조장으로 우리 사회의 외모 지상주의를 만연시킬 수 있다는 등의 비판적 태도를 지닌다. 두 번째로, 창의적 문제 해결은 논술의 내용(비판적 읽기와 창의적 문제 해결을 논술의 내용에 해당되고, 논리적 글쓰기는 형식에 해당된다.)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에 속한다. 창의적 문제 해결은 주어진 논제에 대한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사고를 통해 이루어진다.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글을 읽는 사람이 평가한다는 점에서 억지로 의도된 글 보다는 진실된 글에서 창의성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논리적 글쓰기는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논리적 사고의 핵심은 ‘논증’이다. 논증이란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을 말하며 주장(결론)과 근거(이유)로 이루어진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재밌다.’고 주장하면 ‘김선아의 연기가 실감이 나고 대사가 톡톡 튀고 진짜 같기 때문에’이라는 근거를 대야 논리적인 글이다. 반면, ‘김아중은 미녀가 아니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미녀는 괴롭다.’ 그런데 ‘김아중은 행복하다.’라는 것을 제시한다면 논리적인 글이 아니다. ‘000도 달았다.’라는 대사처럼 상품을 선전하는 광고는 논술과는 다르다. 상품 광고는 물건을 많이 파는데 목적이 있으므로 소비자의 감정에 호소해야만 한다. 하지만 논술에서는 ‘권위나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러한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문제 해결력, 논리적 사고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통합 교과형 논술이다. 통합 교과형 논술의 핵심은 영역 전이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전이(transfer)라는 말은 의학 용어로 사람에게 (암)전이가 되면 좋지 않지만, 통합 교과형 논술 시험에서는 전이가 되면 될수록 좋다. 예를 들어, 논제로 ‘균형과 평형’이라는 것이 출제 됐다면 영역 전이가 잘 되는 학생은 윤리 시간에 배운 ‘쾌락주의 역설’과 경제 시간에 배운 ‘한계 효용의 체감의 법칙’, 사회 시간에 배운 ‘제로섬 게임’, 과학 시간에 배운 ‘에너지 보존의 법칙’, 환경 시간에 배운 ‘생태계의 항상성’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영역 전이가 서툰 학생은 이 중 한두 가지만 떠오를 뿐이다. 어쩌면, 영역 전이가 잘 되어 통합을 잘 하는 사람은 교사보다 전과목을 배우는 학생일 것이다. 때문에 통합은 교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해야 하며, 교사는 그런 통합 능력을 길러주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윤영진 (광명북고 교사)

비빔밥 논술

쟁 점 토 론 시사쟁점 등 매주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심도있게 생각해보는 코너. 정보의 바다에서 알짜만을 건져 올렸죠. 어때요? 벌써 빠져들고 싶죠? 뭘 망설여요. 그럼 빠져봅시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 유명인들의사생활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연예인과 스포츠선수, 유명인사들의 연애담과 가십성 기사들은 이제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잡아 유쾌한 화제거리가 되곤합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 헌법은 개인의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유명인들은 왜 그런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을까요?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국민의 알권리는 정당한 것일까요? 사람들은 흔히 유명인들의 사생활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사생활이 보도되는 것에는 굉장히 민감합니다. 유명인들의 사생활은 언론에 아무 거리낌 없이 언론에 보도되어도 정당한 걸까요? 만약 정당하다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요? 함께 생각해봅시다. /김인규 상임연구원 생 각 열 기 우리는 유명인들의 결혼과 이혼, 연애관계, 가족관계 등 사생활과 관련한 소식들을 인터넷과 신문, 잡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접하는 유명인의 사생활에 관한 보도들은 모두 합당하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여러분이 평소 프라이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이 보도는 명예훼손인가? 다음은 A언론사에서 밑줄 친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보도한 기사들입니다. 당사자들은 모두 A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이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법원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난 후 법원판결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① 미혼인 여성 연예인이 재벌 2세와 동거한다는 사실 또는 숨겨둔 자식이 있다는 보도 ② 대기업 회장의 자식이 배우자의 아이가 아니라 혼외정사에 의하여 낳은 아이라는 소문을 보도하는 경우 ③ 국회의원이 배우자가 아닌 여인과 호텔방에서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경우 ④ 인기 연예인이 올 가을에 결혼을 한다는 보도 ⑤ 유명 스포츠선수가 미모의 인기 여가수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보도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경우 Yes/No 유명인의 사생활 보도는 괜찮은가? 연예인 부부의 이혼보도나 누드사진 게재 등 유명인들의 사생활은 언론을 통해 광범위하게 알려지기 일쑤입니다. 유명인들의 사생활 보도는 정당한 것일까요? 정당하다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요? 다음의 사례를 통해 함께 생각해봅시다. 사례Ⅰ. 유명인의 사생활 보도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불가피하다! 한때 최고의 인기 영화배우였던 A씨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며 연예계를 전격 은퇴했습니다. 그는 은퇴한 후 20년 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보통 사람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A씨는 이웃에서 소동으로 들릴 정도로 격한 부부싸움을 했고 이웃의 제보로 한 언론사는 A씨의 부부싸움을 취재하여 보도했습니다. A씨는 이에 대해 “연예계를 은퇴한 지 20년이 된 자신은 더 이상 공인이 아니다”며, 허락도 없이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한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언론사는 추억의 스타를 그리워하는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정당한 취재활동을 펼쳤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Yes (알권리 중시) A씨의 부부싸움을 보도한 언론사는 무죄다. 우선 A씨는 스스로 공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인임을 알아야 한다. 그는 한때 영화배우로서 인기를 누리며 공인으로서의 삶을 살았고, 설사 연예계를 은퇴하여 언론의 화려한 조명에서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관심과 인지도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평범하게 살아간다고해서 공인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때나마 국민들의 관심과 인기를 받았던 공인으로서,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은 국민들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정당한 알권리에 해당한다. 국민의 알권리란 비단 공공의 이익에 관여된 것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로 인정되는 사안이 있다면 이는 충분히 보도될 수 있는 영역이다. 예를들어 미혼 연예인이 언제 결혼할 것이라는 보도는 본인이 보도되는 것을 원치 않더라도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로 볼 수 있다. 이는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고 연예문화의 현황과 그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 등에 비추어 일부 사람의 흥미 내지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인의 자녀출산소식, 대학의 졸업혹은 입학, 과로로 입원한 사실 등은 본인의 동의 없이도 공개가 가능하며 정당한 알권리에 포함된다. A씨의 부부싸움 역시 이웃에 어느 정도 피해를 줄 정도의 소동으로 번진 사건이다. 본인이 원치 않았더라도 보도할 수 있는 사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또한이언론사는 A씨를 파파라치처럼 따라 다니다 부부싸움을 목격한 것이 아니다. 제보자가 있으며 이 보도에 어떠한 악의도 발견할 수 없다. 사례Ⅱ. 공직자와 사회지도층 등 공인의 부도덕한 사생활에 관한 보도는 정 당하다! No (사생활 중시) A씨의 경우 연예계를 은퇴한 지 20년이나 흘렀고, 언론과의 접촉을 끊으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A씨는 사실상 사인이라 보아야 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A씨를 기억하는 사람의 수도 많이 줄었을 것이며 현재의 관심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의 흥미 위주의 관심을 위해 사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A씨의 사생활을 허락도 없이 보도하는 것은 지나친 월권이다. 일반인의 부부싸움을 언론이 보도할 이유는 없으며 만일 이를 보도했다면 당연히 프라이버시권 침해로 보아야 한다. 설사 A씨를 공인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국민의 알권리를 주장하려면 보도의 내용이 공공의 생활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공공의 이익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판단기준 없이 단순히 대중의 단순한 흥미거리를 알권리의 대상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부부싸움은 극히 내밀한 사적영역으로 유명인의 경우라 하더라도 대중의 정당한 관심사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영역이 보도될 수 있는 경우는 본인의 허락을 얻을 때에 국한된다. 프라이버시권은 누구나 보호받아야 한 다. 공인의 사생활 보도의 영역도 공적인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극히 일부 영역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상업주의 언론들이 판매부수를 높이기 위해 선정적인 사건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은밀한 사생활에 관한 내용을 남발하여 보도하기 때문이다. 유명인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싶은 관음증적 욕망을 알권리로 착각하여, 사생활과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언론관행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때문에 A씨의 부부싸움을 보도한 언론사는 처벌되어야하며 A씨에게 법원에서 판결하는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 쟁 점 이 술 술~ 얼마 전 문화일보의 신정아 씨 누드사진 게재로 유명인의 사생활과 인권 침해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권리와 프라이버시 보호는 양립 불가능한 것일까요? 토론에 앞서, 유명인의 사생활 보장과 관련한 논쟁들을 살펴봅시다. 1.유명인은 누구인가요? 유명인(有名人)은 말 그대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을 말해요. 여기에는 정치인, 고위공직자, 교수, 기업인, 연예인, 스포츠선수 등 각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을 모두 지칭하죠. 그런데 유명인은 공인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요. 최근 가수 성시경이 방송에서“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된 이유도 공인에 대한 판단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2.유명인과 공인, 사인은 어떻게 다른가요? 국어사전에 따르면 공인(公人)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 혹은 ‘공직에 있는 사람’을 뜻해요. 즉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을 말하죠. 하지만 이는 공인을 공직자(公職者)로 매우 협소하게 본 것이에요. 현대사회에서 공인이라 함은 대체로 유명인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곤 하죠. 우리나라의 경우 법으로 공인의 범위를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공직자 외 정치인이나 연예인 혹은 스포츠 스타, 유명 대학교수, 사회저명인사와 같이 대중에 노출됨으로써 이익을 얻는 존재를 대개 공인으로 간주해요. 공인은 다수의 사람이 알고 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며 대중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죠. 공인의 말이나 행동은 여론이나 대중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사인(私人)과 구별하고 있어요. 사인이란 공인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개인적 자격으로서의 일반인을 지칭해요. 하지만 이러한 공인 개념은 그 구분점이 명확하지 않아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과 관련하여 논란을 빚기도 해요. 3.유명인도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 인간은 누구나 인격권과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지 않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우리나라 헌법에도 제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그리고 제10조 행복추구권 등을 통해서 개인의 사생활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죠. 하지만 공인인 경우 사생활의 공개가 일정부분 허용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적지 않아요. 이는 ‘국민의 알권리’ 때문이에요. 공인에 대해 혹은 공인의 활동에 대해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 역시 존재하죠. 물론 공인의 공적 영역만 알권리에 해당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공인의 공적 활동과 사적 활동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고 사적 영역이라도 공공의 이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면 공개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어요. 예를 들어 납득할 수 없는 결혼 과정이나 상당한 정도의 정신병력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공직자에 있었다면 이것이 향후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이러한 부분은 공공의 이익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비록 사적인 영역에 속하지만 경우에 따라 보도나 비판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처럼 공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논란은 언론의 자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4.언론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건가요? 사실 국민의 알권리는 언론의 취재보도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기되어 왔어요.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의 수탁인으로서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사안을 판단하고 발굴하여 이를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죠. 이는 언론의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 견제의 역할이기도 해요. 문제는 알권리에 근거한 취재보도 활동이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는가에 있어요. 사생활 보호의 권리와 국민의 알권리, 모두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지만 이들 권리는 서로 반비례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무엇을 보다 중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요. 5.다른 나라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요? 나라마다 공인과 사인을 구별하는 법적인 규정과 양 권리의 충돌을 둘러싼 논란을 대하는 입장이 달라요. 미국의 경우 공인에 한해 사생활의 침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강해요. 언론의 자유를 보다 중시하는 견해죠. 따라서 언론이 공인의 사생활을 자세히 보도했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 미국의 법은 공인의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문제에 있어‘현실적 악의(惡意)의 원칙’을 적용해요. 즉 언론이 해당 공인을 위해할 목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보도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소송에서 언론의 손을 들어주는 원칙이죠. 반면 프랑스의 경우 공인일지라도 사적인 영역은 충실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해요. 법원의 판례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분위기가 사생활 보호에 무게를 두고 있죠.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는 미국의 입장에 다소 가깝지만‘현실적 악의의 원칙’을 부정하고 있으며, 사안에 따라 공공의 이익에 관여된것인지를 판단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철콘 근크리트> 잔인한 현실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는?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 중에서 제일 먼저 접한 것 은 <핑퐁>이었다. 꾸불꾸불하고 약간은 지저분한 것도 같은 선으로 그려놓은 <핑퐁>은 정말 압도적인 만화였다. 탁구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페코라는 소년이 있다. 친구인 스마일은 그를 동경하여 탁구를 배웠지만, 페코는 게으른 천재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페코는 보통의 재능을 가진 노력파 아쿠마에게도 패배하여 방황하게 된다. 페코는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영웅이다. 얼핏 보기에 페코는 자신의 재능에 도취하여 잘난척하는 유아독존형 인간이지만, 사실은 가장 순수하고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인간이다. 그는 세상의 잡다한 소리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만 집중하여 달려간다. 그러다 보면 <하나오>의 하나오처럼, 중년이 되어서도 야구선수가 되겠다며 몽상에 빠져 있는 덜떨어진 어른이라는 비난도 받게 된다. 그나마 아이일때는 그런 단순한 열정이 인정받을 수 있지만, 어 른이 되어서까지 그렇다면 조롱을 받기 십상이다. 마츠모토타이요의 영웅은 결국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스마일은 그런 페코를 여전히 동경한다. 자신에게도 어느정도 재능이 있어 탁구를 하기는 하지만, 그건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순간에, 어떤 정도의 승리를 거둘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스마일은 영웅인 페코를 바라보며, 보통 사람으로서의 길을 걸어간다. 그건 패배주의도 아니고 자학도 아니다. 스마일은 자신의 그릇을 알고 있다. 그리고 평범함의 가치도 알고 있다. 마츠모토타이요의 <핑퐁>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만화의 하나다. 프랑스 코믹이나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세련된 표현의 그림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그 세계관이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아키라>의 오토모 가츠히로 이후 일본만화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만화가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외형적으로는 탁월한 그림이 눈에 띈다. 꾸불꾸불한 선으로 이어진 마츠모토의 만화는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하다. 또한 오토모 가츠히로 이상으로, 앵글과 장면전환에서 영화적 기법을 과감하게 끌어들인다.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박력이 느껴진다. 마츠모토 타이요가 유럽과 미국에서 각광받는 이유도 그것이다. 시로와 쿠로-함께 희망을 만들어가다 하지만 마츠모토 타이요의 내면은 외관 이상으로 훌륭하다. 아니 심오하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철콘 근크리트>는 가상의 공간인 다카라쵸에서 벌어지는 활극을 그리고 있다. 시로와 쿠로는 다카라쵸에서 고양이라고 불리는, 최강의 악동이자 실질적인 지배자다. 야쿠자도 있고 양아치도 있지만, 진짜 강자는 바로 시로와 쿠로다. 거리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돈을 훔치고, 때로는 나쁜 인간들도 폭행하면서 시로와 쿠로는 자유롭게 살아간다. 거친 세상의 다카라쵸에는 오랜만에 돌아온 야쿠자도 있고, 그를 잡으려는 형사도 있고, 기존의 룰을 완전히 무시하고 다카라쵸를 접수하려는 신흥 조직도 있다. 이제 다카라쵸는 변해야만 한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과거의 인물들은 사라져야 한다. 혹은 변하든가. 시로와 쿠로는 아이다. 그들은 함께, 거친 야생의 거리인 다카라쵸에서 싸워간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것은 생존본능과 폭력이다. 그들은 거침없이 싸우고, 살아남는다. 하지만 시로와 쿠로는 서로 다르다. 시로는 ‘순수무애’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아이다. 바보 같으면서도, 시로는 세상의 진리를 알고 있다. 쿠로는 그것을 알기에 시로와 함께 살아간다. 만약 시로가 곁에 없다면, 쿠로는 암흑 속으로 달려 갈 수밖에 없다. 폭력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마구 폭주할 것이다. 서로 다른 존재인 시로와 쿠로는, 함께 존재함으로써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희망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것은 <핑퐁>에서 스마일과 페코의 관계와 흡사하다. 스마일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지만, 왜 이겨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페코는 그저 이기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이긴다. 스마일에게 페코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영웅이다. 스마일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진리를 알려주는 영웅이다. 쿠로 역시 마찬가지다. 시로가 없다면, 쿠로는 살아갈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방법은 이미 알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시로가 알려주어야 한다. 시로야말로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를 알고 있는 아이니까. ‘철콘 근크리트’라는 제목은 아이들이 철근 콘크리트를 잘못 발음한 아동어라고 한다. 서로 다른 것을 혼동하여 하나로 인식하고, 서로 뒤섞이면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핑퐁>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마츠모토 타이요의 철학을 보여준다면, <철콘 근크리트>는 우화적인 공간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마츠모토 타이요가 일본의 젊은이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은 이유는, 시대의 공기를 탁월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버블경제가 끝나고, 10년 불황의 한가운데에서 젊은이들이 느낀 답답함과 불안함 그리고 두려움과 분노가 마츠모토타이요의 만화에는 담겨 있다. {img5,R,300} <철콘 근크리트>는우화적인이야기이지만, 그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현재진행형의 폐쇄감이다. 그들은 다카라쵸에 갇혀 도망칠 수 없고, 승리자가 될 수도 없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승리에 도취하지 않고 잔인한 현실에서 패한다는 것에 대해 쿨한 인식’을 보여준다. 이 세계에서는 99%가 패배할 수밖에 없다. 아니 더 나아간다면,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패배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드럽고 따스한 것이 된다. 쿠로가 싸움은 더 잘 하지만 결국은 시로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다. 시로는 다정하고, 부드러우니까.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유일한 희망이니까.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교과서와 논술 3>

논술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많은 교사들이 논술을 특정 교사의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고, 많은 학생들이 논술이란 따로 시간을 내서 배워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대학의 입시 논술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교과 수업만으로 부족한 면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수능 시험이 끝난 이후로 전국 각지의 수많은 학생들이 서울 강남의 유명 논술학원으로 몰려오는 사태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했어요.’라고 말하던 예전의 수능 만점자들의 말이 믿기 어렵듯이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하면 논술 시험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교과서를 어떻게 공부하느냐 하는 것이다.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을 전달하고 습득하는 수준이라면 교과서만으로는 대학의 논술을 준비하기 어렵다. 복합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여러 개의 제시문들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충분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논제가 요구하는 사항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일방적인 지식 전달과 맹목적인 지식 습득의 교육으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 모두 교과서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교과서는 학생들이 배워야 할 기본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1차 텍스트일 뿐이다. 교사는 그것을 토대로 학생들의 심층적 사고력과 다각적 사고력을 신장시켜 줄 수 있는 수업을 설계하고 실천해야 한다. 교과서의 내용을 학생들이 먹기 좋게 요리해서 입에 쏙쏙 넣어줄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교과서의 내용에 의심을 품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사고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학생들도 교과서에 밑줄 쫙 긋고 맹목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정말 그런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 행간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읽어내는 동시에 저자의 관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또한 교과서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그치지 말고 책이나 인터넷과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다 심화된 내용을 스스로 찾아봐야 한다. 결국 논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교과서를 통한 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이 신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한 수업이 아닌 모든 수업시간에 적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논술 능력은 특정 교사의 특정 수업에서만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사의 모든 수업에서 길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논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데, 논술이란 절대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교과서와 논술의 관계에 대해서 논의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학교는 대학 입학만을 목표로 하는 사설 입시학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교사가 모든 수업 시간에 논술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논술이야말로 우리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담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수업 시간은 교사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과 학생들의 열정적인 필기로 이어져 왔다. 물론 강의식 수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고기를 아무리 많이 잡아준다 해도 학생들은 결코 스스로 물고기를 잡을 수 없다. 따라서 교사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며, 학생들 역시 교과서를 토대로 하되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과서는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 활동에 짐이 될 수 있다. 교과서는 단지 하나의 책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치 경전(經典)처럼 모시면서 정답을 찾으려고만 애쓴다면 오히려 학생들의 사고력 증진에 방해가 된다는 뜻이다. 최소한 학생들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어’라고 말하는 일은 앞으로 없어져야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교과서를 찢어버림으로써 기존의 권위에 대한 저항 정신을 보여준다. 매우 감동적인 장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교과서를 찢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그 교과서를 꼼꼼히 읽으면서 조목조목 비판하고 따지며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능력이다. 모든 교사가 교과서를 토대로 끊임없이 아이들의 사고력을 신장시킨다면 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교과서는 그 때 찢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 세 영 (수성고 교사)

비빔밥 논술

시사쟁점 등 매주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심도있게 생각해보는 코너. 정보의 바다에서 알짜만을 건져 올렸죠. 어때요? 벌써 빠져들고 싶죠? 뭘 망설여요. 그럼 빠져봅시다!! 爭 點 討 論 현대인들이 냉·난방을 하거나 밝은 조명을 이용하는 등 쾌적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전기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나 수력, 원자력과 같은 에너지원도 필요하죠. 그런데 화석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며 국제 유가는 항상 불안하기만 합니다. 공해 없는 대체에너지의 개발은 아직도 요원해 보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적은 연료로 값싼 에너지를 공급하는 대안으로 원자력은 급부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자폭탄의 참상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지금, 원자력 발전은 이대로 지속되어도 좋은 걸까요? 원자력 발전의 지속여부에 대한 논의를 통해 지구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정윤희 상임연구원 <생 각 열 기> 원자력이라고 하면 여러분들은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나요? 우리 생활을 쾌적하게 해주는 에너지원?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예측불능의 물질? 이 둘 사이에 우리의 생각은 어디쯤 있는지 알아봅시다. 원자력하면 떠오르는 건? ♣ 다음은 원자력 관련 홍보 광보입니다. <광고1> 여: 아세요? 자연에서도 연간 240밀리램의 방사선이 나온다는 사실. 상쾌한 바람 120밀리램. 파란하늘 40밀리램. 하지만 원전수거물관리센터는 단 1밀리램. 남: 보이는 것만이 진실입니다. 여: 1밀리램의 안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남: 대한민국 원전수거물관리센터 <광고2> 딸: 엄마, 난 어떻게 태어났어요? 엄마: (당황하며) 아빠한테 물어봐. 딸: 엄마, 이 산수문제 좀 풀어줘요. 엄마: 언니한테 물어봐요. 딸: 원자력을 주제로 글짓기해야 되는데 오빠한테 물어볼까요? 엄마: 어 잠깐! 그런 건 이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우리나라 전기의 40%가 원자력에서 나온단다. 또 우리딸 싱싱한 채소 먹을 수 있게 도와주고 아빠 자동차 바퀴, 언니 컴퓨터까지 안 쓰이는데가 없지. 딸: 이야~ 엄마 최고! 엄마: (웃음) 생활 속 행복 에너지를 엄마가 왜 모르겠니. ♣ 여러분이 원자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위의 광고와 사진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생각해보고 그 이유를 적어봅시다. 원자력은 친환경적이며,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는 정부의 홍보가 계속되고 있지만 마음 한편에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대립지점을 알아보고 앞으로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봅시다. 명제Ⅰ. 원자력 발전은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 대안이다! Yes(계속되어야)지구온난화 문제가 생태계를 위협하는 큰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이산화탄소 등 각종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이 주원인이다. 특히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화석연료로 국내 온실가스의 24% 정도가 배출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온실 가스를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원자력 발전에 있다. 우라늄을 원료로 하는 원자력 발전에서는 오염물질이 거의 배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은 전력 1㎾h를 생산하는 데는 불과 16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석탄은 891g, 천연가스는 356g을 배출한다. 원자력은 온실가스 방출 면에서 해안풍력이나 소수력(小水力)과 비슷할 정도로 청정에너지다. 또한 이산화황이나 산화질소와 같은 산성비 유발 물질도 배출하지 않는다. 현재 전 세계는 기후변화 협약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의무화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화석연료 사용 비중이 적지 않아 이산화탄소 증가율이 세계 1위인 상황이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전력 소비의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이는 길만이 온실 가스를 감축하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No(중단되어야)원자력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라는 주장은 에너지 발전과정만을 단순 비교한 오해다.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가 우라늄 채굴과 발전소 설비 건설 및 운영, 폐기물 처리 과정 등에서 발생한다. 또한 점차 농도가 낮은 광맥에서 우라늄을 추출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향후 더 많은 화석연료를 소모할 것이다. 무엇보다 원자력은 다른 에너지원과 큰 차이가 있다. 원자력을 제외한 생물자원, 풍력, 수력, 화석연료 등 다른 에너지원은 모두 태양에너지로부터 변형된 것이다. 하지만 핵에너지는 물질자체의 내부 구조를 변형하여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에너지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핵에너지의 사용은 지구에너지의 총량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증가로 인해 나타날 지구의 온도평형 파괴와 이로 인한 기후 변화는 예측하기 힘든 심각한 환경파괴를 불러올 것이다. 또한 원자력은 대량의 방사능과 핵폐기물을 유발한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환경문제의 주범이라고 말하면서, 방사능은 별게 아닌 것인가? 방사능과 온실가스는 예측불가능성과 특수성에 있어 비교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명제Ⅱ. 원자력은 값싸게 대량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경제적 에너지다! 명제Ⅲ. 원자력 발전은 매우 안전하며, 폐기물 관리 역시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명제Ⅳ. 우리나라 현실에서 원전의 개발과 확충은 불가피하다! <쟁 점 이 술 술~> 원자력 발전은 이미 우리에게도 친숙한 것이지만 정작 우리는 원자력 발전에 대해 잘 모르거나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원자력이 실제 생활에 쓰이게 된 경위와 발전현황 등을 알아봅시다. 1. 원자력 발전이란 무엇인가요? 원자력 발전이란 핵분열 반응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여 가정이나 산업체에 공급하는 것을 말해요. 원래 발전(發電)이란 역학에너지나 열에너지 등을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화력발전은 화석연료를 연소시켜서 얻는 열에너지를, 수력 발전은 물의 낙차를 크게 하여 떨어뜨렸을 때 생기는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킨 것이죠. 원자력발전 역시 물을 끓여서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발전을 한다는 점에서 다른 발전방식과 원리가 같지만, 물을 끓이기 위한 에너지원을 핵분열 반응에서 얻는다는 것이 특이점이에요. 1942년 핵분열 연쇄반응이 발견된 이후 핵에너지는 계속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고, 1954년 구소련에 세계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가 생겨난 이후 전 세계에 원자력 발전 기술이 퍼져 나갔어요. 2. 원자력 발전이 세계적으로 보급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당초 핵에너지에 대한 연구는 핵무기 개발이라는 군사적 목적이 컸어요. 그러나 1953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원자력의 평화적이고 상업적 이용을 선언한 “평화를 위한 원자(Atoms for Peace)” 선언을 계기로 원자력 발전의 상업적 이용시대가 열렸어요. 특히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세계 각국에서는 에너지 다변화 정책 차원에서 원자력 발전이 장려되었지요. 그러나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에서 냉각수유실 사고가 발생하고,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지역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는 등, 사고가 잇따르자 선진국을 중심으로 원자력에 회의적인 움직임이 대두되고, 원전을 반대하는 환경단체 등의 압력도 커졌죠. 미국은 스리마일 원전사고 이후 원전을 추가 건립하지 않고 있으며 유럽을 중심으로 원자력 개발을 중단하고 대체 에너지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기도 했죠. 3. 현재 세계 각국의 원자력 발전 현황은 어떤가요? 현재 세계의 전력 수요 중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16% 정도예요. 국가별로 살펴보면 미국이 전력 수요의 약 20%, 일본과 독일은 25%, 스위스는 40%, 벨기에는 60%, 프랑스는 75% 정도를 차지하고 있죠. 원전은 미국이 104기를 보유하고 있는 등 북미나 서유럽의 선진국에 많고 최근에는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원전이 늘고 있어요. 최근에 건설된 31기 원전 중 22기가 아시아에서 건설된 것이죠. 그러나 스웨덴, 스위스, 독일 등 서유럽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원자력발전소를 폐지하거나 신규 원자력 사업을 중단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스웨덴은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폐지하기로 했고, 독일도 2018년까지 기존의 원자력 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기로 했죠. 이들 국가는 원자력 대신 풍력이나 태양열과 같은 대체에너지 개발, 에너지의 효율적 소비를 위한 연구 개발에 더 많은 자본을 투여하고 있어요. 원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세계적이지만 미국은 부시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안정적 전기 공급을 위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신규 원전 계획을 검토하고 있어요. 중국도 에너지 수요가 급증할 것을 대비해 추가 원전건설 계획을 수립하고 있죠. 일본도 잦은 지진으로 원전시설에 대한 불안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원전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최근의 고유가 경향 등 에너지 불안과 원자력 안전 기술의 발달 등의 이유로 서유럽 일부 국가에서도 원자력 발전을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있기도 해요. 4.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우리나라는 1955년 미국과 ‘원자력 협정(원자력의 비군사적 이용에 관한 한미간 협력협정)’을 맺고 1978년에 국내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인 고리1호기가 가동되면서 본격적인 원자력 발전의 시대가 열렸어요. 이후 지금까지 원자력 발전량이 세계 6위에 이를 만큼 원자력사업이 초고속으로 성장하였어요. 이것은 8~90년대의 고도 성장기에 원자력에너지의 이용을 한국 경제발전의 핵심 원동력으로 보고 정부가 막대한 지원을 했기 때문이죠. 5. 현재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의 현황은 어떤가요? 정부의 기본적인 방침은 원자력에너지에 우선적인 비중을 두면서 에너지 공급을 지속적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에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고리, 월성, 영광, 울진 등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으며 추가로 원전을 건설하여 2015년까지 총 26기의 원전을 가동할 계획이에요. 이외에도 원자력 선진국인 프랑스 및 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선두 기술 확보, 중국, 터키 등과의 기술협력을 통한 동남아시아로의 원자력 기술 수출에도 의욕적인 상황이죠. 그러나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부지 확보 문제, 새로운 원전건설의 입지 곤란, 원전의 잦은 고장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어요. 우리나라는 현재 전체 전력 소비량의 40%이상을 원자력 발전에서 얻고 있지만 국내에서도 원전 추가 건립에 대한 찬반여론이 맞서는 등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상태예요.

<통계로 세상보기> 남녀 임금격차는 심화되지 않았나?

[가]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나 대기업 남녀의 임금격차는 지난 5년간 50% 이상 더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들이 관리직보다는 저임금의 생산직에 집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승진에서 밀려 고위직에 진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풀이됐다. 50개 대기업들이 제출한 2000년과 2005년 상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남녀 직원 임금 격차는 2000년 상반기 월평균 106만 1천원에서 2005년 상반기 월평균 162만 1천원으로5 2.8% 확대됐다. 이들 50개 대기업에서 2000년 상반기 남성 임금은 월평균 280만 7천원, 여성임금은 174만 6천원이었는데, 2005년 상반기에는 남성이 424만 6천원, 여성이 262만 5천원으로 전반적으로 임금이 증가한 가운데 남성의 임금 상승 폭이 훨씬 컸다. 남녀 간 임금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고액의 임금을 받는 간부나 임원으로 승진하는 여성의 비율이 낮고 상당수의 여성들은 회사를 일찍 그만두어 나이가 어린 여성 직원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나]제시문 [가]의 기사는 성별 임금격차가 심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기사를 읽은 규선이는 기사에 소개된 자료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은 표를 작성하고, 이를 근거로 남녀 임금 차이가 그다지 심화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였다.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퍼센트 어떤 회사의 부장 월급이 200만원이고 평직원의 월급이 100만원이라 가정해 보죠. 이 차이를 퍼센트로 표현해 볼까요? 그럴 때 다음의 두 가지 유형이 가능해요. - 부장의 월급이 평직원의 월급보다 100% 많다. - 평직원의 월급이 부장의 월급보다 50% 적다. 위의 문장은 평직원의 월급을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고 아래 문장은 부장의 월급을 기준으로 산출한 거예요. 두 표현은 모두 틀린내용이 아니죠. 단지 기준을 무엇으로 했느냐에 따라 표현이 주는 느낌이 다를 뿐이에요. 부장과 평직원의 월급 차이를 강조하고 싶은 사람은 위의 표현을 사용할 테고, 월급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은 아래 표현을 사용하겠죠. 이처럼 퍼센트란 산출한 기준이나 방식, 의도에 따라 같은 현상도 달리 표현될 수 있어요. 때문에 특정 상황에서 퍼센트나 원데이터의 크기 중 무엇을 비교해야 하는지, 퍼센트를 산출한 기준은 무엇인지, 서로 비교할 수 있는 퍼센트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남녀 임금격차는 그리 심화되지 않았다? 문제는 우선 규선이가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주어진 자료를 활용해 정리해 보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규선이의 주장은 [나]에 제시된 것처럼 명료해요. 즉 기사의 주장과 달리 남녀의 임금 격차가 2000년에 비해 2005년이 그다지 심화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통상한 나라의 남녀 임금 격차를 설명할 때 남성 임금 대비 여성의 임금이 몇 퍼센트 정도인지 말하곤 하는데 규선이는 그런 방식으로 2000년과 2005년을 비교하고 있어요. 즉 남녀임금비가 2000년에 62.2%였고, 2005년에 61.8%니 그 차이가 단지 0.4%포인트 정도일 뿐이라는 생각이죠. 다소 악화되었다고 말할순 있지만 매우 심각하게 그 차이가 벌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에요. 실제 제시문 [가]의 기사에서 남녀 임금 격차가 50%나 더 벌어 졌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지나친 호들갑이라는 것이 규선이의 주장이죠. 하지만 다음과 같은 경우를 살펴보도록 해요.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서 사장이하 모든 직원들의 월급을 동일하게 10% 인상하기로 결정했어요. 이 말을 들으면 모두 동일한 월급인상이라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하지만 원 대상의 기준 크기가 매우 큰 차이가있다면 실제 상황은 달라지죠. 즉 평직원의 월급이 100만원이라면 10% 이상으로 10만원이 인상되지만, 사장의 월급이 1000만원이라면 10% 인상분은 100만원이 되죠. 동일한 10% 인상이지만 원 기준액의 차이가 큰 경우그 차이는 90만원이나 돼요.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사장의 월급과 평직원의 월급 차이는 점차 격차가 크게 벌어지죠. 매우 작은 퍼센트의 차이도 큰 변화일 수 있어 문제의 또다른 요구는 규선이의 주장이 타당한지 밝히라는 거예요. 규선이의 계산방식과 그 수치에는 사실 큰 문제가 없어요. 다만 그 작은 퍼센트의 차이가 진정 작은 차이인지 따져 보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죠. 사실 남성의 평균 임금과 여성의 평균 임금은 애초부터 차이가 존재했어요. 2000년만 해도 100만원이 넘는 차이가 있었죠. 그런 경우라면 만일 임금 인상률이 해마다 동일하게 늘었다고 해도 임금 격차는 더 벌어졌을 거예요. 실제 같은 기간 남성의 평균임금은 143만 9천원 늘었지만 여성의 평균임금은 87만 9천원 늘어나는데 그쳤어요. 금액으로 산출해 보면 그 차이가 결코 작지 않다는걸 알 수 있죠. 만일 남녀의 임금 불평등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해마다 대체로 동일한 임금 인상률을 보여도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거예요. 이처럼 퍼센트를 활용해 주어진 상황을 파악할 때는 원 데이터가 무엇인지,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퍼센트를 산출한 것인지를 함께 분석할 필요가 있어요. 실제 남성 임금 대비 여성의 임금 수준을 보여주는 비율은 현재의 전반적인 임금 수준으로 볼 때 작은변화가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요. 그래서 남녀 임금의 격차와 그 추이를 알아보기 위해 남녀 임금비를 산출할 때 소수점 하나까지 제시하는 것이죠. 소수점 단위의 작은 차이도 의미있는 변화며 결국 큰 차이를 드러낸다는 뜻이에요. 여성의 사회진출 환경은 여전히 열악해 남녀 임금 격차를 보다 정확하고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제시된 방식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뿐 아니라 전체 직원중 여성직원의 비율, 동일 직급내 임금의 차이, 남녀 평균 근속년수 비교, 고위급 임원중 여성의 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어요. 다만 제시문들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명확한 것은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으나 여전히 그 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이에요. 남녀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으며 그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죠. 고액의 임금을 받는 임원이나 간부로 승진하는 여성이 적다는 것은 여성이 회사에서 고위층으로 승진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불평등한 제약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해요. 또한 여성들이 회사를 일찍 그만둔다는 것은 육아 문제에 시달린다는 것이며 이의 해결책을 사회적으로 보장해 주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조성진 유레카논술 책임연구원

<교과서와 논술 2>

국어 교사가 수업을 하다가 영어 단어를 발음하거나 수학 문제를 풀면 학생들은 ‘와’하며 놀란다. 국어 교사는 국어만 잘 가르치는 줄 알았는데 영어나 수학 교과의 내용까지 안다는 것에 놀라는 것이다. 대학교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인데도 아이들은 그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사실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 때 담임 교사가 여러 교과를 가르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다가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오며 교과의 내용이 심화되면서 각 교과의 전공 교사로부터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각 교과를 개별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교과간의 통합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험도 각 교과별로 치루다 보니 국어 시간에 사회나 과학을 생각할 일이 없어졌으며, 오히려 그런 생각은 그 수업에 집중하는데 방해만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각 교과의 내용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를 유기적으로 활용하면 각 교과의 내용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과를 넘어서는 종합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문학 시간에 배우는 박지원의 ‘허생전’을 통해서 오늘날의 경제 문제를 떠올릴 수 있으며, 고려 가요 ‘청산별곡’을 배우면서 국사 시간에 배운 지식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논술 시험에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여러 개의 제시문이 출제되는데, 고전(古典), 시(詩), 소설, 그림, 노래 가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교과서에서 발췌된다. 특히 통합교과에서 강조하는 것이 이러한 교과 간의 통합이다. 하나의 주제를 단지 한 교과가 아니라 여러 교과의 관점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과 간의 통합적인 내용을 어떻게 지도하면 될까? 예를 들어 ‘황사’를 주제로 수업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우선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전부 꺼내도록 하여 ‘황사’와 관련 있는 내용을 모두 찾도록 한다. 이 때 학생 혼자서 할 수도 있지만 분량이 많으므로 모둠별로 하는 것이 좋다. 모둠별로 교과서를 나누어서 하면 짧은 시간에 관련된 내용을 금세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발췌한 내용을 모두 모둠별 발표지에 적고 이를 분석하도록 한다. 분명 교과의 특성상 그 주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방식이 다를 것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교과 간의 비교 분석을 통해서 그 주제에 대한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사고를 기를 수 있다. 그리고 분석한 내용을 적은 모둠별 발표지를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모두 나누어 준 후에 모둠별로 발표하도록 한다. 이 때 학생들은 다른 모둠의 발표 내용과 자기 모둠의 분석 내용에 대한 비교 및 질의응답을 통해서 비판적인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 ◇ ‘황사’와 관련된 교과서 내용 예시 - 사회:Ⅳ. 환경문제와 지역문제. 1. 환경 문제의 확산. (3) 지구적 차원의 환경 문제와 대책 - 세계지리:Ⅵ. 세계의 과제. 1. 환경 문제. (2) 세계적인 규모의 환경 문제 - 사회문화:Ⅴ. 현대 사회와 사회 문제. 2. 현대 사회 문제와 대책. (7) 우리의 환경, 하나뿐인 지구 - 시민윤리:Ⅱ. 현대 사회 문제와 시민 윤리. 1. 생명 존중과 환경 윤리. (2) 환경과 윤리 - 문학:토실을 허문 데 대한 설(이규보) 실제로 여러 개의 교과서를 이용해 수업을 해보니 학생들 모두 깜짝 놀랐었다. 자신들이 배운 내용이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학생만이 아니라 교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서가 아닌 다른 교과서의 내용을 볼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교사나 학생 모두 하나의 교과서가 아니라 여러 개의 교과서를 두루 살펴야 한다. 교사는 다른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토대로 그 교과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시킬 수 있으며, 학생들은 교과 간의 지식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보다 종합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신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수업 시간에 여러 개의 교과서를 펼쳐놓고 수업을 진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각 교과 간에 관련되어 있는 주제를 씨줄과 날줄로 섬세하게 조직하여 나간다면, 세상에 대한 학생들의 관점과 시각은 보다 큰 깊이와 넓은 폭을 갖게 /이세영 수성고 교사

산문으로 쓴 환상시 -왕자의 죽음 편

알퐁스 도데 (Alphonse Daudet, 1840~1897)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프로방스 출생. 사업가인 아버지의 파산으로, 중학교에서 사환으로 일하면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플로베르, 졸라, 공쿠르, 투르게네프와 친교를 맺었는데, 이들과 더불어 자연주의파에 속한다. 그의 작품은 천부적인 시적 정서와 고요하고 아름다운 서정적인 글로 날카로운 풍자와 짙은 인간미를 안겨준다. 주요작품으로는 단편집 《풍차 방앗간 소식》 《월요 이야기》, 그리고 비제가 작곡하여 유명해진 희곡 <아를르의 여인> 등이 있다. 어린 왕자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왕국의 모든 교회에서는 왕자의 회복을 빌며 낮이나 밤이나 성체를 내어놓고, 커다란 초에 불을 켜 놓았습니다. 고색 창연한 거리는 고요하고 쓸쓸했으며 교회의 종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마차들도 천천히 다녔습니다. 궁궐 주위의 호기심 많은 백성들은 궁금해서 창살 틈으로, 위엄있는 태도로 궁정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금줄단 뚱뚱보 위병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성안은 온통 들끓고 있었습니다. 시종들과 청지기들이 종종걸음으로 대리석 층계를 오르내립니다. 현관에는 비단옷을 입은 신하들과 시종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들은 이리 저리 몰려다니며 새로운 소식을 알아내려고 수군거립니다. 넓은 계단위에서는 눈물에 젖은 시녀들이 수를 놓은 고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서로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오렌지 온실 안에서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거듭 회합을 합니다. 그들의 긴 검정 소매가 움직이고, 길게늘인 가발이 점잖게 수그러지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입니다. 사부와 시종 무관은 문 앞에서 서성대며 의사들의 발표를 기다립니다. 요리사들이 그들 곁을 인사도 없이 지나갑니다. 시종은 이교도처럼 욕설을 퍼붓고, 사부는 호라티우스의 시를 읊습니다. 한편 저편 마구간 쪽에서는 구슬픈 말 울음 소리가 길게 들려옵니다. 그것은 마부들이 잊고 밥을 주지 않아 텅빈 구유 앞에서 슬프게 울부짖고 있는 왕자의 밤색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어디 계신가요? 임금님은 성끝에 있는 방안에 홀로 앉아 계십니다. 임금님들이란 남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왕비님은 다릅니다. 여왕님은 어린 왕자의 머리맡에 앉아 고운 얼굴이 눈물에 젖은 채 비천한 비단장수처럼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흐느껴 울고 계십니다. 레이스가 달린 침대에는 어린 왕자가, 깔고 누운 요보다도 더 흰 얼굴로 눈을 감은채 누워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어머니가 울고 있는 것을 보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마마마, 왜울고계세요? 정말 제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왕비님은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어마마마, 제발 울지 마세요. 제가 왕자라는 것을 잊으셨군요. 왕자가 이렇게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잊으셨어요?” 왕비님은 더욱더 흐느껴 웁니다. 그래서 왕자도 무서워집니다. “그만두세요!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절대로 죽음이 여기까지 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을 거예요……. 당장 사십명의 아주 힘센 근위병을 오게 해서 침대 주위를 둘러싸게 해 주세요……. 대포 백 문을 창밑에 배치하여 도화선에 불을 붙인채, 밤이나 낮이나 지키게 해 주세요. 그래도 죽음이 접근해 올때는 호통을 쳐 줄거야!” 왕자를 즐겁게 해 주려고 왕비님은 손짓을 합니다. 당장 궁정 안으로 커다란 대포가 굴러 오는 소리가 들리고 창을 든 장대한 사십 명의 근위병들이 몰려와 방 안에 둘러섭니다. 이들은 수염이 허옇게 된 노병들 입니다. 왕자는 그들을 보자 손뼉을 칩니다. 왕자는 그들 중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로뎅! 로뎅” 그가 침대 앞으로 한걸음 나섭니다. “로뎅, 난 당신이 참 좋아……. 당신의 장검을 좀 보여줘. 죽음이 나를 잡으려고 하면 죽여버려야 하겠지?” 로뎅이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노병의 거무죽죽한 뺨위에는 굵은 눈물이 두줄 흘러 내립니다. 이때, 궁정사제가 왕자 곁으로 가까이 오더니 십자가를 보이며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합니다. 어린 왕자는 아주 놀란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더니 갑자기 사제의 말을 가로막습니다. “사제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친구 베포 녀석에게 돈을 많이 주고 내 대신 죽게 할 수는 없을까요?” 사제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 합니다. 어린 왕자는 더욱더 놀란 얼굴을 합니다. 사제의 이야기가 다 끝나자, 어린 왕자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제님의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 나를 아주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저 하늘 위 별들의 낙원에 가도 나는 역시 왕자일 터이니 까 안심이 되는군요……. 하느님은 나의 친척이니 나를 신분에 맞도록 대우할 것을 잊으시진 않겠죠.” 그리고는 어머니 쪽으로 몸을 돌리며 왕자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제 가장 고운 옷들, 흰 담비 가죽저고리와 우단으로 만든 무도화를 가져오라고 하세요! 왕자의 옷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천사들에게 뽐내고 싶어요.” 사제는 세 번째 어린 왕자를 향해 몸을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왕자는 화를 내며 말을 가로 막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왕자란 아무것도 아니군요!” 그리고는 더 이상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벽을 향해 돌아눕더니, 왕자는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 > 짧은 얘기 긴 여운 오늘 소개한 도데의 <산문으로 쓴 환상시>에는 두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그중 오늘 실린 얘기는 ‘왕자의 죽음’ 입니다. 소설은‘어린 왕자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부러울 것 없는 왕자가 그만 병이 들었는데, 쉽게 나을 병이 아니어서 죽음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짧은 소설에서 주목해 볼 것은 왕자의 생각이 변해가는 과정입니다. 왕자는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재물, 능력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사제의 말을 들으면서 죽음이란 어떠한 힘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입니다. 그렇다면 신분을 드러내주는 의복으로 천국에서라도 자신이 누리던 것을 누리려 합니다. 그러자 또 사제가 뭐라 말하고, 왕자는 마침내‘그렇다면 왕자란 아무것도 아니군요!’하며 흐느껴 울지요. 아주 짧은 이야기지만 이 속에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종교적, 철학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사제는 과연 뭐라고 왕자에게 말했을까요? 작가가 되어 사제가 왕자에게 들려주었을 법한 대사를 적어보면 어떨까요?

비빔밥 논술

국가보안법은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국가보안법에 어긋난 행동이 어떤 것인지 꼽아보고 국가보안법이 무엇을 규제하는지 생각해봅시다. 1.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할 것을 알면서도 그런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고 있습니다. 다음 중 그러한 국가보안법에 어긋난 행동을 한 사람이 있는지 골라봅시다. ● 군사작전지휘권을 타국에게 헌납한 모 대통령 ●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자 ●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며 시위를 한 광주 시민 ●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노부부 ● 등록금 투쟁을 벌이는 한총련 학생 ● 북한 수재민을 돕기 위해 모금 운동을 벌인 회사원 2. 1번에서 지목한 사람의 행동이 왜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고 생각했는지 써봅시다. 또한 한 명도 없었다면 왜 그렇게 판단한 것인지 간략히 적어봅시다. < Yes / No > 남북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데에 국가보안법이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가보안법이 오히려 남북 평화체제를 구상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남북 화해시대,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할까요, 유지되어야 할까요? 명제Ⅰ. 국가보안법은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근본 원리에 어긋난다! (Yes) (폐지되어야) 자유민주주의는 다양한 사상이 자유롭게 서로 비판하고 토론하며 새로운 합의점을 만들어 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또한 사상을 둘러싼 논쟁과 검증은 사상의 시장에 맡기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이는 우리 헌법의 핵심이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 근본 원리에 어긋난다. 국가보안법 아래에서는 정치·사상의 자유, 결사의 자유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마저도 봉쇄하고 있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개인의 내면까지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헌법이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는 자유권을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은 명백한 위헌이다. 국가보안법 존속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가안보를 위해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국가안보가 중요해도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근본원리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서 군림하는 현실은 하루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No) (유지되어야) 자유민주주의라 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저해하는 행위의 자유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반국가사상에서 반국가활동이 시작되기 때문에 국가가 특별법을 통해 반국가 사상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히 일부 사상과 행위를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국가보안법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서도 국가보안법은 필요하다. 국가의 존폐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가 지켜질리 없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위헌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가보안법의 규정들은 사실상 헌법에 기초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헌법을 근거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의 합헌성을 인정했다. 특히 대법원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인권과 자유)을 부인하는 자유까지 허용한다는 것은 적진에서 무장해제를 하는 것과 같다”고 선언한바 있다. 명제Ⅱ. 현실적으로 국가보안법은 정권안보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명제Ⅲ. 국가안보는 형법으로도 충분히 지켜낼 수 있다! 명제Ⅳ. 남북 평화체제가 논의되는 현 시점에서 국가보안법은 시대착오적이다! <쟁점이 술술~> 2007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평화체제를 위한 논의가 더없이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동시에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국가보안법이란 무엇인지, 최근 국가보안법 논란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1.국가보안법이란 무엇인가요? 국가보안법은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어요. 특히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현실은 국가보안법의 존재 근거가 되었죠.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그 내용상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침해하는 법이며 오랜 기간 정권의 안위를 위해 악용되었다는 이유로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요. 반면 여전히 남북이 대치하고 있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은 필요하며 일부 기본권의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입장도 적지 않죠. 국가보안법의 존폐를 둘러싸고 있는 입장들을 보면 먼저 국가보안법을 완전 폐지해야 한다는 측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되 형법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는 측이 있어요. 또한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을 개정하는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는 입장도 있고 현행법을 그대로 존치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요. 이러한 입장간의 논란은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이후, 특히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확산되어 왔어요. 그에 따라 국가보안법은 수차례 개정되며 모습을 달리해 왔죠. 2.국가보안법은 어떻게 변해왔나요?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여순사건’ 직후 제정, 공포되었어요. 초기에는 한시적인 목적으로 내란행위에 대한 처벌에 중점을 두었죠. 일제시대 독립운동 탄압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치안유지법’을 내용상 모태로 하고 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도 해요. 국가보안법이 탄생하고 다음해에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려 18,621명이 투옥되었고 132개 정당 혹은 사회단체가 해산되기도 했죠. 4·19 혁명과 5·16을 거치면서 개정, 확대되었고 박정희 시대에는 국가보안법 외 반공법이 별도로 제정되기도 했어요. 12·12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 국가보안법은 반공법과 통합, 확대되어 무소불위의 법으로 변모했죠. 90년대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개정 혹은 폐지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몇 차례의 개정은 소폭 개정에 그쳤어요. 2004년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제출되어 논란에 불이 붙기도 했지만 반발에 부딪혀 현재는 뒤로 미루어진 상태예요. 악용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지만 2003년 이후 현재까지 국가보안법 관련 구속자수는 150여 명이 넘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3.국가보안법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요?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와 이적단체를 규정하고 이들을 이롭게 하거나 찬양, 회합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특히 제7조는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에 대한 처벌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역대 정권에 의해 정치적 반대세력을 억압하는 처벌 수단으로 활용되곤 했어요. 조항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고 애매해 마음먹기에 따라 적용범위가 매우 넓었던 거죠. 이 조항은 헌법상의 사상·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해요. 또한 제10조는 이른바 불고 지죄로 반인륜적인 조항이라는 지적이 많아요.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내용으로 볼 때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어요.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화해 기조가 무르익고 있는 지금 국가보안법 존폐론이 다시 거론되고 있어요. 4.최근 들어 왜 국가보안법 존폐론이 다시 불붙고 있나요? 2007 남북 정상회담은 ‘10·4 공동선언’을 이끌었어요. ‘10·4 공동선언’은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공동의 번영을 실현하기 위해 8개 항에 걸친 합의사항을 담고 있어요. 이로 인해 남북관계는 단순한 교류 협력 단계를 넘어 군사적 대결관계를 해소하고 경제공동체를 지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죠. 그런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요. ‘10·4 공동선언’의 상당수가 현행 국가보안법 아래에서 불법행위이기 때문이죠. 특히 5항에 담긴 통신의 문제, 6항의 북한을 통한 백두산 관광, 7항의 영상편지 교환 및 남북의 상부상조, 8항의 해외동포의 권익과 이익을 위한 협력은 국가보안법과 직접 충돌해요. 5.다른 나라에도 국가보안법이 있나요? 다른 나라에서는 국가안보 관련 사항을 형법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내용과 집행에 있어 엄격함을 유지해 실제 처벌되는 경우는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죠. 미국의 경우 매카시 열풍 때 공산주의를 탄압하기 위해 만든 국가안보법이 있으나 사실상 사문화 혹은 위헌판정을 받은 상태예요. 일본의 경우 파괴활동방지법이라는 것이 있지만 국가보안법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요. 사실상 국가보안법과 같은 법을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없는 셈이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별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어요.

<교과서와 논술 1>

2000년 이후 논술 고사의 제시문으로 가장 많이 활용된 책은 ‘장자’로 총 9번 출제되었다. 동양 고전인 ‘논어’(5회) ‘맹자’(4회)가 그 다음이며, 서양고전 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4회)과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3회)가 있다. 전부 동서양의 고전(古典)으로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배우지 않는 책들이다. 그러다보니 논술 하면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고, 지금도 많은 학교와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힌다. 그러나 강제로 고전을 읽히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에게 독(毒)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논술은 학생들의 사고력을 신장시켜 주기 위한 교육이다. 다시 말해 학생들의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지, 암기력이나 독해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종합적인 사고력을 위해서는 암기력이나 독해력도 필요하다. 아무 것도 없는 무(無)에서 새로운 생각을 해 낼 수는 없으므로,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수 있는 독해력이 있어야 하며, 그러한 지식들을 구조화해서 머릿속에 저장할 수 있는 암기력도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대학 논술 시험에서는 학생들에게 논제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제시문을 함께 출제해왔다. 그러나 그 제시문의 출전이 대부분 고전이었고, 난해한 지문을 독해하지 못한 수많은 학생들이 논술에 손도 대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따라서 그동안의 논술 시험은 어려운 제시문을 독해할 수 있는가 없는 가의 독해시험이었다. 그러나 논술 시험이 변하고 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15개 주요 대학의 2008학년도 논술 모의고사 제시문(인문계열)을 보면 교과서 비중이 29%이다. 지금까지 교과서 비중이 2.9%였던 것에 비하면 10배나 늘어난 것이다. 심지어 서울대는 교과서에서 47.1%가 나왔으며, 경희대(45.5%), 건국대(33.3%)도 교과서 비중이 높아졌다. 논술 시험이 학생들의 사고력을 측정한다는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고전 지문을 읽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심층적, 다각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측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화되는 논술 시험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여전히 학생들에게 고전을 강제로 읽히는 것은 학생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 물론 학생이 충분한 독해력을 갖고 있어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정도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지도해 본 결과 그 정도의 독해력을 갖고 있는 학생은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전 지문을 독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고전 읽기를 강요하는 것은 논술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두려움마저 갖게 한다. 또한 논술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갖게 되어 논술이란 어려운 고전의 배경지식을 암기하여 서술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논술 시험에서 자신이 아는 주제가 나오게 되면 무조건 비슷한 배경지식을 서술하는데, 이는 대부분 논점을 이탈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에 비해 교과서는 논술의 보고(報告)이다. 그동안 논술 시험에 나왔던 수많은 주제들이 이미 교과서에 나와 있다. 이 말이 믿기 어렵다면 고등학교 사회, 윤리, 문학 교과서들을 한번 펴 보시기를 바란다. 어떠한 주제도 관련된 내용을 교과서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교과서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적당한 수준의 어휘로 서술되어 있어 학생들이 쉽게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독해력에 구애받지 않고 학생들의 사고력을 신장시켜 줄 수 있다. 그리고 교과서에는 이미 논술 문제가 들어 있다. 많은 분들이 이를 놓치고 있는데, 교과서에 들어 있는 학습 활동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논술 문제이다. 자신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의 학습 활동만 꾸준히 풀어본다면 논술 준비를 따로 안 해도 될 정도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시사해 준다. 논술이란 따로 시간을 내서 혹은 학원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정규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통해서 충분히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려운 고전을 헤매며 논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키우는 대신, 늘 손에 들고 다녔던 교과서를 꼼꼼히 읽고 학습활동을 풀어본다면 논술에 대한 자신감과 실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세영 수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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