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안보바탕 남북관계 진전 제시

김대중 대통령이 17일 새해 첫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금년도 대북정책 운영방향을 ‘확고한 안보를 바탕으로한 내실있는 남북관계 진전’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물꼬가 트인 남북관계를 올해는 한차원 높여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그 양대 축은 교류협력과 긴장완화다. 이 토대 위에서 정부는 ▲남북 화해협력증진 ▲한반도 평화체제 기반 구축 ▲확고한 안보체제 유지를 올해 통일·안보정책의 3대 기조로 설정했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 기반 구축은 남북이 중심이 되고 미·중이 이를 지지하는 형식의 4자회담을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미·중으로부터 상당부분 이해를 구한 상태이며, 북한이 최종적인 입장을 정하게 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 외교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평화체제 구축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가장 확실한 보증서라는 것이 김 대통령의 생각이며, 이에 대한 논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올 봄으로 예상되는 서울 답방에서 뚜렷한 결론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김 대통령의 대북정책 방향은 ‘북한은 변하고 있다’는 것에 기반을 두고있다.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신사고’를 주창하고, 김 위원장이 중국의 대표적 개방지역인 상하이 등지를 방문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제2의 중국’을 지향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점에 통일·외교 전문가들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지난 15일 북한이 네덜란드와 국교수립 사실을 발표하고, 이어 터키, 스웨덴 캐나다, 벨기에 등과도 수교합의를 곧 발표할 예정이며, 독일, 그리스, 룩셈부르크, 뉴질랜드 등과는 수교협의를 진행중인 것도 북한이 국제사회에 적극 진출해 개혁·개방의 길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결국 지구상 유일의 냉전지대로 불리는 한반도에도 확연한 해빙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얘기다. 김 대통령이 지난 15일 성우회 오찬에서 “냉전은 끝났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같은 화해 분위기는 확고한 안보가 바탕이 되지 않고는 추진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김 대통령의 판단이다. 김 대통령이 이날 안전보장회의에서 “자주국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 “한·미·일공조를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해야 한다”, “특히 한·미간 안보협력은 통일 후까지도 계속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안보를 강조한 것은 이같은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볼수 있다.

김대통령, 국가보안법 개정 불가피성 역설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이미지도 개선하고 최고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국내 과격단체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상의 고무·찬양 정도는 없애야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며 국가보안법 개정의 불가피성을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날 낮 예비역 장성모임인 성우회(회장 정승화) 회원들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은 북한 비위 맞추기를 위한 것이 절대 아니며 일부 오·악용되고 있는 조항을 고치려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특히 김 대통령은 “유엔이 91년부터 4차례에 걸쳐 국가보안법 폐지 보고서를 냈고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과 미 국무부도 폐지를 권유하고 있다”면서 “보안법이 우리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대통령은 “나라의 최대사는 안보이고 대통령의 최고 책임도 국가안보이며 국가안보는 우리의 공동목표”라면서 “나는 하늘이 두쪽나도 대한민국이 공산화되는 것을 용납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김 대통령은 “북한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북한은 신년사에서 ‘신사고’를 말했고 중국 모델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북한은 새출발을 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모든 것은 국민여론을 받들어 하겠다”면서 “남북문제에 대해 여러분이 원하면 정부가 대화할 것”이라며 국민의 동의속에 대북정책을 펴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앞서 정승화 성우회 회장은 오찬 인사말에서 “정가 일부에서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를 논의하고 있고 대통령의 말씀도 있어 심히 우려된다”면서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보안법을 개폐하는 것은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전체 회원의 뜻으로 개정반대 의사를 전달했다. /유제원기자 jwyoo@kgib.co.kr

김대통령 임시국회 참여지시 배경에 관심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이 소집한 임시국회에 여당이 참여할 것을 이례적으로 지시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이같은 김 대통령의 지시는 지난 11일 내외신 연두기자회견에서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강력한 정부론’을 피력한데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김 대통령이 13일 김중권 민주당 대표에게 등원 지시를 내리면서 “무슨 목적이든 합법적 절차와 과정으로 국회가 열렸다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면서 “법을 지키자고 하면서 합법적으로 열린 임시국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 것은 이같은 분석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또한 김 대통령으로서는 ‘방탄국회’적 성격에도 불구, 임시국회 소집이 국회법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인 만큼 더욱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이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국회법 개정안을 상정조차 못하도록 막았던 것에 대해 국회법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라고 비판해온 여당 입장에서 정당한 국회법 절차에 따른 임시국회를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국회법 존중’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야당에 대한 또 하나의 경고 메시지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여당에게 불리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합법적인 절차와 과정은 존중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역으로 야당에 대해서도 법을 지킬 것을 강하게 촉구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안기부 예산의 구여권 지원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에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대한 우회적 질타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이같은 지시가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어떻게든 강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를 미루거나 무산시키기를 원하는 한나라당의 입장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김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법절차 존중’의 메시지속에 함축돼 있다는 것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여론의 비판을 무릅쓰고 민주당 의원의 추가이적을 감행한 것도 강삼재 의원 체포동의안을 빠른 시일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말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 했다.

클린턴대통령 노근리사건 유감표명 의미

한미 양국이 12일 노근리사건 조사 결과를 공동발표하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성명을 통해 ‘깊은 유감(deeply regret)’을 표명함으로써 한국전쟁 당시에 발생한 노근리 사건 해결이 일단락됐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미국민을 대신해 1950년 7월 말 노근리에서 한국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은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사과(apology)’라는 표현대신 ‘유감(regret)’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그동안 피해주민들과 함께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해온 우리 정부는 이를 ‘사실상의 사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측 정부대책단장인 안병우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노근리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클린턴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사과의 의미가 담긴 유감의 표시로 해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대책단의 다른 관계자도 “외교적으로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50년이 지난 전쟁중의 사건에 대해 ‘사과’한 일은 거의 없었다”며 “깊은 유감이란 표현은 사실상의 사과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국측 대책단이 노근리사건 조사결과 발표와 관련해 내놓은 각종 자료에 미국 행정부 수반인 클린턴 대통령이 ‘사과’를 했다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고, 이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주석까지 달아놓은 것도 이런 입장 때문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특히 “우리측은 당초 미 육군장관의 사과를 추진해왔으나 클린턴대통령이 직접 ‘깊은 유감’을 표명함으로써 미국 정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해온 우리측의 목표가 달성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우리측이 이처럼 미국측의 사과를 요구해온 것은 최근 매향리 사건,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협상 등을 거치면서 불거져 나온 미국에 대한 국민정서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되나 ‘유감표명’은 기대에 못미치는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반면 미국으로선 사과 보다는 유감 표명이라는 끝내기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부대지휘자의 정식 발포명령 등의 확증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사과하게 될 경우 미군의 책임을 인정하는 셈이 돼 결국 보상과 책임 문제가 뒤따르게 되고, 또 참전군인들의 반발과 명예훼손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측은 협상 과정에서 50년전 전쟁행위중 일어난 민간인 희생자 사건에 대해 15개월씩이나 공식조사를 벌인 것만으로도 큰 성의를 보인 게 아니냐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유감’과 ‘사과’의 중간선인 ‘깊은 유감’이란 표현은 양국 정부가 서로 합의점을 모색할 수 있는 최선의 절충안이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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