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아름다움 조상의 향취 그대로

수리산 초입에서 갈치 저수지가 낮게 펼쳐진 삼거리를 돌아 들어가면 돌과 흙, 기와가 올려진 고풍스런 담장이 보인다. 담을 뚫고나온 굵은 고목이 지난 세월을 말해주는 듯 하다. 집안에 들어서자 마당 가득 피어있는 맨드라미며 백일홍, 옥잠화, 무궁화 등 온갖 꽃들이 손님을 맞는다. 군포시 속달동 수리산 자락에 위치한 동래정씨동래부원군파 종택(경기도문화재자료 제95)은 조선조부터 유학자 집안으로 삼정승(三政丞)을 무려 17명이나 배출한 유서깊은 가문이다. 가문의 위세에 비해 종택은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런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종택은 조선조 문신인 정난종의 큰 아들 정광보가 들어와 살며 지은 집으로 500년이 넘는 나이를 자랑한다. 맞은편 언덕에 자리잡은 아버지의 묘역을 날마다 바라보며 살고 싶었던 걸까. 이후 종택은 정씨 후손이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사는 근거가 됐다. 종택 일대는 사패지(賜牌地, 고려조선조때 임금이 국가에 공을 세운 왕족과 관리에게 주는 토지)로서, 가문의 파시조(派始祖)인 동래군(東來君) 정난종(鄭蘭宗, 1433~1489년)선생묘 및 신도비 외 묘역일원(경기도기념물 제115호)이 자리하고 있다.종택의 사랑채는 고종 14년인 1877년에 지어졌고, 대청마루 종도리에 일부 남아 있는 상량문에 성상즉위칠년(聖上卽位七年)이라고 적힌 점으로 미루어 안채는 사랑채보다 100여년전인 1783년(정조 7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건물. 초당과 외양간은 625전쟁때 소실되고, 사당은 1960년대에 훼손됐으나 최근 복원했다. 방앗간이 있던 바깥 행랑채는 1970년대에 무너졌으나 복구작업을 거쳐 현재는 아담한 종택의 면모를 뽐내고 있다. 가옥 구조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튼ㅁ자 형태의 서북향 집이다. 안채 ㄱ자형 9.75칸, 큰사랑채 ㄴ자형 13.5칸, 작은사랑채 -자형 4.5칸, 광채 -자형 5칸, 마방채 -자형 4칸 규모이다. 사랑채는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큰사랑채는 전면 5칸으로 구성된 전후 툇집으로, 누마루, 마루복도, 행사청 등 평면 구성과 칸의 구성이 독특하여 기능을 중시하는 조선 후기 살림집의 변화를 보여 준다. 현재 동래군파 17대손인 정운석(98)씨가 소유하고 있으며 차남인 정준수씨가 관리하고 있다.8월 12일 오전, 오락가락 하는 소나기를 피해 찾아간 종택에서는 박숙현씨(64)가 마당에 자란 잡풀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박씨는 은행에 다니며 도시생활에 익숙했던 제가 스물아홉에 아무것도 모르고 덜컥 종가집에 시집온 지 벌써 30여년이 넘었다며 이 집은 제게 가보를 잇는 종택보단 자식 넷을 줄줄이 키우고, 남은 여생 남편과 함께 소박하게 살고픈 보금자리라고 소개했다. 박씨는 종부가 아닌, 집안의 둘째 며느리라고 했다. 큰 며느리를 대신해 종택을 지키며 1년 제사만 기제사(忌祭祀), 시향(時享)에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제사까지 10여회가 넘는 제사를 치러내고 있다.시집와서 보름만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죠. 집안 살림도 파악하지 못한 제게 청천벽력같은 일이었지만, 동네 아주머님들이 종가집 살림을 걱정해주고 챙겨주시는 덕에 명절때면 앞 마당이 꽉 찰 정도로 손님이 오고갔죠. 전 지지는 냄새가 담장을 타고 넘어가면 그날이 바로 동네 잔칫날이었어요.250여명이나 되는 종친들과 이웃주민들이 명절때만 되면 종택에 모여 각자의 기복을 빌고, 조상께 예를 다했다는 종갓집 명절 분위기는 요즘엔 보기힘든 풍경이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현대판 며느리들에게 군불때고, 쪼그리고 앉아 하루종일 전을 부치고, 땔감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일년내 묵힌 장으로 구수한 토장국을 끓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버거운 일인게 사실. 그러나 고향을 찾을 아들, 딸들에게 싸 줄 것들을 챙기는 분주한 손길은 종가뿐 아니라 여느 여염집이건 다름없는 명절 풍경이다. 박씨는 비싸고 좋은 물건을 한상 가득 차려내는 것만이 조상에 대한 예절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가족들끼리 한 데 모여 밥 한끼 나누는 것이 바로 명절의 참모습이라는 박씨의 종가의 가르침이 마음에 와닿는 계절이다.

안양을 무대로 삶의 냄새 담아

대한민국 아줌마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많다. 그 중 찌는듯한 무더위 속 구슬땀을 흘리며 연신 엉덩이를 흔들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우리동네 주민센터(구 동사무소)다. 요즘 지자체의 주민센터는 기존의 민원서류를 발급해주던 관공서 이미를 벗고 지역 주민들에게 유익한 문화강좌와 스포츠활동, 도서대여 등을 펼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8월10일, 안양의 비산1동주민자치센터 3층 동아리방에는 고막을 찢는 듯한 신나는 댄스음악에 온몸을 맡긴 20여명의 아줌마들이 그들의 움직임을 여과없이 필름에 담아내는 박찬경씨(45)를 비롯한 촬영스탭들을 쫓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날 촬영분은 센터 취미교실 수강생 중 댄스스포츠초급반의 열띤 댄스현장을 담는 것. 비록 5분 여 밖에 상영되지 않을 짧은 영상이지만, 어색해하는 주부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스탭들의 모습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러나 점차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전문강사의 스탭시범으로 이어지면서 차차차와 룸바코스를 거쳐 절정으로 치달았다.특별할 것 없는 영상이었지만, 1시간 30여분의 촬영을 마치고 나온 스탭들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이열치열이라고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앞에두고 박씨와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제목은 안양이 타이틀 이지만, 딱 꼬집어 안양의 이야기만 싣는 것은 아니예요. 안양시에서는 싫어할지 모르지만 저희 영화가 시 홍보물은 아니니까요. 한국의 현대 도시문화와 그 속에 살아숨쉬지만 잊혀져가는 전통의 향기를 담아내려 하고 있어요. 안양 등으로 대표되는 수도권의 도시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 그 중에서 여성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죠.박씨는 이미 4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신도안과 13분짜리 단편 비행 등을 통해 세간에 정평이 난 미디어작가. 그러나 그가 정작 이름을 날린 건 영화 올드보이, 박쥐 등으로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은 박찬욱 감독(47)이 형이라는 데 있다.형 작품에 10억이 든다면, 제 영화는 100분의 1꼴이예요. 형이 철저히 상업적인 극장용 영화를 만든다면, 저는 1천만원대의 저예산으로 다큐미술 영화제에 출품할 영화를 만들죠. 규모나 성격이 달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안 되는거죠.영화를 만드는 동일업종에 종사하지만, 서로가 바라보는 시야가 다르기 때문에 형과 굳이 비교하려 들지 말아달라는 찬경씨. 형 이름덕에 저절로 홍보가 되는 게 제일 맘에 든다며 오히려 즐거워한다.그런 찬경씨가 이번에 장편영화에 도전장을 냈다. 90여분에 달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 그는 안양시가 도시환경과 시 이미지 개선을 위해 공공예술을 도입, 예술도시를 구현코자 국내외 예술가들을 초청해 영화전시공연을 아우른 제3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2010)에 국내외 예술가들과 함께 참여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9월 추석시즌에 개봉될 영화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We Wish to Reincarnate in Paradise)다.오는 10월2일 개막하는 이번 행사의 개막을 장식할 영화는 문화재와 역사 근대화의 기억, 생산과 일 등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이 뒤섞여 구성됐다. 영화엔 안양중초사지를 발굴하는 60일간의 현장기록이 담기는가 하면, 안양사(寺)에 기거하는 비구니 들의 담담한 일상을 쫓기도 한다. 또한 지난 1988년 22명의 여직공의 목숨을 앗아간 섬유봉제공장 화재사건의 생존자를 찾는 과정을 통해 일상에서 쉽게 지나쳐버리는 자연과 문화의 소중함 그리고 느리게 사는 여유 등을 담았다.또한 이날 진행된 촬영분처럼 대한민국 여성들의 넘치는 끼와 에네르기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현장이 펄떡거리는 활어처럼 생생하게 엮였다. 김예리, 박민영, 김종구, 엄태구 등 전문배우들과 안양지역 학생 및 시민들을 조연배우로 대거 참여기킨 영화는 필름으로 바라본 우리 이웃의 모습도 볼거리다.일정을 마치고 촬영도구를 챙기며 다음 씬 촬영을 위해 부산히 움직이는 스탭들. 다양한 픽션을 가미한 대중적이고 주관적인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기 위해 이들이 지난 6월부터 안양사를 비롯 병목안 시민공원, 안양천, 안양예술공원, 삼성산 채석장터, 스톤앤워더갤러리, 경기도미술관, 청계묘지, 주민센터, 안양시청 등 지역 곳곳을 누빈 현장의 목소리가 어떻게 필름안에 담겼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젊음의 열정을 쏘다

농구를 사랑하는 청소년 동호인들의 한마당 잔치인 제5회 과천토리배 전국3on3 길거리농구대회에서 의정부 Clincher와 부천 SD6 팀이 나란히 중고등부 정상에 올랐다.과천시와 경기일보 주최로 8월 14~15일 양일간에 걸쳐 과천 관문체육공원내 야외농구장과 과천고, 과천중앙고 체육관 등에서 분산 개최된 이번 대회에는 전국의 중고등부 116개 아마추어 동호인 팀이 출전해 엘리트선수 못지않은 기량을 선보이며 명승부를 펼쳤다.15일 열린 중등부 결승전에서 홍민성(12점)과 문영오(10점)의 득점을 앞세운 Clincher가 임석현(12점)이 분전한 서울 스누피 B와 접전을 펼친 끝에 24대22로 승리해 대회 정상을 차지했다.또 이어 벌어진 고등부 결승전에서는 문경인(10점)과 이영준(8점), 손진영(7점) 등 팀원 모두가 고르게 득점에 가담한 지난해 준우승팀 부천 SD6가 김용재(8점)를 앞세운 안산 한국사람을 27대 20으로 꺾고 1년 묵은 우승의 갈증을 풀어냈다.중등부 34위전에서는 NOS5가 그라믄안돼를 누르고 3위에 올랐고, 고등부 34위전서는 KING이 PRESS를 따돌려 3위에 입상했다. 부별 최우수선수(MVP)에는 중등부 홍민성(Clincher)과 고등부 문경인(SD6)이 선정됐고, 우수선수상에는 임석현(스누피B)과 김용재(한국사람), 3점슛왕에는 중등부 이희복(KUSTA), 고등부 이준(열광), 페어플레이상에는 GBA(중등), 네모(고등)이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한편 14일 오전 열린 개회식에는 공동 대회장인 여인국 과천시장과 이현락 경기일보 사장을 비롯, 서형원 과천시의회 의장, 오세구 경기도생활체육회 사무처장, 이현달 과천시생활체육회 회장 등 내빈들이 참석해 선수들을 격려했다. 이와 함께 여자프로농구 안산 신한은행의 하은주와 최윤아, 진미정, 프로농구 안양 KT&G의 김태술이 참석, 사인회와 농구 클리닉 등을 진행해 참가 선수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인터뷰> 여인국 과천시장 우정과 화합 키우는 축제의 장 전국 청소년 농구 동호인이 모여 기량을 겨루는 과천토리배 전국길거리농구대회가 다섯 번째 대회를 치르면서 청소년들의 도전과 열정의 놀이마당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여인국 과천시장은 청소년들이 토리배 길거리 농구를 통해 땀과 협동의 소중함은 물론 사회성과 경쟁력 고취, 친구간의 우정을 키워 나가는 대회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여 시장은 모든 스포츠의 기본은 정정 당당한 승부이다. 똑같은 환경에서 규칙에 따라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것이라며 이런 스포츠 정신으로 볼 때 과천토리배 대회는 청소년 때부터 스포츠를 통해 정당하게 승부를 겨뤄 승자에게 축하하고 패자를 격려하는 정신을 심어주고 있다고 밝혔다.특히 과천토리배가 5회째 이어지면서 전국대회로 성장했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이번 대회는 경기도와 서울은 물론 인천, 충남, 대전, 강원 등 전국 청소년 동호인들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덧붙였다.여 시장은 또 올해의 경우 대회 일정과 농구장 사정에 따라 참가하지 못한 팀들이 많았다며 아쉬움을 표하고 내년부터는 대회 규모는 물론 농구코트를 더 확보해 많은 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대표 특산품’ 전세계에 입소문

쌀과 함께 한국 최고 특산품으로 꼽히는 인삼, 그 가운데서도 개성인삼은 10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현재 2천900여명의 조합원이 약 1천344㏊의 면적에서 재배하고 있는 개성인삼은 경기도는 물론 세계 최고의 특산품으로 각광받고 있다.개성인삼은 올해로 1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일제에 합병되기 이전인 1910년 2월4일 개성에서 송삼계원의 모임체인 삼도중을 인수하면서 개성 삼업 조합으로 탄생하게 된 개성인삼조합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조합이 와해되고 남쪽으로 옮긴 개성 출신 인삼재배 농민들에 의해 1957년 6월 재탄생하게 된다. 10년 뒤인 1967년에는 인삼의 재배면적이 넓어지면서 개성과 강화, 김포인삼조합으로 조합이 분리됐으며 1973년 9월, 조합 사무실을 인삼 재배지와 가까운 지금의 포천으로 이전했다. 이 후 1989년 1월부터 지금의 개성인삼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오고 있다. 2001년 3월 ISO 9001 품질인증을, 8월에는 국내 최초로 6년근 수삼부분 품질인증을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으로부터 획득했다.개성인삼은 인삼의 재배적지 위도 3638도에 6년근 인삼의 주산지라 할 수 있는 경기 북부의 포천을 중심으로 연천, 남양주, 동두천, 양평, 의정부, 구리 등 9개 지역을 주 재배지로 하고 있다. 예로부터 이 지역은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기온의 편차가 커 인삼의 생육에는 최적지로 꼽히는 홍삼포 단지였다.하늘의 축복인 기후조건을 바탕으로 한 경기북부 지역의 인삼은 뇌두가 굵고, 항암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사포닌의 종류 또한 28여종으로 타국삼(1416종)에 비해 배가 넘어 함량이 높고 조직이 치밀하면서 향이 좋은 우수한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개성인삼조합은 6년근 홍삼을 주원료로 한 홍삼, 피부백삼, 고려홍삼정골드, 봉밀홍삼절편, 홍삼정환 등을 주력생산 품목으로 30여종의 인삼 가공제품을 생산, 한송정 고려삼이란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개성인삼조합은 연간 500톤의 수삼을 가공할 수 있는 가공시설을 완비하고 연천과 일동에 가공공장을 운영하며 국내 시장은 물론 프랑스와 포르투칼 등 유럽과 미국, 중국, 브라질, 일본, 대만 등에 수출 연간 21만4천 달러의 이익을 창출하면서 옛 개성인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또 지난 2008년 11월에는 고려인삼의 불모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도 6년근 한국 홍삼을 첫 수출하기에 이르렀으며 향후 또다른 인삼 불모지인 아프리카 등에도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개성인삼조합은 좋은 홍삼을 저렴한 가격에 모든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고 인삼 경작인들인 조합원들에게는 권익과 이익을 보장해 주고 있으며 소비자에겐 건강을 선사하고 있다.

‘경기미 밥맛’ 지구촌 식탁 사로잡는다

경기미는 오래전부터 품질이 좋기로 정평이 나있다. 기후조건과 토양이 알맞아 전국에서 가장 좋은 쌀의 대명사가 돼있다. 경기도는 지난 2007년부터 경기미의 명성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고의 안전성을 지닌 명품 프리미엄 쌀 G+ -199Rice를 생산하고 있으며 도내 쌀 관련 브랜드만 해도 232개에 달하는 등 다른 시도와 차별환된 전략으로 국내 유통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또한 지난 2007년 6월에는 건국이후 처음으로 평택의 슈퍼오닝(SUPER ONING) 쌀이 미국으로 수출된 뒤 도내 명품 브랜드 쌀이 미국, 러시아, 뉴질랜드 등 10여개 국가에 수출되는 등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1960~1970년대만 해도 가을에 수확한 쌀이 바닥나고 보리가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이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던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명품쌀을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는 시대가 됐다.경기도는 지난 2007년 평택 안중농협에서 슈퍼오닝 쌀 11톤(kg당 3천100원)을 미국에 수출한데 이어 같은 해 8월 여주쌀 17톤(kg당 2천800원)을 미국에 수출했고 같은해 9월 포천쌀 2.5톤(kg당 2천500원)을 인도네시아에 판매했다. 이들 수출 지역에서는 경기미가 다른 쌀에 비해 가격이 다소 높다는 의견이지만 맛이 좋아 교포와 일본인, 중국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이에 따라 경기도는 지난해 평택, 안성, 화성, 이천, 여주, 포천 등에 도내 13개 지역에서 생산된 명품 브랜드 쌀 40여톤을 미국, 러시아, 독일, 호주, 뉴질랜드, 두바이를 비롯해 쌀 최대 수입국인 인도네시아 등 10여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이와 함께 도는 해외 다양한 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과 아시아계 상류층을 대상으로 1천여톤의 쌀 수출을 목표로 외국의 바이어들과 협의를 벌이는 등 쌀 수급조절 및 가격안정을 통한 농가소득 증대를 꾀하고 있다.경기지역의 지난해 쌀 생산량은 5만1천800톤으로 16개 시도 가운데 5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시도쌀에 비해 가격이 20~25% 높지만 232개 명품 브랜드를 앞세워 국내 쌀시장은 물론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도내에는 용인 백옥쌀, 평택 슈퍼오닝, 김포 금쌀, 시흥 햇토미, 화성 햇살드리, 이천 임금님표, 여주 대왕님표, 안성마춤쌀, 포천 해솔촌기찬쌀, 가평 푸른연인 등 각 시군의 대표 브랜드만 18개에 달하고 있다.특히 도내 쌀 생산량이 7만6천800톤으로 가장 많은 평택시는 슈퍼오닝을 비롯해 백조쌀, 고시마을쌀, 해누리쌀, 만석꾼, 입맞춤 등 33개 브랜드를 개발해 고객들의 다양한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또한 7만1천300톤으로 쌀 생산량이 두번째로 많은 화성시도 아침연, 수라청, 아침노을, 참숯미인, 솔바람쌀, 이슬찬미 등 특성화된 33개 자체 브랜드를 개발, 대형유통마트를 위주로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고파…

더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돕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이야기할 때 100여 명이 같이 숨쉬며 연주하는 교향곡을 빼놓을 수 없잖아요. 30~40분 되는 클래식곡 하나에 엄청난 감동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좀더 많은 사람들이 그 감동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사람들의 생각도 변할테고,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지 않겠어요? 저는 음악에 그런 힘이 있다는 걸 믿거든요. 천재 첼리스트 장한나(28)는 수원 매탄동에서 태어나 2학년때까지 매탄초교를 다녔다. 그의 첼로 인생은 수원에서 시작됐다. 초등학교 입학선물로 엄마가 친구처럼 지내라며 첼로를 선물해 준 게 계기였다. 이후 마침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당시 수원시향 단원에게 연주의 기초를 배웠다. 이제 막 걸음마를 땐 어린 첼로 연주자 장한나의 첫 무대는 학교 연주회였다.바이올린을 하는 친구하고 피아노 치는 언니하고 그렇게 셋이서 작은 연주회를 열었어요. 모두 미숙하긴 했지만 재밌었던 연주회로 기억해요.첫 연주회의 즐거웠던 기억은 지난 20년 외길 연주인생에서 첼로와 편한 친구처럼 함께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장한나가 첼리스트로서 처음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건 16년 전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 결선무대. 자그마한 체구의 열두 살 소녀가 빨간 원피스를 입고 하이든 협주곡 C장조를 열연하는 모습은 세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결과는 최연소 우승. 신동탄생의 순간이었다.세계적인 첼리스트로 유명세를 탄 장한나는 3년 전 지휘자로 변신했다. 성남아트센터서 열린 국제청소년교향악단 축제에서 한국중국독일의 연합 오케스트라를 이끈 것. 그의 도전은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뉴욕 필하모닉의 전 지휘자 로린 마젤, 줄리아드 음대의 제임스 드프리스트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지휘 스승과 후원자로 자처했다.장씨는 8월 14일부터 2주간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음악축제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에서 음악 감독으로 또 한번의 변신을 시도했다. 특히 공연에 스승 로린 마젤도 직접 섭외해 관심을 끌었다. 3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마젤과 함께 오페라를 공부했어요. 마젤이 한 달 동안 세편의 오페라를 공연했는데, 제가 부지휘자로 따라가서 모든 과정을 지켜봤죠. 한국에서 축제를 열 건데, 음악 안에서 많은 사람이 하나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고 말씀 드렸죠.장씨가 세계적인 음악가로 우뚝 선데는 자신의 연주에 대해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진실된 연주를 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관객과 나누려는 데서 시작됐다. 그리고 한번의 연주에 필요한 책을 기본적으로 500권 정도는 머릿속에 집어 넣어야만 한다는 지휘자의 위치에 올라서기 위한 그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심장이 뛰면…대한민국은 행복하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을 사상 첫 원정 16강으로 이끈 캡틴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남아공 월드 컵을 계기로 한국 축구의 아이콘에서 아시아 축구의 심볼이 된 박지성은 경기도가 낳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다. 뛰어난 체격조건을 갖춘 것도, 화려한 발재간과 동물적인 골감각을 가진 것도 아닌 박지성은 특유의 성실함을 앞세워 세계 최고로 꼽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그 중에서도 최고의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당당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수원 세류초 4년 때인 지난 1990년 처음으로 축구화 끈을 조여맨 박지성은 2년 만에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다.하지만 또래 선수들에 비해 왜소했던 체격은 체격조건을 중시하는 한국의 축구 선수로서는 큰 약점이었다. 때문에 아버지 박성종씨는 몸에 좋다는 영양식은 가리지 않고 박지성에게 해주었고, 고교 시절 은사인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은 고된 훈련에서 그를 제외시켜 가벼운 훈련만 시켰을 정도였다.수원공고를 졸업한 박지성은 이학종 감독의 추천으로 명지대에 진학했고, 꾸준한 활약을 보이던 2000년 당시 올림픽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의 눈에 띄면서 한국축구의 대들보로 성장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그해 박지성은 아시안컵 예선에서 성인 국가대표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뒤 특유의 성실함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평생 은인 중 한 사람인 거스 히딩크 감독을 만난다. 당시 슈퍼스타였던 이동국과 고종수 등이 대표팀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것과 대조적으로 무명에 가깝던 박지성은 축구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와 지칠줄 모르는 체력을 앞세워 히딩크 사단의 황태자로 떠오르게 된다.박지성은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열린 프랑스,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본선에선 16강 진출의 분수령인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짜릿한 결승골을 뽑아내 한국축구의 희망으로 떠올랐다.2005년 7월 세계 최고의 클럽인 맨유에 입성한 박지성은 2007-2008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FC바르셀로나의 천재 공격수 리오넬 메시를 완벽히 봉쇄하는 등 팀의 더블(리그,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냈다.현재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의 이적설에 시달리고 있는 박지성은 당초 남아공 월드컵을 마친 뒤 내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아직 그의 나이 만 29세로 여전히 한국 축구팬들의 가장 큰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활약이 기대되고 있다.한편 유소년 축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박지성은 지난 7월 후진 양성과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에 사재 15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클럽하우스와 2개면 축구장을 갖춘 박지성 축구센터를 건립,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국민요정’ 연아, 살아있는 전설이 되다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수 많은 스포츠 스타 가운데 피겨여왕 김연아(20고려대) 만큼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스타도 드물다. 김연아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당대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오른 자랑스런 경기도의 딸로, 21세기 세계 피겨스케이팅의 살아있는 전설이 돼 가장 주목 받는 대한민국의 브랜드가 됐다. 1990년 부천시에서 태어난 김연아는 7세 때 처음 스케이트 부츠를 신은 뒤 11세인 2002년부터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에서 5연패를 달성하며국내 1인자로 우뚝 섰다.2002년 4월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트로피대회 노비스(13세 이하)에서 우승하며 세계에 새로운 스타탄생을 예고한 김연아는 2003년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돼 2004-2005시즌부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 출전, 헝가리대회 여자 싱글에서 우승하며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일본)와 본격적인 라이벌 시대를 열었다.주니어그랑프리 시리즈와 세계주니어선수권 등 2년 동안 8개의 국제규모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 5개, 은메달 3개를 따낸 김연아지만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해외 전지훈련이 절실했다.이 때 김연아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들은 경기도체육회장 김문수 도지사는 글로벌 인재육성지원금 1억원을 훈련비로 지원했고 대한빙상경기연맹도 후원금을 마련, 2006년 5월부터 캐나다 토론토에서 세계적인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과 브라이언 오셔 코치를 만나 최고를 향한 훈련에 돌입했다.나이 제한에 걸려 아쉽게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김연아는 자신의 경쟁상대를 시니어 무대로 옮겨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스타들과 경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최강자는 동계올림픽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는 속설을 비웃듯이 역대 최고점으로 자신의 마지막 목표인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세계를 홀린 김연아의 연기에 세계 언론의 찬사가 쏟아졌고,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영웅 분야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 2위에 뽑히는 등 피겨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가정용 진공포장’ 세계인 먹을거리 지킨다

언제부턴가 냉동으로 보관하던 육류나 생선 등의 신선도를 높이기 위해 진공으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냉동시켰던 기존의 방식보다 진공으로 포장한 것이 생고기의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평택 포승국가 산업단지에 위치한 ㈜롤팩(대표이사 김금자49)은 이러한 점에 착안, 가정용 진공포장기와 필름을 제작판매하기 시작했다.대부분의 육가공품이 진공으로 포장되지만 가정에서 직접 진공포장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자투리 음식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진공으로 포장하는 기술이 보편화 돼 있다. 가정용 진공 포장기는 진공포장필름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야채나 과일, 생선 등의 음식물을 담아 포장기에 끼우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필름 내부의 공기가 빠지면서 진공 포장되는 방식이다.진공포장할 경우 랩이나 지퍼백보다 장기간 신선도를 유지하며 세균감염에도 높은 저항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식재료가 쉽게 부패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음식물에 의한 환경오염도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진공 포장재의 선두주자를 자부하는 이 회사의 기술 노하우는 필름에 담겨 있다. 바로 세계 최초의 에어채널공법을 개발한 덕분이다.이 기술의 핵심은 두께 0.075㎜짜리 얇은 비닐이지만 한 겹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일론 선상 저밀도 폴리에틸렌 접착층 등 7층 구조로 압착된 포장지다. 일반 필름은 3~5겹으로 짜인 반면 에어채널은 7겹 필름으로 공기가 빠져 나가는 길까지 만들어 포장기를 작동시킬 경우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이 기술은 곧 세계 시장을 겨냥하기 시작한다. 1997년 미국 시카고 전시회에서 참가, 에어채널공법이 1조원대의 전세계 가정용 진공포장 시장의 대안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 분야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미국의 틸리아사로부터 향후 7년간 1천400억원에 달하는 공급계약을 체결했던 것이다.이후 세계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해 유럽은 물론 남미와 동남아 시장으로 진출했으며, 현재 18개국에 당당히 수출하는 업체로 성장했다. 작지만 알토란 같은 중소기업의 성공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는 롤펙은 지난 2005년 제2공장을 가동시켰으며, 영업본부를 지사화하는 등 경영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했다. 또 국제적 수준의 품질관리를 위해 ISO 9001(품질경영시스템)과 ISO 14001(환경영경영시스템)을 갖춰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 특히 롤팩은 국내 최초로 설립한 식품진공기술연구소를 통해 끊임 없는 R&D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세계 최초 방수형 진공압력센서 개발 등 총 27건의 특허 및 실용신안을 보유하고 있다.김 대표는 풍요로운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식품위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수한 품질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인의 먹거리를 안전하게 책임지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자부심으로 만든 名品… 70개국 하늘을 난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하고 그 기술의 발전을 거듭한 이래 우리는 세계 곳곳을 날아서 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날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패러글라이딩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글라이더 제조시장에서 세계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기업은 유럽이나 남태평양에 위치한 국가가 아닌 한국, 그 중에도 용인에 자리잡고 있다.글로벌 기업이 자리잡았을리 만무하다고 생각되는 한적한 농촌지역을 달리다 작은 표지판을 따라간 비포장도로 끝에 자리잡은 ㈜진글라이더(대표이사 송진석)가 바로 그곳이다.이곳은 진(GIN)이라는 자가상표로 세계 70여개국에 직수출을 하고 있는 강소기업으로,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잡은 패러글라이더 생산업체다.IMF가 한창이던 지난 1998년 8월 설립된 진글라이더는 대학시절 패러글라이딩 동호회를 접하며 한국 대표선수까지 지낸 경력의 송진석 대표(55)가 4명의 직원과 함께 출발했다. 디자이너이자 경기 파일럿인 송 대표와 엔지니어, 테스트 파일럿으로 구성된 이들은 제품생산에 뛰어들기로 뜻을 모으고 당시 성도어패럴의 최형도 회장으로부터 자금 및 부지를 지원받아 패러글라이더 샘플을 만들었다.진글라이더는 설립 초기부터 세계 패러글라이딩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이들이 만든 경기용 글라이더 부메랑을 사용한 일본팀 선수 가오로 오기사와가 1999년 패러글라이딩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기 때문이다. 패러글라이딩 월드컵에서 우승한 동양인이 전무하던 당시 처음 생산을 시작한 업체의 승전보는 GIN이라는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5~6년간 진글라이더의 제품이 세계대회를 석권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굳혀 수 많은 마니아를 확보하기에 이른다.현재는 33명의 본사 개발인력과 중국, 개성공단에 위치한 공장에서 300여명에 이르는 직원이 패러글라이더를 생산하고 있으며, 전세계에 네트워크를 갖춘 70여개의 대리점을 통해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이를 토대로 20여개 업체가 경합 중인 연간 3만개 안팎의 글라이더 판매 시장에서 30%에 달하는 시장을 점유, 스위스의 어드밴스, 영국의 오종, 오스트리아의 노바 등 유명 글라이더 업체들을 제치고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최형식 진글라이더 상무이사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이에 최대한 맞춰 생산을 하는 시스템이 성장의 동력이라며 신제품 개발에 투자하는 만큼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