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을 무대로 삶의 냄새 담아

박찬경 감독의 영화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대한민국 아줌마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많다. 그 중 찌는듯한 무더위 속 구슬땀을 흘리며 연신 엉덩이를 흔들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우리동네 ‘주민센터’(구 동사무소)다.

 

요즘 지자체의 주민센터는 기존의 민원서류를 발급해주던 관공서 이미를 벗고 지역 주민들에게 유익한 문화강좌와 스포츠활동, 도서대여 등을 펼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8월10일, 안양의 비산1동주민자치센터 3층 동아리방에는 고막을 찢는 듯한 신나는 댄스음악에 온몸을 맡긴 20여명의 아줌마들이 그들의 움직임을 여과없이 필름에 담아내는 박찬경씨(45)를 비롯한 촬영스탭들을 쫓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날 촬영분은 센터 취미교실 수강생 중 댄스스포츠초급반의 열띤 댄스현장을 담는 것. 비록 5분 여 밖에 상영되지 않을 짧은 영상이지만, 어색해하는 주부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스탭들의 모습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러나 점차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전문강사의 스탭시범으로 이어지면서 ‘차차차’와 ‘룸바’코스를 거쳐 절정으로 치달았다.

 

특별할 것 없는 영상이었지만, 1시간 30여분의 촬영을 마치고 나온 스탭들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이열치열이라고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앞에두고 박씨와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제목은 ‘안양’이 타이틀 이지만, 딱 꼬집어 안양의 이야기만 싣는 것은 아니예요. 안양시에서는 싫어할지 모르지만 저희 영화가 시 홍보물은 아니니까요. 한국의 현대 도시문화와 그 속에 살아숨쉬지만 잊혀져가는 전통의 향기를 담아내려 하고 있어요. 안양 등으로 대표되는 수도권의 도시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 그 중에서 여성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죠.”

 

박씨는 이미 4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신도안’과 13분짜리 단편 ‘비행’ 등을 통해 세간에 정평이 난 미디어작가. 그러나 그가 정작 이름을 날린 건 영화 ‘올드보이’, ‘박쥐’ 등으로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은 박찬욱 감독(47)이 형이라는 데 있다.

 

“형 작품에 10억이 든다면, 제 영화는 100분의 1꼴이예요. 형이 철저히 상업적인 극장용 영화를 만든다면, 저는 1천만원대의 저예산으로 다큐·미술 영화제에 출품할 영화를 만들죠. 규모나 성격이 달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안 되는거죠.”

 

영화를 만드는 동일업종에 종사하지만, 서로가 바라보는 시야가 다르기 때문에 형과 굳이 비교하려 들지 말아달라는 찬경씨. 형 이름덕에 저절로 홍보가 되는 게 제일 맘에 든다며 오히려 즐거워한다.

 

그런 찬경씨가 이번에 장편영화에 도전장을 냈다. 90여분에 달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

 

그는 안양시가 도시환경과 시 이미지 개선을 위해 공공예술을 도입, 예술도시를 구현코자 국내외 예술가들을 초청해 영화·전시·공연을 아우른 ‘제3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2010)에 국·내외 예술가들과 함께 참여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9월 추석시즌에 개봉될 영화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We Wish to Reincarnate in Paradise)다.

 

오는 10월2일 개막하는 이번 행사의 개막을 장식할 영화는 ‘문화재와 역사‘ ‘근대화의 기억’, ‘생산과 일’ 등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이 뒤섞여 구성됐다. 영화엔 안양중초사지를 발굴하는 60일간의 현장기록이 담기는가 하면, 안양사(寺)에 기거하는 비구니 들의 담담한 일상을 쫓기도 한다.

 

또한 지난 1988년 22명의 여직공의 목숨을 앗아간 섬유봉제공장 화재사건의 생존자를 찾는 과정을 통해 일상에서 쉽게 지나쳐버리는 자연과 문화의 소중함 그리고 느리게 사는 여유 등을 담았다.

 

또한 이날 진행된 촬영분처럼 대한민국 여성들의 넘치는 끼와 에네르기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현장이 펄떡거리는 활어처럼 생생하게 엮였다. 김예리, 박민영, 김종구, 엄태구 등 전문배우들과 안양지역 학생 및 시민들을 조연배우로 대거 참여기킨 영화는 필름으로 바라본 우리 이웃의 모습도 볼거리다.

 

일정을 마치고 촬영도구를 챙기며 다음 씬 촬영을 위해 부산히 움직이는 스탭들. ‘다양한 픽션을 가미한 대중적이고 주관적인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기 위해 이들이 지난 6월부터 안양사를 비롯 병목안 시민공원, 안양천, 안양예술공원, 삼성산 채석장터, 스톤앤워더갤러리, 경기도미술관, 청계묘지, 주민센터, 안양시청 등 지역 곳곳을 누빈 현장의 목소리가 어떻게 필름안에 담겼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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