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지역 ‘최고의 환경박사’ 최종인씨

“자연이라는 상품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시화호 오염실태를 세상에 처음 알린 장본인, 환경운동가, 시화호 지킴이, 조류박사 등 온갖 호칭이 뒤따르며 안산지역 ‘최고의 환경박사’로 불리는 최종인씨(46·본오동 844). 그의 관심은 온통 시화호 되살리기뿐이다. 최씨가 환경운동가로 변신하게 된것은 지난 65년 전남 장흥 지역 거주시 물가뭄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부터. 이후 89년 안산으로 이주해 생업에 종사하다 92년 대부도에 연구단지가 들어온다는 소문을 조사하면서 시화호에 관심을 갖게 됐고 시화호 오염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리기 시작했다. 최씨는 “시화호 개발의 실태를 정부가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며 “갯벌매립으로 세상에 오는 재앙이 어떤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시화호 문제로 시민들 모두가 피해자가 됐다”며 “이제는 시화호에 자연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습지를 잘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씨의 소중한 꿈은 시화호 습지지역에 자연사 박물관을 유치해 그가 소장하고 있는 라면박스 수십개 분량의 시화호 관련 자료를 전시해 후손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물려주는 것이다. 최씨는 “이러한 일을 하면서 한때 오해와 억측도 많이 받아왔다”며 “개발론자들의 회유, 협박 등도 자연을 지켜내야 한다는 소신을 꺽을 순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안산=홍성수기자 sshong@kgib.co.kr

매주 일요일 지하도 청소하는 두 형제

매주 일요일만 되면 오산 성호지하도에 청소도구를 양손에 들고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고등학생 형제가 있다. 유은조(17·수원 유신고 3)·남조(15·오산 성호고 1) 형제가 바로 주인공. 대학입시 준비로 좀처럼 마음의 여유가 없을 이들 형제는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해 대걸레 등 청소도구를 챙겨 성호지하도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은조·남조 형제는 1년전부터 매주 일요일만 되면 이곳 지하도에 나와 벽면의 낙서와 묵은때를 지우고 여기저기 버려진 휴지 등 쓰레기를 말끔히 치우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행인들은 이들 형제의 사서 고생하는 듯한 행동을 보며 다소 의아해 하기도 한다. 혹시 학교에서 벌을 받지 않았나, 아니면 대학입시를 앞두고 현장 봉사활동중인가 하는등의 갖가지 추측과 상상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다. 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이곳 지하도의 칙칙한 환경을 밝고 깨끗하게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은조·남조 형제의 이같은 묵묵한 선행이 날이 갈수록 차곡차곡 쌓이면서 한때 불량학생들의 우범지역이었던 이곳 지하도는 이제 과거의 지저분하고 음산했던 분위기는 자취를 감췄다. “비록 일주일에 한차례 밖에 시간을 내지 못하지만 지하도 청소를 하고 나면 왠지모를 상쾌한 기분이 들고 힘이 솟는다”며 “우리들의 작은 행동으로 칙칙했던 지하도의 환경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벅찬 보람과 기쁨이 앞선다”고 말했다. /오산=조윤장기자 yjcho@kgib.co.kr

비전향 장기수 대모 한지흔씨

“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한 ‘큰 획’을 그었다고 생각합니다” 2일 냉전시대의 피해자 63명이 북으로 보내지는 한켠에 서서 또 다시 이별의 눈시울을 붉히는 비전향 장기수 대모 한지흔씨(53·민권공대위공동의장)의 소감이다. 0.75평 창살아래에 30∼40년동안을 갇혔다 세상 밖으로 나와서도 ‘빨갱이’라고 손사래하며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비전향 장기수들을 북으로 보내는 한씨는 그래서 감회가 남다르다. 분단의 아픔을 감싸안은 그녀는 자신들이 염원하는 곳으로 떠난 이들을 위해 과천 별양동에 ‘한백의 집’이라는 둥지를 틀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자활을 위한 중고물품 가게를 열어 주는등 그들과 늘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난 93년 북송된 이인모씨를 비롯, 한백의 집에서 생활했던 김은환(71)·안영기(72)·홍문거(81)·장호(82)씨 등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했던 시절을 아련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버려진 물건에 새 생명을 주고 일하는 모습, 서로 나눔의 삶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고 돌아간 분들이다”며 “고통스런 이야기는 하지 말자. 통일에 도움되는 희망적인 말만 하자”고 그분들과 약속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통일은 빨리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조금 더디 되더라도 진정한 통일이어야 한다”면서 “이념·사상·사람이 하나가 되는 그런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나설 것”이라고 앞으로의 통일운동 방향을 내비쳤다. 과천 중앙동에서 ‘우리집을 못찾겠네요’라는 찻집을 운영하며 그 수익금으로 떠난 분들에게 도움을 준 그녀는 “‘그날’이 오면 간판이 ‘우리집을 찾으셨네요’로 바뀔것”이라고 말했다./과천=이동희기자 dhlee@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