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음악가 최재혁의 약속
매 순간 음악과 호흡… 글로벌 뮤지션 결실
현장을 이끄는 지휘자로, 또 곡을 매만지는 작곡가로 소통하는 음악가 최재혁(29)은 젊은 나이에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곡가이면서도 음악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음악가’다. 지난 12월14일 오후 3시 스타인웨이 갤러리서울에서 만난 그는 “다른 화려한 수식어 대신,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가로 소개되길 원한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그가 보내는 일상의 모든 순간엔 음악이 함께한다. 억지로 음악을 삶에 욱여 넣으려는 게 아니라, 살다 보니 음악이 곁에 머물고 또 음악과 함께하다 보니 삶이 지속되는 셈이다.
과천 출신의 그는 과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2007년에 작곡에 관심이 생겼다. 이후 2009년 유학을 택하면서 본격적인 음악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2017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 작곡부문 최연소 1위, 2018 루체른 페스티벌 런던심포니 지휘 데뷔 등의 행보를 지속하면서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지난 9월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2023 이스트오베스트 작곡 콩쿠르’(Call for Scores EstOvest Festival 2023)의 최종 우승자로 선정되면서 이력을 하나 더 추가했다.
그의 음악 커리어를 지탱하는 건 일상 속 사소한 습관이다. 평소 촘촘하게 계획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빼먹지 않는 루틴은 바로 음악을 듣는 것. 물론 단순한 음악 청취가 아니기 때문에, 음악을 뜯어보고 이리저리 굴려보는 공부처럼 비칠 수 있으나 이를 두고 최씨는 “음악을 공부한다는 표현보다는 음악을 늘 곁에 두고, 함께 호흡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최재혁은 “최근엔 특히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베아트 푸러가 어떤 음악을 냈는지 면밀히 살펴보면서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며 “지난 12월 동안엔 모차르트의 음악도 많이 들었고, 모차르트 음악을 각자 어떻게 해석했는지 비교하기 위해서도 굉장히 많은 버전을 듣는다. 영국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의 관점뿐 아니라 각기 다른 이들의 시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학창 시절에 비하면 음악 청취에 투자하는 시간을 많이 줄인 편이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엔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공부하는 척하면서 음악을 자주 들었다. 기숙사 안에서 친구들과 음악 얘기를 끊임없이 나누고 열정을 공유했던 기억이 아직도 그에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예술을 접할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는다. 공연의 규모나 출연 단체 등에 상관없이 발 가는 대로 극장과 공연장으로 향할 때도 많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음악가여도, 음악에 대한 감을 잃는 순간 수렁에 빠지기 십상이다. 음악을 꾸준히 듣고 음악과 호흡하는 환경을 구축해 놓으면 창작에 대한 감각이나 자신에게 맞는 음악을 감별하는 감식안이 유지될 수 있기에 최재혁은 오늘도 음악과 함께한다.
새해에도 그는 여전히 바쁘다. 큰 틀에서 달라지는 건 없다. 학창 시절부터 묵묵히 유지해온 그만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최재혁은 “지휘와 작곡을 비롯한 작품 활동뿐 아니라 자기 계발 등을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2월엔 이탈리아 공연뿐 아니라 잘츠부르크에 가서 지휘에 대한 조언도 듣는 등 공부 역시 틈틈이 이어갈 예정이고, 3월에도 대전시향과 함께하는 공연이 잡혀 있다”며 웃어 보였다.
韓 1세대 추상 조각가 엄태정의 약속
고단한 조각의 수행… 85세 나이에도 정진
“...조각이 무엇입니까?//조각은 빛이고/빛은 조각입니다.//내 기도는 빛이고/빛은 내 조각입니다.//그러나 조각이/기도보다 앞서가지 않기를/기도 하나이다.” (엄태정 ‘내가 조각이 되기를 기도 하나이다’ 中)
꼿꼿한 자세로 앉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한평생 금속 매체로 변함없이 하나의 질서를 추구해 온 한국의 1세대 추상 조각가 엄태정 작가(85)는 자신이 조각이 되기를 기도했다고 했다.
작가의 작업실을 개조해 만든 화성 엄미술관에서 지난 12월 눈 내리던 날 그를 만났다. 엄작가는 10월엔 그를 조각의 세계로 이끈 ‘현대 추상조각의 아버지’ 콘스탄틴 브랑쿠시(1876~1957)의 고향 루마니아에 다녀오고, 자료 정리와 내년도 작품전을 위한 준비에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노라고 말했다.
1938년 태어난 엄작가는 서울대 조소과 시절 철의 물질성에 매료돼 평생 금속조각에 매진했다. 1967년 제16회 국전에서 철 용접 기법으로 만든 절규가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주목받은 그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장인정신으로 철, 구리, 알루미늄 등 금속 조각에만 매달려 왔다.
몇 t의 금속을 다루는 일과 예술가로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고 정신을 수양하는 일은 원로 작가에게도 쉽지 만은 않은 일이다. 하지만 85세인 엄작가는 여전히 현역으로 그 길을 걷고 있다. “예술세계를 통해서 이전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 그를 통해 내가 치유되는 시간을 작업을 통해서 이뤄가는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예술가로서 존재하기 위해 엄작가는 수도자와 같은 삶을 걸었다. 늘 오전 6시에 일어나 오전엔 조각 작업, 조용한 밤엔 드로잉을 한다. 금속 작업이 어려운 요즘 같은 한겨울엔 드로잉 작업을 밤 늦게까지 이어간다. 엄 작가는 “100호짜리 크기 작품 3개 연작의 평면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 작업이 너무나 고단하다. 아마 올겨울 내내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금속을 다룰 때도 여전히 경외스러운 태도로 물성을 대한다. 기술이 아닌 물성, 금속이 나를 만나는 게 아닌 작가가 금속을 초대하는 것이다. 이미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닦아 놓은 원로 작가이지만 그는 동경하는 이를 마음껏 선망하고 연구하며 배우는 자세에 여전히 너그럽다.
“여행할 기회가 되면 미술관이나 아트북 코너에 가서 브랑쿠시 관련 자료를 열람하고 연구하며 관련 책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자부해요. 브랑쿠시의 예술엔 진주같은 조각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 의무가 내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도 살아가면서 존경할 만한 분을 만나면, 저 분을 닮아야겠다 생각을 하는데, 그런 분이 몇 분 계십니다.”
올해엔 그는 물론 국내 미술계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업이 진행된다. 브랑쿠시와 관련된 심포지엄과 작품전에 대한민국 원로 작가로 참여한다.
그전까지는 물론 매일 해왔던 작업과 수행자와 같은 일상을 보내는 시간을 지나갈 것이다.
엄 작가는 “라마교의 승려들이 ‘만다라’를 통해 수행과 명상, 고행을 하는 것처럼 저 역시 고행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며 “매일 넘고 해야 할 반복과 창의가 있다. 수행과 고통을 통해 내가 나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마디마디 삶의 경계를 짚어보며 늘 자기 삶을 반추해 보고, 반성하는, 리듬을 심장박동처럼 일깨우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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