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를 아시는지. 요즘 IT업계의 화두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열풍이라고 하니 모르면 뒤처질까 봐 관심을 갖는 정도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일종의 3차원 가상세계다. 메타버스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아바타로 소통하고 이들의 교류 속에서 현실과 유사한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진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로 문화 체험을 하게 되면 어떤 모습일까. 아직 막연하고 상상이 안되지만 하나하나 시도해 보는 연구자들에 의해 미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수원시의 근대역사 문화 체험을 메타버스 디지털 맵으로 재구현한 17정글 김소연 연구원(25)을 만나 메타버스 속 문화 세계를 들여다봤다.
■방화수류정·나혜석거리 등 수원 문화 투영된 가상세계
17정글은 경기콘텐츠진흥원이 마련한 수원시 경기XR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이다. 지난 22일 이곳에 도착하니 4인 사무실의 작은 공간에서 김소연 연구원이 직원들과 함께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문화 콘텐츠 제작에 한창이었다.
콘텐츠는 ‘100년 전으로 떠나는 수원 근대역사기행’이다. 일제 강점기 수원지역 만세운동의 발화지 ‘방화수류정’과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이자 독립운동가인 나혜석(1896~1948) 선생을 기리는 ‘나혜석거리’, 삼일학교의 상징 ‘아담스 기념관’ 등 다양한 인문기행 코스와 문화재를 360도 영상과 3D공간으로 제작해 메타버스 플랫폼인 ‘게더타운(Gather Town)’에 구현했다. 게더타운은 자신과 닮은 아바타를 생성해 가상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현재 구현 완성 단계에 이르렀으며, 오픈은 10월 말 예정이다. 아직은 메타버스라는 말 자체가 낯설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해도가 낮은 일반인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을까? 다행히 이용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VR 기기처럼 접속할 기기나 별도 소프트웨어 설치가 따로 필요하지도 않다. 이용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해당 앱을 다운받아 접속한 뒤 개인 아바타를 만들고, 게더타운 안에서 ‘수원 근대역사 기행’ 링크를 클릭하기만 하면 문화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다.
김소연 연구원은 “메타버스는 사전 지식이 없어도 컴퓨터와 모바일을 다룰 줄 안다면 누구든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수원 근대 역사를 메타버스 통해 체험하고, 관광하면서 편하게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게임, 매장 구축...소통과 유통이 공존하는 플랫폼
17정글 연구팀은 게더타운 내에 수원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매장들을 구축하고, 보물찾기와 퀴즈 등 게임 콘텐츠와 각종 상품이 내걸린 이벤트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용자가 개인 아바타를 내세워 다양한 공간을 돌아다니며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게임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것. 이는 앞으로 다가올 메타버스 환경에서 문화 체험뿐 아니라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고, 실시간으로 지역 상품 구매도 가능한 신규 플랫폼으로 향후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 연구원이 메타버스에 수원을 적용시킨 건 지역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운 마음이 공존해서다. 아주대학교에서 미디어를 전공한 그는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우리 동네가 근대 역사와 문화재로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의외로 지역 주민들조차 잘 모르더라”며 “특히 화성행궁처럼 보존되고 있는 문화재도 있지만 수원극장처럼 없어진 것들은 볼 수가 없으니 아쉬움이 컸다. 전공을 살려 수원의 옛 모습을 재구현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로컬 크리에이터 타운’을 도입하는 것도 목표다. 크리에이터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매장을 게더타운 안에 입점시켜 소통과 판매를 함께 도모할 계획이다. 김 연구원은 “현실에선 크리에이터들끼리 소통할 기회가 거의 없다. 마치 한 마을에 모두 모여있는 것처럼, 메타버스에 한데 모여 색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제조, 판매, 홍보, 매장 운영에 협업을 하며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로블록스’로 역사 체험하는 ‘블루문 시간탐험대’
메타버스는 ‘게더타운’ 외에도 대표적인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도 있다. 17정글 연구팀은 로블록스를 활용한 ‘블루문 시간탐험대’라는 숏폼 역사 콘텐츠도 제작한다.
‘블루문 시간탐험대’는 레고 블록과 닮은 귀여운 아바타들이 방송국 스튜디오라는 2차원 그래픽 공간에서 매일 랜덤하게 열리는 시간탐험 문을 통해 역사 속 여행을 다니는 내용이다. 아바타들의 춤 동작과 표정까지 세세하게 구현해 어린이들이 재밌게 체험하며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연구원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메타버스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인류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하나의 트렌드가 될 것”이라며 “문화, 교육, 유통 등 다양한 분야를 놀거리처럼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의 편의와 재미를 추구하겠다는 강한 의지는 브랜드명에서도 엿볼 수 있다. 17정글의 숫자 17은 플레이 버튼 아이콘 ‘▷’이 되는데, 정글처럼 다양한 것이 존재하는 메타버스의 버튼을 누르고 들어와 즐겁게 놀자는 의미를 담았다.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메타버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청년들이 ‘이 배에 올라타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다’는 느낌으로 메타버스를 창업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때문에 무분별하게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 섞인 관측도 제기된다.
이에 김 연구원은 “메타 버스는 이제 막 걸음을 내딛는 단계로, 스타트업에게 무한한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 메타버스가 주목받는 이유를 면밀히 살펴 개별 비즈니스의 지속 가능성을 진단한 후 개척해 나가길 바란다”고 예비 크리에이터들에 대한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글·사진=황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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