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죽음과 마주하면 삶은 존엄해진다
누구에게나 ‘죽음’이란 단어는 가장 큰 공포로 다가오고 생각만으로도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또, 왈칵 눈물이 쏟아질 만큼 슬퍼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그저 막연히 기피하려만 했던 것이 사실이다. 죽음의 정체를 확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작정 금기시하며 두려워했던 것이다.
요즘 가장 뜨거운 트렌드를 꼽으라면 뭐니뭐니해도 ‘힐링(Healing)’ 이다. 한창 뜨거웠던 웰빙(Well-being)열풍에 이어 어느새 힐링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잘 죽는 법을 깨달아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터득하게 해주는 ‘웰다잉(Well-Dying)’이 주목받고 있다. 어쩌면 웰다잉이야 말로 삶의 질을 높이는 교육의 완성일 것이다.
■ 자식들을 남겨두고 어떻게 두 눈을… 유서쓰기 체험하며 설움 복받쳐
촛불만이 켜진 실내는 캄캄하고 적막이 흐르는 듯 고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실내는 한순간에 곡소리로 가득했다. 마치 어느 누가 죽어 가족들이 슬피 우는 듯한.
지난 6월 28일 수원시 연화장의 한 사무실에서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 회원들을 초청해 실시한 웰다잉 프로그램 중 하나인 ‘유서 쓰기’ 체험 행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 전 남은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한 글자 한 글자씩 적어내려 가던 참가자들은 연신 흐르는 눈물을 훔치다가 어느새 복 받아쳐 오던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꼈다. 유서를 적은 종이는 어느새 눈물로 흥건히 젖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어 직접 묘비명을 적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이 추구하던 인생철학을 명문이나 시문으로 묘비에 또박또박 새기는 것이다.
이어 웰다잉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바로 입관 체험 순서다. 이들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나서 자신의 몸에 꼭 맞는 관에 들어가 눕기 시작했다. 어르신들 모두 처음엔 관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다. 관을 쳐다보는 것조차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몸소 입관 체험을 마친 어르신들은 마치 다시 태어나기라도 한 듯 남은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손수건으로 연신 붉게 충혈된 눈가를 두드리던 김정숙씨(56ㆍ여)는 “결혼도 못 시킨 자식과 남편을 두고 눈감을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지며, 가족들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앞섰다”라며 “막상 유서를 써보고 직접 관에 들어갔다 나와보니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됐다.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면서 이날 3시간여 동안 진행된 웰다잉 투어 참가 소감을 전했다.
또 다른 참가자 백성종씨(78)도 “웰다잉 투어를 올 때 죽음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웰다잉 투어를 마치고 나니 편안함을 느꼈다”라며 “남은 인생 긍정적인 생각으로 세상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을 모두 내려놓고 서로 용서와 화해하며 살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나…” 기피시설서 숭고한 장사문화 교육장으로
과거 사람들은 수원 연화장하면 장례식장과 화장장만을 떠올릴 뿐이었다. 그저 누군가 사망했을 때에만 찾는 외진 곳으로만 치부해왔던 것이다. 그랬던 연화장이 지난해부터 웰다잉 투어를 도입, 운영하면서 준비된 죽음을 맞는 교육장으로 재탄생했다.
수원 연화장 운영 및 관리를 하는 수원시시설관리공단은 올바른 장사문화를 선도하고 웰다잉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해 7월 한국웰다잉협회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업무협약 체결에 이어 연화장은 대한노인회를 비롯해 시ㆍ군 평생학습원, 복지센터 등 경기도와 서울시의 노인들을 초청해 본격적인 웰다잉 투어를 시작했다.
처음 웰다잉 투어를 참가하는 노인들의 반응은 어리둥절했다. 간혹 버럭 화를 내는 참가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례식장과 승화원(화장장), 추모의 집, 자연장을 차례로 둘러보고 미술전시회, 음악회를 통한 문화 감성, 웰다잉 강의, 유서 또는 자서전 쓰기, 입관체험 등의 웰다잉 체험 등 4가지 요소가 복합된 웰다잉 투어를 돌아보고 나면 어느새 아름다운 죽음에 대해 깨닫게 되고 차분한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준비된 죽음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지 모르는 죽음을 당하는 입장이 아닌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로 살아가면 아름다운 죽음을 갖게 될 수 있다. 우리 삶의 시작과 과정도 중요하지만, 의미 있는 마무리가 될 때 정말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머지않아 수원 연화장이 전국에서 아름다운 장사문화를 창조하는 데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강영철 수원시시설관리공단 장묘환경사업소장은 “수원 연화장은 전국 최초로 웰다잉 투어를 상설 운영해 진정한 삶의 소중함을 배우게 하고 있다”라며 “앞으로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는 청소년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연화장 웰다잉 프로그램과 연계해 자살률을 낮추는데도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강 소장은 또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며 모든 이가 함께 할 수 있는 장례문화에 있어서 ‘자기결정권’이 존중되며, 진정으로 아름답고 존엄한 웰다잉문화로 만들어 장례문화 패러다임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선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권혁준기자 khj@kyeonggi.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