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에서 만난 사람]모란민속장 30년 ‘고추박사’ 박광훈씨

"하루 200만원 벌던 그 시절은 다시 안오겠죠"

“국내산 고춧가루는 이 사이에 껴요. 맵고 뒷맛은 달콤하지요. 그런데 중국산은 물에 녹아버리거든요. 맛이 텁텁하고 싱거워서 차이가 많이 나죠. 수입초는 저는 물론이고 모란장에서 취급도 안해요.”

모란민속장 고추장사 30년을 바라보며 ‘고추박사’가 되어버린 박광훈씨(60).

질 좋은 국내산 고추만을 고집하면서 그간 전국 방방곡곡 찾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다.

장이 서지 않는 날엔 여전히 빈 1t 트럭을 끌고 집을 나선다. 농가를 직접 방문해 눈으로 확인하고 사야만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좋은 고추가 있는 곳이라면 강원도부터 전라도까지 가리지 않고 다니다 보니 몸은 고되지만, 중간상인 없이 믿을 수 있는 고추를 사고 또 판다는 자부심이 상당하다.

투명한 자루에 한가득 담긴 붉은 건고추도 얼마 전 강원도 영월의 농민을 찾아 받아온 국내산 태양초다.

색이 선명하고 껍질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특징으로 빛깔 좋은 붉은색을 따지다 보니 옷마저 빨간색을 주로 입게 됐다.

박씨는 전국 고추장수의 집합소 격이었던 모란장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별별 일을 다 겪었다.

복개공사가 있기 전 하천변에서 장사를 하던 1980년대엔 고추 한 차가 들어오면 모자랄 정도로 고추가 잘 팔리면서 곳곳에서 모여든 고추상인만 80명이 넘었다.

하루 2t 이상의 고추가 모란장에서 팔려나가던 시절이다. 그러던 중 80년 후반 근당 2천500원하던 고추가격이 800원까지 폭락하면서 농민의 시위가 이어졌다. 고추판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박씨는 수완을 발휘해 고추 한 차를 싣고 왔고 하루 만에 200만원을 벌어들였다.

반면 고추꼭지를 제거한 마른고추는 중국산 고추라는 뉴스가 터지면서 온종일 한 근도 못 팔았던 적도 있다. 모란장에서는 꼭지를 제거해 고춧가루로 곧장 빻을 수 있게끔 손질한 고추만 팔기 때문이다. 날이 저물어 하나도 팔지 못한 고추 포대를 트럭에 그대로 실으면서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박씨의 말 그대로 ‘양과 극’을 오가며 지내왔다.

“세상이 변하면서 손님도 떠나고 장터가 정신없이 북적이던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거예요. 이제 상인들도 발맞춰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그래도 변치 않는 사실은 모란장은 최고의 국내산 고추를 어느 곳보다도 저렴하게 판다는 사실입니다”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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