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은 통제 중입니다”… 통제 속 찬반집회 시작된 헌재 앞 [현장,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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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9시10분께 안국역 4번 출구 앞.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선고를 2시간여 앞둔 가운데 경찰이 안국역 일대 통행 제한에 나서고 있다. 오종민기자

 

4일 오전 9시10분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일대. 헌법재판소가 위치한 이곳은 사실상 통제 구역으로 바뀌었다.

 

평일 아침 출근 시간답지 않게 거리는 기이할 정도로 조용한 모습이었다. 경찰의 차단선은 조계사부터 헌재까지 400m 구간을 빈틈없이 감쌌다. 파란색 경찰버스 수십 대가 벽처럼 도로 양옆에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높이 1m가 넘는 철제 펜스가 이중 삼중으로 엮여 있었다.

 

헌재 방향으로 접근하려는 시민은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경찰은 교차로마다 10~20명 단위로 배치돼 “진입하실 수 없습니다”, “이쪽은 통제 중입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정장을 입은 한 직장인은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근처 로펌에 출근하는 길인데요”라고 말했지만, 경찰은 “직접 소속 확인 전화를 받아야 한다”며 발걸음을 막았다. 결국 그는 전화기를 붙잡고 5분 넘게 실랑이를 벌이다 비로소 들어갈 수 있었다.

 

일대를 지나는 시민들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취업 면접이 있어 이곳을 찾았다는 김제인씨(27·전남 광주)는 “이 근처에서 면접인데, 아예 못 지나가 늦으면 어떡하나”라며 발을 동동 굴렀고, 한 커플은 스마트폰 지도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여기도 막혔네”라고 웅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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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안국역 5번 출구 인근 주유소가 경찰 버스에 둘러싸인 채 운영을 멈췄다. 오종민기자

 

차량 통제도 철저했다. 헌재 인근으로 향하던 택시 한 대는 차단선 앞에서 급정거했고, 택시기사는 창문을 내리며 “이렇게 다 막아버리면 어떡하라는 것이냐”며 혼잣말을 뱉었다. 경찰은 “우회로 안내드립니다”라며 다른 도로를 알려줬지만, 이미 교통 체증이 시작된 상태였다.

 

경찰의 통제를 보곤 외국인 관광객들도 카메라를 꺼냈다. 러시아에서 여행을 왔다는 이반 세르게예프씨(32) 아내 나타샤 코즈로바씨(29)는 “우리는 뉴스를 통해 한국 정치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도로가 통제되고 경찰이 많은 건 예상 못 했다”며 “길을 찾는 것도 어렵고, 관광객 입장에선 좀 불편하다”고 말했다. 나타샤 씨는 “그래도 한국 시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인상적이다”고 덧붙였다.

 

안국역 5번 출구 인근 주유소 역시 운영을 멈췄고, 인근 공사장도 조용히 멈춰 있었다. 가림막 너머 자재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안내문 아래엔 간이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공사장 관계자는 “오늘은 헌재 선고 때문에 작업을 멈췄다”고 말했다.

 

오전 9시30분이 넘어서자 진보 성향 단체들의 집회가 본격적화됐다. 안국역 6번 출구 앞은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대학 총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참가자들이 줄지어 들어서며 구호가 커졌다. 이들은 ‘헌법 수호’, ‘탄핵 인용’이 적힌 손팻말을 흔들고, 무대 차량 위 스피커에선 “대한민국은 깨어 있어야 한다”는 연설이 흘러나왔다. 종로문화원까지 약 300m가량 이어진 대열은 구호, 깃발, 피켓으로 가득 찼다.

 

‘범시민대행진 종합 안내’ 표지를 단 자원봉사자 김모(24) 씨는 “어젯밤엔 새벽 3시까지 있었고, 오늘은 오전 7시에 다시 나왔다”며 “극우 유튜버들이 밤에 와서 트집 잡고 욕하고 촬영하면서 시비 걸더니 경찰이 몇 명 내보냈다. 지금은 좀 잠잠한 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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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안국역 일대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어젯밤부터 밤샘 농성과 단식 투쟁에 나서고 있다. 오종민기자

 

반면,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안국역 5번 출구에서 200m가량 떨어진 도로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전날부터 밤샘 농성을 이어오다가 이날 아침 관저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들고 “탄핵 반대”, “윤석열을 지켜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는 100여 명의 지지자들 주변에는 태극기를 판매하는 상인의 노점도 펼쳐져 있었다.

 

용인시에서 왔다는 박진섭씨(67)는 “원래는 헌재 앞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통제 때문에 여기로 옮겨 밤을 새웠다”며 “지금은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과 함께 관저 앞으로 이동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나라는 지금 뒤집히려 하고 있다. 윤 대통령만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이뤄질 예정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이른 시각, 재판관 8명 전원이 출근을 마치고 선고 준비에 돌입했다. 경기남·북부경찰청은 전날부터 총 10개 기동대, 약 660명의 경찰력을 서울로 투입해 안국동 일대 통제와 질서 유지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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