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품으로 돌려보내라”…비전향장기수 안학섭 25년만에 북한 송환 주목

image
최장기 복역 비전향장기수 안학섭씨. 시민의힘 제공

 

15년째 김포시 월곶면에 거주하고 있는 최장기 복역 비전향장기수 안학섭씨(95)가 새정부를 맞아 북한으로 송환될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대북·대남방송 중지, 대북 확성기 철거 등 이전보다 남북긴장이 완화되면서 2000년 이후 중단된 비전향장기수의 북한 송환이 25년 만에 성사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6일 김포지역 시민단체인 시민의힘(운영위원장 김대훈)과 안씨 등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가 최근 2차례 안씨를 면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안씨는 지난 6월 말 지병으로 갑자기 쓰러지자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한 결과 생명이 위험한 폐부종으로 진단을 받았다.

 

이에 안씨의 지인들을 중심으로 지난 6월 말 안씨의 북송환을 추진하기 위해 ‘안학섭 선생 북송환추진단’(단장 이적 목사)을 결성하고 정부 청사 앞에서 집회 등을 이끌며 민원을 제기해오던 중 지난달 2일 통일부 관계자가 안씨가 입원한 병원을 직접 찾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이달 초에는 안씨에게 통일부 관계자가 안부를 확인하는 전화가 온 것으로 확인돼 정부가 안씨의 송환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씨는 1953년 4월 체포·구금돼 국방경비법(이적죄)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갔다가 1995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지만, 20대에 들어간 감옥에서 42년 4개월을 보내고 환갑을 넘긴 나이에 나왔다.

 

65세에 감옥에서 벗어났지만, 비전향장기수로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고향인 인천 강화도에서 살아 보려 했지만, 친인척과 동네 주민들의 시선 으로 발을 붙이지 못했고, 막노동을 포함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다.

 

안씨는 출소 5년 뒤 북으로 떠날 기회가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그해 9월 비전향장기수 63명이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송환됐지만, 당시 안씨는 “미군이 한반도를 떠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며 스스로 잔류를 선택했다.

 

안씨는 “해방 이후 미군정 때 친일파가 득세하는 걸 보고 인민군으로 싸우게 됐는데, 미군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북으로 떠날 순 없었다. 동료 장기수 대부분이 돌아갔지만, 저라도 여기 남아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지팡이에 의존해 걸을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90대 중반의 노인이지만 과거 얘기를 할 땐 여전히 결기를 잃지 않고 또렷하게 말을 이어갔다.

 

안씨는 평화협정운동본부 고문으로 활동하며 매주 토요일 시국기도회에 참석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다 최근에는 건강이 악화해 김포 자택에 주로 머물고 있다.

 

폐부종으로 중환자실에 1주일 넘게 입원했다가 지난달 말 퇴원하는 그를 두고 의사는 “언제든지 위급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숱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평생을 살아왔다. 얼마 안 남은 인생, 이제는 동지들 곁에서 보낼 수 있도록 북으로 보내 달라”고 말했다.

 

그는 백수(白壽)를 얼마 남기지 않은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이제는 북한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안씨는 “그동안 소명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이제는 건강이 안 좋아져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만 주는 것 같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생사를 함께 나눈 동지들 곁에서 잠깐이라도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시민의힘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안씨의 북한 송환을 촉구하고 있다.

 

시민의힘은 이날 성명을 내고 “생의 끝자락에서 북녘 땅에 묻힌 동지들 곁에 함께 묻히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바람은 국가안보의 문제가 아니라 인도주의와 인간 존엄의 문제다. 96세의 고령 인사가 대한민국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 또한 어불성설이다. 그의 송환은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국가가 마땅히 이행해야 할 도덕적 책임이며 인도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김대훈 운영위원장은 “이재명 정부는 남북대화와 관계 복원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역사적 책무를 안고 있다. 교착 상태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던 남북 간 대화 재개의 청신호가 바로 ‘안학섭 송환’이라는 인도주의적 조치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학섭 선생 송환 추진단’을 비롯한 시민단체들도 지난달 정부에 안씨의 북 송환을 요구하는 민원을 공식 제출하고 제네바협약에 따라 판문점을 통해 안씨를 송환하라고 촉구했다.

 

10년 전부터 안씨를 돌보고 있는 김포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는 “안씨는 6·25전쟁이 끝나고 남파된 간첩이 아니라 전쟁 중 붙잡힌 포로인데 42년여간의 옥살이를 감내해야 했다”며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안씨를 조속히 송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