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품앗이·수리는 땜질... 1천400만명 ‘문화 창구’ 처량 [갈 길 잃은 경기문화재단 上]

전국 유일 도립박물관 올해 예산 43억, ‘219억’ 서울역사박물관 比 4배나 적어
소장품 구입 기관 ‘예산 몰아주기식’ 운영, 2023년·올해 구매비 ‘0원’… 정체성 ‘흔들’
道 “증액 검토, 도민 문화예술 향유 노력”

image

 

경기문화재단 소속의 경기도립 뮤지엄이 예산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예산이 다른 시 단위 뮤지엄보다도 열악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천400만명의 문화예술 향유를 담당하는 경기도 뮤지엄이지만 투입되는 예산은 초라해 도민의 문화예술 향유권이 쇠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경기도 대표 박물관·미술관, 타 시립뮤지엄 수준 ‘초라’

4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박물관의 올해 예산은 43억8천만원이다. 전국 유일의 도립 박물관이지만 다른 지자체 박물관과 비교하면 운영 예산은 초라한 수준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올해 예산은 219억6천만원으로 지난해부터 건립하고 있는 어린이박물관 관련 비용(43억6천만원)을 제외해도 경기도박물관의 4배에 달한다. 울산시립박물관의 올해 예산 역시 113억원으로 도박물관의 2배 규모다.

 

경기도 대표 미술관인 경기도미술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경기도미술관의 올해 총예산은 39억원으로 전남도립미술관(78억원), 제주특별자치도립미술관(66억원), 경남도립미술관(43억원) 등 여타 도립미술관과 비교해도 적다. 부산시립미술관(218억원), 서울시립미술관(106억원), 울산시립미술관(69억원) 등 시립 미술관보다도 빈약한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기도립 뮤지엄에선 수리가 시급한 부분도 땜질해서 사용하기에 급급하다.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은 개관 당시 설치한 ‘잭과 콩나무’ 작품이 노후해 작품 연결 부위의 와이어를 감싸고 있는 튜브가 벗겨지면서 지난 5월 어린이 관람객이 다치는 사고를 겪었다. 잭과 콩나무는 미국 작가의 작품으로 보수를 하기 위해 10여억원의 비용이 필요하지만 박물관 측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5월부터 2개월간 운영을 중단하다 국내 업체를 선정해 작품을 임시 보수하고 있다.

 

‘두 개의 DMZ’ 실감 콘텐츠 역시 5년이 넘어 화면이 안 나오는 등 고장이 났지만 신규 콘텐츠를 넣고 수리하는 데 10여억원이 들자 일부 기능을 빼면서 예산을 절감하는 방식을 택했다. 실학박물관도 개관하면서 선보인 상설전시 2개를 예산 문제로 교체하지 못한 채 도배 등 일부를 보수하며 버티고 있다.

 

■ 3년간 소장품 구입비 ‘1억원’...품앗이로 소장품 구매 이어가는 뮤지엄들

이 같은 예산 부족 문제는 뮤지엄의 가치와 직결되는 ‘소장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3년간 경기도립 뮤지엄의 소장품 구입비는 7억원으로 뮤지엄별 1억원의 예산이 겨우 배정됐다.

 

소장품 구입비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보니 각 뮤지엄은 소장품을 구입하는 기관에 돌아가면서 예산을 몰아주는 ‘품앗이’로 구매를 돕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23년과 올해는 소장품 구입비가 아예 ‘0원’으로 배정돼 뮤지엄의 정체성에 들어맞는 소장품을 발견해도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가 2022년 ‘서울특별시 박물관·미술관 소장품 구입 기금의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소장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타 지자체 뮤지엄 관계자는 “박물관·미술관의 가치를 결정하는 조건은 소장품의 질과 양에 있다. 뮤지엄의 정체성과 지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인 소장품이 뮤지엄의 ‘심장’으로도 여겨지는 이유”라며 “특히 뮤지엄이 받는 기증품에도 보상금을 제공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 소장품 구입 예산은 필수다. 경기도라는 큰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뮤지엄이 매년 소장품 구입으로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경기문화재단, 도립 뮤지엄들의 예산 부족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예산 증액 등을 검토해 도립 뮤지엄의 콘텐츠 질을 높이는 동시에 경기도민이 보다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