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생명 구하려다, 목숨 잃다’…반복되는 질식재해 비극 막기 위해선

안전보건공단 경기지역본부 산업보건센터 박현진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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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공단에 입사한 지도 어느덧 18년이 넘었다. 그동안 수많은 중대재해 현장을 접했지만,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사고가 하나 있다. 바로 2010년 5월, 평택의 한 양돈농가에서 발생한 황화수소(H2S) 중독 사고다.

 

돈사와 집수조 사이의 수중관로가 막히자, 외국인 노동자 2명이 막힌 관을 뚫기 위해 집수조 내부로 들어갔다. 작업을 하던 이들은 곧 황화수소에 중독돼 쓰러졌고, 집수조 밖에서 지켜보던 농장주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구조를 위해 집수조에 들어간 아들도 쓰러졌고, 어머니가 신고하러 간 사이 아버지까지 구조에 나섰다가 결국 4명 모두 목숨을 잃게 된 사고다.

 

이 사고는 ‘2차 피해’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금까지도 각종 안전보건 교육자료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왜 구조자가 희생되는 걸까?

 

사랑하는 가족이, 혹은 동료가 눈 앞에서 쓰러진다면, “들어가지 마”라는 경고보다 “살려야 한다”는 본능이 앞서게 된다. 그래서 구조자의 사망은 ‘무모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됨’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그 ‘인간으로서 본능으로 인한 구조행위’가 연쇄적인 희생을 부른다. 그러기에 질식사고는 한 명만 위험에 빠지는 사고가 아니라,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가스 측정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구조를 시도하다가 한 공간 안에서 여러 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올해 봄, 전주의 한 제지공장에서 유사한 사고가 또 다시 발생했다. 백수탱크 안에서 쓰러진 작업자를 구하러 들어간 동료가 함께 사망하며, 총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질식 사고는 특히 봄철과 여름철에 자주 발생한다. 기온이 급격히 오르면 밀폐공간 내 미생물 활동이 활발해지고, 유기물 분해 과정에서 산소가 줄어들게 되고, 황화수소 등 유해가스가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온이 상승하는 계절, 우리는 질식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다음의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예방의 핵심은, ‘들어가지 않는 것’에 있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밀폐공간 내에 위치하고 있는 설비나 장비, 조작장치 등을 밀폐공간 밖에서 조작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여 밀폐공간 내로 작업자가 출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밀폐공간에 들어가야 한다면, 첫째, 사업장 내 밀폐공간 위치 파악, 사전 확인 절차, 안전보건교육 및 훈련 등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밀폐공간 작업 프로그램’을 우선 실시하고 작업정보, 작업자 정보, 가스농도측정 결과, 비상연락체계 등을 작성한 작업 허가서를 발급한 후 반드시 이행여부를 확인한다.

 

둘째, 사업주는 밀폐공간 작업 시작 전 산소 및 유해가스의 농도를 측정하고, 밀폐공간의 공기상태가 적정한지 확인해야 한다. 공기상태가 적정해 작업장소로 들어가더라도 작업 중 발생할 수 있는 유해가스를 제거하기 위해 작업 전·중에 환기팬을 상시 가동하고 작업 종료시까지 가동하도록 한다.

 

셋째, 밀폐공간에 근로자를 종사하도록 할 때에는 상시작업 상황을 감시할 수 있는 감시인을 지정하고,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119에 신고하고, 훈련되지 않은 인원이 즉시 진입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구조는 훈련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질식은 빠르게 일어나며, 희생자 중 다수가 구조하려다 함께 사망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먼저 인식하여야 할 사실은 ‘준비되지 않는 구조는 구조가 아니라 제2의 희생’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공단에서는 밀폐공간 작업을 수행하는 사업장에 원하는 시간대에 전문가가 방문해 장비와 교육을 무상으로 서비스를 지원한다. 지금, 당신의 현장은 질식재해를 예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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