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만주 벌판에 우뚝 서 있는 광개토대왕릉비와 웅장한 장군총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스스로 천하의 중심임을 자부하며 호방한 문화를 창조해 민족의 위상을 뽐냈던 고구려는 고려를 거쳐 ‘코리아’로 이어진다. 구리시에 고구려의 기상과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립박물관이 있다. 바로 ‘고구려대장간마을’이다.
■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지 ‘구리 아차산’
5세기 고구려의 영토는 ‘아리수’(한강의 옛 이름)와 ‘아단성’(아차산의 옛 지명)까지 확장됐다. 1994년부터 구리 아차산에서 고구려의 유적이 발굴된다. 2010년까지 계속된 학술조사와 발굴로 아차산은 남한의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지로 알려지게 된다. 아차산에서 수많은 보루가 발견되고 귀중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아차산 4보루에서 발견된 간이 대장간 터는 고구려 유적이 즐비한 만주나 북한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유적이다.
고구려의 영광은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구리시는 고구려의 기상과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아차산 자락에 고구려대장간마을을 조성한다. 2008년 개장한 고구려대장간마을은 이듬해 4월 공립박물관으로 등록돼 아차산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정기적으로 특별전을 열고 있다.
“고구려 대장간에 대한 문헌 기록은 없으나 대장장이가 신격화돼 대장장이 신으로 표현한 고구려 고분벽화를 바탕으로 고구려대장간마을이 탄생한 것입니다. 살아 숨 쉬는 고구려를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역사 체험 공간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 고맙지요.” 아차산을 발굴 조사할 때부터 현장을 지켜봤다는 이면옥 문화관광해설사의 말이다.
아차산에는 구의동보루, 시루봉보루, 용마산보루, 망우산보루, 홍련봉보루, 봉화산보루가 이어진다. 아차산보루는 4보루까지, 용마산보루는 5보루까지 이어질 정도로 아차산 주변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17개의 보루(堡壘) 중에서 가장 주목할 곳은 대장간터가 발견된 아차산 4보루다. “고구려는 396년부터 551년까지 76년간 이 지역을 지배했습니다. 이곳에서 고구려가 남긴 76년 동안의 역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 고구려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공간
아차산에 주둔했던 고구려 병사들의 생활상은 어떠했을까. “고향을 떠나온 병사들은 보루를 쌓고 백제군에 맞서 전투를 벌이고 무기를 수리하며 전투가 없을 때는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습니다. 이처럼 아차산보루에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전시실에서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대왕릉비를 마주한다. 동양 최대의 비석이라는 광개토대왕릉비에 새겨진 1천775자의 글자 중에서 ‘평안(平安)’이란 두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7~8세의 어린이가 무용총 수렵도의 그림을 맞추고 있다. 고구려의 무사가 말을 달리며 활로 호랑이와 사슴을 사냥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호쾌하다.
전통 가옥의 지붕을 만들 때 처마 끝을 막는 기와를 막새기와 또는 와당이라고 한다. 전시실에서 고구려의 와당을 맞추는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장수, 아이들, 염모, 대장장이, 백제군이 등장하는 만화 ‘투구에 핀 들꽃’이 전시실 벽면 한쪽을 채우고 있다.
만화로 아이들에게 고구려대장간마을을 소개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부제가 ‘고구려대장간마을 장수 이야기’이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에 ‘아차산 보루군을 옮겨 놓다-아차산 고구려 유적 전시관’이라 새겨 놓았다. 안내 글귀대로 박물관 2층은 아차산보루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전시 공간이다.
“아차산 4보루의 둘레는 256m에 이릅니다. 성벽에는 적을 감시하면서 방어할 수 있는 시설인 치(雉)가 두 개 있고 성안에는 배수로, 저수시설, 온돌이 놓인 건물터가 확인됐습니다.” 모형으로 병사들이 생활했을 건물터의 위치와 크기를 비교하고 간이 대장간 시설의 모양을 살펴본다.
특이한 유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현대 군대에서 사용하는 식기처럼 가운데는 둥글고 그 옆으로 네 곳으로 나눠 음식을 담을 수 있는 ‘구절판’이란 그릇이다. 생김새도 흥미롭지만 이 그릇에 무엇을 담았을지 너무 궁금하다. 주발이 아주 넓고 띠고리 모양의 손잡이 네 개가 있는 토기는 어디에 쓰였던 것일까. 1천500년 된 유물이 관람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고구려인들도 연꽃을 사랑했던 모양이다. 아차산 홍련봉 1보루에서 출토된 연화문와당과 평양에서 출토된 연화인동문와당에 새겨진 연꽃을 비교해 본다. 연꽃을 사랑했던 고구려 사람들의 마음이 와당에 가득 담겨 있는 듯하다.
철기는 가장 주목되는 유물이다. 보리나 밀을 베는 낫, 땅을 파는 삽날 같은 농기구와 창날과 화살촉도 여러 점 전시돼 있다. 물론 칼이나 낫을 갈았던 숫돌도 있다. 커다란 쇠솥과 쇠항아리는 처음 만나는 진귀한 유물이다. 여러 장의 철판을 가죽끈으로 이어 만든 투구에 눈길이 머문다. 저 갑옷을 입었던 고구려 병사는 고향에 돌아갔을까, 아니면 아차산 전투에서 전사했을까. 고구려 무사들이 사용했을 다양한 화살촉도 관람의 재미를 더해준다. 아차산 자락을 달리던 고구려 무사들의 전마에 부착했을 등자와 재갈에 주목한다. 고구려의 기상을 보여주는 유물이기 때문이다.
■ 놀며 배우고 익히는 우리 역사
고구려대장간마을에는 8월까지 매주 토·일요일 두 차례 운영되는 주말 프로그램으로 ‘고구려대장간마을에서 와당과 놀자’를 운영한다. 관람객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데 고구려 와당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고구려인의 문화를 배우고 와당을 만들어보는 체험활동이다.
한편 4월과 5월, 9월과 10월에 진행되는 ‘만화랑 역사랑’은 유아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오전에 1시간 동안 미취학 유아를 대상으로 고구려대장간마을 관람과 활쏘기 체험이 이어진다. ‘아차산 지킴이’ 활동은 10월의 주말에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고구려대장간마을과 아차산일대보루군에서 4시간 동안 진행한다. 사적 제455호인 아차산일대보루군 현장을 답사해 고구려 유적의 보존 캠페인 활동을 진행한다.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의 프로그램 ‘고구려를 찾아라’는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 활동지 및 와당 목걸이 체험 같은 활동이다. 다만 아쉽게도 야외전시관은 시설이 낙후해 안전에 문제가 있어 현재 개방하지 않고 있다.
■ 아차산에서 고구려의 기상을 배우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구려의 숨결이 남아 있는 보루를 살펴보기 위해 박물관 뒤편으로 난 산길을 오른다. 계곡 바위틈으로 시원한 물줄기가 더위를 식혀 준다. 잠시 걸었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더니 사방이 탁 트인 봉우리가 나타난다. 해발 200~300m의 아차산과 용마산에는 20여개의 고구려 보루가 모여 있는데 주변의 풍광이 빼어나다.
고구려의 남진 정책의 교두보인 아차산보루에서 서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포함해 한강과 중랑천과 왕숙천 일대를 조망한다. 구릉의 능선을 따라 400∼500m의 간격을 두고 배치된 이 유적들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무렵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앞에서 소개했듯이 1994년 구리시와 구리문화원에서 지표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아차산보루군은 고구려가 5세기 후반에 한강 유역에 진입한 후 551년 신라와 백제에 의해 한강 유역을 상실하기까지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삼국의 역사를 반영하는 소중한 유적이다. 대장간터가 발견된 아차산 4보루는 아차산성과 달리 들어갈 수 있어 사람들이 많다. 그중 상당수는 외국인이다.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차산은 고구려의 명장 온달의 전설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옛 모습을 간직한 보루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굽어보는 시민들의 표정이 밝고 행복하다. 고려 때는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았고 조선 중기까지 임금의 사냥터로 이용됐던 아차산은 고구려의 정신이 살아있는 역사의 공간이다. 아이들과 고구려대장간마을을 찾고 아차산에 올라 수·당의 100만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기상을 이야기하자.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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