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경 식생활연구가
가정의 달 5월이 숨 가쁘게 지나가고 바람과 적당한 비를 맞고 새롭게 단장한 나무들은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5월은 역시 ‘탄생’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달이다.
며칠 전 조용한 생일을 보냈다. 소란스러운 축하보다는 고요한 하루가 더 간절한 날이었다. 미역국도 챙기지 못하고 바삐 출근하던 시절엔 아침부터 축하 메시지가 쏟아지고 케이크와 꽃이 넘쳐 났지만 중년이 된 지금은 가족과의 시간과 마음의 안정을 먼저 챙기게 되는 날이다. 다른 날보다 느긋하게, 천천히 시작하는 생일 아침, 미역을 꺼내 불리면서 부모님에게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전하고 미역국으로 따뜻한 하루를 시작했다. 생일은 나이 한 살을 더하고 파티하는 날이 아니라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축복하는 날이라는 것을 중년에야 깨달으니 문득 아쉬움이 감돈다. 이 소중한 의미를 이제라도 깨달아 감사할 따름이다.
한 매체에서 조사한 ‘생일 요리’에 관한 설문에서도 ‘연인을 위한 생일 메뉴’ 1위는 단연 미역국이었다. 생일 아침에 챙기는 미역국은 단순한 생일 음식이 아니라 우리의 지혜로운 음식이다. 언제부터 생일에 미역국을 먹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미역의 영양학적 가치는 고려시대 문헌에도 등장한다. 새끼를 낳기 위해 미역밭을 찾아드는 고래는 미역을 먹으며 몸을 회복한다고 알려져 있다. 영양이 부족하던 시절 미역국은 삼면이 바다인 이 땅에서 산모의 기력을 보하고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였다.
미역을 식재료로 먹는 국가는 많지만 생일에 우리처럼 미역국을 먹으며 탄생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생일날, 세계의 식탁에는 어떤 축복의 음식이 올랐을까.
중국에서는 장수면(長壽麵)이라고 불리는 길고 가는 국수를 먹으며 장수를 기원한다. 면을 끊지 않고 먹는 것이 중요하며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복숭아 모양의 찐빵도 장수를 상징하며 생일상에 자주 오른다. 가나의 ‘오토(Oto)’는 으깬 얌이나 고구마로 만든 생일 아침 식사로 풍부한 탄수화물은 활기찬 시작을 상징한다. 네덜란드 남부에서는 생일에 케이크 대신 ‘블라이(Vlaai)’를 낸다. 체리, 살구, 쌀 푸딩 등을 채운 커다란 전통 파이로 한 조각만으로도 따뜻한 축하의 마음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친구나 가족들이 함께 만드는 경우가 많아 유대감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호주의 ‘페어리 브레드(Fairy Bread)’는 버터를 바른 빵 위에 알록달록한 스프링클을 얹은 간식으로 아이들 생일 파티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다.
다양한 생일 음식은 먹거리를 넘어 생일 축하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되새긴다. 생일을 축하하는 건 같지만 생일을 고마워하는 건 어쩌면 우리만의 방식이다. 그 마음은 미역국 한 그릇에 담겨 식탁 위에 올라온다. 미역국 한 그릇에서 시작된 우리의 생일문화와 세계 각국의 독특한 생일 음식은 단순히 개인의 식사가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나누는 축하 언어다.
생일 음식을 함께 나누며 따뜻한 마음이 음식으로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도 또 하나의 축복이다. 생일은 그렇게 식탁 안에서 우리 모두를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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