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실패, 단절 아닌 순환이어야

오경상 단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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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소기업 대표는 수년간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을 고용하며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회사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거래처 부도와 납품 대금 미수금이라는 외부 변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폐업을 결정했다. 그가 쌓아온 기술력과 사업 경험은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자산이다. 하지만 한 번의 실패가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돼 재도전의 길은 너무도 멀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아직 실패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과거의 부실 기록이 금융기관 평가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신용보증이나 대출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일이 다반사다. 이처럼 재도전 의지가 있는 기업인조차 제도적 장벽 앞에 좌절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재도전 성공 패키지’를 통해 최대 1억원의 사업화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재창업 특화 교육’ 등을 통해 창업 실패자의 재기를 돕고 있다. 최근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도 재기 기업 전용 보증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여전히 ‘실패 이력’에 대한 금융기관의 보수적 판단이 남아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이스라엘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창업 국가가 됐다. 실패한 이력이 있는 기업인에게도 동일하게 정부 보조금과 보증 혜택을 제공하며 심지어 민간 투자자들은 실패 경험을 오히려 ‘학습된 리스크관리 능력’으로 평가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역시 ‘빨리 실패하고 더 빨리 배워라(Fail Fast, Learn Faster)’는 문화 아래 실패는 성장의 필수 과정으로 간주한다. 유럽연합(EU)도 ‘세컨드 찬스(Second Chance) 정책’을 도입해 실패 기업인의 신속한 회생과 재창업을 위한 법제도 정비를 병행하고 있다.

 

물론 도덕적 해이를 경계해야 한다. 제도를 악용하는 일부를 가려낼 수 있는 신용평가의 정성적 요소, 도덕성 기반 스크리닝 시스템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일부의 문제일 뿐 대다수 진정성 있는 창업가들이 재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제는 단순한 창업 장려를 넘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재도전 친화적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더 나은 시작이다. 그들을 다시 경제의 중심으로 이끌 수 있는 길을 지금 더 넓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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