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노인도 자아효능감이 필요하다

오선경 성공독서코칭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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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 연휴 중 한나절 시간을 내 부모님과 홀로 지내는 고모를 모시고 근교로 향했다. 아흔 넘으신 고모가 좋아하는 식당과 한강 전망이 탁 트인 카페에 갔는데 때가 때인지라 가족 단위 방문객이 정말 많았다. 특히 아이와 부모, 조부모가 함께인 모습이 평소보다 더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모두 고려한 나들이였으리라.

 

고모는 아흔 넘은 나이에 혼자 지내지만 독립적이다. 움직임이 예전처럼 가뿐하진 않아도 지팡이를 짚고 혼자 잘 다니고 집안일도 깔끔하게 잘 해낸다. 종종 찾아뵐 때마다 도울 일이 하나 없을 정도다. 뭐든 필요할 때 연락을 주시라 권하지만 고모는 제정신일 때는 젊은이나 이웃에게 되도록 의지하지 않고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나이 든 사람의 미덕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그 연세에 도달했을 때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참 잘 살아낸 인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식사 후 담소를 나누던 중 고모가 “늦기 전에 언니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고 했다. 사실 이번에 뵌 고모 위로 백세 가까운 고모가 두 분 더 있다. 조부모 두 분 모두 아흔 가까운 나이에 돌아가신 장수 집안이니 별일은 아니다. 놀랄 일은 따로 있다. 시골 고모들은 그 연세에 아직도 밭으로 일을 다니신다. 재산도 넉넉하므로 생계를 위한 게 아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심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촌들도 유심히 살펴보기만 할 뿐 말리지 않는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범위의 소일거리이므로 어머니 스스로 용돈 버는 기쁨을 누리도록 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청렴하고 일을 잘해 나라가 주는 상도 받았지만 IMF 외환위기 때 조기 정년 정책으로 몇 년 일찍 원치 않은 은퇴를 했다. 원래 정년을 누리지 못한 아버지는 몇 년간 깊은 우울감에 시달렸고 가족들도 아주 힘들었다. 그러나 원래 하던 일도 아닌 주차 관리 업무로 다시 일을 시작한 후론 웃음을 되찾았다. 사회에서 무언가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인지 자식의 만류에도 거의 팔순까지 학교 숙직 수위 아르바이트를 이어갔다. 진짜 은퇴 후엔 지하철, 버스, 기차로 다니는 전국 여행 기록을 스마트폰 영상으로 만들며 즐겁게 사신다. 어머니도 스스로 일상을 꾸리는 편이다. 하지만 여러 여건상 모든 노인이 다 이렇게 독립적으로 지낼 수 있는 건 아니다.

 

‘2024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19.2%로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러나 현재 삶에 만족하는 고령자 비중은 31.9%로 2.4%포인트 줄었고 자신의 사회·경제적 성취에 대해 만족하는 비중도 26.7%로 4.6%포인트 감소했다. 초고령사회의 주요 일원인 고령자가 이같이 불행하다면 큰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미래인 젊은이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초고령사회에서는 노인도 젊은이 못지않은 미래가 될 수 있기에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의존하거나 짐스러운 존재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고령자가 자아효능감을 느끼며 독립적으로 살아갈 방법이나 고령자를 위한 진로 교육, 일터 등 사회적 차원에서 주어지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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