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업 지원, 보호를 넘어 자율성·자주성으로

박종민 경기도 농수산 생명과학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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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이며 식량 안보와 사회적 안정을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다. 그 중요성 때문에 농업은 오랫동안 정부의 보호와 지원을 받아 왔다.

 

시장 실패 가능성,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자연재해와 가격 변동, 그리고 농업이 제공하는 다원적 기능은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논거가 돼 왔다. 이러한 논리에 대해 때때로 과잉 개입, 비효율성, 세금 부담, 외부효과 과대평가 같은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나 긴 시간을 놓고 보면 농업의 시장 조정 기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작동해 왔으며 정부 지원이 국민경제 전체에 미치는 부담 또한 과장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농업이 사회에 제공하는 공공적 가치는 수많은 평가에도 여전히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농정을 오랫동안 현장에서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다른 지점에서 깊은 우려를 느낀다. 그것은 바로 지원에 따른 자율성과 자주성의 약화다. 정부 지원이 많아질수록 농민은 시장과 자신의 노력보다는 지원 제도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창의성과 혁신은 점차 사라지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힘은 약해진다. 이는 개인 농가의 문제를 넘어 농업 전체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심각한 위기를 잉태하고 있다.

 

농업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보호만으로는 미래를 열 수 없다. 이제 농정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농업인 스스로 꿈꾸고, 도전하고,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자율성과 자주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 전환을 위해서는 정책의 방향성과 실행 방식 모두에 변화가 필요하다. 획일적인 보조금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현장의 주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과 학습, 협업의 기회를 확대하고 지역 맞춤형 실험과 실패를 지원하는 유연한 정책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농업을 살리는 길은 결국 농민을 살리는 길이다. 그리고 농민을 살리는 길은 그들의 주체성과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다. 정부 지원은 그 길을 열어주는 토대가 돼야 한다. 이제 농정은 진정한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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