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화마로부터 문화유산을 지키자

이지훈 경기역사문화유산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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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29명이 사망하고 건물 2만채가 불타 없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로 30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시설이 소실되거나 파손되는 피해가 났다.

 

이번 산불로 인한 국가유산 피해 사례는 지난 4월4일 기준 총 35건으로 집계됐다. 그중 국가지정 유산과 시·도지정 유산은 각각 13건, 22건이다. 특히 경북과 경남 등 영남권에서 피해가 컸다. 보물 ‘의성 고운사 연수전’, ‘의성 고운사 가운루’가 이번 화재로 전소했고 보물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은 석불 일부가 파손됐다. 명승 안동 만휴정 원림,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 청송 주왕산 주왕계곡 일원, 천연기념물 안동 구리 측백나무숲, 영양 답곡리 만지송 등도 피해를 입었다. 2005년 양양 낙산사 전소의 악몽이 또다시 되풀이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많이 분포된 목조 문화유산이 화재에 특히 취약한 만큼 소중한 유산을 잃지 않도록 방재 대응 체계를 다시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비한 법과 제도를 손 보고 방재 대책도 세세히 보완해야 하지만 해당 부처의 관련 인력과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문화유산 안전방재 기술개발연구 예산은 4억원이 채 되지 못하며 그마저 전년 대비 13% 줄어들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사정은 더욱 딱하다. 2008년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개정된 관련 법은 국가유산청장과 시·도지사가 지정 문화유산에 소방장비를 설치하고 화재 예방을 위한 시책을 수립·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번 산불 사태에서 보듯이 지자체 차원의 효율적인 방재대책은 찾기 어려웠다. 필자는 기후 위기로부터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지자체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칼럼을 지난해 12월 쓴 바 있는데 이번 산불로 그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지난 4월9일 경기도의회에서는 경기도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도 차원의 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발언이 나왔다. 도내 수많은 문화유산이 산림 인근에 위치해 있어 재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국가에만 떠넘기지 말고 도 차원의 문화유산 방재정책의 수립과 함께 전문 인력 및 효율적인 복원 시스템 구축도 검토해야 한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의 우(愚)를 범하지 말자. 지역의 문화유산은 지역이 앞장서 지켜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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