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평택대 중국학과 교수
하버드대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역사의 종언’에서 냉전 말기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종말과 함께 세계는 자유민주주의가 인류를 평화와 번영의 길로 인도할 것을 예측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 되자마자 우방과 경쟁국을 가리지 않고 자유무역의 종식을 알리는 국수주의와 보호주의를 선포했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단순한 무역갈등을 넘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이다. 자유무역 체제 아래 세계는 수십년간 협력과 공동 번영을 추구해 왔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우선주의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훼손하고 경제적 민족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
특히 지난 2일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는 그 규모와 내용이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은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의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특정 국가에 대해서는 추가로 ‘상호주의’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기존 20%에서 추가 34%가 부과돼 총 54%의 관세를 부담하게 됐고 베트남 46%, 유럽연합(EU) 20%, 일본 24%, 한국25% 등으로 높은 관세율이 적용될 예정이다.
미국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중국은 즉각 미국산 농산품과 자동차, 항공기 등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EU도 미국산 상품에 대해 맞대응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법적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 역시 자동차 및 첨단 기술 제품에 대한 보복 조치를 검토 중이며 베트남과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자국 보호를 위한 다양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무역 전쟁의 확대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 둔화와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와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위험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글로벌 경제 불황과 지정학적 갈등의 심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수출 중심 경제 구조여서 이번 관세 폭탄에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양국 간 무역 갈등은 한국의 수출을 감소시키고 산업경쟁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한국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자동차 산업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며 경제 성장 둔화와 고용 불안도 우려된다.
이러한 도전에 직면한 한국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줄이고 다변화된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동남아시아, EU, 중남미 등 새로운 시장과의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기술자립도와 내수 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외부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경제 체질을 만들어야 한다.
또 국제사회와 적극 공조해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고 자유무역 질서를 지켜야 한다. 다자무역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WTO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분쟁을 조정하는 외교적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은 지금까지 서방세계의 경쟁자이고 잠재국 적대국이었던 중국에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결론은 미국이 의도하지 않았던 국제사회에서의 주도권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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