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경기역사문화유산원장
2025년 삼일절은 비상계엄 사태의 혼돈 속에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지나갔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인 것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계엄 국면에서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과 실행력은 우리 공동체의 높은 의식 수준을 보여줬으며 이는 106년 전 울려 퍼졌던 독립만세운동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1운동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일제 식민지배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이를 전 국민이 행동으로 보여준 역사적 쾌거다. 단 한시도 일본의 지배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줬다. 당시 발표된 독립선언서에는 조선 독립이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을 누리게 하는 동시에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단 한 줄도 무력을 사용하자는 표현이 없고 오로지 “인류 공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의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正義)라는 군사와 인도(人道)라는 무기”에 힘입어 독립을 주장했다.
어떤 사람은 온건한 독립선언서를 당시 추세였던 민족자결주의에 기댄 독립청원서 수준이라고 분석한다. 초안을 쓴 최남선이 후에 친일파로 변절했음을 꼬집기도 한다. 이런 견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선언서가 우리 민족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 표출과 함께 일본의 부당한 지배를 일갈하고 우리의 도덕적 우위를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자유와 정의를 위한 운동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위력(威力)의 시대는 가고, 도의(道義)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한 부분은 우리의 지난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연결된다. 일제의 압박과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시대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4·19, 5·18, 6·10으로 쌓아 올린 민주주의라는 공든 탑을 일거에 무너뜨리려고 했던 반헌법적 계엄 시도는 국민의 저항에 부딪혀 물거품이 됐다.
이후 탄핵 국면 속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열렬한 의사 표현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는 선언서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고 “모든 행동은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광명정대(光明正大)케 하라”는 부분은 오늘날 비폭력적이고 질서정연한 시위문화를 자리매김하는 지표가 됐으리라.
1919년 3월1일 시작한 만세 시위는 4월30일까지 전국적으로 1천200회 이상 벌어졌다.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했던 경기도에는 곳곳에 많은 3·1운동 유적지와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화성시의 제암리 순국 유적지와 2024년 개관한 독립운동기념관, 오라니장터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김포시 독립운동기념관, 3·1운동 3대 실력항쟁지로 꼽히는 원곡·양성 만세운동을 간직한 안성시 3·1운동기념관 등 많은 관련 시설이 있다. 이번 3, 4월에는 가까운 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해 3·1정신 속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의지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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