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이원론과 주체

김성하 경기학회장·경기연구원 AI혁신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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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강하게 뿌리 내리고 있는 ‘주체’ 혹은 ‘자아’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 근원에는 ‘나’라는 강한 중심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나’를 중심으로 ‘나’의 주변에 무수한 ‘대상’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일까.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언론을 통해 만나는 모습들은 항상 ‘내가 옳다’는 목소리와 ‘너는 틀렸다’는 강한 신념들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임에도 그 다양한 목소리들이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마치 물과 기름처럼 끊임없이 서로 분리되기만 하려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다름을 다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는 인류의 역사 속에 그 답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서양 철학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가장 큰 관점 중의 하나가 ‘이원론’이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실의 구분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데아는 만물의 근원으로 절대적이며 본질의 원형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리고 현실은 이데아의 원형을 모방한 허위의 세계일 뿐이다.

 

그러니 이원론의 핵심에는 항상 옳고 절대적인 이데아가 존재하며 이를 모방하고 있는 허위의 현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인간의 존재를 설명하면서 생각하는 주체로서 ‘코기토(Cogito)’, 즉 인식하는 주체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를 중심으로 인식의 대상이 함께 주어진다.

 

이러한 주체의 존재는 20세기를 지나며 더욱 강하게 자리 잡게 되며 ‘나’라는 ‘주체’의 절대성이 강조되고 이에 따라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대상’으로만 주어지게 되며 그러한 ‘대상’의 중요성은 간과되는 현상이 확산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주체’와 ‘대상’의 이러한 왜곡된 현상은 ‘나는 항상 옳고, 너는 항상 틀렸다’라는 잘못된 관점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나’와 ‘너’ 혹은 ‘중심’과 ‘주변’,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등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이 극단적 가치 판단으로 연결되지 않고 때로는 ‘네가 옳고 내가 틀렸다’라는 유연한 상대적 구분으로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성숙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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