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게임감각·약점보완 훈련, 연구 등 매일 8시간 이상 투자 끊임없이 노력 “당구 불가능 없어… 한계 뛰어넘을 것”
여자프로당구협회(LPBA) 출범 후 3쿠션에서 통산 13회 우승을 하며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기록을 쓰고 있는 김가영(42·하나카드). 그는 지난 1997년 여자 포켓볼의 유망주라는 타이틀에서 이제는 남녀 당구 선수 중 최고의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는 ‘당구 여제’다. 지난해 8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6전 전승으로 시즌 첫 우승을 차지했던 김가영은 3~7차 대회를 비롯해 최근 8차 대회까지 6연속 우승과 함께 총 36연승을 달리는 등 ‘무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짠물 당구’로 유명한 인천 출신의 김가영은 “당구라는 것은 이제 인생의 한 축으로 숙명과도 같은 존재”라며 “목표로 하는 한계치를 뚫을 때까지 당구를 손에서 놓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구가 누군가에겐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되길 바란다”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Q. 프로당구에 데뷔한 지 29년차 베태랑 선수가 됐다. 당구란 어떤 의미가 있나.
A. 10살 때 처음 큐를 잡아 1997년 14살에 포켓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당구를 친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30대까지만 하더라도 지도자, 화가 등 다른 직업을 그렸던 적도 있다. 당시 ‘인생의 2막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2019년 LPBA 출범과 함께 3쿠션 선수로 전향해 타 종목에서 선수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이게 내 운명인가’, ‘이번 생에 당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구나’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나에게 당구란 이번 생의 숙명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다만, 당구라는 분야가 전반적으로 개선해야할 점도 많이 있다. 원래 KBF(대한당구연맹) 소속이었는데 LPBA가 생기면서 초청 선수로 1게임 뛰었다가 영구 제명 당했다. 20여년 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당구선수로서 활동을 해오면서 메달도 많이 따고 우승도 많이 해왔지만 당시 회의감을 많이 느꼈다. 아직까지 당구라는 이미지에 대해 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이 있지만 LPBA가 큰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Q. 당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A. 당구 인생의 시작은 아버지다. 인천 남구(현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아버지가 당구장을 운영했다. 자연스럽게 당구를 접했고, 처음에는 취미로 당구를 시작했다.
아버지로부터 당구의 원리부터 치는 것까지 모든 것을 교육 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당구를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치고 있다. 1990년 대 당시 당구를 치는 친구도 많이 없었기는 했지만 사실 그 나이 또래에서도 독보적이었다.
당구 인생에 있어 유일한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 뿐이다. 지금도 아버지와 당구에 대해 연구하고 훈련하는 시간을 갖는다. 아버지만큼 내가 잘하는 점, 못하는 점, 집착하는 특징 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당구에 대한 디테일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논쟁도 많이 한다.
한 번은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과거 경기 때 친 것을 보면서 당구장에서 연습했는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웃었다. 가족들은 항상 경기 영상 등을 보며 지적하기 바쁘고, 좋은 소리는 잘 하지 않는다. 오늘 시합에 대한 분석과 함께 ‘공을 그렇게밖에 못치냐’, ‘디펜스 생각안하냐’부터 표정, 의상까지 지적을 한다. 가족들과 함께 당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떠드는 게 정말 재미있다.
Q. ‘남녀 통합 최다 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며 ‘당구 여제’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평소 훈련은 어떻게 하는지.
A. 열심히 하다보니 결과가 따라 온 것 뿐이다. ‘당구 여제’라고 불러주시는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무에게나 붙여주는 칭호가 아닌 만큼, 무게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항상 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
매일 8시간 이상은 당구에 투자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직장에서 일하는 만큼은 당구에 투자를 해야한다는 것이 기본 개념이다. 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체력 훈련 비중을 높이고, 게임 감각이 떨어진 것 같으면 게임 수를 늘리는 등 그날 그날 상황에 맞춰 집중하는 분야가 다르다. 또 개인 훈련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주변 지인들에게 피드백을 받거나 연구를 하기도 한다. 몸 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꾸준히 웨이트를 하는 등 체력적인 부분에서 다른 선수보다 떨어지거나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Q. 당구에 있어 나의 강점과 약점은.
A. 가장 큰 강점은 유연하게 당구를 칠 수 있다는 것이다. 큐대를 잡은지 벌써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다양한 당구를 쳤다. 미국 프로 생활만 10여년을 했고, 중국, 대만 등에서도 많은 경험을 쌓아왔다. 많은 특이한 상황들을 접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이를 헤쳐나가고 결국 우승까지 이뤄냈다.
당구 뿐만이 아닌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정신력, 즉 멘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멘탈이 강하다는 것은 어떠한 틀에 박혀있지 않고 그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험, 상황들을 많이 겪어왔기 때문에 당구를 침에 있어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유연하게 칠 수 있다.
다만, 스스로 자학을 많이 하는 점이 있다. 남 탓을 잘 안하고 다 내 잘못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실수해도 괜찮아’하고 다독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편이다. 스스로 연습량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자책을 많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끝까지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설령 좀 많이 아플지언정 내 부족한 점을 들여다보고 이를 극복해내기 위해 온 힘을 쏟으려 한다.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A. 남녀 통틀어 가장 높은 기록을 세우고 가장 많은 우승을 달성했다는 말을 많이 해주신다. 그러나 아직 스스로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다. 포켓볼을 치던 과거에 원했던 목표는 이미 이뤄냈고, 보통의 선수들이 이야기하는 ‘우승을 몇 개 더하고, 커리어를 더 쌓아야지’ 하는 목표는 앞으로 없을 것이다.
자신이 만족할만한 목표를 세우고 그 한계치를 넘어서고 싶다. 사실 작년에는 성적도 좋았고, 우승도 많이 했지만 생각했던 에버리지 목표치보다 조금 모자라기도 했다.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이 아닌 실력을 늘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한계를 뛰어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자 선수가 올랐던 경지, 세웠던 기록들은 이미 한참 전에 넘었다. 이것을 뛰어넘었다고 만족하는 것은 스스로 한계치를 정해놓는 꼴이다. 부족한 면을 인정하고 최적의 기술을 조합하는 등 약점을 보완해 더욱 더 성장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Q. 내가 치고 싶은 당구란.
A. 사람들이 당구 시합을 보면서 ‘당구에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사실 여자 선수가 남자 선수에 비해 힘이 부족하고 선수층이 얇은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힘으로 당구의 길을 만들면, 여자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을 보완해 다른 식으로 해결을 할 때 놀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묘한 쾌감과 함께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등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재미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수치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들이나 노약자 분들처럼 조금 힘이 없어도 당구를 칠 수 있다는 것, 꼭 남자처럼 파워풀하게 하지 않더라도 화려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고 재미있게 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를 위해 계속 증명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Q. 언제까지 당구를 치고 싶은지. 나를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당구를 치는 동안 항상 탑에 있었다. 종목이 뭐든 한 번 밀리면 안되는 성격이다. 1~2번 등수에서 밀리는 게 아니라 이제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애들을 못이기겠다는 생각이 들면 못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승권에서 밀린다거나 이제는 더 이상 당구가 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은퇴 결심까지 할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계획이 없다. 그냥 ‘더 잘하자’라는 목표 뿐이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보다보면 빨리 가서 당구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경기가 있다. 반대로 그들에게 그런 선수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김가영’이란 선수의 시합을 보고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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