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남방송에 파주 대성동 '소음지옥' [현장, 그곳&]

북한, 6개월째 밤낮 없이 대남확성기 가동
"소음에 외출도 힘들어"...정신적 고통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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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인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마을 주민들이 6개월 넘게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음에 노출돼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은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와 마주한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 윤원규기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남 확성기에서 쏟아지는 온갖 기괴한 소리에 정말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울 따름입니다.”

 

지난 27일 오후 파주시 군내면 민간인출입통제선 출입구인 파주통일대교 근처 한 카페.

 

이곳에서 만난 김동구 대성동마을 이장(56)은 손사래부터 쳤다. 그는 “북한의 대남방송 확성기 소음 때문에 두통은 물론이고 심장마비까지 온다고 호소하는 어르신이 속출하고 있다. 무슨 일이 날까 봐 겁난다”고 호소했다.

 

김 이장은 이어 “이번 설 연휴에 소음에 시달려 낮에도 방에만 있었다. 밤에는 방음창을 뚫고 지붕 위에서 들려오는 소음으로 잠을 설쳤다”며 “외지에 있는 자녀들에게도 오지 말라고 했다. 거주지를 문산읍 등 임시로 옮긴 주민들도 있다”고 전했다.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인 파주 군내면 대성동마을 주민들이 장기간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음에 노출돼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지병 악화는 물론이고 두통 등 각종 질환을 집단으로 호소하고 있다. 소음을 견디지 못한 일부 주민은 문산읍 등지에 임시 거주지를 마련하는 등 생활권 붕괴 현상마저 발생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주민이 140여명인 대성동마을이 북한 대남방송 확성기 소음에 노출된 건 지난해 7월18일부터다. 북한 오물풍선이 남하하자 우리 군이 대응 수단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북한은 이에 맞서 대남 확성기를 가동, 대성동마을이 6개월 넘게 소음에 장기 노출되고 있다. 대성동마을과 북한 최전방 기정동마을은 직선거리로 500m 남짓이다.

 

주민 A씨(78)는 경기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확성기에서 여우, 까마귀 같은 울음소리, 귀신 곡소리, 쇳덩이를 긁는 듯한 기계음 등 기괴한 소리를 쏟아 내며 귀청을 때린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파주시가 지난해 11월 대성동마을에서 측정한 소음치는 법상 소음 규제 기준치인 65㏈보다 훨씬 높은 70~80㏈에 달했는데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청력장애를 일으키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야간 소음은 심장마비 등을 일으킨다”고 경고한다.

 

주민 B씨(75·여)는 “고혈압과 당뇨가 있는데 소음 스트레스로 조절이 안 된다”고 고통을 호소했고, 일부 주민들은 소음을 피해 인근 지역으로 임시로 거처를 옮기는 등 마을 전체가 일상생활권 붕괴 위기에 몰렸다.

 

이같은 상황이 연출되자 70여년째 이어지던 주한유엔사령부 관계자들이 마을 노인회장 등에게 올리던 설 차례상은 올해에는 진행되지 못했다.

 

김동구 이장은 “주민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할 판이다. 곧 영농철도 다가온다. 농사를 어떻게 짓느나”며 “대책이 없으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게 주민들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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