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프랑스 등 전 세계에 계엄사태 기사 전송 반향 ‘Korea Exposé’ 설립자…“승리보다 타협·존중 필요”
라파엘 라시드는 영국인이다. 방글라데시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혼혈이다. 그는 한국에 거주 중인 프리랜서 기자이자 외국인에게 한국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매체 ‘코리아 엑스포제(Korea Exposé)’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새해를 일주일 앞둔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영국과 프랑스 국적의 프리랜서 기자가 본 한국의 정치 상황과 관련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한국은 최근 몇 년간 상당한 정치적 변화를 경험한 민주주의 국가다. 외신 특파원으로서 한국의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나.
A.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놀라운 강점을 동시에 보여줬다. 21세기 한국에서 계엄령이 선포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몇 시간 만에 이를 뒤집으려는 의회와 시민들의 신속한 대응은 인상적인 민주적 회복력이었다고 생각한다.
Q. 한국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중심에 있어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주변 강대국들과의 연관성이 깊다. 외신의 관점에서 현재 한국의 위상은 어떠하며 미래 잠재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한국은 북한의 지속적인 위협에 직면하면서 중국, 일본 등 주요 강대국들 사이에서 활기찬 민주주의 국가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창출한다. 서방(우방)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역 안정을 위해 일본, 미국과 동맹을 맺은 것을 높이 평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편중 외교를 비판하고 있다. 최근 사건으로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지역에서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Q. 한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거뒀지만, 최근 성장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어떻게 평가하나.
A.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급변하는 오늘날 한국이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과 더욱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율은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이 분야 투자 수익률은 놀라울 정도로 낮았다. 한 가지 분명한 요인은 성별 불균형이다. 여성은 연구 및 산업 분야의 리더십 자리에서 크게 소외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술 혁신뿐만 아니라 국제 협력 및 새로운 비즈니스 방식과 함께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광범위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과거에 놀라운 적응력을 보였으며 고학력 인력과 기술력을 결합해 창의적인 사고를 반겼다. 모든 인재에게 혁신의 장벽을 제거하는 진정한 포용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면 미래 성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Q. K-컬처는 1990년대 아시아권에서 유행하던 한류를 넘어 전 세계에서 호응을 일으키는 글로벌 현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국가의 위상도 더욱 높아졌는데, 앞으로 K-컬처는 어디로 향할 것 같은가.
A. 케이팝과 K-드라마의 성공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수익성이 높은 게임 산업을 비롯해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점점 더 깊고 광범위해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문화상품이 한국적인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반향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 계엄령 위기와 그 이후 탄핵 투표 등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K-민주주의와 관련된 새로운 서사가 등장했다.
Q. 한국 사회는 지금, 저출산과 고용 불안정, 부동산 문제, 정치 불신이 만연하고 있다. 거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한국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가 아마 가장 시급한 과제일 듯하다. 분열은 정치뿐만 아니라 성별 관계, 지역 격차, 세대 격차 등에서도 나타난다. 최근의 정치적 위기는 이러한 분열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정치는 공공 서비스보다는 당파적 복수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교육, 고용, 사회적 지위 등 정치적 분열을 넘어 한국 사회의 초경쟁적 성격은 경쟁 압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 소수의 인구만이 전통적인 성공의 정의를 달성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깊은 사회적 불행을 초래하고 분열을 더욱 부추긴다. 정치인들은 종종 이러한 분열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악용한다.
Q.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어떤 대응 방안이 있을까.
A. 한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미묘한 균형을 맞추는 행동에 직면해 있다. 미국과의 동맹을 통한 억지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전환에서 살아남는 일관된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5년마다 변화하는 행정부의 변화(또는 탄핵으로 인한 변화)를 견딜 수 있는 일관된 장기 전략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합의 구축과 국제 파트너, 특히 중국의 영향력을 고려한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그 목표가 안보를 유지하면서 대화의 통로를 열어두는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생활하면서 영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를 가장 강하게 느낀 적은 언제였나.
A. 코로나19 대응은 영국과 한국의 극명한 문화적 차이를 드러낸 사례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사망자 수를 기록하는 등 파괴적인 대가를 치르고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했지만 한국의 집단적 접근 방식은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영국에서는 마스크와 접촉 추적(역학조사)에 대한 저항이 ‘자유’를 옹호하는 것으로 프레임화됐지만 죽음에는 자유가 없다. 영국인으로서 자유와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 한국인들이 받아들인 사소한 불편함(마스크 착용, 위치 데이터 공유, 검사)은 누구의 기본권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를 보호했다.
Q. 한국 사회에서 외신 특파원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뭔가.
A. 가장 큰 도전 과제 중 하나는 언론 보도에서 한국의 만연한 익명성 문화다. 서구 언론에서는 익명성이 신뢰성을 위해 중요하지만 한국에서는 익명성이 기본 기대치인 경우가 많다. 언론 클럽(풀단·출입기자) 문화에도 상당한 장벽이 있다. 정보에 대한 접근은 종종 독점적인 그룹에 가입해야 하는데 이는 한국 사회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외국인 기자들에게 특히 어려운 일이다.
Q. 자부심을 느끼는 측면도 있을 것 같다.
A. 빠른 콘텐츠 제작에 대한 압박 속에서도 보도에 있어 엄격한 사실적 정확성과 뉘앙스를 유지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가짜 뉴스’라는 비난이 잦은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항상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방탄적인 사실 보도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Q. 한국 정부나 국민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말해달라.
A. 최근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육성하는 것이 나의 조언이자 바람이다. 계엄령이 선포됐을 때 군대를 막은 국회의원부터 영하의 날씨에도 시위에 나선 수많은 사람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달려온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그 민주주의 정신은 소중하며 반드시 지켜야 한다. 물론 국가는 극심한 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 계엄령 위기는 정치적 분열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정부와 시민 모두 상대방을 적으로 취급하기보다는 정치적 분열을 넘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라파엘 라시드 기자는…
▲1987년 7월13일(37) ▲국적 영국·프랑스(이중국적) ▲직업 프리랜서 기자·작가 ▲코리아 엑스포제(공동창업자) ▲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학력 동양 아프리카학 대학교(한국·일본학사) ▲고려대 국제대학원(한국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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