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
경기도박물관은 경기도민과 세계인의 평생 놀이터다. 달라진 문화복지 환경에 걸맞게 박물관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용자 중심으로 사고와 태도를 바뀌기 위해서는 사물을 보는 시각의 변화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이것은 학예사가 완전히 관객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뀐 프로그램의 발명이 요구된다. 새해 1월10일부터 벌어지는 ‘박물관영화제’가 그것이다. 경기도박물관이 ‘전시X영화’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하는 첫걸음이다. 박물관과 영화가 만나는 본격적인 ‘제(祭)’라 할 때는 ‘유물+영화’가 아니라 ‘유물X영화’다. 평소 전시와 영화는 남남이다. 하지만 박물관영화제에서는 서로 다른 장르가 만나 자신들도 몰랐던 이야기를 하면서 ‘박물관영화’라는 제3의 언어를 창출한다. 예컨대 경기도박물관의 독보적인 유물인 초상화(肖像畵)와 영화 ‘관상’과의 매칭이다. 개막작인 ‘관상’의 마지막 지문과 대사는 이렇다.
내경: (하하) 눈이 예리하십니다! 나도, 사공의 관상을 한번 봐드리이까?
사공: 아이고, 제가 관상을 본 건 아닙니다! (…) 그 관상이라는 게 좋으면 자만해지고 나쁘면 근심이 되는 거 아닙니까?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합니다!
내경: (하하) 그 말이 맞네요.
사공: (미소) 나으리 상은.. 어떻다고 봐야 합니까?
내경: (당황) 내 상 말이오? 글쎄, 내 상판은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는데….
시선을 먼 산에 둔 채 삐걱삐걱 말없이 노 젓는 사공. 난간에 기대어 잔잔한 초록색 강물에 얼굴을 비춰보는 내경. 바람에 물결이 일렁이자 내경의 얼굴이 흐르듯 지워져 버린다.
대사 모두가 관상 이야기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마지막 지문이다. 길흉화복을 점치는 관상의 관점에서 ‘물결’에 눈이 가지만 내면을 그려내는 초상화 입장에서는 물결을 일렁이게 하는 동인으로서 ‘바람’에 방점이 찍힌다. 마음이 얼굴인 이유다. 초상화의 생명인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얼굴 그 자체만이 아니라 얼굴로 정신을 그려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여기서 더 큰 반전은 ‘내경의 얼굴이 흐르듯 지워져 버린다”는 대사다. 이 지점에서는 관상도 초상도 모두 뛰어넘는 사유가 읽힌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의 불가의 가르침으로 도약이다. 금강경에는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는 법문 그대로다.
이렇게 영화 ‘관상’과 경기도박물관의 초상화를 동시에 오버랩할 때 영화도 초상화도 해석의 폭은 무한대로 넓고 깊어진다. ‘박물관영화’의 새로운 언어 탄생이다. 박물관에서 보는 ‘관상’은 계유정난을 가상의 관상가 내경을 개입시켜 만든 ‘팩션’사극 영화라기보다 결국에는 현상이 아니라 실상을 관하라는 심오한 철학영화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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