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닭이 방귀를 뀌면

정수자 시조시인

image

무릇 격언은 쉬운데 심오하다. 오랫동안 벼린 촌철살인의 묘수를 담아온 품이다. 처세든 철학이든 삶의 지혜를 농축해온 말의 힘이다.

 

‘닭이 방귀를 뀌면’은 그런 격언 중에도 아프리카에 전해 오는 격언의 앞 구절이다. 그 뒤를 어떻게 받을지, 무슨 수수께끼처럼 상상력을 촉발하는 표현이다.

 

웃음까지 물리는 뒤 구절은 ‘땅이 불편하다’, 의외의 표현에 정신이 확 깬다. 독자에게도 예상을 뛰어넘는 조금은 웃기고 놀라운 문장일까. 그런데 볼수록 오묘한 시적 표현처럼 생각을 부르는 말이다.

 

‘닭이 방귀를 뀌면 땅이 불편하다’, 얼핏 보면 당연하지 싶다. 어떤 존재의 방귀를 편히 받는 상대는 없을 테니 말이다. 소의 방귀가 지구 환경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지 수없이 보고 듣지 않았던가. 그런데 ‘닭의 방귀’라니, 그런 소리나 표현은 본 기억이 없다. 아프리카니까 가능한 말이라며 되짚어 보니 두루 통하는 보편적인 내용의 비유다.

 

방귀처럼 사소한 일이나 행동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경계였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격언은 꽤 있건만 생소한 표현에 끌려 눈에 들더니 여운도 길게 만든다. 지금 이곳의 도처에 들끓는 불편한 세상사를 일깨워 ‘땅이 불편하다’는 말에 더 머물렀는지도 모르겠다. 먼 아프리카의 격언을 다소 에두르는 에누리 변 같긴 하지만.

 

그런 갸웃거림을 무릅쓰고 보면 닭의 비유 중에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의 파장이 컸다. 최근에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차별적 속담도 ‘흥한다’로 뒤집는 시대적 변용이 흔히 쓰인다. 이런 격언이나 속담의 전복적 활용은 그동안 앞서 나간 걸음의 영향을 넓히는 경우다.

 

앞의 아프리카 격언과는 다소 다른 예지만 닭에 담아온 비유 중에서도 홰치는 소리가 큰 영향력의 확장이겠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닭처럼 애꿎은 짐승을 빌려 자신이 원하는 뜻을 전했다고, 새삼 미안해지는 마음이다.

 

더욱이 일생 먹거리로 사육당하다 몸 바치고 가는 닭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가당치 않은 인간중심주의가 아닐까.

 

다시 ‘땅이 불편하다’는 말을 새겨보면 불편한 땅은 아프리카를 넘어 지구 전체에 해당되지 싶다. 우리를 먹고살게 해주는 땅을 전보다 더 많이 착취하고 학대해 더더욱 황폐하게 만드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다.

 

그래서 조금 낡은 듯싶은 격언 ‘닭이 방귀를 끼면 땅이 불편하다’는 말에서 전 지구적 땅의 불편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땅이 지금은 무수한 생명을 길러낸 후의 잠시 휴식에 들어갈 때다. 닭의 방귀가 아니라도 진기 다 빼앗겨 불편한 몸을 뒤척이며 봄이 오면 새로이 움트는 것들 키워낼 힘을 조용히 길러갈 것이다.

 

우리도 한 해의 소출을 돌아보는 마지막 달이다. 새해의 다짐들은 그럭저럭 이뤘는지, 아니면 바람처럼 어느새 새나가고 말아 자신의 삶에도 미안하고 불편하진 않은지. 또 의도치 않았는데 방귀처럼 발설해 버린 말로 주위 누군가에게 심각한 불편을 끼친 일은 없는지. 애초엔 사소했으나 점점 커지는 꼬리로 몸통 흔드는 말의 태풍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하긴 말이 곧 생각이고 인격이니 당연한 귀결이겠다. 그래서 또 챙겨둔다. 어떤 불편이든 덜 만들며 가보자고.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