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누칼협’, 사직서 작성과 부당해고

김지수 공인노무사 겸 노무법인 솔루션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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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칼협’이란 표현이 최근 인터넷상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는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로 어떤 일을 본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상황에서 사용된다. 근로관계에서 누칼협이란 말이 나올 만한 상황이 있다. 바로 ‘사직서’ 제출 이후 부당해고를 주장하는 경우다.

 

최근 경기가 안 좋다는 게 상담에서 느껴진다. 해고와 관련한 상담이 부쩍 늘었다. 근로자 해고 관련 상담을 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회사의 권유로 사직서를 작성하게 됐는데 부당해고인가요’, ‘권고사직을 당했는데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가능한가요’ 등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직서 제출로 근로관계가 종료됐다면 부당해고가 성립하기 어렵다. 판례에서 사직서 제출은 강요·협박 등 특수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근로관계 종료 의사를 밝힌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판례는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사직의 의사가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떨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하게 한 후 이를 수리하는 형식을 취하여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경우 해고에 해당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 해고라고 볼 수 없다.’ 판례 문구를 쉽게 풀이하면 이렇다. ‘당신이 나간다고 했으니 회사가 자른 게 아니다. 다만 회사가 나갈 수밖에 없게끔 강요·협박 등을 한 경우에만 해고로 인정해 준다.’ 강요·협박이 없는 사직서 제출은 해고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의 경우 회사로부터 사직서를 요구받은 상황이라면 충분히 고민한 후에 행동해야 한다. 본인이 회사를 떠날 생각이 있는지, 이후 경제활동은 어떻게 할 것인지, 실업급여 수급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를 고려했을 때 회사를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함부로 사직서를 작성해선 안 된다.

 

만약 회사가 폭력·폭언 등을 통해 사직서 작성을 강요해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할 경우에는 회사로부터 부당한 행위를 당했다는 입증자료를 남겨야 한다. 사직서를 작성하기 전에 메시지, 메일 등 자료를 수집해 자신이 사직서 제출을 강요당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녹취도 좋다. 다만 대화 당사자에 본인이 포함되지 않은 경우 불법 녹취가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원치 않은 사직서 제출로 억울한 상황에 처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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