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경기역사문화유산원장
지난 10월31일 남한산성역사문화관이 개관식을 개최하고 일반에 공개됐다. 2014년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나서 경기도는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으며 수년간의 준비와 공사를 거쳐 드디어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역사문화관은 산성도시로서의 세계유산적 가치와 경관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담당해 나갈 예정이다.
역사적으로 남한산성 하면 병자호란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산성의 기원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의 모습으로 갖춰진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은 후인 1624년(인조 2년)이었다. 그로부터 12년 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청나라 군대의 남하가 시작되자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후 47일간 항전했으나 결국 항복하고 굴욕적인 강화를 체결한다. 이런 통한의 역사도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직접 기억되는 산성의 모습도 또한 존재한다. 6·25전쟁을 거친 1950년대 남한산성은 이승만 대통령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1954년 5월 “전쟁으로 파괴됐던 남한산성은 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경기도가 고적 수리와 도로 신설을 마쳤고 국립공원으로 지정·개방했다.” 1955년 6월에는 “이 대통령의 탄신 80주년을 맞이하여 산성에 ‘이승만박사송수탑(頌壽塔·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을 제막하고 아울러 광주군 온정리로부터 산성까지의 7.6㎞의 신설 도로도 개통하는데 이름을 우남로(雩南路·우남은 이승만의 호)라고 명명한다.” 이런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이승만의 남한산성 사랑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산성에는 1953년 이승만이 방문했을 때 심었던 전나무와 기념비, 그리고 송수탑 하부석이 남아 있다. 송수탑신은 4·19 후 철거됐고 국립공원 지정도 해제됐다.
산성에 육군형무소가 설치된 시기도 있었다. 그 후 남한산성이라는 단어 속에는 무시무시한 인권 사각지대라는 통념이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형무소 재소자들에 의해 산성 중턱에 ‘혁명기념탑’이 건립됐다는 신문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1970년대는 서울시민들이 자주 찾는 근교 유원지로서의 기능을 했다. 영화와 TV촬영의 단골 장소이기도 했다. 1974년 방영됐던 KBS 연속극 ‘에루야’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봉화잡이를 둘러싼 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극으로 주무대인 산성에서 야외 녹화가 진행됐다고 한다.
서울시민과 경기도민들이 자주 찾는 유원지, 닭백숙으로 유명했던 이곳이 세계유산으로 탈바꿈했다. 많은 유산을 복원·정비했다. 도립공원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하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도 자리 잡았다. 역사문화관도 한몫할 것이다. 오랜 더위 끝에 찾아온 좋은 계절에 남한산성을 찾아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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