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숙 한국작가회의 경기지회 사무처장
건조한 가을바람이 스치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 문득 삶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은 하루 견디니 하루치만큼 살아진 날들의 집적이라는 느낌이다. 지난 시간을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으니 잘 살지 못한 건 맞다. 현재도 잘 사는 것 같지 않고 앞으로 잘 살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실패인가. 소위 말하는 이번 생은 망한 것인가.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어떤 사람은 잘 놀다 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이라고 해석한 사람의 삶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고 잘 놀다 가려는 인생이 쾌락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인생을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하는지 모른다. 삶은 의사 결정, 다시 말해 끊임없이 갈라지는 여러 개의 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리라. 사는 이유를 알면 그 하나를 결정하는 데 좀 용이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왜 사는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살아진 날들의 의미 없는 집적이라고 했지만 내 삶이 진화한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진화의 DNA가 탑재된 진보적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비유하는 말에 길이라는 키워드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도 있다. 하나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앞길을 가로막는 것과의 싸움인지 모른다. 이겨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거창한 싸움은 아니어도 게임의 대상을 걸고 행동해야 탄력을 받는다. 상대는 자신의 내부일 수도 있고 외부의 힘일 수도 있다. 이득은 불확실하지만 이기면 한 발 전진할 수 있다. 한 발 떼면 관성이 붙어 계속 나아가게 된다. 이겨냈을 때 존재감이 커진다. 삶은 중독이고 이기는 것에 재미를 느낄 것이다.
수동적인 하루가 되지 않으려는 액션은 각자의 몫이다. 순간순간이 선택이다. 삶의 방향으로 일상의 작은 선택들이 있지만 어떤 고비를 넘길 때는 이기는 선택이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진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외부의 물살에 떠밀려도 운신할 수 없는 비루한 현실이 된다. 모르는 것이 나를 결정한다. 비참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기는 건 사는 것이고 지는 건 죽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맞는다 해도 또 다른 길은 열릴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아. 이기기 위해 땀을 흘렸다면 누구의 삶이라도 응원할 일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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