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대명항에서 시작되는 평화누리길 1코스는 ‘경기둘레길’이자 ‘염하강철책길’로도 불린다. 김포와 강화 사이를 흐르는 염하강이 펼치는 여유로운 풍경을 즐기며 15분쯤 걸었을까. 어느새 ‘외할머니의 부엌’이다. 김포시 대곶면 덕포진로 103번길 95-7 언덕에 자리 잡은 생활사 박물관 외할머니의 부엌(관장 김홍선)은 백일홍, 개미취 같은 가을꽃들로 화사하다. 박물관 정원에 커다란 장독과 나란히 서 있는 석상 한 쌍이 정겹다. 박물관이 쉬는 월요일이지만 김홍선 관장이 특별히 시간을 내줬다. “커피 좋아하십니까.” 관장이 직접 내린 진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옛 생각에 잠긴다. 홍시가 달린 감나무가 장독대를 지키던 외갓집의 정겨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노을이 물드는 시간, 외할머니의 부엌에선 구수한 밥 냄새가 풍겼다. 유년의 행복한 시절로 안내하는 생활사 박물관 외할머니 부엌은 2016년 문을 열었다.
■ 행복한 밥상이 차려지는 곳
전시실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간다. 문을 열자 4면 가득한 전시실에 항아리를 비롯한 옛 물건들이 관람객을 반긴다. 공간에 비해 전시된 물건들이 좀 많은 듯 보이지만 깔끔하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기울인 정성이 상당한 듯싶다. 전시실 왼편에 꾸민 외할머니의 부엌부터 살핀다. 무쇠솥이 걸려 있는 부엌에는 어린 시절에서 봤던 친숙한 물건이 여럿 보인다. 호롱불보다 훨씬 밝아 신기하게 바라봤던 남포등이 걸려 있고, 쌀을 씻고 일어 건지는 데 쓰는 이남박과 그 곁에 여문 박을 햇볕에 말려 반으로 잘라 만든 바가지가 걸려 있다.
하얀 사기그릇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찬장이 외갓집처럼 정갈하다. 부뚜막에는 나무로 만든 함지박과 물동이를 일 때 머리 위에 놓던 똬리와 돌을 골라내는 조리가 걸려 있다. 불을 붙일 때 요긴하게 사용했던 풍구도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다. 불씨를 보관하는 불씨통은 아마 성냥이 보급되기 이전의 유물일 듯 싶다. 부엌에 놓인 물건들을 살피며 외할머니가 밥상을 차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으셨을지 새삼 깨닫는다. 콩이나 녹두를 가는 맷돌보다 작은 것이 잣이나 깨를 가는 풀맷돌이다. 떡을 찌는 것을 시루라 하는데 도둑시루는 또 무엇일까.
“무서운 시어머니 몰래 며느리가 떡을 숨겨 놓고 먹을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한 시루입니다.” 정교하게 만든 다식판이나 약과판은 골동품 수집가에게 인기가 많다. 물론 국수틀도 보기 어려운 유물이다. 눌러서 면을 뽑아야 했으니 국수 한 그릇을 만들려면 땀깨나 쏟아야 했을 것이다. 대나무를 촘촘하게 엮어 길쭉하게 만든 용수는 술독에 박아 그 속으로 괴어드는 맑은 술을 떠내는 도구다.
외할머니의 부엌에 가장 많은 전시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김홍선 관장의 부인 이영선 여사가 수집한 옹기다. 알고 보면 옹기도 종류가 여럿이다. 부엌 한 귀퉁이에 둬 길어오는 물을 받아 놓고 쓰는 두멍과 장독으로 많이 사용했던 독은 가장 큰 그릇에 속한다. 배부른 독을 작게 만든 것을 항아리라 하고 항아리보다 크고 독보다 작은 크기의 오지그릇을 중두리라 한다. 물동이란 말에서 짐작하듯 동이는 물을 길어 나를 때 사용하는 그릇인데 한 말 정도 들어간다. 동이만 한 부피에 약간 얇고 넓적하게 만든 오지그릇을 자배기라 하고 기름 끼는 음식을 담아 먹는 조그만 오지그릇을 뚝배기라 부른다. 유물도 제 이름을 불러주면 더욱 정겹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봄날 쑥과 냉이를 담았던 반구형의 소쿠리조차 이제는 보기 어렵다. 싸리나 대나무 조각으로 채를 걸어 동이 모양으로 만든 바구니와 가지고 다니기 편리하게 만든 조그만 바구니 따래끼도 있다. 식사할 때 물그릇으로 쓰는 크고 넓적한 그릇의 이름이 대접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전시된 유물 중에서 금이 간 표면에 철사를 박은 독을 주목한다. 물건에도 생명이 깃든 것처럼 애지중지 아끼며 사용했던 옛사람들의 마음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 아빠! 외할머니의 부엌 가요
박물관 2층으로 이동한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맛있는 요리를 배우는 공간이다. ‘엄마는 브런치 만들고, 아빠와 나는 쿠키 만들기’는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김포시와 경기도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 시민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습니다. 우리 박물관은 요리를 즐겁게 배울 기회를 자주 만들었지요.”
2016년 10월, 박물관 개관 기념으로 ‘우리 가족 요리대회’를 연 것이 그 시작이다. 앉은뱅이 밀국수를 이용해 가족들만의 특별한 요리법을 이웃과 공유하는 즐거운 행사였다. “박물관에서 제공한 앉은뱅이 밀은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토종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정성이 깃든 우리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으며 전통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였지요.” 힘들여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이웃과 나눌 때 기쁨이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엄마와 함께 열심히 요리를 만드는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이 그려진다. 김 관장 부부는 이날 부추전과 솔향 가득한 수육을 참가자들에게 선보였다.
이어 열린 제2회 가족 요리대회는 쌀 떡볶이 만들기였다. 영농조합 법인 ‘게으른 농부’가 제공한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쌀로 만든 떡으로 가족 요리대회를 연 것이다. 박물관은 이후에도 국내산 콩을 이용한 두부 만들기, 동지팥죽 만들기 같은 행사를 통해 올바른 먹거리문화를 전파하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우리 땅에서 난 식재료는 물론이고 도마까지 국내산 소나무로 만든 수공예 작품을 사용할 정도로 준비가 철저하다.
박물관은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1년 경기도와 김포시가 지원하는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에 선정돼 ‘희망의 밥상 펼치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김포시종합사회복지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과 협력해 지원자에게 식재료를 제공하고 요리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가족과 함께 줌(ZOOM)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강의를 진행했지요. 희망의 밥상 펼치기는 김포시에 살고 있는 소외계층을 살피는 프로그램입니다. 선정된 재료를 미리 가정에 배송하고 각 가정에서는 화상으로 강사의 지도에 따라 만들었지요.” 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어 밥상을 차리고 함께 식사하면서 코로나19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기회가 됐다.
■ 밥상에서 나누는 위로와 화해의 시간
외할머니의 부엌은 잊혀 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일에도 적극 나섰다.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 찰밥과 아홉 가지 나물로 한 상 차리기, 귀밝이술과 솔잎 수육 맛보기를 진행했습니다. 물론 모든 식재료는 100% 국내산이지요.” 특히 아이들의 교육에 정성을 쏟아붓고 있다. 아이들은 떡 만들기를 무척 좋아한다.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떡을 만들어요. 스마일 떡부터 딸기와 사과, 곰돌이 모양까지 먹음직스러운 다양한 떡이 탄생합니다.” 음식에 멋을 입히는 색도 천연색이다. 백 가지 질병을 고친다는 선인장꽃 백년초 가루로 붉은색을, 감기 예방과 기관지에 좋다는 치자로 노란색을, 시금치보다 칼슘이 11배나 높다는 보리잎으로 초록빛을 만든다. “아이들은 1층 전시실에서 옛날 부엌 살림살이를 견학하고 박물관 텃밭으로 나가 작물을 관찰합니다. 가지, 오이, 토마토, 콩은 우리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길러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만져볼 수 있어 좋아하지요. 때가 맞으면 아이들이 직접 농산물을 수확하는 경험도 가집니다.”
외할머니 부엌과 덕포진교육박물관은 가족 및 친구들과 추억을 더듬고 만들기에 좋은 박물관이다. 올가을에는 좋은 벗과 함께 김포 덕포진을 찾자. 평화누리길을 나란히 걷고 외할머니의 부엌에서 진한 커피를 마시며 한겨울에 꺼내볼 따스한 추억 하나 만들자.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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