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늦게 온 가을과 생태 재앙

황종원 단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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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심하고 길었던 무더위가 가고 마침내 가을이 왔다. 가을이 갑작스럽게 온 탓에 사람들은 방 안에 놓인 선풍기는 그대로 둔 채, 쌀쌀한 밤공기를 막을 가을 이불을 서둘러 꺼낸다. 그래도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한 가을인지라 높고 푸르른 하늘과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새삼 고맙고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에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소식들이 여전히 심심치 않게 들린다. 폭염은 해마다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커서 어쩌면 올해 우리는 그래도 가장 시원한 여름을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전망, 이상 고온으로 사과, 배를 비롯한 과일 공급량이 부족해 멀지 않은 장래에는 과일도 서민은 사 먹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 등이 그것이다.

 

기후 위기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생태 위기는 더는 미래 세대의 문제쯤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현세대가 생생하게 체험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문제다. 특히 오늘날에는 그 누구보다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과학자들이 지구의 건강 상태를 앞장서서 걱정하고 있다.

 

국내만 해도 대기학자 조천호는 오늘날 인류가 기후 위기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가깝게는 경제위기, 더 멀게는 인류 멸종의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 역설한다.

 

오늘날 생태 재앙의 원인은 물론 인간에게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상업이 이끄는 갖가지 향유에 대한 끝없는 욕망, 그리고 공업이 현실화하는 자연 지배의 기술에 있다. 따라서 이 향유의 욕망 추구를 여전히 삶의 최우선 가치로 삼고, 첨단 기술이면 다 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이 탄소중립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 더딘 발걸음을 보이는 까닭 역시 다른 데 있지 않다. 바로 생태 재앙의 낭떠러지 앞에 서 있으면서도 최대의 효율과 이익의 극대화라는 경제 성장의 가치를 잣대로 해 여러 생태적 기술의 사회적 정착을 유보하기 때문이다.

 

욕망, 효율, 이익 등을 전혀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지구의 위중한 건강 상태를 고려한다면 그것들이 최우선의 가치가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병이 위중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에게 재물이나 명성이 무슨 의미인가. 이 이치를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에 힘써야 한다.

 

첫째, ‘나’의 건강과 행복을 생각하는 절반만이라도 신음하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관심이 자연으로도 향하도록 삶의 여백을 만들자.

 

둘째, ‘내’ 욕망 충족이 아니라 생명 살림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삶을 살아보자. 똑같은 돈을 ‘나’보다 ‘남’을 위해 쓸 때 사람은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셋째, 생태적 생활양식을 사회적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애쓰자. 기업에서의 기술 개발, 정부에서의 행정 조치, 언론에서의 사회적 감시, 교육 현장에서의 교육 내용, 상업에서의 유통, 가정에서의 소비 등이 모두 최대한 생태적인 성격을 띨 수 있도록 노력하자. 이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때 이 재앙에서 벗어날 출구가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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