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영 안전보건공단 경기지역본부 안전문화팀장
매년 7월은 ‘산업안전보건의 달’이다. 사업장의 자율적인 산재예방활동 촉진과 범국민 안전문화 확산을 위해 1968년부터 7월 첫째 주 월요일을 ‘산업안전보건의 날’로 정하고, 그 주를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으로 운영해오다 ‘23년부터 ‘산업안전보건의 달’로 격상했다.
안전문화는 국민 생활 전반에 걸쳐 안전 태도와 관행, 의식이 체질화되어 가치관으로 정착되는 것을 말한다
안전문화(Safety Culture)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건 1988년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자문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보고서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안전문화라는 추상적 개념이 사용되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가 그보다 20년 앞서 ‘산업안전보건의 날’을 정례화 했다는 건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일이 그만큼 중요한 국가적 과제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선도적 노력에도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발생 수준은 OECD 주요 국가에 비해 여전히 높다. 정부는 2021년 중처법 제정 후 2022년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를 통해 산업안전 패러다임을 ’규제와 처벌‘ 중심에서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전환했다.
그리고 이를 확립하기 위해 국민의 안전의식 제고와 사회 전반의 안전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2023년 범국민 안전문화 실천운동 기구인 ‘안전문화실천추진단’을 출범하였다.
이후 0.4~0.5대에 정체되어있던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 당 산재사고사망자 비율)을 ‘23년에 0.39‱까지 낮추었지만, OECD 평균(’22년 0.29‱)에는 아직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전체 산재사고사망자의 79.8%는 기본적인 안전수칙 준수로 예방할 수 있는 떨어짐, 끼임 등의 재래형 사고라는 점에서 일터의 안전문화 부재를 실감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잘 정착된 안전문화도 있다. 바로 안전띠 착용이다. 1981년 고속도로 운전자 안전띠 착용 의무가 처음 시행된 후,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안전띠 착용은 단속에만 걸리지 않으면 되는 귀찮고 불편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전띠 미착용 단속 강화, 차량 경고음 장치 설치 의무화, 안내표지판 홍보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19년 앞좌석 안전띠 착용률은 최고 95.5%까지 올라갔고 OECD 평균(’18년 90.2%)을 넘어섰다. 실제로 안전띠는 착용하지 않을 때 스스로 더 부끄럽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문화로 자리 잡았고, 이제는 전 좌석으로 착용의무가 확대되며 더 높은 수준의 교통안전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느끼는 마음, 수치심(羞恥心, Shame)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치심은 사회구성원들과 대립되는 행동이 해당 집단 생존에 위협이 되므로 사회 규칙을 위반할 때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타인의 시선에 관계없이 오로지 혼자서 느끼는 죄책감과 달리, 수치심은 타인이 그 행동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으로 집단주의적 문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집단 혹은 개인일수록 더 영향력을 갖게 된다고 했다. IMF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집단 혹은 관계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다. 따라서 안전조치 또는 안전수칙 미 준수에 따른 수치심이 작동하는 일터 안전문화가 조성된다면 실질적인 산재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수치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법과 기준을 준수하게 하는 동력을 제공하고, 실제 안전행동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자발적 행동변화는 일터의 자생적 안전 활동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 지속가능한 안전문화로 발전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13층 높이의 고층 현장에서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아 땅으로 떨어지는 충격은 시속 100km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고 충돌하는 것과 거의 같다고 한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동일한 위험 상황에서 운전자가 안전띠를 착용하듯, 작업자도 안전대를 착용하는 일터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일터에서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가 다치고 아프면서까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을 새기고, 수치심이 작동하는 산업안전보건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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