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도시의 문화 지능

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명예회장

image

도시에도 문화 지능(Cultural Intelligence)이 있고, 그에 따라 품격도 달라진다. 각 도시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해 문화적 서사를 잘 구축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그 고장의 인물을 받들고 기리는 게 기본이다. 얼마 전 독일의 몇몇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기념비적인 건물과 유적이라도 당대 인물의 숨결이 녹아들어야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독일에서 가장 번화한 대도시로 꼽히는 프랑크푸르트는 ‘괴테의 도시’로 불린다. 독일의 위대한 문학가로 떠받드는 상징물로 도심에 ‘괴테 광장’을 조성해 놓았다. 괴테가 살던 노란색 생가(괴테하우스)를 4층 건물 형태로 복원해 고풍스러운 유품과 생활 도구를 전시하고 있다. 괴테 청년기 초상화, 집에서 치던 피아노, 2천 권이 달하던 서재, 인형극 놀이방, 벽시계, 물만 짜내는 세탁기 등 18세기에 만들어졌으리라 상상하기 힘든 정교하고 격조 높은 물품들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괴테하우스와 연결된 별도의 박물관에선 괴테 동시대 낭만주의 문화예술인 30여명의 활동상과 관계도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었다. ‘파우스트’ 초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괴테 초기작을 쓰던 책상과 나무침대가 3층 ‘시인의 방’에 그대로 있어 관람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괴테는 영국의 귀족 자제들처럼 1786년 이탈리아로 그랜드 투어에 나서 르네상스의 찬란한 문화예술을 찬미한 ‘이탈리아 기행’을 쓰기도 했다. 괴테보다 6년 앞선 1780년 천재 실학자 연암 박지원 선생도 청나라 고종 황제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의 말단 일원으로 중국으로 향한다. 그는 베이징에서 열하(熱河)까지 4개월간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빼어난 문학적, 학문적, 철학적 가치를 담은 고전 ‘열하일기’를 집필한다.

 

하지만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난 연암의 생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가 55세에 현감을 지냈던 관아 자리인 경남 함양군 안의초교 교정에 연암을 유일하게 기릴 수 있는 사적비가 초라하게 세워져 있을 뿐이다. 인근 진주시에 박지원 선생과 같은 호를 지닌 LG그룹 창업주의 ‘연암 생가’는 박물관처럼 잘 꾸며져 있어 대조적이다. 반면 인천에서 요즘 역사적 인물의 행적을 재조명하는 문화 기획이 이뤄져 다행이다. 민간 주도로 한국 민족예술사를 개척한 우현(又玄) 고유섭 선생(1905∼1944) 타계 80주기를 맞아 뜻깊은 세미나와 추모제가 진행됐다. 빗속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민족 예술혼을 불태운 ‘우현의 길’을 도보 답사했다. 또 독립운동가 만오 홍진 선생을 기리는 사업이 시민운동 차원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공공 영역에서도 이런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인천의 문화 지능을 끌어올릴 수 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