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내려놓기

김소영 한국외국어대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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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영화 ‘다가오는 것들(Things to Come)’(2016년)은 파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나탈리’라는 중년 여성의 삶을 다룬다. 이 작품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했던 이자벨 위페르의 농익은 연기가 돋보인다. 한 남자의 아내, 두 자녀의 엄마, 홀어머니의 딸로 살아가는 나탈리는 자신의 직업에도 언제나 진심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갑작스러운 발언과 어머니의 죽음 등 그녀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일상의 균열을 대하는 나탈리의 태도에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그 시점에서 바라보면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담담히 수용하며,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일상에 최선을 다한다. 변해 버린 남편과도, 급진적 사상을 표하는 제자와도 충돌하지 않는다. 타자의 생각이나 주장의 다름을 받아들이되 나탈리는 묵묵히 자신을 지켜나갈 뿐이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희망을 품고 무언가를 시작하려 한다. 2024년이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도 훌쩍 지나가고 있다. 계획했던 목표를 실행하지 못하고 작심삼일을 일삼는 자신을 바라보며, 올해 남은 날들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나탈리처럼, ‘미래의 다가오는 것들’이 아니라 ‘현재의 주어진 것들’에 시선을 돌려 보자. 그것이 사람이건 사물이건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와 그 모든 것이 지금-여기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비롭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찬란한 봄의 전령들이다. 사계절 모두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연초록 잎새의 싱그러움과 살갗을 스치는 산들바람의 그 포근함은 봄의 진정한 선물임에 분명하다. 여기에 더해 루드비히 울란트의 시를 가곡으로 만든 프란츠 슈베르트의 ‘봄의 신앙’을 살포시 얹어보면 좋겠다. “...오 신선한 향기, 오 새로운 소리! 그러니 가엾은 마음아, 두려워 말아라! 이젠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달라지리라....”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이 가사처럼 다가올 봄의 믿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겨울과 봄은 서로를 이어주기에 겨울은 진정한 겨울이 되고 봄은 비로소 봄이 된다. 우리의 삶 역시 겨울의 차가움과 봄의 따스함이 공존한다. 슬픔과 기쁨, 고통과 환희, 절망과 용기는 대조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겨울과 봄이 그러하듯 이들이 얽혀 있기에 한 인간의 인생도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이다. 두 계절이 교차하는 이 모든 찰나의 순간, 모든 존재가 드러나는 봄의 찬란함을 놓치지 말기를. 그리고 그 역동적 생동감을 움트게 해준 겨울의 인내를 찬미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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