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은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이었다.
6·25전쟁 중의 인천상륙작전이 워낙 강렬한 사건이었으니 9월15일은 단연(斷然) 그 기념일로만 기억되곤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이날은 ‘라면 탄생일’이라는 또 하나의 엄청난 기념일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즉석식품으로서의 라면이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것이 1963년 9월15일이었다. 오늘날 ‘삼양식품’의 뿌리가 된 ‘삼양공업’이 일본으로부터 기계와 기술을 들여와 만든 ‘삼양라면’이다. 지금도 그 이름 그대로인 이 라면의 당시 판매가격은 10원. 대중식당에서 파는 백반 가격이 30원 정도였던 시절이다.
일제(日帝)의 식민지배 피해에 6·25 전쟁의 상처까지 겹쳐 너무나 가난했던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음식찌꺼기들을 모아 끓여 만든 ‘꿀꿀이죽’으로 겨우 연명했다. 그때 ‘삼양공업’ 창업자인 고 전중윤 회장이 남대문시장에서 한 그릇에 5원인 꿀꿀이죽을 사먹으려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본 것이 우리 라면의 출발이 됐다고 한다. 일본 출장 중에 먹어본 라면이 식량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 시절 라면의 등장은 그야말로 구세주의 등장에 버금가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돈도 시간도 없는 사람들이 그나마 배가 좀 덜 고프게, 얼른 한 끼를 때울 수 있게 해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죽도록 일하면서 오늘날 세계 10위권에 들어선 경제강국 대한민국의 기틀을 세워준 1960~80년대 근로자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주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도 바로 라면이었다. 그 시절 만약 라면이 없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짐작조차 쉽지가 않다.
그 뒤로도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임춘애 선수의 “라면만 먹고 뛰었어요” 오보(誤報) 사건처럼 숱한 사연을 만들어 온 라면은 이제 ‘한국인의 제2의 주식(主食)’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인들은 1인당 평균 77개의 라면을 먹었다. 이는 1인당 평균 85개를 먹은 베트남에 이어 세계 2위의 기록이다. 한국은 2020년까지 이 통계에서 거의 늘 1위였다가 2021년부터 베트남에 자리를 넘겨줬다. 하지만 이 수치만으로도 한국인들의 ‘라면 사랑’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제 라면은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던 가슴 시린 음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50대 이상이라면 너나없이 어려웠던 옛 시절 라면에 얽힌 가슴 짠한 사연을 한두 가지씩은 안고 있을 것이다. 우리 라면 탄생 60주년을 맞은 이제, 누구하고든 한번 ‘라면의 추억’을 얘깃거리로 삼아 보면 어떨까.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