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꿈보다 해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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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스님 불교방송 라디오 진행자

옛날 옛적에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선비가 있었다. 지방에 살던 선비는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로 길을 떠났다. 서울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해가 지고 날이 컴컴해졌다. 선비는 근처 마을 주막에 가서 하룻밤 묵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생생한 꿈을 꿨다. 선비가 떡하니 앉아 밥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밥상이 확 엎어지는 꿈이었다.

 

자기 꿈에 놀라 잠에서 벌떡 깬 선비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고. 밥상 엎어진 꿈을 꿨으니 이번 시험 결과도 다 엎어졌구나.”

 

의욕이 사라진 선비는 집으로 그냥 돌아갈까 고민에 빠졌다. 그때 멀리서 은은하게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선비는 답답한 마음에 목탁 소리를 따라 절을 찾아갔다. 자그마한 절을 발견하고 슬쩍 들어가 보니 노스님이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선비는 냅다 노스님께 가서 자신의 답답함을 호소했다. 노스님은 선비의 꿈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젊은 선비 양반. 그 꿈은 아주 좋은 꿈이오.”

 

선비는 깜짝 놀라 말했다. “스님. 밥상이 엎어졌는데 좋은 꿈입니까?”

 

노스님은 웃으며 말했다. “선비 양반, 생각해 보시오. 밥을 먹으려는데 밥상이 엎어졌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을 다시 차려야지요. 그러니 시험 보기 전에 밥상이 엎어졌으니 이제는 시험에 합격해서 새 밥상을 차려 먹는다는 뜻이오. 이게 좋은 꿈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그때서야 선비가 환하게 웃으며 뛸 듯이 기뻐했다. “스님. 그런 깊은 뜻이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비가 즐거운 마음으로 절에서 나간 뒤 옆에 있던 동자승이 노스님께 여쭸다. “스님. 그 꿈이 그런 뜻인가요? 정말 놀랍습니다.”

 

동자승의 말에 노스님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허허. 나야 모르지.”

 

동자승이 깜짝 놀라 다시 여쭈었다. “스님. 그런데 왜 그런 해몽을 하셨습니까?”

 

노스님이 동자승을 미소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꿈이란 것이 본래 마음이 만든 것이란다. 좋은 꿈도 나쁜 꿈도 마음이 만들었는데 자기 마음이 만든 꿈에 자기가 속고 있구나.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그 선비의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그걸로 되지 않았느냐. 허허허.”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그 선비가 노스님을 찾아와 과거시험에 합격했다고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스님의 해몽이 정말 용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우리 주위를 보면 많은 사람이 스스로 만든 착각과 환상에 스스로 묶이고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또 별일도 아닌 일에 어떠한 징조나 조짐이라고 집착하며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때 조금만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야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면, 내가 느끼는 그 모든 상황이 대부분 내가 만들어낸 집착의 그림자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 어리석음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스스로 만든 조작된 믿음으로 진짜 좋은 기회를 수없이 놓치고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꿈보다 해몽이란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어떤 해석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꿈자리에 굴림을 당하지 말고 꿈을 굴리는 존재가 돼야 한다. 마음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굴리는 존재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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