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독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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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연 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교수

오늘날 예술에서의 관객 참여가 여러 방면으로 두드러지고 있다. 불과 20년 전인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작품에 대한 관객 참여는 실험적인 예술로 다뤄졌지만 동시대 예술에서의 관객 참여는 거의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 공연예술 무대에서 관객의 참여는 많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관객 참여가 비단 공연예술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문학예술에서도 작품에 대한 독자의 참여와 그 의미에 관한 논의가 이미 오래전부터 일었기 때문이다.

 

바로 1960년대 문예학을 중심으로 독일에서 전개된 수용미학(aesthetics of reception)의 발전은 공연예술에서 관객성의 능동적 변화를 배태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수용이란 창작 작품을 독자가 받아들이는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수용미학에 따르면 독자가 작품의 생산자 역할을 담당하며 작가로부터 작성된 텍스트는 독자가 존재할 때에야 비로소 예술작품으로 거듭난다. 즉, 진정한 예술작품이란 생산자(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 의해 완성된다는 뜻이다.

 

특히 수용미학을 주장한 문학 학자 볼프강 이저의 이론은 텍스트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라면 그 변화와 함께 ‘텍스트가 독자에게 무엇을 해주는가’ 하는 문학적 문제 제기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새로운 인식을 토대로 이저는 독서 과정에 있는 독자를 텍스트의 해석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작품의 공동 저자로 봤다. 즉, 텍스트가 문학 작품으로 여겨지는 데 있어 진정한 의미는 바로 독자에 의한 적극적인 참여 과정인 ‘독서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공연예술에서의 관객 참여는 말 그대로 관객이 작품에 참여하는 공연 양식을 말한다면 수용미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예술에서의 독자 참여는 이러한 ‘독서 과정’에 의한 문학 작품의 완성을 의미한다.

 

또 이저는 텍스트가 그 자체로 허구성과 불확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독서 과정’은 작품의 모든 텍스트에 존재하는 ‘틈(gap)’, ‘부정성(negation)’, 그리고 ‘불확정성(indeterminacy)’을 독자의 경험과 의미를 바탕으로 한 상상력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이러한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이 바로 독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지식에 의한 의식과 텍스트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지며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그 순간 비로소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미적 반응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문학 작품이 결국 독자로부터 완성된다고 여기는 수용미학은 1960년대에 논의된 이론임에도 동시대까지 영향을 미칠 만큼 해석 자체가 굉장히 현대적이다. 필자에게마저 오랜 시간 동안 생산자 혹은 작가의 예술로 여겨지던 것이 그것을 읽고 향유하는 사람, 즉 독자에게로 관점이 옮겨진 것은 문학예술에 있어 굉장한 변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연예술의 관객성에 이어 문학에서의 독자의 반응과 참여의 중요성은 동시대 예술이 추구하는 예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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