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 목숨 건 한 컷 포탄보다 강하다
■ 카메라, 평화를 기록하다
오산시 죽미령 평화공원에 위치한 ‘유엔군 초전기념관’에 들어서면 곳곳에서 전쟁을 기억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기념물과 마주하게 된다. 평화공원을 다 둘러보려면 지도를 참고해야 할 정도로 공간이 넓고 둘러봐야 할 기념물이 많다. 스미스 평화관과 신 유엔군 초전기념비 사이에 위치한 유엔군 초전기념관은 현재 ‘평화를 위한 기록’이라는 특별전을 열고 있다. 기념관 외벽에 걸린 대형 포스터에 새겨진 글귀가 눈길을 끈다.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유엔군 초전기념관 개관 10주년/의미 있는 2023년, 국가보훈부 승격을 축하합니다. 대한민국 수많은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유엔군 초전기념관을 설립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전쟁을 충실히 기록하는 일. 포스터에 여러 종류의 카메라가 등장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유엔군 초전기념관의 상징 부조도 6·25전쟁 당시 두 명의 미군이 참호에 있는 사진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특별전을 총괄 기획한 사무국장 고아라 학예연구사가 전시의 기획 의도를 들려준다. “이번 전시는 기록을 위한 시선과 그 시선으로 사용되는 도구 중의 하나인 카메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요. 글을 쓸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재능이 있다면 노래를 만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 순간을 그대로 남기기에 제일 좋은 것은 사진입니다. 우리들도 일상에서 흔히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전시된 카메라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인데, 과천에 소재한 한국카메라박물관에서 임차한 것이라고 한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흥미롭고 다양한 카메라에 담긴 사연도 풍성하다.
“카메라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의 것을 훔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사랑하는 이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며, 어떤 것은 같거나 비슷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아 사실을 전달하고 역사를 남기는 데 쓰이기도 합니다.”
처음 소개하는 것이 ‘훔치기 위한 카메라’다. 한 국가나 단체의 비밀이나 상황을 몰래 알아내 경쟁 또는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나 단체에 제공하기 위해 만든 카메라들은 모양부터 기상천외하다. 최초의 스파이 카메라는 신사의 조끼 속에 착용할 수 있는 둥글납작한 모양인데 셔터가 단추처럼 생겼다. 물론 숙녀의 핸드백 속에 장착한 카메라도 전시돼 있다. 반지나 회중시계에 숨겨진 카메라가 말해 주듯이 ‘훔치기 위한 카메라’는 상대의 눈을 속이는 것이 핵심이다. 포스터에 담배가 등장한 까닭도 밝혀진다. 담뱃갑이 카메라인 것이다.
“담배 세 개비 중에서 가장 길게 나와 있는 것이 셔터입니다”.
그렇다면 ‘지키기 위한 카메라’는 어떨까? “‘KE-4(1) COMBAT 70MM’는 이름처럼 70㎜의 대형 전투 카메라인데, 포탄을 맞아도 몸체가 손상되지 않도록 특수강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제작 연도가 1953년이니 6·25전쟁 때 사용했을 수도 있겠다. ‘항공기 기관총 타입 카메라 89’는 사격과 촬영이 동시에 이뤄지는 무시무시한 것인데,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39년에 일본 코니카사가 제작한 것이다.
“그렇지요. 스파이용이나 전쟁용 카메라를 가장 많이 제작한 나라가 전범국 독일과 일본입니다”.
■ 포화 속 뛰어든 종군기자들
“두 번째까지는 장비가 중심이지만 세 번째 섹션은 종군기자 네 분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종군기자는 런던타임스 소속으로 크림전쟁을 취재한 월리엄 하위드 러셀(1820~1907)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보도한 그의 취재로 인해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인 나이팅게일이 군 간호사로 참전하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이에요. 덕분에 영국군 부상자의 사망률은 40%에서 2%로 감소하는 기적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정말 놀랍죠”.
20세기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꼽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의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1913~1954)는 스페인 내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20세기 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쟁터의 최전선에 섰던 기자다. 그는 종군기자의 자세를 이렇게 일갈한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복을 입고 미소 짓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은 또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까? “뉴욕헤럴드트리뷴 소속의 마거릿 히긴스(1920~1966)는 6·25전쟁에 가장 먼저 도착한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인데, 1950년 12월까지 6·25전쟁의 주요한 현장은 모두 그가 담은 것이지요. 이때의 활약으로 여성 종군기자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는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로 널리 알려진 독일 기자다. 왜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로 달려갔냐고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위험한 곳이라도 당연히 가야 한다. 그것이 기자가 하는 일이다.” 그가 기자정신을 발휘한 덕분에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이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학도병으로 참전한 지갑종(1927~2021)은 국방부 관계자의 요청으로 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에 대해 기록하는 종군기자로 활동한다. 정전 후에도 기자로 활동하며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 16개국을 순방보도하기도 했다. 스미스 부대원들을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해 1955년에 건립된 구 초전기념비 기단에 설치한 동판이 1963년에 사라졌다. 1977년 지갑종 유엔한국참전국협회장이 하와이 골동품점에서 우연히 이 동판을 발견해 구입해 2014년 오산시에 기증한다. 육군사관학교 8기로 6·25전쟁 당시 사진대 대장을 맡았던 임인식(1920~1998)은 총대신 카메라를 메고 참혹하고 처절했던 전쟁의 현장을 기록한다. 20세기의 역사적인 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한 종군기자의 사연과 카메라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죽미령 전투의 영웅을 기억하라
1950년 7월5일 오전 3시, 빗속을 뚫고 죽미령 고개에 도착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비를 맞으며 진지를 구축한다. 오전 7시, 수원 근처에서 북한의 전차부대를 확인하고, 8시16분에 드디어 유엔군과 북한군과의 첫 전투가 시작된다. 소련제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과 6시간15분 동안 전투를 벌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2시30분 퇴각을 결정한다.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이 전투에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 540명 중 18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는데 북한군도 5천여명 중 150여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된다. 오산 죽미령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승패와 관계없이 유엔군의 참전을 알리게 된 중요한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유엔군 초전기념관 상설전시관은 영상과 전시물, 사진으로 재미있게 구성했다. 영상으로 ‘그들을 만나러 가다’를 시청하면 사진과 전시물을 통해 ‘6·25전쟁과 유엔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참전과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다시 영상으로 ‘죽미령 전투’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그 후, 지금의 우리’를 보여준다. 한국의 평화를 위해 싸운 ‘스미스 부대 540명 명판’이 새겨진 공간을 지나면 ‘스미스 부대원 기증유물’을 만나게 된다. 영상으로 읽는 ‘스미스 부대로부터 온 편지’와 ‘잊지 못할 그들에게’는 평화를 지킨 영웅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분단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통일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만 평화를 위한 노력은 서둘러야 한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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