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외상센터에는 생명이 위독하거나 사망할 만큼 많이 다친 이들이 온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애를 쓰지만 모두를 살릴 수는 없고,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게 되면 더욱 안쓰럽다. 한밤중에 배달하다 사고로 실려오는 청년을 보면 낮에 일하고 쉬어야 할 시간인데 밤 늦게까지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올해 초 국회미래연구원에서 발표한 ‘2050년 대한민국 미래전망과 대응 전략’에 따르면 한국의 미래는 높은 자살률, 고령화로 인한 노인 빈곤율 증가, 출산율 저하로 인한 생산인구의 감소를 비롯한 많은 요인들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대응 전략은 소수와 약자를 돌보는 사회, 자율적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사회, 지역사회가 강화되는 사회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런 대전환이 가능할까?
며칠 전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단체에서 폐과를 선언했다. 그만큼 소아청소년과의 상황이 심각하고 앞으로 더 우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소아청소년과는 내과의 분과들이 많은 것처럼 세부 분야별로 진료할 의사가 필요한 필수과에 속한다. 미숙아와 같은 신생아를 진료하거나 희귀 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환자 수가 적더라도 꼭 필요한 전문가들이다. 게다가 어린아이를 진료하는 건 어른보다 더욱 힘들고 시간이 들기 때문에 그에 맞는 수가의 현실화가 시급하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신규 의사들이 전공 과목을 선택할 때는 본인의 성향과 함께 앞으로의 전망을 고려한다. 결국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개원의들은 저수가에 대해 많은 진료로 버텨오다 환자군도 줄고 코로나19를 겪으며 버틸 수 없게 됐다.
돈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필수적이고 돈을 벌기 위해 일도 하지만, 돈이 사람보다 중요한 세상이 되면 방향은 정해져 있다. 열심히 일을 해 월급을 모으는 것보다 대출받아 부동산에 투자해 버는 수익이 훨씬 더 큰 세상이라면 누가 힘들게 일하고 싶겠는가?
해당 전문의가 아니면 치료할 수 없고 시간을 지체하면 사망할 수 있는 중증 응급환자가 하루에 한 번 정도 발생하는데 언제 올지 모른다고 치자. 24시간 진료가 가능하려면 해당 과의 전문의는 몇 명이 필요할까? 이 전문의의 하루 근무에 대한 급여는 얼마가 적당할까?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남들이 쉬는 주말에 나와 24시간을 근무한 ‘필요한’ 의사가 아니라 하루 동안 한 명만 진료한 ‘무능한’ 의사가 돼 버린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얼마를 지불할 의지가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이 명확하지 않다면 대한민국의 대전환은 요원한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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