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영종도 시민 주권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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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3·1 독립운동 104주년을 맞아 영종도 주민들이 ‘웃픈’ 선언을 했다. “소수라는 이유로 20년 넘게 이동권, 정주권, 행복추구권,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국민임을 재천명하고 행복추구권을 강조했다.

 

주민들은 일반 고속도로에 비해 3배 비싼 통행료를 내야 하는 ‘이동 차별’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기로 했다. 3·1절을 기해 차량 1천여대를 몰고 경적을 울리며 고액권으로 통행료를 내면서 영종도~대통령 집무실인 서울 용산까지 준법 차량시위를 하기로 했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위 직전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한국도로공사, 민간기업이 수도권 국민을 위한 접점을 조속히 강구하라”며 정부가 올해부터 시행하기로 한 영종도 통행료 약속을 지키도록 지시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 국토부와 인천시가 ‘인천·영종대교 통행료 인하 추진안’을 발표했다. 영종도 주민들은 시위 대신 ‘주민의 힘으로 이룬 위대한 쾌거’를 알리기 위한 통행료 인하 성과보고대회를 열었다.

 

시민의 일상적 삶과 밀접한 통행료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 지시로 정책이 급속히 선회하는 행태는 민관 갈등 해결 경로의 민낯을 보여준다. 세계 경제 10위, 군사 대국 6위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으나 통치권, 정치적 해결, 행정 서비스는 개발도상국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영종도 주민들은 2003년부터 통행료 인하운동에 나서 2004년 영종대교 통행료 폐지 헌법소원을 냈다. 통행료 낼 돈이 없으면 이사 다니거나 이동할 수도 없다는 극단적 가정으로 헌법에서 보장한 이동자유권 보호를 호소했다. 헌법재판소는 뱃길을 이용하면 된다는 이상한 근거로 주민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종도를 오가는 배편이 무료가 아닌 데다 도로와 뱃길을 동격화하는 수긍하기 힘든 법리를 폈다.

 

주민들의 지속적인 의문 제기로 정부는 2018년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관리 로드맵’에 이어 2020년 인천대교와 영종대교 민간운영사업자와 통행료 인하를 위한 ‘사업 재구조화 공동용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민간사업자와의 협의 불능을 이유로 통행료 인하는 기약하기 힘들었다.

 

세금은 국민에게 필요한 분야에 요긴하게 사용돼야 한다. 사회기반시설도 그중의 하나다. 정부가 해야 할 영종도 연륙교 건설을 민간투자자에 맡기고 나서 ‘최소운영수입보장(MRG)’이라는 황당한 특혜를 줬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예상 교통량을 과대 추산한 통계 수치를 근거로 두 교량 개통 이후 2021년까지 1조8천억 원을 지급했다. 민자사업이 결과적으로 ‘혈세 먹는 하마’라는 지탄을 받았다. 정책 오류를 영종도 주민 부담으로 전가하는 바람에 시민혁명 때의 국민 기본권 선언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 전근대적 관료제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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