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8월 폴란드 유대인 거주지역의 한 고아원에 독일 나치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60대의 원장은 병사들에게 잠시 시간을 줄 것을 부탁한 후, 192명의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히고는, 맨 앞줄에 서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바르샤바 기차역을 향해 소풍 가듯 행진을 했다. 하지만 기차의 종착지는 가스실이 있는 수용소, 한 독일군 장교가 “원장님은 풀어주라는 사령관의 명령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장은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올랐고, 차디찬 가스실에서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나치의 광기 어린 폭력 속에서도 유대인 전쟁고아들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소아과 의사인 야누슈 코르작의 이야기이다. 6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한, 시체를 처리할 방법이 없어 큰 구덩이에 불도저로 시체를 밀어넣고는 ‘약 1천명’, ‘약 500명’ 이런 식으로 팻말을 세웠던 야만의 시대, 코르작은 ‘모든 어린이는 사랑받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숭고한 사명을 실천하고자 목숨까지 바친 것이다. 이에 1989년 코르작의 조국 폴란드가 발의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어린이와 함께한 코르작의 일생이 세계를 감동시킨 결과다.
이렇게 탄생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형법 위반 능력이 없다고 간주되는 최저연령을 설정하도록 노력할 것’을 규정했고, 2019년 아동권리위원회는 ‘세계적으로 가장 일반적인 형사책임 최저연령은 14세’라고 명시했다. 대한민국 소년법 역시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을 ‘촉법소년으로 분류해,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도록 규정한 것 역시 그 이유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정부가 발의한 ‘촉법소년 기준 나이를 만 13세로 낮추는’ 소년법 개정안을 지켜보는 여론은 복잡하다. 나날이 흉포해지는 소년들의 범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지지 의견도 있지만, 다른 한편 단순 엄벌보다는 교화가 우선이라는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하지만 소년범죄의 상당수가 제대로 된 훈육을 받지 못한 가정환경과 열악한 사회안전망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원인은 외면한 채 미성숙한 인격체인 소년에게 그 책임을 온전히 부담토록 했다는 비판은 뼈를 때린다.
이스라엘에는 죽어간 유대인들을 위한 추모관 ‘야드 바쉠’이 있다. 그리고 어두운 방에 촛불이 켜져 있는 그곳을 벗어나면, 슬픈 표정의 아이들을 가득 안고 있는 야누슈 코르작의 청동 조형물이 나온다. 작금의 소년법 개정 논란이 숭고한 그의 희생을 헛되이 하는 게 아닌지 문득 서글프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