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민간 기업에 인권·인식개선 강의...발달장애인 다양한 교육 통해 강사 육성 각종 문화 관련 집행위원장·수상 영예도 불철주야 ‘장애인 인권’ 영화 제작 준비 “차별·편견없는 바른 방향 이끌어 나갈 것”
선천성 지체장애인 황성환 다올림장애인인권교육센터 대표(51)는 장애인 관련 업무를 맡은 지 4년 차가 됐다. 몇년 전만 해도 정보기술(IT) 분야에 종사하며 자신을 위한 미래를 설계하며 본인의 업무에만 몰두해 왔다.
잠시 쉬어 가던 그에게 교회에서 장애인 부서장을 맡아 달라는 갑작스러운 제안이 들어왔다. 장애를 겪고 있는 그가 장애인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헤아릴 것이라는 교회 측의 판단이었다.
고민도 잠시, 황 대표는 같은 처지에 있는 약자들에게 미약한 힘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황 대표는 ‘타인을 위한 삶’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내던졌다. 이후 지금까지 그는 장애 인식 개선 교육과 장애인 인권 교육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만 160여 곳의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 등에 직장 내 장애인식 개선 교육 강의를 했다는 황 대표. 이 와중에 장애인 인권에 관한 영화와 시를 출품해 수상도 했다. 하루를 꽉 채워 산다는 황 대표의 하루를 동행해봤다.
■ ‘사비 털어 운영’... 사회적 약자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
용인특례시 기흥구의 다올림장애인인권교육센터. 시곗바늘이 오전 9시 정각을 가리킬 즈음 황 대표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출근했다.
황 대표의 사무실 벽 곳곳에는 영화 포스터와 자격증, 수료증이 빼곡하게 붙어 있고 선반에는 각종 상장과 상패가 놓여 있었다. 그간 황 대표의 행적을 대변해 주고 있는 셈이었다.
출근과 동시에 급하게 자리에 앉은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메일 확인이다. 전날 보내 놓은 강의 신청서가 접수됐는지 확인하고, 강의처에서 들어온 강의 의뢰서를 정리했다.
곧이어 회의를 소집해 직원들과 강의 일정 체크, 강사 배정, 그에 따른 행정 업무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얘기했다. 한 시간 넘는 회의를 마치고 난 황 대표는 강의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과정들은 오전 시간 내내 이어졌다.
황 대표는 주로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들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권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등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센터 내부에서는 발달장애인에게 컴퓨터 프로그램, 인권 강의 등을 하며 강사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16명의 장애인과 비장애인 강사와 함께하고 있는 황 대표는 교육을 듣는 장애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쁜 일정 속에서도 성심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보통 이런 일들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시나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겠거니 생각하지만 공모 사업 외에 별도로 받는 지원금은 없이 사비로 운영하고 있다”며 “물론 힘든 점도 많지만 이전에는 나를 위해 일을 했었는데, 이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겨 도저히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뿌듯함을 내비쳤다.
■ 가르치고, 배우고 ‘소통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낮 12시가 되자 몇분 만에 밥을 허겁지겁 입속에 욱여넣은 황 대표는 한쪽 구석에서 악기를 들고 나와 교육장으로 이동했다. ‘바이올린 초급’ 수업시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황 대표는 장애인 인권 강사이자 학생 역할도 한다. 깜짝 놀란 것은 그의 밝은 분위기. 몸은 불편했지만 수업시간 내내 눈이 반짝거렸다.
황 대표는 무려 두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바이올린을 내려놓지 않았다. 강사는 황 대표를 가리키며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황 대표는 이 시간들이 학습자의 입장에서 함께 참여해 그들을 더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주 1회 정기적으로 듣는 수업은 바이올린 외에도 시 문학 수업, 영화 제작, 수제맥주를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 론볼 체육교실까지 다양하다.
사무실에서 차로 45분 거리를 가면 론볼 경기장이 있는데 1년을 꾸준하게 배우다 보니 경기도생활체육인대회에서 론볼 금메달까지 수상했다.
황 대표가 이렇게 장애인들과 학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센터를 열었던 초창기에 발달장애인에게 컴퓨터 자격증 과정을 강의했다. 그에게 첫 강의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는 “처음 일 나갔을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면서 “발달장애인이었는데 처음엔 자판을 하나도 못 쳤고, 의사소통이 굉장히 힘들었다. 인지시키는 것만 해도 1년, 이후 학습 과정을 밟는 데 1년이 더 걸렸다”며 초창기 힘들었던 때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황 대표는 “강의를 하면서 학습에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몇몇 발달장애인을 보고 직접 학습자의 입장에서 이들이 느끼는 부분을 공감하기 위해 다양한 수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발달장애인들을 꼼꼼하게 지켜볼 기회가 있었던 황 대표는 “그분들이 자기 욕구를 표현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나의 방법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못 알아챘던 거였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장애인들의 애로사항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장애인들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발 들인 ‘예술의 길’
오후 3시가 됐지만 여전히 황 대표에게 휴식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인천시중부장애인복지관 외부 강의다.
두 시간 남짓한 강의의 내용은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과 성희롱 예방 교육이었다. 그는 강의 내내 자신의 경험담과 예술작품 등을 엮어 지루하지 않게 설명했다.
강의를 마치고 사무실에 복귀한 황 대표는 숨 돌릴 틈 없이 사무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영화제 관계자들을 만났다.
올해 11월 즈음 열릴 영화제를 준비하기 위한 월별 진행 상황을 공유하기 위한 자리다. 자원봉사자 섭외와 포스터 출력, 제작 인원 등도 모두 황 대표가 챙겨야 하는 일이다.
황 대표는 “장애인들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술의 길에도 발을 들였다”고 말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지난해 용인시장애인인권영화제 대상과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또한 지난해 11월부터는 용인시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까지 맡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대를 통해 모두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황 대표는 “영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장애인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나면 좋겠다”고 전했다.
■ 퇴근 시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사무실 불
황 대표의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어느덧 오후 6시30분. 다른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지만 그는 사무실을 떠나지 못했다.
비로소 이 시간이 돼서야 온전히 교육 이외의 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컴퓨터 앞에 앉은 황 대표. 오전에는 그날 할 일에 대한 사무 행정 처리와 회의였다면, 저녁시간에는 오늘 했던 일에 대한 마무리 작업 시간이다. 강의를 마치고 와서 결과 보고서 작성 등 마감 업무를 처리하는 것만 해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행정 업무를 마친 오후 8시30분부터는 본격적으로 장애인 인권과 관련한 집필에 나섰다. 그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황 대표는 지난 10월 장애인 인권을 다룬 영화 제작을 위해 드론자격증을 취득했고, 올해는 대학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하기 위해 지원도 했다.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는 그는 “오십 평생을 장애로 인해 겪어야 할 어려움은 다 겪고, 당할 수 있는 불이익은 다 당했다”며 “‘차별없는 세상’, ‘편견없는 사회’를 목표로 삼고 앞으로도 다올림장애인인권교육센터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윤현서기자/사진=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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