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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9. 광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정치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9. 광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나라 잃은 대한의 딸들… 못다 핀 소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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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실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초상화를 찍은 108인의 초상전이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광주시 퇴촌면 가새골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성노예’로도 불리는 ‘위안부’ 관련 세계 최초의 박물관이다. 1998년 8월에 개관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관장 선경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 부설이다. 역사관을 관람하기 전 마당에서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드린다.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나신 열다섯 분 할머니들의 흉상이다.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른 정복수 할머니를 비롯해 모두가 저고리를 입고 있다. 할머니들의 흉상 뒤로 소녀상이 서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녀상은 의자에 앉은 모습이지만, 최초의 소녀상은 이처럼 서 있는 상이지요. 이 소녀상은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못다 핀 꽃’을 바탕으로 윤영석 작가가 형상화한 것입니다” 오정임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들으며 소녀상과 흉상을 다시 살피며 기원한다. 이승에서 못다 핀 꽃들이지만 저승에서는 활짝 꽃 피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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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 광장에는 나눔의집에서 눈을 감으신 위안부 할머님들의 흉상이 놓여 있다. 윤원규기자

■ 광주에 세계 최초로 위안부 박물관을 세우다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내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역사관 입구가 좁다.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증언하기 전까지 위안부의 존재는 역사의 저편에 밀려나 있었다. “여기 이곳, 잊을 수 없는 역사가 있습니다. ...여기 이곳 결코 쉽게는 아물지 않을 역사가 있습니다” 대동주택 곽정환 회장의 희사로 할머니들의 안식처 나눔의 집과 역사관이 이곳에 마련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역사관으로 들어선다. 제1전시관은 ‘역사의 장’이다. ‘일본군 위안부란 무엇인가?’, ‘시대 상황과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성립’, ‘어떤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관련 활동연혁’으로 구분해 위안부의 실상을 알려준다. 기다란 원통의 이름은 ‘타임터널’이다. 안을 들여다보니 할머니가 피해를 증언하는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 이름처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통로인 것이다. 오래 전에 완료되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위안부의 역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제2전시관 ‘기록의 장’에는 태평양전쟁 당시의 사진자료와 기록을 비롯한 몇 가지 특별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낡은 약병과 시험관, 벌겋게 녹슨 총검과 휘어진 군도, 군인들이 위안부에게 돈 대신 줬던 군표 같은 유물들이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다. ‘1970년대 오키나와에서 밝혀진 위안부 피해자 배봉기’라는 패널이 주목된다. 충남 예산 출신의 배봉기 할머니(1914~1991)는 위안부의 존재를 세상에 가장 먼저 증언한 분이다. 광복이 돼도 귀국하지 못하고 오키나와에 머물고 있던 그는 미군이 점령했던 오키나와를 일본에게 반환될 때 강제출국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성노예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1975년 지역신문에 이러한 사실이 보도되었으나 당시 조총련 관계자가 할머니를 보살폈기 때문에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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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한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은 성노예 문제를 주제로 세계 최초로 세워진 역사관으로 위안부의 역사를 기록, 교육함으로써 같은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역사관 전경. 윤원규기자

■ 세계의 시민들과 연대해 진실을 밝히다

제3전시관 ‘체험의 장’은 전장에서 위안부의 생활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현한 위안소 입구에 이용시간과 요금표가 붙어있다. 나무 침대와 세숫대야를 놓는 받침대가 놓여 있는 위안소 안은 몹시 좁고 삭막하다. 끌려간 소녀들은 이처럼 숨 막히는 공간에서 하루에 수십 명의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던 것이다. 제4전시관 ‘고발의 장’에서 마주한 ‘끌려간 피해 여성들’과 ‘세계 각지의 피해 여성들’이란 패널은 중국, 필리핀, 타이완과 네덜란드 여성들까지 성노예로 동원했던 사실을 알려준다. 위안부 여성이 불룩한 배를 잡고 서 있는 흑백사진이 있다. 임신한 그 여성은 해방 후 북한에 살았던 박영심이다. “북한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일본을 상대로 위안부 문제를 꾸준하게 제기하고 있지요” 후원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진 동판에서 유명인의 이름을 여럿 발견한다. 역사관 관계자가 들려주는 사연이 훈훈하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후원했더군요. 학생들이 물건을 만들고 팔아 성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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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전시장에 마련된 모형 위안소 모습. 성노예 피해자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보인다. 윤원규기자

■ 그림과 유품으로 전하는 이야기들

할머니들의 사진과 유품이 전시된 공간에 들어선다. 한쪽에는 영상을 볼 수 있는 기기가 줄지어 있다. “할머니들이 남기신 유품과 사진, 영상은 잊힌 역사가 아닌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입니다. 올바른 역사와 인권과 평화를 구현하고자 했던 피해자들의 평생의 염원을 담은 기록물이지요. 할머니들이 생존했을 때 기록한 영상도 볼 수 있습니다”

 

고인이 되신 할머니들이 생전에 활동한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한 맺힌 삶을 삶다’라는 글귀가 없어도 이 분들의 고단한 생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할머니들의 사진과 유품에는 숱한 사연들이 깃들어있다. 평생 절약하며 모은 돈을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이웃에게 기부한 김군자 할머니(1926~2017)의 유언이 묵직하다. “내 장례식비 500만원 빼고 다 필요한 사람에게 쓰소” 일본군에게 잡혀가는 처녀의 슬픔을 표현한 ‘끌려감’과 ‘못다 핀 꽃’ 같은 그림으로 성노예의 실상을 고발했던 김순덕 할머니(1921~2004)의 치마저고리와 하얀 버선은 수요집회를 알려주는 유품이다. 17세에 인천에 일하러 가다가 납치되어 중국 하이난 섬에서 6년 간 일본군 성노예로 피해를 입은 김옥주 할머니(1923~2000)는 자신과 같은 전쟁 희생자인 ‘라이 따이한’을 위해 써 달라며 2천만 원을 기부한다. 평생 힘들게 살았지만 모은 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하고, 캄보디아에 우물을 만들어 기증했던 김화선 할머니(1928~2012)의 소망은 무엇일까? “나도 결혼해서 여자로 행복하게 살고 싶어” 친구들과 하동에 놀러갔다가 중국으로 끌려가 10년 간 성노예로 피해를 당했던 전남 광양 출신의 문명금 할머니(1917~2000)는 정부의 생계지원금 등 전 재산 4천3백만 원을 베트남 전쟁희생자를 위한 기금으로 기부해 ‘사죄와 평화 기념관 건립을 초석을 다졌다.

 

광주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개관을 시작으로 부산, 서울, 대구에도 역사관이 설립되고 일본의 도쿄, 중국의 난징과 상하이, 대만의 타이페이 등에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한국에서 시작한 ‘수요집회’는 세계 각지로 번져나갔다. 오사카, 고베, 교토 등 일본의 여러 도시에서도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소녀상도 미국과 독일에도 세워졌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가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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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그림전시장에서는 위안부 희생 할머니들이 위안소 생활속 한과 고통, 희망을 표현한 작품이 전시돼 있다 /역사관을 찾은 학생, 시민들이 남긴 응원의 메시지. 윤원규기자

■ 대지의 여인처럼 굳세고 당당하게

자신들이 당한 아픔과 슬픔, 그리고 소망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할머니들의 그림은 강한 호소력이 있다. 2층 추모 공간에는 국내외 피해자 명단 250분과 150분의 사진과 피해자 할머니들의 핸드 프린팅과 풋 프린팅을 전시하고 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영화 ‘귀향, 소녀들의 이야기’의 소품도 볼 수 있다. 제2역사관 뒤편 마당에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추모비에는 할머님들의 한이 담긴 생전에 강조하셨던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임옥상 작가의 조각 ‘대지의 여인’은 한국 여성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로 남겨 두어야한다”고 당부하셨던 김학순 할머니의 당부를 실천해왔다. 그러나 최근 나눔의 집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로 역사관은 한동안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잘못을 속히 바로 잡아야 한다. 역사관이 전쟁과 여성, 인권과 평화,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우뚝 서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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